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스 아이큐 - 성공을 위한 10가지 경로
티파니 보바 지음, 안기순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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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기업은 무조건 키워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 재미있다. 규모를 유지하거나 줄이는 것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신규 직원의 채용도 안 되고 기존 직원의 임금 인상도 안 되며, 무엇보다도 주식 가격이 오르지 않으므로 주주들이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의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이런 무한정한 성장은 불가능하지 않나? 결국은 성장의 가속화가 인류의 공멸을 앞당기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쨌든, 기업을 성장시키려면, (1)고객 경험, (2)고객층 침투, (3)시장 가속화, (4)제품 확장, (5)고객, 제품 다각화, (6)판매 최적화, (7)고객 이탈 최소화, (8)제휴 관계, (9)협조적 경쟁, (10)비인습적 전략이라는 10가지 경로 중, 상황에 맞는 것들을 단독으로, 또는 조합해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제일 중요한 가치는 어쨌든 고객이다.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더 많은 돈을 쓰게 하고, 돈을 쓰면서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떠나지 못하게 붙드는 것이 성장의 핵심이다. 기업가만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살아가는 개인의 경우에 적용시켜도, 고용주, 상사, 동료, 기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인간들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 세상살이를 잘하는 비결일 것이다. 단순 무식한 표현이지만, 역시 손님은 왕이었다.

 

  다양한 기업들의 사례가 나와 있어서 재미있었다. 세상일에 어두운 나도 이름은 알고 있는 유명한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는지를 읽고 나니, 21세기의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포라는 포스 기계, 로열티 프로그램, 온라인 구매,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활용해 고객에게 있는 현재와 미래의 욕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덕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상적인 고객 경험을 앞장서서 제공함으로써 충성스러운 단골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 P36

"고객 서비스 혁명 The Customer Service Revolution"을 저술한 존 디줄리어스John DiJulius는 "기업의 고객이 직원보다 행복해지는 일은 결코 없다"라고 말했다. 경영 사고의 ‘레드불’이라 불리는 현대 경영의 창시자 톰 피터스는 디줄리어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말은 경영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라고 언급했다.
- P41

규모가 더 큰 기존 기업의 핵심 사업에는 뛰어들지 마라. 좀 더 규모가 작은 틈새를 파고들어 승리를 거두어라. 시장을 배워라. 교두보를 발달시켜라. 소비자를 자사 제품과 브랜드의 궤도로 끌어들이고 나서 시장과 제품 제공을 확장하라.
- P105

일부 잠재 수익을 놓치더라도 위험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제휴 관계를 맺어 다른 기업과 위험을 분담하는 것이다. 자사에는 없는 특유한 기술이나 탄탄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제휴해야 한다.
- P163

고객, 제품 다각화 경로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거의 경험하지 못한 영역으로 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다면 어째서 모든 위험을 고려하고서도 다각화를 해야 할까?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다각화를 실시해 미래에 발생할 전반적인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 제품군으로 운영되는 기업은 성장 중단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으므로(예를 들어, 비약적인 기술 발전의 등장, 고객층의 변화, 공급 사슬의 붕괴, 전략적 협력사의 실패, 문화 변화), 격렬한 상황이 벌어지면 거의 예외 없이 운을 달한다. 하지만 고객층과 제품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다양한 기업은 끔찍한 충격으로 영향을 받더라도 필요할 때 사업의 ‘다른’ 부문으로 초점을 이동해 살아남을 수 있다.
- P196

영업 직원이 언제나 고객을 위해 옳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라.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 P231

협조적 경쟁Co-opetition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취약한 개념이다. 단어 자체는 경쟁competition과 협조 cooperation의 합성어다. 논리적으로는 상반된 뜻을 내포하지만 현실에서는 탁월한 효과를 내왔다. 소기업에서는 특히 성장 저하에 빠졌을 때 채택할 수 있는 훌륭한 생존 전략이고, 동시에 대기업에도 훌륭한 확장 전략이다.
- P311

2014년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자사를 통해 오픈소스 운동에 참여하고 특허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해서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중략) 전기자동차 시장은 한 자릿수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시장이 침체되자 테슬라는 접근 방법을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기업의 경쟁을 막으려고 애쓰는 전략에서 탈피해 시장을 부추겨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자사 기술을 기폭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협조적 경쟁은 테슬라가 전진하는 경로였다. 테슬라는 지적 재산을 공개하는 방식을 사용해 자사가 개발해온 다른 제품인 배터리와 충전소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전기자동차 생산이 늘어날수록 배터리가 더 많이 필요하고, 배터리가 많이 사용될수록 충전소가 더 많이 필요하다. 머스크는 경쟁사이든 테슬라 차량이든 전체 파이에서 더욱 큰 조각을 원했다.
- P313

