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직자는 매년 신체검사를 합니다. 부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멀쩡한 신체가 부려먹기 좋을 것이고 그래서 매년 신체검사를 하는데 좋은 의미로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조직원의 건강 상태를 매년 점검하는것이겠지요. 작년 9월에 정밀 신검을 했는데 금년에는 신검이 5월에 시작되었습니다. X-Ray를 찍고, 피를 뽑고, 팔에는 디스토마 검사를 한다고 두 방의 주사를 놓고....사실 저는 주사 맞는것도 못 볼 정도인데 신체검사 때 마다 몇 방의 주사기가 제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것이 매우 두렵게 여기는 일이라 신체검사가 싫습니다.

2. 1차 검사를 하는 중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담당 의사가 간장이 '쪼그라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비장도 검사를 하고....비교적 간장에 대한 검사를 오래 했습니다. '간덩이가 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간이 쪼그라들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비장이 비대하지 않은것으로 보아 간이 그 기능을 비정상적으로 유지하는것은 아니라고 하며, 간의 표면이 조금 거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간 경변이나 간암 정도 되나요?" 라는 되물음에 의사는 자칫 간경변으로 진행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 대충 간이 안 좋으리라는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워낙 잠이 없어 늦게 자는데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하니 늘 피곤이 쌓이고 비록 낮잠 한번 안잔다해도 피로를 풀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했으니 제가 생각해도 만성 피로증후군 환자가 틀림 없을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일찍 자려고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는 결국 2~3시경에나 잠을 이룰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에 생긴 버릇도 아니고 중학교때 부터이니 이 습관도 제법 나이를 먹은것 같습니다.

4. 1차 검사의 결과는 재검.....당뇨증세와 간에 대한 재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침을 굶고 와서 채혈을 하고, 또 열심히 줏어먹고는 2시간 반 후에 다시 채혈을 했는데 혈당치가 180이라고 나왔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서 아마 다음 주 초 쯤에는 최종 결과가 나올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다고 자부해왔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5. 그런데 "아는것이 힘이다',"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속담중에서 어떤것을 택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제 몸속에 병이 있는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떠나는것과 몸 속에 병이 있다고 안달복달을 하다 떠나는것....결과야 어찌 나오든 저는 담담할것 같고, 늘상 해왔고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지만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훨씬 편한것이 바로 병에 관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뇨가 간질환이나 모두 좋지 않은 것이지만 알게 모르게 간질환도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것을 생각한다면 모르고 넘기는게 상수가 아닐까 합니다.

6. 만약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것이 발견된다면 그 다음의 생은 무척 복잡해 질 것 같습니다. 치료를 한다고 법석일것이 뻔 한데 그게 오히려 사람의 진을 빼고, 병으로 인해 그 사람의 삶 마저도 제 간이 쪼그라든것 처럼 쪼그라들 수 밖에 없을것 아니겠어요?  1차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날 모 중앙지에는 당뇨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설명으로 특집을 꾸렸더군요. 당이나 간질환의 모든 원인의 90%가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저 자신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최근의 상황이 제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왔던 모양입니다. 간이 쪼그라들 정도라면 실은 정말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으니 말입니다.

7. 이제는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의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살아왔던 제 라이프스타일에 수정을 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씩(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많이) 당겨서 일을 처리해야하고 최소한 지금 계획된 제 삶에서 10년은 잘라내고 새롭게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지는것은 없겠지만 멈출 수 없는 일들은 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으니 말입니다. 2차 신체검사의 결과가 어떠하든 지금까지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자성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체검사 결과는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려 봅니다.

 어렸을 때 부터 지나가는 관상좀 볼 줄 안다는 분들이 관상을 봐 주십사는 부탁도 없었는데 "어허~ 그놈 참 오래 살겠다"라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많이 들어왔고, 또 절간에 가면 노스님들께서도 오래 살겠다고 말씀을 해 주실 때.....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당연히 오래 살것이라고 속으로 생각을 해왔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관상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지셨기에 그런 말씀들을 하신것이겠지만, 지금 제가 느끼는 제 몸의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게 오래 살겠다고 말씀해 주셨던 분들은 단순히 그 길이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벼랑벽에 똥칠을 하며" 오래 살것인지는 말씀해 주지 않으셨지요. 즉 빌빌 거리며 억지로 목숨만 붙어서 오래 살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의 신체검사 결과를 보며 오래 사는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고가 확고해 진것 같습니다.  어떻게 나오든 그 결과를 수용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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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5-1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 생활을 하면서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건강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2004-05-16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5-1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공복에 180이니 더 높은 수치겠지요? 최종 결론이 나오면 자세한 처방도 필요할것 같습니다만, 무엇보다 <가장의 건강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그런데..마립간님도 의사님이라서인지 최선을 다한 건강관리를 강조하시네요...하하하^^~

프레이야 2004-05-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결과에 수용하려는 마음 먹었으니, 걱정 안 할게요.
그래도 아무래도 걱정은 좀 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결과가 나올거라 믿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전에 시아버님이 위암으로 검사결과가 나와 온 가족이 며칠을 공포?에 떤 적이 있어요. 근데 다른 병원에서 재검결과 우습게도 단순 위염이더라구요. 다행이지만 오진하고 겁 준 그 의사가 어찌나 괘씸하던지요. ^^

비로그인 2004-05-1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가 어떠하든 겸허하게 수용을 하고 설사 몹쓸 병이 온몸에 살아 꿈틀거린다 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처음처럼 그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실제로 그런 병에 걸려도 천수를 누리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거든요.....^^~~

2004-05-1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