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추리소설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최초의 작가는 아가사 크리스티였다.
(두번째는 역시 당연한 듯이 코난도일의 홈즈 시리즈였고..)
밀실 살인, 숨겨진 범행 도구, 발자국, 알리바이, 시간계산, 다잉 메세지...등등으로 나타나는 고전추리소설 특유의
미스테리한 "트릭"이 그 시절에는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었는지....
사실, 그런 트릭이나 추리소설에서 주는 정보는 굳이 알지 않아도 살아가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몰라도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것들은 알고보면 재밌다.
트릭과 사건 증명이 주는 두뇌 유희 놀이가 언제는 지겨웠던 적이 있었나.
(뭐든,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는 부적합한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밤이 새도록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범인을 찾아보고, 소설속의 트릭 증명에 뭔가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냥,
"아!!그렇구나!!!"하면서 거의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리소설에 매달려 밤이 다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묘한 향수와 낭만에 젖어들수 있는 소설이 나타났다.
 
시마다 쇼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몇번 발간이 된 적이 있고,
"신본격 추리소설"(일본 사람들은 참 단어만들기를 좋아한다.)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단어야 이렇게 애매모호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고전 추리소설을 현대로 다시 되살려낸 작품-
고전적인 트릭도 있으나 좀더 현대적인 취향에 맞춰진 작품군들이라고 정리해보면 될것이다.
조금 더 진화된 복고로의 회귀랄까.
굳이 일본에서 고전 미스테리를 부활시키고자 한 작가들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은 미스테리의 로망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지.
 
이 책 속에도 그런 사실을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는데, 일본은 추리계에서는 내노라 하는 위치를 확보한 나라이다.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추리소설만 해도,
그 기발함은 영미권 추리소설과 또다른 매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트릭보다는 반전과 고발을 무기 삼아 현실적인 스릴러에 가까워져버리는 사회파 소설들에 비해
신본격 추리소설은 좀더 로망에 가득차 있고, 비현실적이다.
현실의 범죄에는 트릭이 존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현실의 범죄는 우발적으로 일어나거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본의 아니게 미스테리하게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또 계획적으로 일어난다 해도 범행현장을 깨끗히 처리하고,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길지언정,
굳이 남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트릭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현실과는 유리된 트릭이라는 수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더더욱 재밌어지는 것이다.
마구 헝클어져 있던 퍼즐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카타르시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트릭 증명이 주는 매력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이다. 현실이 아니다.
그러니, 뭐하나 딱히 변하지도 않는 평범해서 지긋지긋한 일상을 잠시나마라도 잊어버리고,
단순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즐겨주시길.
 
신본격 추리소설의 포문을 열었던 "점성술 살인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이다.
증명을 다 듣고 나면 더 요구할 것도, 흠잡을 데도 전혀 없는 트릭에 즐거운 고민이 한방에 날라가버리고,
홈즈와 왓슨을 떠오르게 만드는 엉뚱한 미타라이와 성실한 이시카와 커플을 보는 것도 즐겁다.
(묘하게도 이 작가는 홈즈에 원한이라도 사묻혔는지 작품내에 홈즈를 엄청 씹어대고 있다.)
자, 즐거운 미스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여드시길.
"알고보면 간단한 이야기"라고 추리소설에서는 언제나 말하지만, 그거야 짓는 사람 입장에서야 그렇지.....
이 사건은 아주 미스테리하고, 궁금증을 마구 유발한다.
 
1. 삐뚤어진 탐미주의를 가진 화가가 엽기적인 생각을 하나 해낸다.
그는 연금술과 점성술에 의거해, 별자리가 모두 다른 자신의 여섯딸들을 이용하여,
이상적인 신체 부위를 절단하여 하나의 여인으로 만들어 완벽하게 이상적인 존재 '아조트'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삐뚤어진 이상을 실현하기도 전에,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다.
완벽한 밀실. 단서라 할만한 것은 미스테리하게 남겨진 눈위의 발자국.
 
2. 시집간 화가의 첫째딸 가즈에가 자택에서 살인당한 채 발견된다.
 
3. 아조트의 환상을 가지고 있던 화가가 죽었는데도, 아조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여섯딸의 신체가 각각 다른 지방에서 절단된 채 발견된다.
 
자, 범인은 누구이며, 범행동기는 무엇일까?
40년이 넘게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다던(물론 소설속에서-) 이 미스테리한 사건의 전말은?
정답은 책속에서 확인하시라....
 
 
p.s 1. 책속의 타이프체가 무척 거슬린다. 특히 회색으로 된 부분이 나왔을 때는 거의 좌절이었다.
(눈이 멀 것 같은 고통이란....)
읽기 적당한 글자체를 골라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모양은 예쁘나, 꽤 많은 내용을 읽기에 부적합한 글자체이다.
p.s 2.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이 트릭을 훔쳐갔다던데, 김전일은 띄엄띄엄 본적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전일"에서 이 트릭을 본 사람들에게 이건 무지막지한 테러 아닌가.
p.s 3.  엉뚱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교고쿠도 시리즈"의 교고쿠도의 출연을 바랬다.
소설의 반절정도가 사건의 해설인데, 교고쿠도가 해결사였더라면, 사건 전말을 다 듣고 난후,
점성술의 효시부터 시작해서 일장 연설을 하신 다음, '결코 발로 뛰지 않고' 방에 앉아서 완벽히 증명했을 것 같다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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