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2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이야기는 한때 중국의 거의 모든 소녀들이 고통을 인내해가며 전족을 해야했던 시대의 이야기.
여자를 다른 가족들을 위한 집안의 재산중에 하나로 여기고, 남편을 하늘같이 받아들여야했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일곱살에 전족을 하고 시집가기 전까지 방밖으로는 나와서는 안되었던
나리와 설화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여자는 참고 참고 또 참아서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하고자 하는 바를 할수있었던 시대.
3세에서 7세 사이의 여자아이들이 발가락이 부러지고 썩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붕대로 발을 꽁꽁 묶어매고,
열명 중 하나는 전족 과정중에서 죽기도 했으며,
발이 묶여있듯이 몸과 마음마저 가족과 남편에게 묶여있을수 밖에 없었던 시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지극히 부당하고 잔인했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시집 보내면 끝일 딸에게 굳이 애정을 주려 하지 않았고,
딸은 사랑을 갈구했으나, 어머니가 되고 또다시 자신의 딸에게 애정을 주려하지 않고,
그저 참고 인내하는 법만을 강요받았던 여자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금련같은 발을 가지고 있기에 부잣집으로 시집간 나리와,
고귀한 집안의 고귀한 막내딸로 태어나 푸줏간 아낙내가 될수 밖에 없었던 설화-
두 소녀는 라오통이라는 특별한 관계로 묶인 친구이다.
그 시대에 결혼이 현실적으로는 여자들에게 여자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면,
라오통-영원히 함께 하는 것, 같이 늙어감을 뜻하는 이 관계는 또하나의 영혼의 결혼식이었던 셈이다.
두 여자의 대비된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일곱살부터 죽을때까지 서로를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는
그들이 주고받는 여자만의 글자 뉴수(女書)에서 오가는 달콤한 언어들처럼, 이들의 남편과의 사랑보다 더 애틋하다.
그들은 남편을 존경하며 사랑하지만, 그 사랑에는 어느 정도 체념이 담겨있기에
그들은 남편을 전적으로 믿기 보다는, 라오통이나 의자매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고,
소설 후반부 나리가 설화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관계를 끊으려 했던 이유 역시, 
남편에게 받는 배신보다 가장 친한 친구,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친구에게 받는 배신감에
더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가 평생 자신을 더 괴롭힐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소설은 거의 전적으로 순종적으로 살아야하는 여자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소설 전체적인 느낌 역시 무척 순종적이라
여성인권적인 관점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종속되어있는 관계에 일말의 불만을 갖지 않고,
지금의 시선으로써는 당연히 부당한 사실을 "인내"가 여자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는 듯
참고 견뎌내는 것만을 당연시 여긴다.
얼마전에 읽었던 "컬러퍼플"과 이 소설이 대비되는 점은 그런 점이다.
똑같이 서러운 여자의 인생을 그렸음에도,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찾아가는 <컬러 퍼플>의 씰리의 독립적인 삶과
남자에게 종속되어 순종하는 삶을 당연시 생각하는 <소녀와 비밀의 부채>의 나리나 설화의 복종적인 삶은
똑같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임에도 참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아마도 그런 점일 것이다.
나리와 설화 두 여자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회에 순응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순종안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옛날의 가치관에 의해 쓰여진 옛날 소설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내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쓴 중국소설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여자들이 감내해야했던 순종과 인내의 고통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그려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이 소설을 동양권 작가가 썼더라면, 이처럼 아름답게만 그렸을까.
이 점은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인권유린에 가까운 순종과 복종을 강요받은 여자의 인생 역시 하나의 동양의 신비처럼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달까...
 
다 읽고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꽤 재밌는 책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장면이 유독 길어서 초반부가 다소 지루하지만,
나리의 결혼과 함께 밝혀지는 진실부터 매우 스피디하고 재밌게 펼쳐져서 두권의 분량을 한권처럼 먹어치울수 있는
재밌고, 한편으로는 씁쓸해졌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영화 <조일럭 클럽>을 떠올렸는데, 그런 느낌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충분히 재밌을 소설이다.
그러나 책 띠지에서처럼 펄벅과의 비교를 굳이 하려하신다면, 코웃음이 나는 수 밖에....
 