모든 성장 경로 중에서 협조적 경쟁 경로는 가장 위험성이 크다. (중략) 기업이 조심하지 않으면 프레너미frenemy와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독점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맹렬한 적과 한 울타리에 있게 될 것이다.
- P335

깨어 있는 소비자들은 세상에 좋은 일도 할 수 있는 소비재를 기꺼이 구매하고 싶어 한다. 가치 제안을 통해 그렇게 포지셔닝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명분 관련’ 마케팅은 좋은 기업 시민이라는 브랜드 명성을 구축하도록 기업을 돕는다. (중략) 제품에 이야기를 붙인다. 당신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 고객이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일대일 기부를 통해 지속 가능한 노력을 기울인다.
- P357

사회적 기업가정신은 비인습적 전략 중에서 가장 강렬한 형태에 속하고, (긍정적인 운동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기존 고객을 결속하는 동시에 (기업의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새 고객을 끌어들인다. 또한 기업을 특별한 방식으로 단련하고, 건전한 기업 문화를 조성하고, 아주 뛰어난 신입 직원을 끌어들이며, 단순히 단기 이익을 넘어서서 더욱 높은 장기 목표를 기업에 제시한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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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 - 인간의 자기 발견에 대한 기록
정창영 옮김 / 무지개다리너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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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두교 스승들의 가르침인 <우파니샤드>를 읽는 내내 종교라는 것들은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힌두교의 가르침은 불교와 특히 비슷하지만, 도교와도 비슷하고, 기독교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에 종교란 뇌의 특정한 생화학 반응에서 비롯되는 신비 체험과 대중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야기의 조합인 듯하다. 대중에게 그들이 바라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해 보이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제공해주는 종교는 대중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종교의 결과는 좋은 쪽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터무니 없이 나쁜 쪽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성 있는 자들은 마땅히 종교를 경계해야 한다.




카타 우파니샤드 3부 3장 4절
육체를 벗기 전에 브라만을 깨달으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물질과 육체의 속박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육체를 입고 여러 세상에 거듭거듭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 P54

카타 우파니샤드 3부 3장 14절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욕망을 포기하면 죽을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가슴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매듭이 풀리면 죽을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도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이것이 우파니샤드 가르침의 결론이다.
- P57

문다카 우파니샤드 3부 1장 1절
늘 함께 다니는 정다운 새 두 마리가 같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그 가운데 한 마리는 열매를 딱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아무 집착이 없어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친구를 초연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새는 에고이고, 그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새는 참 자아이다. 그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육체이고 열매를 탐닉하는 새가 따먹고 있는 열매는 행위이다.
- P84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 2장 10절
명상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라. 깨끗하고 조용하고 시원하고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고 바닥에 울퉁불퉁한 돌이 없고 먼지가 많이 일지 않고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동굴 같은 곳, 그러나 너무 안락하지 않은 곳을 찾아 그곳에서 명상 수행에 몰두하라.
- P106

슈베타슈타바라 우파니샤드 2장 12절
요가 수행자가 강인한 수행을 통해 5가지 원소로 구성된 육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뛰어넘는 새로운 육신을 얻는다. 수행의 첫 번째 결과는 육체의 건강이다. 몸의 이곳저곳에 쌓이 불순물이 제거되고 피부과 탄력과 윤택을 되찾으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몸에서 향기가 난다. 이런 증거가 나타나면 수행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 P106

만두키야 우파니샤드 2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브라만이다. 참 자아 아트만이 곧 이 브라만이다.
- P168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4부 4장 5절
사람은 행하는 그대로 됩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선한 행위는 사람을 순수하게 만들고 악한 행위는 사람을 더럽힙니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이 바라는 대로 되는 존재입니다. 바라는 대로 의지가 형성되고 의지는 행위를 낳고 행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행위에 따라 그에 걸맞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 P197

