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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 개정증보판
한국문화인류학회 엮음 / 일조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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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문화인류학 맛보기'이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강좌를 듣는 학생과 일반인을 위해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원들이 선정한 열 아홉 편의 민족지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는 확실히 재미있는 글들도 있지만 많은 글들이 어딘지 꺼끌꺼끌한 언어 탓에 부드럽게 삼켜지지 않는다. 그 결과, 다 읽은 후 '문화인류학의 맛'을 한 마디로 평가하려 했을 때 떠오른 단어는 저것이다. 밍밍함.

내가 최초로 읽은 인류학 관련 서적은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이었다. 수능을 앞둔 정신없는 시기에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가면서 푹 빠져 읽었다. 그 때 느꼈던 짜릿한 기쁨과 지금의 밍밍함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본 결론은 역자들의 어정쩡한 태도이다.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해리스의 책은 대중을 겨냥해 확실히 '재미'를 추구하고 있었다. 다양한 민족의 사례들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 최소한도로 간략히 서술되었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거기에 비해 이 책은 포퓰러와 아카데믹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학자인 이상 역자들의 글에 딱딱한 논문투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처음 계획했던 대로 완역을 통해 '민족지 사례 논문집'을 내는 쪽이 좋지 않았을까? 학자가 학자답게 냉철한 것은 결코 허물이 아니지 않은가? 반대로 대중에 가까운 쉽고 발랄한 책을 내고 싶었다면 '논문번역'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내용을 재구성해야 했다. 잘 된 논문을 골라 대충 줄여서 쉬운 부분만 번역하겠다는 태도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차라리 학회 회원들이 직접 수행한 현지 조사 이야기를 이 책에 이미 수록된 사진들에 덧붙여 들려주는 쪽이 훨씬 생생하고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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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의 책 14
마루야마 마사오+가토 슈이치 지음, 임성모 옮김 / 이산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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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친구에게서 논문 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부 때부터 영어 교과서를 배우면서 일상적으로 영어 용어를 써 왔기 때문에, 전문 용어를 한글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더란다. 고민 끝에 이것저것 책들을 찾아 가며 어색하게나마 바꿔 넣었는데 일본에서 나온 연구들에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걔들은 웬만한 건 다 한자로 바꾸거든.' 마루야마 마사오 씨와 가토 슈이치 씨가 근대 일본의 번역에 대해 나눈 대화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생각했다.

300년 쇄국을 포기하고 서양 문물의 홍수 속에 파묻히면서 일본인들은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외국어를 그대로 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개념들을 한자로 번역하여 쓸 것인가. 결국 그들은 후자를 택했다. 에도 유학의 전통을 이은 것이기도 했고 난학과 관련이 있기도 했지만, 이 선택은 이후 일본의 사상과 학문이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새로운 세력 판도로까지 이어졌다. 패전 이후의 일본어는 일견 범람하는 외래어로 몸살을 치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어딘가에도 번역의 전통이 남아 있어서, 21세기의 공학도가 한국어로 전공 논문을 쓰면서 일본 용어를 참조하기도 하나 보다.

왜 굳이 번역을 해야 하는가, 영어로 쓰면 편리한 것을 어색한 한자어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 정색을 하고 질문한다면 솔직히 대답이 궁하긴 하다. 그러나, 아주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용어를 바꿈으로서 외래의 학문에 우리의 사고를 투영할 수 있지 않을까, 음역만 해서는 그저 남의 카피에 불과할 것을 우리 말로 바꾸어 논의하면서 진정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루야마 씨와 가토 씨는 서양 문물의 전래를 말하면서 계속 일본 유학의 전통을 돌아 본다. 박식한 두 지성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더구나 낯설기만 한 일본 전통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일본인들의 고민을 느껴보는 것, 그리고 그 고민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전환시켜 보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칭찬할만 한 역주가 이 고생스럽지만 재미있는 여행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음을 지적해야겠다. 각각의 역주 앞에 표제어를 명시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 근대에 대한 즐거운 읽을 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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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5-22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에 대한 문제 의식이 희박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죠. 얼마전에 나온 서울대 권장도서 해제집 이란 책을 보니까 몇몇 교수들이 서양 고전을 소개하면서 '가급적 원서를 읽을 것을 권한다, 책은 무릇 원서를 읽는 것이 좋다' 는 식의 발언을 한게 생각나네요. 재밌는건 그분들이 언급한 '원서' 가 대개 영어책이라는 겁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출신의 사상가가 자신의 모국어로 쓴 저작도 말이죠.