 
 
그들 말대로, 딸들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딸들은 웃자란 가지처럼 거추장 스럽고, 쓸데없는 걱정거리이며,다른 가족을 위해 기르는 자식일지도 모른다.
많은 어머니들은 주문을 걸듯 그렇게 독한 말을 스스로에게 되풀이한다.
딸을 위해 어떤 감정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은 물론, 동정, 가여움, 희생, 귀여움 등등의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려 한다.
될수 있으면 독하고 쌀쌀맞은 어미로 남기를 원한다.
그래야 멀리 남의 집으로 시집간 딸이 더 이상 친정 생각을 하며 눈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친정식구들은 딸을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야 뉴슈로 쓴 여자의 은밀한 편지에 "나는 아버지 손안의 진주였다"같은 구절이 왜 그렇게 자주 등장하겠는가?
 
-리사 시 < 소녀와 비밀의 부채> 中에서...
 
 
p.s 1. 오역인지, 오타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 거슬리는 문장이 종종 발견된다.
 "나는 설화의 자식들이 내 식구들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p142)
"우리집에 오면 늘 마누라가 음식이나 책, 돈과 같은 선물을 안고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168)
같은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여서 교정을 보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p.s 2. 그래도 이 정도 분량의 책이라면, 분권을 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듬성듬성하고 큰 글씨에, 한권당 27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데 왠 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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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정신장애 공연예술신서 47
대니 웨딩.매리 앤 보이드 지음, 백승화.조동원.한영옥 옮김 / 평민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개인적인 관심으로 사게된 책인데 막상 책을 받아보고서는 몹시 실망했다.
내가 나름대로 겉모양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서인지, 이 참고서같은 책의 모양세에 보기도 전에 질려버려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두고보다가 얼마전에서야 읽게 되었는데,
겉모양과는 달리 속 내용과 편집은 무척 알찬 책이어서,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고 빠져들수 있는 책이었다.
 
영화와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즐겁게 읽을수 있는 책인데,
챕터마다 한 영화를 정해서 주인공을 직접 데려다가 심리상태와 문제점을 감정하고,
영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정신 장애를 주제로 한 챕터를 꾸며놓은 구성이 무척 돋보인다.
비슷해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심리학 용어를 영화속의 주인공을 빗대어 설명해놓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월하게 이해할수 있게 만들어놓아서 읽으면서도 재밌고,
개념과 용어의 정의도 비교적
쉽게 전달되는 재밌는 공연 예술서이자, 심리학서이고,
저자의 말마따나 교제용으로도 훌륭하다.
(그런 점을 염두해두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챕터마다 토론수업을 위한 문제를 제기하고 마친다.)
 
아쉬운 점이라면, 책속에 등장하는 영화들이 대부분 1990년대 이전의 영화들-대부분이 50년대에서 70년대 영화라는 점과,
(확인해 본 결과 책의 발행일은 2005년도인데, 어쩌면 훨씬 더 전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최근 영화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영화들의 원제만 적어놓아서 국내 출시명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접근해야한다는 점이 불편했다.
책의 판본이 큰 점도, 집에서 책을 읽지 않고 이동중에 읽는 사람들에게는 꽤 불편한 요소이다.
책속에 등장하는 영화들중에 못 보았던 영화는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서,
생각나는대로 천천히 하나씩 보고 책을 다시 볼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히치콕 영화를 좋아하고, 왠만한 히치콕의 영화는 거의 본 것 같은데,
책에 자주 등장하니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면서 천천히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게했다.
 
