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걸
마이조 오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게 요상한 소설이다.
주인공 '아이코'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 모험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소설이 너무나 요지경인데다가 소녀가 화자인 것 치고는 상상을 초월하게 대담하다.

인터넷에 모여 무시무시하게 엽기적인 대화를 나누는 중학생들과 세쌍둥이 어린아이를 토막살해하고 유기한 소문의 빙글빙글 마인,
그를 잡아 처단하자는 고등학생들이 거리에서 아무 중학생이나 처단하려 하는 자칭 '아마겟돈'.
그 엽기적인 요지경의 변두리에는 주인공 아이코가 있다.
좋아히도 않은 남자애와 섹스를 하고 찝찝해하기는 하는 아이코는 어떤 면으로는 수다스럽고 평범한 소녀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남자아이 요지-요지는 작중 인물들중에 독보적으로 바른 인간-를 앞에 두고서 생각하는 거라고는
그저 어떻게 잘까 하는 것밖에 없는, 이 역시 엽기적이기 이를데 없는 소녀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하다.
다 읽고 났는데도, 심지어는 아주 잘 읽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얘기인지 정신이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타락한 중학생들의 심리를 알아보고자 했음인지, 빙글빙글 마인으로 불뤼는 살인마를 잡기 위함인지,
아니면, 아이코의 요지에 대한 욕정인지, 정신이 없어서 무슨 얘긴지 도통 모르겠다.

그나마 소설의 반정도는 그럭저럭 읽으며 이해할수가 있는데,
갑자기 유체이탈을 해 저 세상으로 건너갈 뻔하는가 하면, 아이코의 상상속의 친구인 샤스틴의 뜬금없는 엽기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고,갑자기 빙글빙글 마인의 헛소리를 풀어놓다가, 갑자기 이 아이코가 자기 어머니도 때리는 망나니같은 살인마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고 하질 않나,
말도 안되게 아수라와 부처님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즐겁게 사는게 제일 좋은거라고 마무리 짓는 이 난감함을 어쩌란 말인가?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이런 책을 써냈을까.
아무 생각없이 쓴걸까. 그렇다면 아무 생각없이 쓴 소설이 왜 출판되어 나오는걸까.
소설 표지를 직접 만들며, 매스컴에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얼굴없는 작가 마이조 오타로의 정신세계가 심히 궁금하도다.

내 평생 이런 이상한 소설은 처음 본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상한 소설을 쓸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색다르다 못해 거부감이 들 정도. 일탈적이라 보기에도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심하다.
이 책은 설명 불가능한 악몽에 가깝고, 너무 요상해서 충격적이라 뭐라 정리를 해야하는지 알수 없다.
근데 이 작가, 도대체 남자야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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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그렇죠? 근데 뭐라고 하기엔 뭐가 있는 듯도 하고... 저도 통 감을 잡을 수 없더라구요.

Apple 2007-02-0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냥 단순히 막쓴 걸 낸 것 같지도 않고.....하여간 되게이상해요.

scsc 2007-10-0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다
 
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추리소설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최초의 작가는 아가사 크리스티였다.
(두번째는 역시 당연한 듯이 코난도일의 홈즈 시리즈였고..)
밀실 살인, 숨겨진 범행 도구, 발자국, 알리바이, 시간계산, 다잉 메세지...등등으로 나타나는 고전추리소설 특유의
미스테리한 "트릭"이 그 시절에는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었는지....
사실, 그런 트릭이나 추리소설에서 주는 정보는 굳이 알지 않아도 살아가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몰라도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것들은 알고보면 재밌다.
트릭과 사건 증명이 주는 두뇌 유희 놀이가 언제는 지겨웠던 적이 있었나.
(뭐든,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는 부적합한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밤이 새도록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범인을 찾아보고, 소설속의 트릭 증명에 뭔가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냥,
"아!!그렇구나!!!"하면서 거의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리소설에 매달려 밤이 다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묘한 향수와 낭만에 젖어들수 있는 소설이 나타났다.
 
