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우물 1 펭귄클래식 2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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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것은 고독의 연속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하게 태어나 고독하게 죽는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덜 외롭게 살아갈수 있느냐는 그 고독을 얼마나 견딜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 같다.
단 몇분의 고독함도 견딜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고독해도 견딜수 있는 사람도 있다.
누가 더 강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질기냐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더 고독했던 여자가 하나 있다.
좋은 부모에, 아름다운 저택, 팽생 넉넉하게 써도 남을 재산을 가지고도 이 여자는 고독한 운명을 타고 났다.  이 여자는 한번도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남자의 영혼을 가지고 산다.
이름도 스티븐. 아들을 바라고 낳아놓았지만 딸이 태어나자 태명을 그대로 딸에게 지워준 부모가 문제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남장하기를 좋아하고, 예쁜 하녀를 짝사랑했던 이 소녀 스티븐은 그녀의 성정체성을 그녀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그녀를 향한 연민에 부족함없는 애정을 쏟아부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세상에 버려져버린다.
자신이 낳아놓고도 문득 문득 딸에게 섬뜩함을 느끼던 어머니와의 관계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도식적인 냉랭함만 감돌뿐이었고, 스티븐이 처음 여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것을 알아버린 어머니는 급기야는 자신의 딸에게 혐오감마저 표시하며 "네가 내 눈앞에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망언까지 해버린다.
스티븐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뒤쫓는 기이한 시선들에 지치고 어머니에게조차 거부당해버린 채, 홀로 살아남기를 시작한다. 남들과 다른 그녀가 이 세상에 꿋꿋이 존재하기 위해 그녀는 성공해야했고, 그래서 꽤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고, 곁에서는 어머니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주는 다정한 선생님도 있지만, 어딘가 늘 허전하고 버려진 느낌이 든다.
그러다 그녀를 만난다. 자신보다 열살이나 어린 소녀같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허우적댈 때는, 그 사랑이 족쇄가 되어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현실앞에 내동댕이쳐 질지는 전혀 알수 없었다. 유일한 평안이자 구원이었던 그 사랑은 점점 치명적인 고독과 혼란으로 치닫는다.

누구에게나 채워지지 않는 어느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이고 연인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나 자신이 될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언젠가는 깨닫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무형의 벽은 결국 완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의 멍울을 만들어내게 된다. 내가 네가 될수 없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쓸쓸한 진리이다.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을 온전히 알수 없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있어도 고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결국 혼자라는 사실만 남는 순간, 사랑이 주는 것도 아닌, 세상이 주는 것도 아닌 본질적인 고독이 찾아온다.
영문학사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고독의 우물>은 세상에 거부당한 채 태어난 한 여자의 이야기를 치명적인 사랑과 본질적인 고독이라는 주제 안에 담고 있는 소설이다.
"변종"이라 불륄수 밖에 없는 이 여자의 가련한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내심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바랬었는데, 소설은 페이지가 더해갈수록 지독하게 고독해지고 만다.
그것이 진리라 말하는 세상에 이해받을수 없는 사랑을 하면서 부숴지는 연인들의 마음이 고독하고,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면 혐오감을 느낄 사람들의 보수적이고 냉정한 마음이 고독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안에서의 존재감마저 휘둘리고 마는 스티븐의 마음이 고독하고,
스티븐이 사랑한 메리의 나약한 의존성이 고독하고,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면서도 애써 사랑을 져버려야하는 마음이 고독하다.
 
온통, 자신을 향한 거부와 혐오로 가득찬 것 같은 이 끔찍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그녀를 잃고 스티븐이 살아갈수 있을까.
한 평생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 험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갈수 있을까.
그 적막한 고독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그녀가 사랑할수 있을까.
그 사랑을 잃는 순간, 존재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만큼이나 끔찍하게 비극적인 실연이 또 있을까.
참으로 모르겠는 일이다. 그저 사람 하나 사랑할 뿐인데, 이렇게도 수많은 물음과 고민들이 생겨나는 것은....
소설은 모호하게 끝나버렸지만, 나는 그 참담한 끝을 알수 있을 것 같았다.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조여왔다. 나는 스티븐이기도 했고,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존재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본 적, 알 수 없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는 불안함에 치를 떨어본 적, 나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스티븐의 이야기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책을 덮으면서 거대한 폭풍같은 슬픔이 몰려왔던 것이리라.
 