이샤 우파니샤드 1절
변하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브라만의 품안에 있다. 그러니 인간들이여, 집착을 버리고 브라만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찾으라. 모든 것이 브라만에게 속해 있으니 무엇을 갖고자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인위적인 욕망을 품지 말고 그때그때 주어지는 것을 수용하며 자기가 해야 할 행위를 하라. 그러면 이 세상 일로 하여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으리라.
- P215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3부 18장 1절
육체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브라만으로 알고 숭배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브라만이기 때문이다. 신적인 능력의 입장에서 본다면, 허공을 브라만으로 알고 숭배해야 한다. 마음과 허공은 둘 다 텅 비어 있으면서 충만한 닮은꼴이다.
- P229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4부 4장 3절
사트야카마는 히라드루마타 가우타마를 찾아가서 말했다.
"선생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가우타마가 물었다.
"자네는 어느 가문 출신인가?"
"죄송합니다만 그걸 모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머니께서 젊었을 때 하녀로 이집 저집 옮겨 다니는 도중에 저를 낳았기 때문에 누구의 피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제 이름은 사트야카마이고 저의 어머니 이름은 자발라이니까 제 이름을 사트야카마 자발라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 가우타마는 감탄하며 말했다.
"진정한 브라만 가문 출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그대처럼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부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
- P231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6부 16장 1절
사람들이 재판장에게 어떤 사람을 두 손을 꽁꽁 묶은 채로 끌고 와서 "이 사람이 도둑질을 했소. 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끌려온 사람은 자기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했다. 그러면 재판장은 도끼 자루를 불에 달구어서 그 자루를 잡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겁을 먹고 도둑질을 했다고 자백을 하든지, 아니면 뜨거운 도끼 자루를 잡아 손을 데고 형벌을 받게 되든지 한다. 그러나 정말로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결백을 맹세하고 도끼 자루를 잡는다. 그가 진정으로 결백하다면 그 진실이 그를 보호하여 뜨겁게 달구어진 도끼 자루를 잡아도 손을 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풀려난다. 진실을 말하기로 맹세한 사람이 실제로 결백하다면 뜨거운 도끼 자루를 잡아도 손을 데지 않는 것처럼,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듭해서 태어난다.
- P246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 3부 10장 1절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라.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다. 배고픈 사람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 항상 음식을 준비해두어라.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면 자기도 좋은 음식을 받고, 적당히 대접하면 자기도 그렇게 받을 것이고, 소홀하게 대접하면 자기에게도 음식이 늘 부족하리라.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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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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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엔 ‘영국 신사’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몇 차례 했다. 조지 오웰의 책을 전부 읽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윌리엄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을 읽었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를 보고 왔고, 이번에는 올리버 색스다. 번역서가 굉장히 많이 나와 있는 유명한 사람 같은데,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서 기쁘다. 


  1부는 어린 시절 이야기, 2부는 신경과 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더한 뇌 이야기, 3부는 죽음으로 다가가는 노년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엄청나게 기발한 내용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지적이고 교양이 넘쳐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지나간 시대의 미덕을 잘 간직하고 있는 80대의 지적인 노인과 여유롭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정말 좋았다. 


  처자식 이야기가 없어서 게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역시 그랬다. 유럽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없애는 계기가 된 것은 나폴레옹 점령에 따른 법 체계의 정비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을 비롯해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지 않은 나라들은 20세기에도 동성애를 가혹하게 처벌했다는데, 그런 분위기가 호크니와 색스의 미국 이주에도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인 미국을 동경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도 그런 맥락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올해의 독서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기에, 영국의 신사 교육은 매우 훌륭하다. 그 전통 있는 지적 토양에서 자라난 사립학교의 도련님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의 연구로 인류에 공헌해 왔다니, 건강하면서도 낭만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다.


내가 사우스켄싱턴에서 맨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언제나 과학박물관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제일 처음 방문했던 박물관으로, 내게는 고향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어린 시절, 어머니는 간혹 나와 형들을 그곳에 데려가곤 했다. (중략) 어머니는 손가락으로 구식 탄광램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 외할아버지가 저걸 발명하셨단다." 고개를 숙여 안내판을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란다우 램프Landau lamp는 1869년 마르쿠스 란다우에 의해 발명되어, 험프리 데이비 램프를 대체했다." 그 후로 나는 그 안내판을 읽을 때마다 이상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그 박물관과 (1837년에 태어나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외할아버지에 대한 개인적 유대관계를 느꼈다.
- P20

자연법칙의 위엄성과 불변성, 그리고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은 사우스켄싱턴 과학박물관의 주기율표 앞에 선 열 살짜리 소년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 느낌은 평생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5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 P22

환각은 그 내용이 계시적이든 평범하든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며, 인간의 의식과 경험의 통상적 범위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적 생활에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개인에게 커다란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믿음의 근거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환각이 여하한 형이상학적 존재나 장소의 존재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환각을 창조하는 뇌의 힘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 P120

