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달리아 2 밀리언셀러 클럽 54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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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마냥 따뜻할 것만 같은데, 이 거리에는 추악한 인간들이 득실거린다.
배신과 비정함으로 일관되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지배하는 40년대의 L.A의 풍경은 이렇단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약에 빠져있거나, 술에 빠져있거나, 여자를 사고 팔거나,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변태성욕을 숨기지도 않으며, 사람이 쉽고도 허망하게 죽어나간다.
이 축축한 타락한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선하지 않지만, 누구나 악하다.
경찰과 범죄자의 경계조차 무의미하게 폭력이 난무하고, 무언가에 홀린듯, 여자들은 길에서 남자에게 몸을 팔고,
길거리의 밑바닥 인생인 창녀들중에서 더러는 누구의 짓인지도 모르게 살해당한다.
"블랙 달리아"처럼....
 
블랙 달리아. 미친 타락녀.
배우가 되고자 보스턴에서 L.A로 건너와 무섭도록 몸을 팔았던 천박한 창녀 '엘리자베스 쇼트'.
몸이 두동강으로 잘리고,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찢겨진 채로 살해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유명해진 미국의 밑바닥 인생을 대표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블랙 달리아'라고 불렀다.
실제 사건이었던 '블랙 달리아'사건을 기초로 한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 <블랙달리아>는
추리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긴박감 넘치는 전개나 뒤통수 치는 반전을 내세운 소설은 아니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블랙 달리아의 시신처럼, 끔찍하게 일그러진 사회의 밑바닥 군상들을
낱낱히 해부하며 사람과 사람이 저지른 죄의 잔혹함에 치를 떨게 하는 소설이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경찰이 되려고 친구를 밀고한 비열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권투선수 출신의 경찰 버키 블라이처트부터,
은행털이범을 소탕하여 영웅이 되었으나, 부정부패를 일삼고 배신을 밥먹듯이 해서 경찰 반장까지 오르는
버키의 동료 리 블랜처드,
창녀로 살아왔던 전적이 있으나, 리를 만나고 나서 새로운 동화적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나약한 케이,
부족할것 없이 자라온 부잣집 딸이지만 함부로 몸을 굴려버리는 창녀 매들린,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서 주위에 별로 신임을 받지도 못하고, 여배우가 되고자 몸을 팔아 삶을 근근히 이어가지만,
그 매춘조차 자신의 내재된 나약함과 성애중독증을 변호하기 위한 하나의 핑계거리처럼 비춰지는
블랙 달리아 엘리자베스 쇼트.
타락한 경찰, 권력을 이용하여 원하는 바를 모두 가지려는 경찰,
아버지와 자는 딸, 시체를 사랑하는 변태성욕자, 여자를 잡아다가 남자들에게 팔아먹고 사는 뚜쟁이.
 
<블랙 달리아>속의 인물들은 모두 잔혹한 본성과 과거 누군가에게 받았던 상처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핑계로 거칠게도 일그러져있다.
이성을 놓아버릴 단 한개의 이유라도 있다면 금새도 무너져버릴 나약한 인물들.
사랑도 없고 정의도 없다. 그들에게 주어진 감정이란 어쩌면 생존본능 뿐인지도 모르겠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음해하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팔아버리는 창녀같은 인물들.
약점과 추악함이 내뱉는 독살맞은 매력으로 가득찬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이 소설은
끔찍하게도 아름답고, 나약하고, 서글프다.
 
그들 모두가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막상 안정된 인생이 자기 앞에 놓여 있을때
그들은 겁쟁이처럼 또다시 혼탁한 도시의 밑바닥으로 도망쳐 버리고 만다.
리가 '블랙 달리아'사건을 수사하다가 폭주해버리고 사라져버린 후에,
버키가 공포에 가득차 그제서야 케이와 사랑을 확인하고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게된 후에도,
또다시 피와 폭력과 정액이 난무하는 거리로 뛰쳐나와 끝없이 블랙 달리아를 찾아 헤매이며,
케이와의 결혼생활을 끝낼 핑계거리를 찾듯이.....
이미 범죄와 폭력에 물들여진 이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행복에 길들여지지 못하고,
그 지루한 안정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들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닌, 단지 '살아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추악함을 내세운 다른 소설들도 참 많지만, 이 소설이 유독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과거와 블랙 달리아 사건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열살에 어머니가 강간, 살해 당한후에 부랑아에 알콜중독자로 살아온 제임스 엘로이.
이 작품으로 그는 결국 미해결 사건으로 끝난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려 했을까.
버키가 '블랙 달리아'의 환영에 시달리며 집착하게 되었던 것처럼,
소설을 쓰는 내내, 그는 도저히 잊을수 없던 암울한 과거사를 다시 끄집어내어 어머니의 환영을 마주보고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엽기적인 살인보다 타락한 사람이 더욱 무서웠고 서글퍼졌던 소설.
"걸작"이라는 수식에 어울리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1%도 낙천적이지 않고 밝은 구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며 멋있는 척도 하지 않는 음울한 이 느와르는
독하고, 진하고,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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