1700년대의 일본인들은 네델란드의 해부학 교재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번역해 냈죠. 원서로 보면 될 것을, 해부학 교재라면 독자층도 협소하고 분야마저 전문적인데 (한국의 법학과 의학계 등에서도 듣게 되는 논리죠, 자신들이 쓰는 모종의 언어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뭐하러 그런 수고를 했는지 모를 일이죠. 다만 이런 소회는 남습니다. 당대에 숱한 '개화사상가들' 이 있었지만 대개 '정치인' 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번역 하나 남긴 진짜 '사상가' 가 없었던 한일합방 전후의 조선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고요. 그럼 오늘날엔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있느냐고 자문해 본다면.. 선뜻 긍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가령 세로쓰기 시대의 케케묵은 번역본만 있거나 아예 역서 자체가 없는 책들을 권장도서로 소개만 할 것이 아니라, 2006년 버젼의 전면 번역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상이겠죠. 그것이 옳은 일이고, 또한 필요한 일이기도 하구요.
 
심리언어학 - PAAL 응용 언어학 번역총서 1
Thomas Scovel 지음, 한호.성명희 외 옮김 / 박이정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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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문고판 사이즈에 화려한 초록색 표지를 한 이 예쁜 책은 실용성과 재미를 겸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실용성은 숙제 할 때 참고하면 몇 시간만에 뚝딱 레포트 하나를 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 이해의 생물학적 기초'라는 주제로 레포트 쓸 일이 있어서 손에 들었는데, 활자도 크고 번역도 매끄럽고 페이지 수도 적어서 금방 다 읽었다. 더욱 좋은 것은 그 짧은 분량 안에 굉장히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고, 더더욱 좋은 것은 너무 재미있어서 읽은 내용이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는 점이다.

딱딱해 보이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은 매우 재미있다. '원숭이나 돌고래한테 말을 가르칠 수 있을까?' '아기들은 어떻게 말을 배우지?' '생각날 듯 날 듯 한데 말이 안 나오는 일은 왜 생기는 거야?' 같은 우리의 일상적인 의문들에 대해 산뜻한 대답을 돌려준다. 내용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말을 어떻게 배우는가, 어떻게 이해하는가, 어떻게 표현하는가, 어떤 이유로 말을 못하게 되는가에 대해 한 장씩을 할애하고 있다.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되겠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서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 간다면 언어학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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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권택영 지음 / 문예출판사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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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형식주의부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20세기 소설 비평사를 주요 논저들의 간략한 리뷰를 통해 소개하는 책이다. 현대 소설 이론들을 개관하기에 좋다. 이 책으로 대충 지도를 만든 후에 본격적으로 각각의 저작들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쉬운 말로 씌어져있고 짧은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편안하게 읽히고, 재미있는 표현같은 것도 인용해 주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다.

문과 계열 대학교 2학년 정도이고, 문학개론, 문학사, 현대소설론, 고전산문론 등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무식함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교수님이 자주 언급하시는 위대한 이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감을 잡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싶다. (오늘 문학감상론 시간에 선생님이 쥬네트 얘기를 하시기에 혼자 흐뭇해했다. ^^)

장점이자 단점은 저자가 각각의 이론들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소설들에 이들 이론을 적용해보인다는 것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같이 교과서 수록작은 상관 없는데, '당신들의 천국'의 경우에는 읽기도 전에 내용을 다 알아버리고 나니 퍽 허무해졌다. 아직 안 읽은 책 이야기가 나온다면 요령껏 건너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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