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번역과 일본의 근대 ㅣ 이산의 책 14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 지음, 임성모 옮김 / 이산 / 2000년 8월
평점 :
최근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친구에게서 논문 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부 때부터 영어 교과서를 배우면서 일상적으로 영어 용어를 써 왔기 때문에, 전문 용어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더란다. 고민 끝에 이것저것 책들을 찾아 가며 어색하게나마 바꿔 넣었는데 일본에서 나온 연구들에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걔들은 웬만한 건 다 한자로 바꾸거든.' 마루야마 마사오 씨와 가토 슈이치 씨가 근대 일본의 번역에 대해 나눈 대화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생각했다.
300년 쇄국을 포기하고 서양 문물의 홍수 속에 파묻히면서 일본인들은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외국어를 그대로 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개념들을 한자로 번역하여 쓸 것인가. 결국 그들은 후자를 택했다. 에도 유학의 전통을 이은 것이기도 했고 난학과 관련이 있기도 했지만, 이 선택은 이후 일본의 사상과 학문이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새로운 세력 판도로까지 이어졌다. 패전 이후의 일본어는 일견 범람하는 외래어로 몸살을 치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어딘가에도 번역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 21세기의 공학도가 한국어로 전공 논문을 쓰면서 일본 용어를 참조하기도 하나 보다.
왜 굳이 번역을 해야 하는가, 영어로 쓰면 편리한 것을 어색한 한자어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 정색을 하고 질문한다면 솔직히 대답이 궁하긴 하다. 그러나, 아주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용어를 바꿈으로서 외래의 학문에 우리의 사고를 투영할 수 있지 않을까, 음역만 해서는 그저 남의 카피에 불과할 것을 우리 말로 바꾸어 논의하면서 진정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루야마 씨와 가토 씨는 서양 문물의 전래를 말하면서 계속 일본 유학의 전통을 돌아 본다. 박식한 두 지성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더구나 낯설기만 한 일본 전통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일본인들의 고민을 느껴보는 것, 그리고 그 고민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전환시켜 보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칭찬할만 한 역주가 이 고생스럽지만 재미있는 여행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음을 지적해야겠다. 각각의 역주 앞에 표제어를 명시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 근대에 대한 즐거운 읽을 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