시마다 쇼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몇번 발간이 된 적이 있고,
"신본격 추리소설"(일본 사람들은 참 단어만들기를 좋아한다.)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단어야 이렇게 애매모호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고전 추리소설을 현대로 다시 되살려낸 작품-
고전적인 트릭도 있으나 좀더 현대적인 취향에 맞춰진 작품군들이라고 정리해보면 될것이다.
조금 더 진화된 복고로의 회귀랄까.
굳이 일본에서 고전 미스테리를 부활시키고자 한 작가들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은 미스테리의 로망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지.
 
이 책 속에도 그런 사실을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는데, 일본은 추리계에서는 내노라 하는 위치를 확보한 나라이다.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추리소설만 해도,
그 기발함은 영미권 추리소설과 또다른 매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트릭보다는 반전과 고발을 무기 삼아 현실적인 스릴러에 가까워져버리는 사회파 소설들에 비해
신본격 추리소설은 좀더 로망에 가득차 있고, 비현실적이다.
현실의 범죄에는 트릭이 존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현실의 범죄는 우발적으로 일어나거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본의 아니게 미스테리하게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또 계획적으로 일어난다 해도 범행현장을 깨끗히 처리하고,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길지언정,
굳이 남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트릭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현실과는 유리된 트릭이라는 수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더더욱 재밌어지는 것이다.
마구 헝클어져 있던 퍼즐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카타르시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트릭 증명이 주는 매력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이다. 현실이 아니다.
그러니, 뭐하나 딱히 변하지도 않는 평범해서 지긋지긋한 일상을 잠시나마라도 잊어버리고,
단순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즐겨주시길.
 
신본격 추리소설의 포문을 열었던 "점성술 살인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이다.
증명을 다 듣고 나면 더 요구할 것도, 흠잡을 데도 전혀 없는 트릭에 즐거운 고민이 한방에 날라가버리고,
홈즈와 왓슨을 떠오르게 만드는 엉뚱한 미타라이와 성실한 이시카와 커플을 보는 것도 즐겁다.
(묘하게도 이 작가는 홈즈에 원한이라도 사묻혔는지 작품내에 홈즈를 엄청 씹어대고 있다.)
자, 즐거운 미스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여드시길.
"알고보면 간단한 이야기"라고 추리소설에서는 언제나 말하지만, 그거야 짓는 사람 입장에서야 그렇지.....
이 사건은 아주 미스테리하고, 궁금증을 마구 유발한다.
 
1. 삐뚤어진 탐미주의를 가진 화가가 엽기적인 생각을 하나 해낸다.
그는 연금술과 점성술에 의거해, 별자리가 모두 다른 자신의 여섯딸들을 이용하여,
이상적인 신체 부위를 절단하여 하나의 여인으로 만들어 완벽하게 이상적인 존재 '아조트'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삐뚤어진 이상을 실현하기도 전에,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다.
완벽한 밀실. 단서라 할만한 것은 미스테리하게 남겨진 눈위의 발자국.
 
2. 시집간 화가의 첫째딸 가즈에가 자택에서 살인당한 채 발견된다.
 
3. 아조트의 환상을 가지고 있던 화가가 죽었는데도, 아조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여섯딸의 신체가 각각 다른 지방에서 절단된 채 발견된다.
 