자극적인 의미로써의 정신 장애가 아닌(실제로 우리는 정신병과 범죄를 이어서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다.),
실제의 정신장애와 그 개념과 치료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들에게 훨씬 쉽고 재밌게 다가갈수 있는 괜찮은 책이었다.
읽으면서, 자신에게는 어떠한 정신 장애가 있는지 생각해 볼수 있게 만드는 점도 이 책의 재미 중 하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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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과 매혹
레이첼 에드워즈, 키스 리더 지음, 이경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1933년 2월 2일,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마을 르망에 사는 랑슬랭씨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인 랑슬랭 부인과 딸 주느비에브가 온몸이 난자되고 다리가 절단된 채 살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시체 주위에는 이미 숨이 붙어있을 때 맨손으로 뽑아낸 안구가 뒹굴고 있었다.
랑슬랭 가의 두 하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하녀들의 방으로 올라간 랑슬랭씨와 경찰들은
굳게 잠긴 문을 열자 나란히 누워있는 두 하녀,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을 발견한다.
하녀들의 방에 떨어져있던 범행도구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범인임은 분명한 사실.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나지도 않고 침대에 평온히 누워있는 두 하녀는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고,
범행에 사용된 무기들은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한때 프랑스와 유럽을 들끓게 했던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수사,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범죄 동기를 여러 각도에서 추측하며,
이 사건을 바라보며 영향을 받아 작품으로 재창조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 <잔혹과 매혹>.
이 <잔혹>한 사건에 사람들이 <매혹>된 이유는 무엇일까.
더 잔혹하고 더 이야기거리가 많은 살인사건들도 있었을 텐데, 이 사건이 유독 책으로까지 쓰여질 정도로
아직도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는 이유는 잔인하게도 이 사건의 미스테리함에 있다.

첫째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여자인 사실. 게다가 피해자 둘, 가해자- 피해자는 피해자들 끼리 혈연관계이고,
가해자는 가해자들 끼리 혈연관계가 되는 비슷한 구도.
둘째 동성애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던 두 살인자 파팽 자매의 극도의 폐쇄적인 삶.
근친상간과 폐쇄적인 두 자매만의 세계속에서 정신적인 샴쌍둥이와도 같은 소울메이트의 이미지와
범행 전의 사진에서는 심지어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자매의 관계성.
셋째로는 범행 당시 랑슬랭가의 딸 주느비에브와 파팽자매가 같은 생리주기였다는 사실.
넷째로는 하필이면 왜 의미심장하게 맨손으로 눈을 뽑아냈을까 하는 문제.
다섯째로는 랑슬랭가의 두 피해자와 파팽자매의 관계가 주인과 하녀-계급적인 상하관계에 놓여있었다는 점.
...등으로 이 사건은 뭐라 말할수 없이 미스테리하고 매혹적으로 잔인한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범행 동기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붙여져 있고, 그들이 확실히 동성애관계에 있었는지도 확실치는 않으며,
주인과 하녀라는 계급적인 상하관계가 범행의 동기가 되는지도 확실치 않아서,
책에서 정확한 해답을 찾는 것은 무리이다.
동성애 관계에 있어 다소 정신이 폐쇄적이라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하기엔 사건이 너무나 극단적이고,
계급적인 분노의 표출이라고 보기엔 사건이 너무 미스테리하다.
살인에 있어 주도적인 입장에 있었다던 언니 크리스틴 파팽은 단두대형을 언도 받았으나,
대통령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된 후 복역중에 계속되는 식사거부로 인해 죽었고,
언니에게 주도권을 빼았겨 있었던 동생 레아 파팽은 10년 복역후, 최근까지 살아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 이후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버린 크리스틴과 레아- 두 파팽자매.
미쳐버린 나머지 결국은 동생도 못알아보던 크리스틴 파팽.
자매인 동시에 서로에게 엄마와 딸 역활을 할수 밖에 없었던 기묘하고 서글픈 자매의 잔혹한 살인이 매혹적인 것은
사실이 어떠했느냐 보다 미스테리를 지향하는 관음적인 시선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추측해보는 재미가 있어서가 아닐지.
이후의 여러 작품에서도 그러하 듯, 이야기는 점점 자극적인 부분- 그들의 동성애적인 면과 거울 국면,
자매이며 어머니인 동시에 딸이 되는 모호한 관계성을 더더욱 드러내게 되고,
사건의 진실은 흐려져 어느것이 진실인지 볼수 없게 되어가는 것은 다소 씁쓸한 사실이지만,
그런 면 때문에 이 책을 고른 나 역시 그런 씁쓸한 욕망에서 벗어난 인간이 아니라고 부인할수는 없다.