<고독의 우물>은 평생 남장을 하고 살았다던 작가 레드클리프 홀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라던데, 1928년 출판되었던 당시에는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해를 받았던 소설이란다. 역시 발간 당시 금서였던 <모팽양>이 다소 엽기적이고 발랄했던 것에 비하면 <고독의 우물>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절망을 훨씬 더 농도깊게 다루고 있다. 물론 두 소설 다, 지금 보기에는 문제될만한 문란함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저 소설의 소재 자체만으로도 탄압을 받았던 시절이있다니 실제 그 시절의 소수자의 고통같은 것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한 문제이다. 최근 몇년간 읽어보았던 동성애 관련 소설들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절망적이어서, 재밌게 읽었음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단지 동성애뿐만이 아니라 어느 방면에서든지 자신이 다수의 평범함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것에 괴로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나, 존재의 고독함에 치를 떨어본 적이있는 사람이나,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본 적이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이자, 현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독한 조언자가 될 것이다.


올해 내가 누군가에게 단 한권의 책을 추천할수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겠다.
물론 동성애를 바라보는 것자체만으로도 죄악시하는 호모포비아들은 제외하고.
사랑과 세상에 상처받아 마음이 조각난 사람이 있다면, 또 이 책을 추천하겠다.
물론 이 지독한 소설에 치유력은 전혀 없다. 그저 적어도 시원하게 실컷 우시길 바란다.
 

p.s 혹시 이 소설을 읽고 재밌어서 이런 소설을 더 찾아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핑거 스미스>와 <모팽양>을 슬쩍 추천해본다. 세 소설 다 매력은 다르지만, 모두 푹 빠져들어 즐겁게 읽을수 있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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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9-21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즈님 추천받고 <핑거 스미스>샀어요!!ㅋㅋ 아직 정신없어서 읽진 못했는데,
엄청 기대중입니다. 아, 이 작품도 사야겠어요 약간은 블루한 분위기 작품, 좋아합니다ㅋㅋ 시즈님 엄청 우셨어요? 저도 책읽다 잘 우는데, 이거...ㅎㅎㅎ

Apple 2008-09-22 02:12   좋아요 0 | URL
우헤헤...핑거스미스는 분명 쥬베이님도 마음에 드실거예요.^^두껍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요.
이 작품도 굉장히 좋은데, 마냥 블루하지만은 않습니다. 뒤로 갈수록 그렇고요.^^; 저는 보면서 울지는 않았는데 보는 내내 참 기분이 외로워지더라고요.
일단은 무슨 이야기든 재밌는 소설이 좋아요.^^
 



종이를 사고 완전히 지쳐버려서 낑낑 집으로 올라오니 대문앞에 박스 두개가 놓여있었다.
하나는 내가 주문한 <고독의 우물> 2권과 배송비 붙는게 싫어서 함께 주문한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택배였는데,
이 정체모를 택배는 무엇인고?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노튼 3부작이라고 말한다는 책이 들어있었다.
박스를 보니 이름이랑 주소랑 나한테 보낸 건 맞는 것 같은데, 나는 시킨 적도 없고 이벤트 당첨된 것도 없는데;;
보낸 사람을 보니 오이뮤직이다!!!ㅇ.,ㅇ 내가 쓰지도 않는!!!!!
대체 뭐지? 누가 보낸거지?
이 정체불명의 책들은 뭐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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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9-12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시즈님 저거 이벤트 당첨 되신거 같은데요?
미디어2.0에서 고양이 시리즈 이벤트 했었어요^^
시즈님 축하해요!!! 우와.....부럽 부럽

쥬베이 2008-09-1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쿠션과 예쁜 침대보(?)가 인상적이에요^^
이쁘다ㅋㅋㅋ

Apple 2008-09-12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언제요?ㅇ.,ㅇ 내가 저런 이벤트 참여를 했었나;;; 어디에서 했던거예요? 알라딘?