자, 범인은 누구이며, 범행동기는 무엇일까?
40년이 넘게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다던(물론 소설속에서-) 이 미스테리한 사건의 전말은?
정답은 책속에서 확인하시라....
 
 
p.s 1. 책속의 타이프체가 무척 거슬린다. 특히 회색으로 된 부분이 나왔을 때는 거의 좌절이었다.
(눈이 멀 것 같은 고통이란....)
읽기 적당한 글자체를 골라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모양은 예쁘나, 꽤 많은 내용을 읽기에 부적합한 글자체이다.
p.s 2.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이 트릭을 훔쳐갔다던데, 김전일은 띄엄띄엄 본적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전일"에서 이 트릭을 본 사람들에게 이건 무지막지한 테러 아닌가.
p.s 3.  엉뚱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교고쿠도 시리즈"의 교고쿠도의 출연을 바랬다.
소설의 반절정도가 사건의 해설인데, 교고쿠도가 해결사였더라면, 사건 전말을 다 듣고 난후,
점성술의 효시부터 시작해서 일장 연설을 하신 다음, '결코 발로 뛰지 않고' 방에 앉아서 완벽히 증명했을 것 같다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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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달리아 2 밀리언셀러 클럽 54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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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마냥 따뜻할 것만 같은데, 이 거리에는 추악한 인간들이 득실거린다.
배신과 비정함으로 일관되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지배하는 40년대의 L.A의 풍경은 이렇단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약에 빠져있거나, 술에 빠져있거나, 여자를 사고 팔거나,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변태성욕을 숨기지도 않으며, 사람이 쉽고도 허망하게 죽어나간다.
이 축축한 타락한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선하지 않지만, 누구나 악하다.
경찰과 범죄자의 경계조차 무의미하게 폭력이 난무하고, 무언가에 홀린듯, 여자들은 길에서 남자에게 몸을 팔고,
길거리의 밑바닥 인생인 창녀들중에서 더러는 누구의 짓인지도 모르게 살해당한다.
"블랙 달리아"처럼....
 
블랙 달리아. 미친 타락녀.
배우가 되고자 보스턴에서 L.A로 건너와 무섭도록 몸을 팔았던 천박한 창녀 '엘리자베스 쇼트'.
몸이 두동강으로 잘리고,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찢겨진 채로 살해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유명해진 미국의 밑바닥 인생을 대표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블랙 달리아'라고 불렀다.
실제 사건이었던 '블랙 달리아'사건을 기초로 한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 <블랙달리아>는
추리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긴박감 넘치는 전개나 뒤통수 치는 반전을 내세운 소설은 아니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블랙 달리아의 시신처럼, 끔찍하게 일그러진 사회의 밑바닥 군상들을
낱낱히 해부하며 사람과 사람이 저지른 죄의 잔혹함에 치를 떨게 하는 소설이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경찰이 되려고 친구를 밀고한 비열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권투선수 출신의 경찰 버키 블라이처트부터,
은행털이범을 소탕하여 영웅이 되었으나, 부정부패를 일삼고 배신을 밥먹듯이 해서 경찰 반장까지 오르는
버키의 동료 리 블랜처드,
창녀로 살아왔던 전적이 있으나, 리를 만나고 나서 새로운 동화적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나약한 케이,
부족할것 없이 자라온 부잣집 딸이지만 함부로 몸을 굴려버리는 창녀 매들린,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서 주위에 별로 신임을 받지도 못하고, 여배우가 되고자 몸을 팔아 삶을 근근히 이어가지만,
그 매춘조차 자신의 내재된 나약함과 성애중독증을 변호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거리처럼 비춰지는
블랙 달리아 엘리자베스 쇼트.
타락한 경찰, 권력을 이용하여 원하는 바를 모두 가지려는 경찰,
아버지와 자는 딸, 시체를 사랑하는 변태성욕자, 여자를 잡아다가 남자들에게 팔아먹고 사는 뚜쟁이.
 
<블랙 달리아>속의 인물들은 모두 잔혹한 본성과 과거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핑계로 거칠게도 일그러져있다.
이성을 놓아버릴 단 한개의 이유라도 있다면 금새도 무너져버릴 나약한 인물들.
사랑도 없고 정의도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감정이란 어쩌면 생존본능 뿐인지도 모르겠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음해하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팔아버리는 창녀같은 인물들.
약점과 추악함이 내뱉는 독살맞은 매력으로 가득찬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이 소설은
끔찍하게도 아름답고, 나약하고, 서글프다.
 