실제로 일어난 범죄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책이나 다큐멘터리는 항상 모호한 재미를 주고,
상상해보는 미스테리의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유명한 인물이 아닌- 사실은 무척 폐쇄적이었고, 범행이 없었다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평범한 두 여자의 삶이 낱낱히 까발려진다는 것에 대한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
나 역시 어느 순간에 내 모든 것이 미디어에 고발되어져 풀어헤쳐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드는 것 역시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책을 보는 내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다 보고 잠이 든 후에는 악몽까지 꿔버렸다.
아마도 이 잔혹한 사건이 주는 미스테리와 파팽자매를 향한 묘한 동정심이 뒤섞여
기묘한 생각에 잠겨버린 것 같다.

책은 무척 재밌으나, 번역의 문제-이를테면 친절하게도 단어를 원어까지 같이 써놓아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점과
애매모호한 조사의 사용으로 내용이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아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파팽자매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싶어서 구할수 있는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행 전-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

범행 후-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

범행 전의 사진은 파팽 자매가 어머니에게 보내기 위해 좋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으로 쌍둥이처럼 닮아있는데,
범행 후의 사진에서는 확실히 다른 면을 보여준다.
분리된 샴쌍둥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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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1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Apple 2007-01-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제목이나, 책 표지가 주는 이미지로만 이야기를 유추해보자면,
스물 아홉살에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나도 너따위 필요없어!"라고 외치며,
자기직업을 사랑하는 직업 여성으로써의 새로운 삶을 살게되며, 거기엔 꼭 연하남 하나정도는 등장해야하는
노처녀를 위한 요즘 드라마의 트랜드를 따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만,
막상 이 책은 그런 상상과는 많이 다르다.
흡사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떠올릴수 밖에 없이 숨가쁘게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기이하고 냉소적이기 이를데 없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
 
스물아홉살의 지젤에게 어느날 남자친구 다미앙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수도꼭지를 갈아주려고 찾아와서는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더니만,
이 아버지 하는 말씀이, 갑자기 다미앙이 헤어지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해달란다.
자다 말고 깨어나 정신이 없는 지젤에게 다미앙은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고,
이제 결혼을 해야할 그에게는 너보다 더 어린 여자- 스물 서넛 정도 먹은 아가씨가 필요하며,
그녀를 위해 한바탕 충고를 멋대로 늘어놓더니만, 집에서 다미앙 물건을 다 가져가야겠다고 하지 않나,
그것도 모잘라 좀 도와달라고 하지 않나, 급기야는 너랑 자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나.
상식 이하의 아버지보다 더 열받는 남자 다미앙.
매사에 무감각하며 이별 통보조차 아버지에게 맡겨버리는 비겁하고 파렴치한 다미앙.
그에 한술 더떠, 가뜩이나 충격받아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젤에게 전화해서
다미앙과 헤어져야할 이유는 친절히도 설명해주시는 수다스럽고 잔인한 다미앙의 어머니까지.
 
사랑이란 공해이며, 피를 빨다가 문득 우리의 몸이 역겨워진 피곤한 모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도발적인 이 소설에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된 인간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겁하며, 남 탓하기 좋아하고, 수다스럽지만, 정작 서로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한쪽이 일방적으로 퍼부어버리는 충고 아닌 충고만 있을 뿐.
소설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해서, 스물 아홉살의 지젤을 비겁한 다미앙이 떠나는 것 뿐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가족 갈등과 불신, 인간에 대한 애증이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가 되겠다.
그래서 이야기의 굴곡이 너무 없고, 수다스럽게 자기 입장만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전체적으로 다소 지루하고 평이하며 엇비슷한 비유가 연속적으로 소설 내내 등장해
작가의 의도된 문장인지, 아니면 작가가 그 단어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소설 내내 정액에 관한 비유를 하는 점- 이해도 납득도 되지 않는 비유들은
꼭 마치 작가가 그 단어를 쓰기 위해서 문장을 써내려간 것처럼 짜맞춰진 느낌이 든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꽤 재밌게 봤었는데,
아마 지금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읽는다 해도 이와 똑같은 기분이 들었으리라.
죽도록 싸우고 남을 헐뜯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의 수다를 듣기에는
내가 이미 조용함이나 무언에서 오는 메시지를 더 즐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시끄러워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그 안에는 자기 변호로 얼룩진 비겁한 변명이 있을 뿐이다.
너무 소심하고 나약해서 남을 비난하지 않고는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뒤틀린 변명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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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8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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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독 찬밥 대우를 받고 있는 장르는 누가뭐래도 공포소설 쪽이 아닐까.
간혹 공포문학이 주는 공포감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은 무슨 보면 안될거 보는 냥,
아주 수준낮은 저급 이야기를 보거나, 또는 변태인냥 의아하게 처다보는 경우도 있다.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워낙 사랑하는지라, 공포 예술장르는 내가 사랑하지 않을수 없는 장르인데,
예전에 어떤 친구가 "넌 그런거 왜 좋아해?"라고 대놓고 물어봐서 "그럼 넌 왜 싫어하는데?"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주 간단명료하게 친구는 "사는 게 힘든데 영화나 소설보면서 힘들고 우울한 게 싫다"라고 말했다.
참 순진한 답변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나 뿐일까.