쥬베이 2008-09-13 13:16   좋아요 0 | URL
아마 책을 사면 자동으로 응모되는 그런 이벤트였어요
혹시 미디오2.0책 사신거 없나요?^^

Apple 2008-09-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3월쯤 샀던 이언매큐언 소설 이벤트였을까요?-ㅁ-; 그 상품이 이제서야 와요?;;;; 6개월이 지났는데;;; 미디어 2.0책을 검색해보니 산책이 얼마 없는데..ㅇ.,ㅇ
 

 

 

 

 

표지부터 제목, 소재에 딱 끌려서 보자보자! 해놓고 살짝 의심스러웠던 것은
혹시나 오래전 소설이기 때문에 책이 지루하지나 않을까, 읽기 힘들까 하는 점이었는데 괜히 걱정했다. 글이 아주 쑥쑥 잘도 읽히며, 조금도 어려울 것 없고, 무려 스릴도 있고 흥미진진하기 까지 하다!!!
어제 자기전에 1권을 덮으면서, 배송되고 있는 2권을 왜 더 빨리 사지않았을까, 빨리 읽고 싶다!!!하고 초조해졌을 정도로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공감도 잘 된다.
영문학사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고는 하나, 지금와서 좀 더 확실히 하자면, 레즈비언 소설이라기 보다는 지금 태어났으면 트렌스젠더가 될 뻔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보면 (첫사랑이자 짝사랑을 제외하고는) 그녀 스티븐이 처음 경험하게 되는 사랑의 형태에 피가 끓는데, 아마도 이런 종류의 단물만 쪽족 빨리는 사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상당히 불쾌하게 만드나보다.
스티븐이 2권에서는 제대로된 사랑을 만나기를..-_ㅠ 불쌍해서 못봐주겠다.
사실 까놓고 말해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스티븐이 제대로된 사람을 만나 사랑하느냐 이지만, 제목이 그러하듯이, 사랑이야기에 국한되어있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남자로 태어나야했지만 여자로 태어난 이 여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에게 거부당한 셈인데,
아무리 부모가 감싸려고 해도, 언젠가는 세상에 나가 사람들에게 조롱받게 될지 모르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소설 내내 들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스릴마저 느껴지고, 아마 2권부터는 더 하게 될(?) 정체성에 대한 혼란 또한 흥미진진하다.

읽으면서 올해초에 읽었던 (역시 무척 재밌는) <모팽양>과 비교하게 되는데, 이 작품들이 태어난 시기를 따져보니 <모팽양>쪽이 약 100년가량 앞서있는 듯 싶다. <고독의 우물>은 영미문학상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니, 역시 프랑스 애들이 뭐든 빠르긴 빠르다.(?)
아무튼, 내일 집에 도착할 2권을 기다리며 입이 근질근질해서 남기는 두근두근 반절 감상♥
<모팽양>도 그랬지만 이 책도 큰 인기는 끌것같지 않은 책이지만, 적어도 묻히지는 않았으면 해서 나혼자라도 열렬히 홍보해야겠다.-_-; 재밌는 책이 묻혀버리는 건 아깝잖아...
그리고 출판사에서 좀 의욕적으로 홍보를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펭귄 클래식 왠지 개념작인것같은데...
 
이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고전적인 분위기의 소설들이 급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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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9-1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전에 Apple 님의 리뷰를 읽고 땡스투를 누르고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그리고 이 페이퍼를 읽었네요.

나혼자라도 열렬히 홍보해야겠다-->제가 기꺼이 응해드리겠어요. Apple님의 홍보에 이미 저는 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구요. 불끈!!