그들 모두가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막상 안정된 인생이 자기 앞에 놓여 있을때
그들은 겁쟁이처럼 또다시 혼탁한 도시의 밑바닥으로 도망쳐 버리고 만다.
리가 '블랙 달리아'사건을 수사하다가 폭주해버리고 사라져버린 후에,
버키가 공포에 가득차 그제서야 케이와 사랑을 확인하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게된 후에도,
또다시 피와 폭력과 정액이 난무하는 거리로 뛰쳐나와 끝없이 블랙 달리아를 찾아 헤매이며,
케이와의 결혼생활을 끝낼 핑계거리를 찾듯이.....
이미 범죄와 폭력에 물들여진 이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행복에 길들여지지 못하고,
그 지루한 안정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들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닌, 단지 '살아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추악함을 내세운 다른 소설들도 참 많지만, 이 소설이 유독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과거와 블랙 달리아 사건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열살에 어머니가 강간, 살해 당한후에 부랑아에 알콜중독자로 살아온 제임스 엘로이.
이 작품으로 그는 결국 미해결 사건으로 끝난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려 했을까.
버키가 '블랙 달리아'의 환영에 시달리며 집착하게 되었던 것처럼,
소설을 쓰는 내내, 그는 도저히 잊을수 없던 암울한 과거사를 다시 끄집어내어 어머니의 환영을 마주보고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엽기적인 살인보다 타락한 사람이 더욱 무서웠고 서글퍼졌던 소설.
"걸작"이라는 수식에 어울리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1%도 낙천적이지 않고 밝은 구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며 멋있는 척도 하지 않는 음울한 이 느와르는
독하고, 진하고,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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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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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지만, 흥미롭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엮어놓은 "경성기담"은
근대 조선, 그러니까 일제시대에 일어났던 특이한 사건들을 엮어놓은 책이다.
1부에서 다룬 살인, 범죄 관련 사건과 2부에서 다룬 스캔들 관련 사건들-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실리지는 못하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사람들을 좀더 흥미롭게 볼수 있는 사건들을 모아놓았다
호기심을 마구 자극하는 이 사건들이 마냥 흥미롭지만은 않은 이유는
일제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과거사를 끄집어 내 씁쓸한 느낌을 들게 하고,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또한 여설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가 잔혹한 "단두 유아 사건"-대낮에 경성 거리에 뒹굴고 있던 잘려진 한살짜리 아이머리를 둘러싼
근 한달간의 추적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듯 먼 발치에서 구경하는 입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일어난 사건도, 드러난 진실도 씁쓸해지는 이야기로 이 책의 포문을 여는 가장 하드고어한 이야기였다.
일제시대, 마음 갈곳 없는 식민지 사람들의 마음을 뺏고 돈도 뺏고 결국 목숨까지 빼앗아버린
역대 사상 최악의 사이비 종교 사건이 되어버린 백백교 사건은 지금 돌아봐도 무척 충격적인 사건이다.
시사프로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왜 저런 시시한 종교에 빠질까?"하는 의구심이 들곤 하는데,
책을 보면서 이런 우스운 교리로도 사람을 혹하게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는 뭐 설득력 넘쳐서 지도자로 선택이 되었나....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라는 것은 참 무섭다. 악용되었을 경우에는 더 무서워진다.
식민지 시대의 인권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던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 사건"과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죽이지 않았어도 죽이는 게 되었던 억울한 조선인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시대상처럼 암울한 이야기들을 다룬 1부와 달리 스캔들을 주로 다룬 2부는 그나마 즐거운 부분이지만,
나라를 팔아 번 돈으로 흥청망청 자산을 탕진하고도 모잘라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죽기전까지 도피생활을 했던 윤택영의 이야기에서 알수 있듯,
나라 판 돈으로 재산은 있지만, 그렇다고 실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딱히 할 일은 없었던
당시 귀족들의 나태하고 사치스러운 삶의 모습이
고생하고 차별받으며 살았던 민중들만큼이나 허무해 보이는 것은 왜 일지...
사랑에 빠져 가족과 의무를 져버린 예술가의 이야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여제자 성추행 사건,
재산을 둘러싼 이인용 부부의 부부싸움 이야기를 거쳐,
책의 후반부로 가면 여자로써는 무척 씁쓸하고 슬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리 잘나도 여자였기 때문에 손가락질 받는 두 신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나라의 발전에 헌신하기 위해 그 먼 스웨덴까지 건너가 공부를 하고 돌아와
겨우 콩나물 파는 여자로 전락해 27세에 쓸쓸하게 죽은 최영숙 여사의 이야기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스웨덴 최초의 동양여자였으며, 황태자의 신봉을 받는 학자였으며, 5개국어에 능통했고,
남달리 나라에 대한 충성도가 있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면 무엇을 하랴.
이 썩어 문들어진 나라는 여왕처럼 한평생을 누릴수 있을지도 몰랐던 여자 학자를 아무데에서도 써주질 않고,
그녀의 초라한 사후에 세상이 관심을 갖는 부분이라고는 고작 뱃속의 혼혈아의 출처뿐인데....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말이 잘 어울릴 법한 이 책의 사건들은
역사서에는 한줄 이상 기록된 바 없는, 그러나 신문자료를 모아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마냥 "항간에 떠도른 소문"이라고 보기는 힘든 사건들이다.
역사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개개인의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일제시대 역사보다 이런 책이 더 각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루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것이 진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사생활로 알아본 식민지 조선의 이야기-허무하기도 했고 한숨이 나기도 했고, 마음이 아파지기도 했다.
먼 미래에 지금의 역사서를 쓴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관심사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겠지.
화려하게만 보였던 여가수가 자살을 하고, 어디선가 토막난 시체가 발견되는 그런 이야기-
거시적으로는 역사를 바꿀만한 사건들은 아니지만, 이것들이 모여 시대상을 만들어가는
죽으면 역사서에 한줄 실리지 못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언젠가 먼 미래에 누군가 그런 이야기들을 엮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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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 보기엔 입이 쓰죠.