만약 우리가 운 좋게 건강한 노년에 도달한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열정과 생산성을 유지해주는 것은 ‘삶의 경이로움’일 것이다.
- P215

형 마이클은 열다섯 살 때 급성 정신병에 걸려, 도처에서 ‘메시지’를 보며 자기 생각이 읽히거나 방송되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형은 발작적으로 킥킥거리며, 자신이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1940년대에는 환각제가 드물었으므로, 내 부모님(두 분 다 의사였다)은 마이클이 정신병을 초래하는 질병, 이를테면 갑상샘 질환이나 뇌종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마이클은 조현병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다.
- P234

독서란 매우 복잡한 과제로, 수많은 뇌 영역을 호출한다. 그러나 독서는 언어와 다르다. 즉, 언어는 인간의 뇌에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지만, 독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독서는 인간이 진화를 통해 획득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아마도 5000년 전)에 진화했으며, 뇌의 시각피질 중 미세한 부분에 의존한다. 우리가 오늘날 시각단어형태영역visual word form area(VWFA)이라고 부른 이 부분은, 좌뇌 뒤쪽 근처에 있는 피질영역의 일부다. (중략) 사람들은 독서와 관련하여 제각기 독특한 신경회로neural pathway를 형성하며, 개인의 독서 행위는 기억과 경험만이 아니라 감각양식sensory modality과도 제각기 독특하게 결합한다.
- P315

그러나 이제 (기적을 용납하지 않는) 인생의 마지막 주간을 맞이하여 (구역질이 너무 심해, 액체나 젤리형 고체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음식물을 삼키기 어렵다), 나는 게필테 피시gefilte fish의 진가를 재발견하고 있다. 비록 한 번에 100그램 이상을 섭취할 수 없지만, 깨어 있는 동안 한 시간에 한 번씩 게필테 피시 1회분을 섭취하면 꼭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중략) 나는 네 살 적에 먹어본 게필테 피시의 맛을 기억하고 있지만, 내 입맛은 그 이전에 이미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통 유태인 가정에서는 유아의 이유식으로 종종 영양분이 풍부한 게필테 피시의 젤리를 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필테 피시는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82년 전 나를 이 세상에 데려다주었듯이, 조만간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갈 테니 말이다.
- P343

나는 좋은 글쓰기, 미술,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만, 품위, 상식, 선견지명, 불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 같은 인간의 미덕을 바탕으로 수렁에 빠진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과학뿐이라고 생각한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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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사생활
와타나베 유키 지음, 윤재 옮김 / 니케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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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서 세 번 빌려 읽고 결국 소장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적 사실들을 쉬운 말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설명을 다시 알기 쉽게 요약해 준다. 읽기 쉬운 문장과 참신한 비유 온화한 유머가 편안하고 즐겁다.


 필자가 너무나 행복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책을 읽다 보면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외딴 곳에서 동물들과 함께 사는 생활의 고달픔이나 거듭된 실패의 괴로움도 연구의 행복 앞에서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동물들도 너무 착해 보이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과학자들도 다들 너무 착해 보인다.


 과학에 관심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린 시절 과학을 동경했던 어른들에게도 틀림없이 행복을 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먹이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는 동기에는 변함이 없다. 앨버트로스가 좋아하는 오징어는 물고기에 비해 유영 능력이 모자란 탓에 해류와 해류의 경계선에서 무리 지어 서식한다. 앨버트로스의 지구 일주 경로는 남극 해류라는, 남극 대륙을 빙그르르 둘러싸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한 해류와 딱 겹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앨버트로스가 지구를 일주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비행경로는 무엇을 의미할까? 생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경우는 종내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앨버트로스끼리 먹이가 있는 곳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결과, 최상의 자리를 얻은 강자와 척박한 변두리 땅으로 쫓겨난 약자로 나뉘는 것이다. (중략) 최대 경쟁 상대가 종종 동족 안에 있는 다른 개체라는 사실은 인간 사회에도 꼭 들어맞는, 생태학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 P47

화장실도 수도도 샤워 시설도 없지만 생활은 간소하고 즐거웠다. 낮 시간에는 내내 조사를 진행하고, 밤이 되면 배불리 먹고 잤다. 그뿐이었다. 식사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면 된다. (중략) 카레와 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빼려 오두막 문을 열면 사냥감을 물고 터벅터벅 둥지로 돌아가고 있는 펭귄의 모습이 보인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행복한 것은 수면 시간. 하얀 숨결이 비치는 빙점 아래 오두막 안에서, 게다가 소리 하나 없이 정적이 흐르는 곳에서 온몸이 폭신폭신한 침낭에 싸이는 행복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따스함을 즐기고 있노라면 왠지 초등학교 시절의 두서없는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진다.
- P81

