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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과 매혹
레이첼 에드워즈, 키스 리더 지음, 이경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1933년 2월 2일,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마을 르망에 사는 랑슬랭씨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인 랑슬랭 부인과 딸 주느비에브가 온몸이 난자되고 다리가 절단된 채 살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시체 주위에는 이미 숨이 붙어있을 때 맨손으로 뽑아낸 안구가 뒹굴고 있었다.
랑슬랭 가의 두 하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하녀들의 방으로 올라간 랑슬랭씨와 경찰들은
굳게 잠긴 문을 열자 나란히 누워있는 두 하녀,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을 발견한다.
하녀들의 방에 떨어져있던 범행도구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범인임은 분명한 사실.
살인을 저지르고 달아나지도 않고 침대에 평온히 누워있는 두 하녀는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고,
범행에 사용된 무기들은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한때 프랑스와 유럽을 들끓게 했던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수사,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범죄 동기를 여러 각도에서 추측하며,
이 사건을 바라보며 영향을 받아 작품으로 재창조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 <잔혹과 매혹>.
이 <잔혹>한 사건에 사람들이 <매혹>된 이유는 무엇일까.
더 잔혹하고 더 이야기거리가 많은 살인사건들도 있었을 텐데, 이 사건이 유독 책으로까지 쓰여질 정도로
아직도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는 이유는 잔인하게도 이 사건의 미스테리함에 있다.
첫째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여자인 사실. 게다가 피해자 둘, 가해자- 피해자는 피해자들 끼리 혈연관계이고,
가해자는 가해자들 끼리 혈연관계가 되는 비슷한 구도.
둘째 동성애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던 두 살인자 파팽 자매의 극도의 폐쇄적인 삶.
근친상간과 폐쇄적인 두 자매만의 세계속에서 정신적인 샴쌍둥이와도 같은 소울메이트의 이미지와
범행 전의 사진에서는 심지어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자매의 관계성.
셋째로는 범행 당시 랑슬랭가의 딸 주느비에브와 파팽자매가 같은 생리주기였다는 사실.
넷째로는 하필이면 왜 의미심장하게 맨손으로 눈을 뽑아냈을까 하는 문제.
다섯째로는 랑슬랭가의 두 피해자와 파팽자매의 관계가 주인과 하녀-계급적인 상하관계에 놓여있었다는 점.
...등으로 이 사건은 뭐라 말할수 없이 미스테리하고 매혹적으로 잔인한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범행 동기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붙여져 있고, 그들이 확실히 동성애관계에 있었는지도 확실치는 않으며,
주인과 하녀라는 계급적인 상하관계가 범행의 동기가 되는지도 확실치 않아서,
책에서 정확한 해답을 찾는 것은 무리이다.
동성애 관계에 있어 다소 정신이 폐쇄적이라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하기엔 사건이 너무나 극단적이고,
계급적인 분노의 표출이라고 보기엔 사건이 너무 미스테리하다.
살인에 있어 주도적인 입장에 있었다던 언니 크리스틴 파팽은 단두대형을 언도 받았으나,
대통령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된 후 복역중에 계속되는 식사거부로 인해 죽었고,
언니에게 주도권을 빼았겨 있었던 동생 레아 파팽은 10년 복역후, 최근까지 살아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 이후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버린 크리스틴과 레아- 두 파팽자매.
미쳐버린 나머지 결국은 동생도 못알아보던 크리스틴 파팽.
자매인 동시에 서로에게 엄마와 딸 역활을 할수 밖에 없었던 기묘하고 서글픈 자매의 잔혹한 살인이 매혹적인 것은
사실이 어떠했느냐 보다 미스테리를 지향하는 관음적인 시선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추측해보는 재미가 있어서가 아닐지.
이후의 여러 작품에서도 그러하 듯, 이야기는 점점 자극적인 부분- 그들의 동성애적인 면과 거울 국면,
자매이며 어머니인 동시에 딸이 되는 모호한 관계성을 더더욱 드러내게 되고,
사건의 진실은 흐려져 어느것이 진실인지 볼수 없게 되어가는 것은 다소 씁쓸한 사실이지만,
그런 면 때문에 이 책을 고른 나 역시 그런 씁쓸한 욕망에서 벗어난 인간이 아니라고 부인할수는 없다.
실제로 일어난 범죄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책이나 다큐멘터리는 항상 모호한 재미를 주고,
상상해보는 미스테리의 즐거움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유명한 인물이 아닌- 사실은 무척 폐쇄적이었고, 범행이 없었다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평범한 두 여자의 삶이 낱낱히 까발려진다는 것에 대한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
나 역시 어느 순간에 내 모든 것이 미디어에 고발되어져 풀어헤쳐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드는 것 역시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책을 보는 내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다 보고 잠이 든 후에는 악몽까지 꿔버렸다.
아마도 이 잔혹한 사건이 주는 미스테리와 파팽자매를 향한 묘한 동정심이 뒤섞여
기묘한 생각에 잠겨버린 것 같다.
책은 무척 재밌으나, 번역의 문제-이를테면 친절하게도 단어를 원어까지 같이 써놓아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점과
애매모호한 조사의 사용으로 내용이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아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파팽자매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싶어서 구할수 있는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행 전-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

범행 후-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
범행 전의 사진은 파팽 자매가 어머니에게 보내기 위해 좋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으로 쌍둥이처럼 닮아있는데,
범행 후의 사진에서는 확실히 다른 면을 보여준다.
분리된 샴쌍둥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