나는 예술이 주는 우울함이나 공포심과 현실이 주는 그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아주 슬픈 것을 보고, 또는 아주 무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그 감정 자체가
기쁨이나 행복처럼 내가 즐길 권리가 있는 다양한 감정중의 하나라 생각하고,
그 감정 역시 꺼릴 것 없이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중에 하나라고 믿는다.
하나의 상상력으로, 이것 역시 즐거운 예술품의 하나로- 그렇게 받아들여주면 안될까.
공포문학이 그렇게 만만히 얕봐서는 안되는 장르이고,
매니아들이 단지 고어함 때문에만 공포문학에 심취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를까.

어느날 갑자기 몹시 보고싶어서 참지 못하고 사와 한걸음에 봐버린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와!"하는 탄성이 자아내질 정도로 무척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책이다.
공포 단편이 주는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단편집에 실린 작가들의 내력을 훑어보니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70년부터 80년대생까지-비교적 나이가 젊은 작가들인데,  그만큼 젊은 감각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귀신이나 새로운 존재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일상에서 끄집어 올려낸 공포,
현실의 짜증이나 당혹감,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한 공포심리를 잡아낸다.

전체적으로 신경질적인 분위기 묘사가 무척 좋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김종일의 <일방통행>.
그리고 초반부터 불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호흡 좋고, 마무리 깔끔하고, 무엇하나 손색없는
이 단편선 최고의 단편이라 생각되는 권정은의 <은둔>,
버려도 버려도 집으로 계속 돌아오는 상자로 시작하여 엽기적인 공포물로 마무리 짓는 신진오 <상자>,
가장 짧은 단편인만큼 임팩트 강한 마무리를 짓는 엄성용의 <감옥>,
단편의 반정도의 분량이 고어한 장면으로 채워져있고, 엽기적이나
또 한편으로 어딘지 슬프기도했던 우명희의 <들개>,
뭔가 확실히 잡히는 스토리 라인이 없어 아쉽지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게다가 치과치료를 무척 무서워하고 있는 본인으로써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최민호의 <흉포한 입>,
지배자가 군림해 인간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은호의 <하등인간>,
다소 식상한 소재이지만, 연륜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전개와 흡입력이 매력적인 김종호의 <아내의 남자>,
짧고, 흡입력 강하고, 흥미진진하고, 또한 잔혹한 코믹 잔혹극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박동식의 <모텔탈출기>, 공포소설이라기보다는 의학 스릴러에 가깝고, 어딘가 아쉬운 김민영의 <깊고 푸른 공허함>까지-

모두 공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재의 다양성과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으로는 역시 <일방통행>과 <은둔>, <상자>, <모텔 탈출기>였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그것도 대부분이 아직 젊은 작가들이 이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2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정도로
읽는내내 완전히 몰입해서 정말 재밌게 읽어버렸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는 더 많은 양질의 공포문학이 소개되기를 바라게 되는 왠지 신나는 책이었다.
이런 작가들이라면 꿈꿔볼 만도 하다.


p.s 이 책에 뭐 다른 제목을 딱히 붙일 것도 없겠지만,
세계 공포문학선, 한국 추리단편선....뭐 이런 식의 제목은 너무 흔해서 제목은
그다지 강하게 다가오지 않을 뿐더러, 나중에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 점이 좀 아쉽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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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보고 싶은데 마음만 앞섭니다 ㅡㅡ;;;

Apple 2007-01-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헤헤....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