Apple 2014-04-1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휴우...
 
미륵의 손바닥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윤덕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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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늘 내가 읽는 소설의 제목이 의심스럽다던 엄마가 드디어 불심으로 들어가기로 한거냐며 빈정대게 했던
바로 그 소설 <미륵의 손바닥>.
박력만점의 제목만으로도 나를 설레이게 만드는 <살육에 이르는 병>의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최근작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이미 책을 사고 난 후였다.
거의 딱 1년전 이맘때쯤에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보았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함께 얘기되어질수 있는 소설을 또 냈다. (재미붙인걸까?)
소설 막바지에 화르륵 터져버리는 반전과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사회의 병폐에 대한 이야기등이 비슷한 점에서
두 소설은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소설 막바지에서 두 소설은 방향을 달리한다.
말그대로 "부처님 손안에 있소이다-"를 떠올리게 하는<미륵의 손바닥>.
<벚꽃...>에서는 피라미드 회사를 파해쳤다면, <미륵의 손바닥>은 신흥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교사인 쓰지는 몇년전, 학생과의 불륜 사건때문에 학교도 옮기고 아내와도 반별거중인 상태이다.
서로의 방에 틀어박혀 단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아온지 꽤 되어서 당장 이혼해도 상관없는 상태.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사라졌다.
그녀가 이혼을 하자면 하려고 했고, 위자료를 달라면 위자료를 줄 생각이었던 쓰지는
아내의 실종을 대수롭지 않게 "드디어 가출을 한게로구나."라고 생각하는데,
몇일후 아내의 실종신고가 들어왔다며 경찰이 출동한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실종인지 살인인지 가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편에 의한 살인을 염두해두고 있던 경찰은 쓰지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쓰지는 누명을 벗기위해 아내를 발벗고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또다른 남자 에비하라는 다 큰 두 딸과 재혼한 아내와 살고 있는 형사이다.
거구에, 마초인 이 남자는 러브호텔에서 살해당한채 죽어있는 아내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아내가 죽었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도 충격일 터.
딸들앞에서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에비하라는 범인을 자가응징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기 시작한다.
 
