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에게는 누구나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냥 넘겨버리면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백인백색으로 제각기 다른 나름대로의 틀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건 나쁘건...또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건,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개성은 독특하게 그에게만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제게는 만년필이 수십자루 있습니다. 길게는 50년도 넘은 만년필이 있는가 하면 바로 엊그제 제 손에 들어온 만년필도 있답니다. 제가 만년필을 처음 쓰게 된것은 중학교 때 입니다. 모 잡지에서 주최한 글짓기에서 큰 상을 받았는데 그 기념으로 할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을 제게 주셨었습니다. "몽블랑"....처음에는 영어를 배운지 얼마 안된지라 발음대로 읽어보니 "몬트브랭크"로 읽게 되더군요. 그 뭉툭한 만년필은 가끔 잉크가 새어서 손에 잉크를 묻히기도 했지만 당시에 시중에 나돌던 독일제나 빠이롯트보다 훨씬 글을 써 내려가기가 수월하여 그냥 술술~ 글이 써 내려가는것 같았습니다. 소위 "몽땅 만년필"이었던 몽블랑에 대해서 알게 된것은 그 후로도 얼마를 지나서 였습니다. 그것도 그 만년필을 알아보시는 분이 계셔서였는데 비록 할아버지께서 쓰시던것을 주셨다고는 하지만 귀한 만년필이었고, 당시에는 쉽게 볼 수 있는 만년필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덕분에 그 만년필로 詩를 써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고, 대학때는 제법 이름값을 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러던 만년필을 잃어버린것은 대학 4학년 때 였습니다. 취업이다...졸업이다 해서 바쁜틈에 어디에선가 앉아 있다가 급하게 자리를 떠나면서 두고 왔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그곳에 가 보았지만 만년필이 제 자리에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만년필을 사용하던 습관은 볼펜이라는 편리한 필기구가 손에 익숙함을 거부했었고, 결국은 독일제 만년필로 우선은 대신했습니다. 졸업후 첫 봉급으로 부모님 내의와 함께 새로 구입한것이 만년필 이었습니다. "파카 21" 이라는 만년필은 여타의 파카 45보다도 훨씬 쓰기에 편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마에스터 스튝"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몽블랑"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유태인 마크 같이 보이는 뚜껑의 마크가 옆에서 보면 눈에 덮인 알프스의 정상이라는 것과 만년필에 씌여진 숫자가 바로 몽블랑의 높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시에도 만년필에 대한 집중력은 무척 강해서 필기구 판매상에는 무조건 들려 보았습니다. 흔히들 고급 상점이라는 곳이라는 '티파니'에서도 사 보고 유럽의 벼룩시장에서도 만년필을 구해 보았습니다. 만년필의 원조라는 "Waterman"을 비롯하여 "페리컨" "cross""sheaffer"등등 밥은 굶어도 만년필이 있으면 사 보았습니다.
4. 만년필을 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딸려서 사게 되는것이 볼펜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회사의 제품이라도 그 회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냐에 따라 만년필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져서 나름대로 수집이라는 의미도 담게 된답니다. 가급적 눈에 띄는것은 모았지만, 금이나 은으로 전세계에 몇개뿐이라는 등등의 문구로 현혹하는 만년필은 구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워낙 고가이고, 두번째는 실제 사용하는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입니다. 만년필을 구입하는 목적은 일단은 필기감이 어떤가를 알기위해 사용을 하기 위함인데 수백만원대에 이른다면 구태어 희귀성을 따진다고 갖고 싶지는 않답니다.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잉크가 각각 다른 원료로 제작되는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고급 만년필에 사용되는 잉크는 식물이나 광물을 이용한 자연 안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입니다. 빠이롯트 잉크같이 화학 안료가 아닌 자연 안료이기에 세월이 흐르면 잉크의 색이 바래거나 하지만 자연 안료로 필기를 했던 대학 때의 노트를 보면 지금도 원래의 잉크가 변하거나 번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각 회사의 잉크를 담는 병의 모양도 특이한 제각각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책꽂이 앞쪽에 놓으면 나름대로 멋을 부리기도 한답니다.
4. 오랜동안 습관적으로 만년필을 쓰다보니 이제는 볼펜을 쓰게 되면 왜그런지 흔한말로 잘 나가지 않는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만년필로 쓰는 글씨는 조금은 악필인 제 글을 감추어 주지만 볼펜은 악필임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버리고 맙니다. 만년필이 아나로그라면 볼펜은 디지털 같은 느낌을 같게 하더군요. 기계로 만든 만년필이 있는가 하면 정성스럽게 손으로 깎아서 만든 만년필, 우각이나 동물의 뿔로 만든 만년필, 금이나 은으로 만든 만년필....그 만드는 재료도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제게 있어서는 결국은 하나의 필기구일 따름입니다. 이제 이렇게 알게 모르게 모아진 만년필이 수 십개를 넘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니 틀을 하나 자려고 합니다. 만년필의 형태를 그대로 도려내고 거기에 자주색 벨벳으로 바탕을 만들어 그 오려 낸 구멍에다 제각기 맞는 만년필의 몸체를 넣어 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써 왔던 수천만에 이를지도 모르는 글짜 생성기였던 만년필.... 그들의 임무가 무엇이었던 그 만년필은 그의 주인인 제가 아껴왔던 것이기에 노병으로써 대우를 해 줘야 할것 같습니다. 이제 제 손에서 임무를 마치고 퇴역하는 만년필에 대해 손손이 장식함 속에서 빛나도록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