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바뀌었는지 뉴스를 접하면서 개탄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흡연이 금지된 학교 규정에 반하여 흡연을 하던 학생이 적발 되었고, 학교 규정(아마, 정학 정도 되겠지요)에 따라 머리를 깎으려고 했는데 학생이 반발을 했고, 그 과정에서 교사 3명이 체벌을 가하여 학부모가 교사 3명에 대해 폭력행위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고발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흡연 학생을 적발하고 머리를 깎이는 행위는 규정을 위반한 학생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기회와 시간을 주기 위한 예전부터 행해오던 수단이었습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었기에 이런 규정은 바뀔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머리 깎이기를 거부하는 학생의 행동입니다. 교사 3명이 가세를 했다고 단순히 학생 한 명을 두고 일방적으로 때린것 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이 세상의 어느 교사도 지금시대에 마음놓고 학생을 두들겨 팰 용기를 가질 수 없습니다. 당장 이유없는 체벌은 그 교사의 밥벌이를 끊는 하나의 빌미가 되는데 누가 그런 올가미를 자신의 목에 걸려고 하겠습니까? 그 학생이 규정을 따르지 않으려고 반발을 하고 그 와중에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교사 3명이 가세를 하였고, 결국은 부모로부터 고발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교칙을 따르지 않겠다고 버티면 교사는 그냥 그 학생을 내버려 두어야 하는것이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중요한것은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우습게 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적인 교육 환경이 가장 발달하였다는 미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우리 나라에서는 버젓하게 일어납니다. 특히 교육제도가 가장 발달하였다는 영국에서는 당연한 체벌은 부모가 창피하게 여기며 처벌 또한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동부 13주는 자녀의 귀가 시간이 저녁시간보다 늦으면 우리가 흔히 만화나 영화를 통해서 보았던 광경처럼 무릅에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는 엉덩이를 때리기도 하며, 미국 사회에서 가장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고깔씌우기를 해서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있도록 합니다. 그만큼 반성의 기회를 본인 스스로에게 주어서 반성할 시간을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우리 나라의 경우는 모든 여건이 앞의 예를 든 두 나라의 경우와는 많이 다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Ivy라던가 하는 외국의 명문같은 명문...3대 공립, 5대 사립하던 명문도 이제 우리 나라에는 없습니다. 공교육을 마치도 공산품 생산하듯 획일화 시키고 나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 오늘날의 교육계의 문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을 공산품 만들듯 획일화 하여 평준화라는 미명으로 덮어질 수 없음에도 배운 사람들이나 안배운 사람들이나 똑 같이 졸업생이라는 딱지를 주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사교육비도 바로 이런 점에서 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녀는 할수 있어"라는 사고로 열심히 투자를 하면서 공부에 취미가 없다거나 아예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자녀에게 돈만 들이면 성적이 올라가리라고 믿는 학부모들 때문에 너도 나도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하고... 밑빠진 독에 물 부어대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다고 봅니다.
노동 현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회의 일정한 직장에서의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는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죽어라고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해 온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을, 그리고 맨날 놀러나 다니고 기술도 변변하게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또 그만큼의 대접을 하는것이 시장 원리입니다. 그러나 1988년부터 이런 조짐은 이상한 노동운동으로 흘러가기 시작해서 죽어라고 노력을 한 사람이나 대충 놀며 놀며 온 사람이나 동등한 급여를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고 공공기관인 서울 지하철을 필두로 투쟁에 투쟁을 벌이며 극과 극의 상황속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내의 상황을 보고 외국인들은 혀를 찹니다. 소위 힘 하나 안들이고 빈둥빈둥 놀며 왔던 사람이 죽어라고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공부를 해 온 사람과 동등한 급여를 달라는것은 정말로 완전한 공산주의나 다름이 없다는 날강도 심보인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목표가 늘 120% 달성!! 150% 달성!! 하는 식으로 상향 달성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것은 애초부터 목표 자체가 잘못 설정이 되었던 것이지 실상은 목표보다 상향 달성한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평등을 부르짖었기에 신분은 있을지언정 계급은 없었고, 너 나 할것없이 나름대로의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개인의 소유가 아니기에 공동의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혼신의 노력을 하지 않아 대충 한 일들의 목표는 늘 초과달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었습니다. 과연 입사 동기라면 그 사람의 능력이나 배움 정도나 수행하는 일의 양이나....기타 등등을 무시하고 급여가 똑 같아야 되나 하는 문제는 평준화 개념에만 빠져서 모든것의 평준화를 요구하는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문제로 우리는 심각하게 짚고 넘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작은 사업체로 공장을 운영하는 제 친구는 늘 사람을 못 구해서 야단입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직원으로 입사를 하면 평생 직장처럼 특별하게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반성의 기회를 주고는 고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동종의 다른 직장에 비해 덜 주지는 않지만 더 주지도 못하는 급여입니다. 그런데 사업장을 확충하려고 해도 제대로 사업장을 돌아가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일에 종사할 사람들이 급여를 따지면서 기피하기 때문이랍니다. 과거 대기업에서 받던 급여보다 10여만원이 적으니 못하겠다는 둥, 또는 과거 직장에서는 휴일이 년간 며칠씩 더 많았다는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구직보다 구인이 더 많다는 현실은 아직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배가 부르다는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밖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구요. 정말 당장 단돈 몇 푼이라도 아쉽다면 배짱 튕기면서 저울질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부터 직장을 구하느라 머리는 푸욱 수그리고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집에서 식구들이 굶어서 뀅한 눈만 보인다면 그 때 가서야 막벌이라도 메달리겠지요. 정말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또 자신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도 최선을 다합니다. 언젠가는 제대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오늘은 꾹 참는 것입니다.