관찰하다 보면 부모 새가 샐러리맨처럼 바지런히 바다와 둥지를 왔다 갔다 하며 먹이를 가지고 돌아와 크고 건강한 새끼를 키우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모 새가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는지 둥지로 돌아오는 빈도가 낮아 새끼가 작고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문제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야생 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기록계를 부착한 부모 새가 둥지로 잘 돌아가지 않으면 곤란하므로 되도록 샐러리맨 부모가 꾸리는 가정으로 대상을 좁혀 나간다.
- P82

그린란드 상어는 여러 가닥의 실과 낚싯바늘이 견결된 주낙으로 낚는데, 우선 먹이를 준비해야 한다. 적당히 다금바리 같은 어류를 쓰려나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제대로 된 노르웨이 방식이 등장했다. 내가 조사선 위에서 기다리는 사이 몇 명의 사람들이 라이플총을 들고서 보트를 타고 나가 커다란 턱수염바다표범을 한 마리 잡아 온 것이다. 우리는 한데 모여 바다표범을 해체해 두께 7-8센티미터에 달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피하지방을 잘라 주낙 미끼로 썼다. 상어에게는 군침이 돌 미끼였다. 물론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냥이었지만, 어류를ㄹ 잡기 위한 미끼를 구하기 위해 바다표범을 총으로 쏴 죽이는 나라는 노르웨이뿐이다. 역시 바이킹의 후예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 P99

그는 개복치에 매료되어 개복치와 함께 살기를 결의한, 전 세계에서도 드문 개복치 마니아이다. 그는 개복치 샘플을 모으기 이해서라면 전 일본, 아니 전 세계 어디라도 간다. 손에 넣은 샘플은 하루 종일 계측하고 해체하고 질리지도 않고 자세히 조사한다. 개복치 포를 만들어 방에 걸고, 개복치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해서 입고, 뿐만 아니라 개복치 센류(川柳)를 지어 트위터에도 올린다. 사와이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개복치에게 매료되었느냐, 그 이유가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느 패밀리컴퓨터 게임의 캐릭터가 개복치였는데 그것이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4차원 세계의 개복치에 빠진 사람이 실제 개복치를 해체하고, 소화기관 내 기생충을 조사하고,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위 속 내용물을 씻어 현미경으로 관찰하다니,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 있구나, 나는 묘한 감탄을 했다. 이런 연유로 나와 사와이는 둘이 함께 매일 오쓰치 만에서 정치망 어선을 타고 개복치 수집에 나서게 되었다. - P131

오쓰치 만 바깥쪽에 설치된 정치망까지는 배를 타고 편도 20분이 걸린다. 유명 인형극 ‘우연히 마주치 표주박 섬’의 모델이 되었다는 호라이지마의 등대 옆을 빠져 나간 어선은 고요한 밤바다를 미끄러져 나아간다. 그동안 나는 종종 갑판에 걸터앉아 어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곳 어부들은 젊은 시절에는 원양어선을 타고, 쉰을 넘길 무렵고향이 오쓰치 정에 돌아와 정치망 어선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카스펭귄이나 싱가폴에서 유명한 포장마차와 같이 의외의 구석에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 모우카는 염통을 회 떠서 먹는 게 최고라든가, 카스베는 된장국에 넣는 것이 최고로 맛있다는 등의 어부들만 아는 음식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진지한 대화 중간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운 별, 별들.
- P133

바이오로깅 데이터 결과에 따르면 개복치의 평균적인 유영 속도는 시속 2.2킬로미터였다. 나와 사와이가 사랑한 물고기, 개복치. 이상야릇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외모, 몸속 구조, 부력, 헤엄치는 방식까지 특이하지만 유영 속도만은 극히 평범한 물고기.
- P143

쿠이먼은 자신이 연구 프로벡트를 진행하고 있던 남극의 미국 기지로 기록계를 가지고 가 웨델바다표범에 부착했다. 웨델바다표범은 천적이 없기 때문에 남극 얼음 위에 한 마리 오동통한 해삼처럼 누워 유유자적한다. 그런 웨델바다표범을 잡고 기록계를 부착하는 데는 힘들일 일이 없었고, 또한 며칠 뒤 다시 포획해 기록계를 회수하기도 쉬었다. 기기 회수 없이는 데이터를 얻을 수 없는 바이오로깅의 최대 난관은 뜻밖에도 남극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3년 이렇게 느는 웨델바다표범의 잠수 행동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 P164

