로렌스의 대표작 <무지개>(1915)를 강의에서 읽었다. 전작인 <아들과 연인>(1913)과 후속작인 <사랑에 빠진 여인들>(1920) 사이의 작품인데, <무지개>와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애초에 <자매들>이란 제목을 갖고 있었다. 분량상 분권된 것인데, 때문에 <무지개>의 주인공 어슐라는 <사랑에 빠진 여인들>에서도 동생 구드런과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발자크 소설에서처럼 이른바 인물의 ‘재등장‘ 기법이 사용된 셈.
<무지개>에는 ‘엘제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헌사가 붙어 있다. 엘제는 로렌스가 1914년에 결혼한 아내 프리다의 언니, 곧 처형이다. 결혼전 성이 폰 리히트호펜이어서(귀족이어서 ‘폰‘이 붙는다) 엘제와 프리다는 ‘폰 리히트호펜 자매‘로도 불린다. 자전적인 소설 <아들과 연인>에 이어서 이 리히트호펜 자매를 모델로 하여 착수한 작품이 <무지개>와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었던 것.
엘제 폰 리히트호펜(1874-1973)은 동생 프리다보다 다섯 살 연상이고 프리다는 로렌스보다 여섯 살 연상이어서 로렌스보다는 열한 살 위가 된다.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편. 엘제는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애제자이자 연인이기도 했고 (남편이 사망한 뒤에는) 베버의 동생 알프레드 베버와도 동거한 적이 있다. 결혼은 베버의 제자 에드가 야페하고 1902년에 하여 세 자녀를 두는데 결혼한 상태에서 프로이트의 제자 오토 그로스의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도 매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프리다 역시 1912년 로렌스를 처음 만났을 당시 지도교수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진 프리다는 과감하게 세 자녀 대신에 로렌스를 선택한다(아이들을 버린 셈인데, 그렇더라도 1930년 로렌스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에 프리다는 자녀들과 재회한다). 이력으로만 보더라도 ‘세기의 자매들‘이다. 로렌스의 <무지개>와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 대표작이면서 문제작이 된 데는 원 모델들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겠다.
리히트호펜 자매의 선택과 인생이 지금 기준으로도 파격적이라면,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로렌스의 소설들도 파격적이고 현재적이다. 여전히 신선하며 유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시각에서 작품의 의의를 강의에서 힘주어 강조했다. 두 가지 유감도 보태자면, 하나는 민음사판의 <무지개> 1권이 계속 품절상태라는 것(번역본이 범우사판과 함께 두 종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어판 <폰 리히트호펜 자매>(1974)가 절판상태라는 것. 상당한 분량의 로렌스 평전과 프리다 평전도 소장하고 있기에 <폰 리히트호펜 자매>만 구할 수 있다면 나름 완벽한 컬렉션이 될 텐데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