"교사의 변은 개도 안쳐다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그만큼 교사직이 더러워서가 아닙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교사라는 직종을 특별하게 인식하여 그만한 대접을 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십 여년 전부터 교사는 정말로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여 버리고 만것 같습니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잘못을 해도 함부로 회초리를 들 수가 있나, 소리 한번 제대로 칠 수가 있나, 예전처럼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을 이해하고 진학과 학업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어 인성을 길러 나가도록 해야하는가...등등에 관한 문제는 이제 교사의 손에서 떠난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애들 시달림에 잘 견디자는 출근길의 교사들에게서 무엇을 우리 아이들이 얻기를 바라겠습니까? 교사가 상전이 아니라 학생들과 학부모가 상전인 사회에서 교사인들 무슨 재미로 의욕과 책임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할 맛이 돋겠습니까?
이번 사태의 경우, 학생이 반항을 하고 거부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그 학생의 요구대로 가만히 놔 두는것이 상책입니까? 학생이 막말로 교사를 앞에서 지랄발광을 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냥 방관을 해야 하는것이 교권을...교사들의 안녕을 위한 방법인가요? 오늘날 교권이 땅 바닥에 떨어진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교사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게 커 온 학생들이 가치 판단의 기준도 없이 사회에 나가서 또 아이들을 낳고 어른이 되어 잘못 배운대로 제 자식을 가르키고 있으니 이런 악순환은 오랜동안 고치기 힘들게 될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는데 한번 잘못 길들여진 교육의 폐해는 되돌리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게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학교의 전통도, 교풍도 다 사라져버린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고 제자리를 찾았어야 했던 교사들이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이 오늘날의 이러한 현실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제 자식이 얻어맞아 마음 아프지 않는 학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 아이들도 학교에서 체벌을 당한 경험을 방과후에 집에 돌아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잘 맞았다고 해 줍니다. 그리고는 마치도 재판장 처럼 왜 잘못했다고 선생님이 체벌을 가했는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맞는 순간은 기분이 나빴을 아이들도 충분한 설명에 이해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중 중요한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왜 체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행동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과 반성보다는 체벌 자체에 흥분을 하는 것입니다. 비단 제 아이들이 못나서의 문제기 아닙니다.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아이들이기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으면 모두 똑 같은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뒤떨어진것이 요즘 아이들인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가운데 체벌을 가해야 할것입니다.
이제 3명의 교사가 고발이 되는 사회문제로 비화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는 많은 교사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실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그런 회오리속에 빠져들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자신의 경우에 똑 같은 일이 발생을 해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합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어야 하겠습니까? "군사부일체"는 이젠 고문서 속에서나 나뒹구는 헛 구절이 되어버리고 한 대 맞았다고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고매한 교사들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어대는 학부모... 그런 모습을 보며 성장한 자녀들이 사회에 나와서 사회에서 어떤 기여를 하기를 바라시나요? 사물을 보는 눈이 삐뚤어져 있으면 그 사물이 아무리 바로 놓여있어도 비스듬해 보인다는 프로이드의 말 처럼 그렇게 자라서 배출되는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것일까요? 그저 좋은게 좋고 내 자식만은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은 여늬 부모나 다 마찬가지이며 충분히 이해하지만 순간의 치미는 울화와 아픔을 참고 자식이 똑똑하게 크기 보다는 똑바르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모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의 정심(正心)이 자식 교육의 성패임을 자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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