나 역시 극지연구소 직원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극지연구소 직원에게 가장 큰 일은 남극에 가는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토가 처음 극지연구소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연구소가 설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인원이 다 갖춰지지 않아 특히 더 큰일이었을 터이다. 일본 남극 관측대는 여름을 보내는 하대는 5개월을, 겨울을 보내는 월동대는 1년 5개월이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오늘날 관측대의 일정은 그때보다 약 한 달 가량 짧아졌다. 출장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일본에 머무를 시간은 거의 없어진다. 나이토 세대의 극지연구소 직원들은 대부분은 30-40대 무렵에 자녀 양육을 거의 돕지 못해서 아직도 가족 앞에서는 고개를 1밀리미터도 들지 못한다. - P175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긴 막대기 끝에 붙이고 배 위에서 고래의 등을 향해 막대를 뻗어 직접 찰싹 붙인다. 또는 배 위에서 빨판과 기록계 세트를 보건으로 쏘아 원격으로 고래 등에 붙이는 방법도 있다. 나의 대학원 후배이자 오랜 세월 향유고래를 연구하고 있는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연구원 아오키 카가리는 ‘보건’의 명사수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이전 일인데, 대학원생이던 시절 그녀는 조사선에 구비된 쌀가마니 같은 완충재를 가상의 고래로 가정하고 사격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 보건 같은 건 어디에서 샀냐고 묻자 "무기상에서 샀어요."라고 슬쩍 대답해 주었는데, 게임도 아니고 무기상이라니, 그런 곳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 P233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는 ‘거인’ 숄랜더부터 ‘선구자’ 쿠이먼으로 이어지는 정통 잠수 생리학 계보가 있으며, 폰가니스는 그 유서 깊은 흐름을 이어받은 후계자이다. 여담인데, 미국의 연구자들과 대화를 할 때 부러운 것은 그들의 은사 이름을 밝힐 때 반드시 ‘앗!’ 하고 놀랄 만한 전설적인 인물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감명을 받아 끈질기달 정도로 재독을 거듭한 논문의 저자를 그들은 직접 알 뿐만 아니라 직접 실험의 조언을 받고, 또 더 중요한 연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기도 한다. 매ㅣ국의 높은 학술 수준의 토대에는 은사가 제자에게, 그 제자가 또 자신의 제자에게 대대로 학문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전수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 P245

폰가니스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일중독자이다. 그와 그의 학생들이 일시적으로 함께 머물던 집에 나도 연이 닿아 일주일 정도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나와 학생들이 ‘피곤하다!’를 외치며 침대로 파고들 시간, 폰가니스는 여전히 홀로 책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우리가 ‘잘 잤다’ 하며 일어나기 시작할 시간, 폰가니스는 벌써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미 커피도 나와 학생들의 몫까지 정성스레 내려 둔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면목이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246

전파 수신은 해발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우리는 산 중턱에서 바이칼 호 호반을 따라 바라노프의 미츠비시 봉고차를 타고 오를 수 있을 법한 산을 발견하면 즉시 전파 수신기와 안테나를 들고 산 정상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전파 수신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하산, 바로 다음 고지로 향했다. 오직 이것만을 반복했다. 땀범벅이 되어 등산과 하산을 반복하는 우리가 설마 바다표범을 조사하는 중이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2주에 걸쳐 전파 탐지를 계속했건만, 들려온 것은 전파 수신기의 변함없는 사악사악하는 노이즈뿐. 나는 작은 단서조차 얻지 못한 채로 바라노프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깊은 낙담 속에 귀국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62

일본에 귀국한 지 3주쯤 지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바라노프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마키타에게 부착했던 기록계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호수면에 떠오른 기록계를 우연히 발견해 보내 주었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하며 나는 연구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바이칼 호는 이노카시라 공원 연못이 아니다. 규슈만 한 면적을 가진 거대한 호수인 데다 주변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들어차 있고, 그 군데군데에는 전기도 통하지 않는 촌락만 띄엄띄엄 자리해 있다. ‘뱃놀이’를 하던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는 일’ 같은 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방법이 없다. 분명 우리는 기록계에 "이것을 발견하신 분께는 5000루블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바라노프의 연락처와 함께 러시아어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呪文이었지,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믿은 것은 아니었다. - P263

