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부채 2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이야기는 한때 중국의 거의 모든 소녀들이 고통을 인내해가며 전족을 해야했던 시대의 이야기.
여자를 다른 가족들을 위한 집안의 재산중에 하나로 여기고, 남편을 하늘같이 받아들여야했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일곱살에 전족을 하고 시집가기 전까지 방밖으로는 나와서는 안되었던
나리와 설화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여자는 참고 참고 또 참아서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하고자 하는 바를 할수있었던 시대.
3세에서 7세 사이의 여자아이들이 발가락이 부러지고 썩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붕대로 발을 꽁꽁 묶어매고,
열명 중 하나는 전족 과정중에서 죽기도 했으며,
발이 묶여있듯이 몸과 마음마저 가족과 남편에게 묶여있을수 밖에 없었던 시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지극히 부당하고 잔인했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시집 보내면 끝일 딸에게 굳이 애정을 주려 하지 않았고,
딸은 사랑을 갈구했으나, 어머니가 되고 또다시 자신의 딸에게 애정을 주려하지 않고,
그저 참고 인내하는 법만을 강요받았던 여자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금련같은 발을 가지고 있기에 부잣집으로 시집간 나리와,
고귀한 집안의 고귀한 막내딸로 태어나 푸줏간 아낙내가 될수 밖에 없었던 설화-
두 소녀는 라오통이라는 특별한 관계로 묶인 친구이다.
그 시대에 결혼이 현실적으로는 여자들에게 여자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면,
라오통-영원히 함께 하는 것, 같이 늙어감을 뜻하는 이 관계는 또하나의 영혼의 결혼식이었던 셈이다.
두 여자의 대비된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일곱살부터 죽을때까지 서로를 사랑했던 두 여자의 이야기는
그들이 주고받는 여자만의 글자 뉴수(女書)에서 오가는 달콤한 언어들처럼, 이들의 남편과의 사랑보다 더 애틋하다.
그들은 남편을 존경하며 사랑하지만, 그 사랑에는 어느 정도 체념이 담겨있기에
그들은 남편을 전적으로 믿기 보다는, 라오통이나 의자매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고,
소설 후반부 나리가 설화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관계를 끊으려 했던 이유 역시, 
남편에게 받는 배신보다 가장 친한 친구,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친구에게 받는 배신감에
더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가 평생 자신을 더 괴롭힐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소설은 거의 전적으로 순종적으로 살아야하는 여자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소설 전체적인 느낌 역시 무척 순종적이라
여성인권적인 관점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아들에게 종속되어있는 관계에 일말의 불만을 갖지 않고,
지금의 시선으로써는 당연히 부당한 사실을 "인내"가 여자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는 듯
참고 견뎌내는 것만을 당연시 여긴다.
얼마전에 읽었던 "컬러퍼플"과 이 소설이 대비되는 점은 그런 점이다.
똑같이 서러운 여자의 인생을 그렸음에도,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찾아가는 <컬러 퍼플>의 씰리의 독립적인 삶과
남자에게 종속되어 순종하는 삶을 당연시 생각하는 <소녀와 비밀의 부채>의 나리나 설화의 복종적인 삶은
똑같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임에도 참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아마도 그런 점일 것이다.
나리와 설화 두 여자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회에 순응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순종안에서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옛날의 가치관에 의해 쓰여진 옛날 소설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내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쓴 중국소설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여자들이 감내해야했던 순종과 인내의 고통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낭만적으로 그려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이 소설을 동양권 작가가 썼더라면, 이처럼 아름답게만 그렸을까.
이 점은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인권유린에 가까운 순종과 복종을 강요받은 여자의 인생 역시 하나의 동양의 신비처럼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달까...
 
다 읽고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꽤 재밌는 책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장면이 유독 길어서 초반부가 다소 지루하지만,
나리의 결혼과 함께 밝혀지는 진실부터 매우 스피디하고 재밌게 펼쳐져서 두권의 분량을 한권처럼 먹어치울수 있는
재밌고, 한편으로는 씁쓸해졌던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영화 <조일럭 클럽>을 떠올렸는데, 그런 느낌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충분히 재밌을 소설이다.
그러나 책 띠지에서처럼 펄벅과의 비교를 굳이 하려하신다면, 코웃음이 나는 수 밖에....
 
 
 
그들 말대로, 딸들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딸들은 웃자란 가지처럼 거추장 스럽고, 쓸데없는 걱정거리이며,다른 가족을 위해 기르는 자식일지도 모른다.
많은 어머니들은 주문을 걸듯 그렇게 독한 말을 스스로에게 되풀이한다.
딸을 위해 어떤 감정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은 물론, 동정, 가여움, 희생, 귀여움 등등의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하려 한다.
될수 있으면 독하고 쌀쌀맞은 어미로 남기를 원한다.
그래야 멀리 남의 집으로 시집간 딸이 더 이상 친정 생각을 하며 눈물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친정식구들은 딸을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야 뉴슈로 쓴 여자의 은밀한 편지에 "나는 아버지 손안의 진주였다"같은 구절이 왜 그렇게 자주 등장하겠는가?
 
-리사 시 < 소녀와 비밀의 부채> 中에서...
 
 
p.s 1. 오역인지, 오타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 거슬리는 문장이 종종 발견된다.
 "나는 설화의 자식들이 내 식구들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p142)
"우리집에 오면 늘 마누라가 음식이나 책, 돈과 같은 선물을 안고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168)
같은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여서 교정을 보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p.s 2. 그래도 이 정도 분량의 책이라면, 분권을 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듬성듬성하고 큰 글씨에, 한권당 27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데 왠 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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