똑같이 아내를 잃은 두 남자가 맞딱뜨리게 되는 곳이 신흥종교 "구원의 손길"의 본사에서 이다.
잃어버린 아내들의 죽음에 깔려있는 이 신흥종교."구원의 손길"-
벌써 이름부터가 수상하지만, 왠지모르게 건전함이 넘치며
사이비 종교라 하기에는 너무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더더욱 수상하다.
사라진 아내들과 이 신흥종교 "구원의 손길"과의 관계를 파해쳐나가며,
두 주인공은 놀라운 사실을 맞딱뜨리게 된다...........................
.................................는 것이 대충의 줄거리인데, "놀라운 반전"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단순하게 떠올렸던 "아, 이렇지 않을까..."싶은 이야기가 후반부에는 그대로 이어져서,
나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뒷통수를 때려버리는 소설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반전이 얼마나 중요하랴.
전체적으로는 무척 재밌었고, 묘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에서 차갑고 냉정한 것은 약한 사람들을 홀려내는 신흥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독자로써는 인간적으로 다가와야하는 두 주인공 '쓰지'와 '에비하라'였다.
아무리 별거상황이라지만, 아내가 사라져도 눈도 꿈쩍하지 않는 차디찬 무관심의 제왕 쓰지.
아내의 죽음앞에서도 아내의 불륜사실에 더 열을 내는 마초형사 에비하라.
기묘하게도 이 모습이 마냥 밉지만은 않고, 인간적으로 공감할수도 있는 이유는
누구의 마음속에나 저런 차가운 면들이 다 있어서일까.
누구나 사소한 것에 더 열광하며, 무관심이 최상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소설에 있어 아쉬운 점은 소설의 분량상의 문제인데,
만약 이 소설이 더 짧은 단편이었다면 좀더 깔끔했을 것 같고, 더 긴 장편이었다면 좀더 심도 깊었을 성 싶은데,
약 300페이지의 준수한 페이지는 어딘지 아쉬워서 고개가 갸우뚱.
굳이 <벚꽃...>과 비교해보자면, <벚꽃...>쪽이 재미나 소설의 메시지가 더 깊이 와 닿는 것도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함께 사회를 좀먹는 행태에 대한 몹시도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장편으로 보기에는 뭔가 디테일이 모자른 것 같기도 하고, 단편으로 보기에는 얘기가 너무 광범위해지는
참으로 신기한 소설이다. 더 짧거나 더 길었다면 좋았을 것같은데...음....
 
그러나 얘기자체의 몰입감이 좋고, 마무리도 꽤 깔끔하다고 생각하고,
(분량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도 빨리 즐거움을 찾을수 있는 소설이며,
뭐라 딱히 말하기 뭣하지만, 뭔가 끌리는 구석이 있다. 이 작가-
이 책 자체는 뭔가 내 취향을 확실히 건드리는 한방은 부족했지만, 뭔가 살살 건드리고 있다.
뭔가 하나 확 다가오는게 있다면, 쑥 빠져들수 있을 것 같은 작가이다.
앞으로 나올 아비코 다케마루의 대표작이라는 <살육에 이르는 병>을 열렬히 기대해보자.
어쩌면 그 책을 읽고나서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광팬이 되어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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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19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육에 이르는 병은 19금이 될 거랍니다 ㅡㅡ;;;

Apple 2007-01-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소식은 들었는데, 그 점때문에 왠지 더 궁금해진다는..^^;;;켁..
도대체 뭐가 어떻길래 19금까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