바이칼바다표범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담수에서만 생식하는 바다표범이다. 담수는 해수에 비해 몸이 쉽게 가라앉기 때문에 몸을 띄우려면 보다 많은 지방이 필요하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같은 부력을 달성하려면 담수에서는 해수에서보다 30퍼센트 이상 더 많은 지방을 몸에 지녀야만 한다. 한편 에너지 저장고로써의 기능, 방한복으로써의 기능은 담수에서나 해수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결론을 지어보면, 둥근 공처럼 생긴 바이칼 바다표범의 몸은 특수한 담수 환경에서 중성 뷰력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적응해 온 결과이다. - P271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일수록 중력에 반하는 세로 방향 이동을 힘겨워한다. 몸이 작달막한 다람쥐는 힘들이지 않고도 나뭇가지를 수직으로 곧잘 뛰어오르지만, 몸이 큰 코끼리는 야트막한 오르막조차 오르기 힘들어한다. 사람의 경우에도 언덕을 잘 오르는 달리기 선수나 자전거 선수의 몸집은 대부분 작다. (중략) 체중이 2배 큰 동물은 고도를 1미터 올리는 데 2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필요한 대사 에너지는 1.7배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 몸이 클수록 중력을 거스르는 상하 이동에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 P287

영국의 한 연구팀이 최신 바이오로깅 조사로 히말라야를 넘는 인도기러기의 3차원적 이동 궤적을 밝혀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연구 팀이지만 다이내믹한 데이터가 멋지게 기록된 것을 확인했을 때는 대단히 기뻐했을 거라 상상이 간다. 분명 자료의 기밀 유지 따위는 뒷전으로 두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 P289

포르토프랑세 기지에서부터 가마우지 조사지인 푸안 수잔까지는 약 20킬로미터 거리를 도보로 이동한다. 등에 거대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여섯 시간 동안 행군해야 하는 이동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가 마음을 온화하게 해 준다. 케르겔렌 제도는 다양한 자연 풍광을 지녔는데,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기에 멀리까지 지면을 둘러볼 수 있어 재미있다. (중략) 녹색 풀밭 위에는 오렌지색 부리가 선명한 젠투펭귄들이 새끼 양육에 한창이고, 주변을 뛰어다니는 개 비슷한 회색 짐승은 남극물개 암컷이다. (중략) 바닷물이 고인 바위 주변에는 대체로 곰같이 생긴 남극물개 수컷이 있는데 "우웍우웍" 하는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암컷을 쫓아다닌다. 어쩔 수 없이 바닷물이 고인 지점 한 군데를 노리고 볼일을 보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동물들의 옆을 살그머니 지나가 주변을 꼭 경계하며, 때는 이때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날렵하게 처리해야 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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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다.

덕분에 이해하기에 크게 어렵지 않고 웃음이 나오는 부분들도 있다.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친절한 해설까지 달아 준 역자들에게도 감사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핵심이 되는 두 용어의 번역인데,

'agathon'을 '善', 'arete'를 '德'으로 번역하는 전통적인 선택이

한자의 원래 용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데 반해서,

전자를 '좋음', 후자를 '탁월성'이라고 한 역자들의 선택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긴 설명이 붙어 있긴 하지만, 

독자로서는 아무래도 껄끄럽게 느껴진다.

젊은이는 정치학에 적합한 수강자가 아니다. 젊은이에게는 인생의 여러 행위들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 정치학의 논의는 이런 것들로부터 나오고 이런 것들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이는 자신의 감정에 따르기 쉬워서 강의를 들어 봐야 헛되고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학의 목적은 앎이 아니라 행위이니까.
- P16

모든 종류의 앎과 선택이 어떤 좋음(인용자: agathon, 善)을 욕구하고 있으므로, 정치학이 추구한다고 지적했던 좋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대중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 모두 그것을 ‘행복(eudaimonia)’이라고 말하고, ‘잘 사는 것(eu zen)’과 ‘잘 행위하는 것(eu prattein)‘을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대중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동일한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 P17

행복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것일 게다. 탁월성(인용자: arete, 德)을 획득하는 데 아주 불구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종류의 배움과 노력을 통해 행복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6

고귀함(kalon)은 이러한 불운들 가운데에서도 빛을 발한다. 누군가 크고도 많은 불운들을 -고통에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고결하고 담대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침착하게 견뎌 낸다면 말이다.
- P41

우리는 탁월성 중 한 부분을 지적 탁월성으로, 다른 한 부분을 성격적 탁월성으로 부른다. 지혜(sophia)나 이해력, 실천적 지혜는 지적 탁월성으로, ‘자유인다움’이나 절제는 성격적 탁월성으로 부르는 것이다.

- P49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52

어린 시절부터 죽 이렇게 습관을 들였는지, 혹은 저렇게 습관을 들였는지는 결코 사소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차이, 아니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 P53

성격적 탁월성은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한다. 우리가 나쁜 일들을 행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며, 고귀한 일들을 멀리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니까.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죽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교육이다.
- P56

탁월성은 합리적 선택과 결부된 품성상태로,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중용에 의존한다. 이 중용은 이성에 의해,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규정할 그런 방식으로 규정된 것이다. 중용은 두 악덕, 즉 지나침에 따른 악덕과 모자람에 따른 악덕 사이의 중용이다.
- P66

낭비하는 사람(asotos)은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망하는 사람이며, 우리의 삶이 재산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파괴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망하는 것으로도 보이니까.
- P121

(인용자:낭비하는 사람이) 돌봄을 받게 된다면, 중간적인 것과 마땅한 것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인색은 고칠 수도 없으며(나이를 먹는 일을 비롯한 온갖 무능력은 사람을 인색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낭비보다 더 본성적으로 인간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다.
- P128

모든 부정의한 행위들은 항상 어떤 못됨(mochtheria)으로 환원된다. 가령 누군가가 간통을 했다면 무절제로 환원되며, 전장에서 전우를 팽개쳤다면 비겁으로, 누군가를 폭행했다면 격노(orge)로 환원된다.
- P165

교환되는 모든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비교될 수 있어야만 한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돈이 도입되었으며, 돈은 일종의 중간자가 된 것이다. 돈은 모든 것을 측정해서, 넘치는 부분이나 모자라는 부분까지 측정하고, 가령 몇 켤레의 신발이 집 한 채와 같은지, 혹은 식량과 같은지까지 측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 짓는 사람이 신발 만드는 사람에 대응하는 것처럼, 신발의 수는 집 한 채 혹은 얼마만큼의 식량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교환이나 공동체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 P177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가깝게 대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만약 그래도 친구라면 폴리스 동료 시민으로서의 친구일 뿐이다. (중략) 그러나 탁월성과 자신을 근거로 성립하는 친애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을 소수라도 발견한다면 그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 P344

어떤 것이든 하나에 대단히 열중해 기쁨을 느낀다면, 우리는 다른 것은 거의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일에서 조금밖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가령 극장에서까지 주전부리를 하는 사람들은 배우들이 형편없을 때 특히 주전부리가 심해지는 것이다.
- P363

또 우리는 행복에는 즐거움이 섞여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탁월성에 따른 활동들 중 ‘지혜(sophia)‘에 따르는 활동이, 동의되는 것처럼 가장 즐거운 것이다. 여하튼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pphilosophia)‘은 그 순수성이나 견실성에서 놀랄 만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앎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앎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그러한 관조에서 더 즐겁게 삶을 영위할 것이라는 점은 당연하다. 더욱이 우리가 논의하는 자족(自足)도 다른 무엇보다 관조적 활동과 관련한다.
- P370

또 이 관조적 활동만이 그 자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 같다. 관조적 활동으로부터는 관조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 반면, 실천적 활동으로부터는 행위 자체 외의 무엇인가를 다소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 P371

행위를 위해서는 많은 [외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며, 행위들이 위대하고 고귀한 것일수록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반면 관조한느 사람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활동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 중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조(theoria)를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장애물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374

살아 있는 존재에게서 행위함을 떼어 내고 더 나아가 제작함까지 떼어 낸다면, 관조 이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따라서 지복의 관점에서 빼어난 것으로서 신의 활동은 관조적 활동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저인 활동들 중에서도 이것과 가장 닮은 활동이 행복의 특성을 가장 많이 가지게 될 것이다.
- P375

어린 시절부터 탁월성을 향한 올바른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그러한 [올바른] 법률에 의해 길러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절제 있고 강인하게 사는 것은 다중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즐거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까닭에 그들의 교육과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법에 의해 규정되어야만 한다.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고통스럽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 올바른 교육과 보살핌을 받는 것만으로는 아마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같은 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고 습관을 들여야만 하기에, 이점에 관해서도 우리는 법률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일반적으로 삶 전체에 관한 법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다중들은 말에 따르기보다 강제(ananke)에 따르고, 고귀한 것에 설복되기보다 벌에 설복되기 때문이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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