Apple 2008-09-16 17:08   좋아요 0 | URL
우헤헤..^^ 불끈!!!즐거운 독서되시길 바랍니다!!!불끈!!!+_+

쥬베이 2008-09-2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즈님이 이렇게 칭찬하시는 책, 별로 못봤는데......
걸작인가 봐요. 이참에 팽권클래식에 관심 좀 가져야 겠어요^^

Apple 2008-09-22 01:52   좋아요 0 | URL
아니예요~^^;;저는 마음에 쏙 드는 책이 있으면 극찬에 극찬을 한다는..=_=;
써놓고 너무 오버한거 아닌가 찔릴때도 많아요...
 
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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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기억하게 될까.
가끔은 아주 친했던 어떤 친구의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길에서 아주 잠깐 마주쳤던 사람은 또 선명하게 기억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기억이 더 중요한지는 분명한데, 기억은 얄밉게도 잊지 말아야할 부분에서 망각을 안겨주기도 한다. 순간 순간 부지불식간에 기억나는 기억들은 아주 행복했거나 아주 불행했거나 아주 독특했던 기억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라 기억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책을 읽다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보다. 아무것도 아닐 수많은 일상중의 하루, 지나치게 사소해서 왜 이런 걸 기억하고 있는지도 의문인 기억들이 일상을 치고 들어와서 알수 없는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그런 가보다.
 
케빈 브룩마이어의 <로라, 시티>는 기억을 매게로 한 환타지이다.
'시티'라고 불뤼우는 어느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거리를 걷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먹고, 자고, 사람을 만나고 또 사랑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를 낳을수 없다. 이대로라면 이 도시는 영원히 인구가 멈춰있는 미래가 없는 도시일 것이 뻔한데도, 이상하게도 이 도시에는 사람들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진짜 사람이 아닌 죽어있는 사람들이다.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 저마다 죽음을 거치는 의식(사막을 걷는다던가, 멀리서 빛이 비치는 통로를 본다던가-)을 통해 어느새 이 도시에 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생전 했던 것과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하고, 살아 생전 해보지 못했던 직업을 택해 살아가기도 한다. 누구도 이 도시를 어떻게 벗어나는지, 왜 이 도시에 오게 되었는지, 이 도시의 정체는 뭔지 알수 없다. 일종의 사후세계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형태는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기도하기 위해 교회를 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시티안의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도시의 정체를 모르듯이 왜 사람들이 사라져가는지도 알수 없어 남겨진 사람들은 의문을 품게 되는데, 그러던 중 남겨진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된다. 로라 버드.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로라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로라가 눈속에 남겨져 있다. 코카콜라에서 파견되어 남극의 수질을 조사하러 나간 생태학자 로라는 어느 순간 기지에 혼자 버려지게 되었다. 자신을 두고 떠난 두 동료에게서는 연락이 닿질 않고, 이 적막한 남극에서 어찌할바 모르다가 동료들을 찾아 기지를 나와 다른 기지로 옮기던 도중, 자신이 모르는 새에 세상이 발칵 뒤짚혀졌다는 것을 알게된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일명 블링크)로 전세계의 사람들이 죽어버리기 시작했고, 남극에 남겨진 다른 연구원들도 죽어버렸다. 동료들의 생사는 아직 알수 없지만, 그녀는 동료들을 찾아 나선다.

 
<로라, 시티>는 인류멸망에서 혼자 살아남은 여자 로라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남겨진 '시티'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며 이어지는 소설이다.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아프리카 공동체의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 죽었지만 아직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영혼은 살아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죽어버려 이제 더이상은 이승에 아무 족적을 남기지 못해 정말 죽어버린 사람으로 나뉜다고.
꽤 낭만적인 이야기이고, 훨씬 인간적인 사고방식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그 글 그대로의 설정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시티'가 아닌 다른 어디론가로 사라지는 사람들의 예정된 운명의식은 참 신선하고 신비롭다.
그리고 로라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더라.
길에서 스친 노숙자도 기억하고 있고, 옛날 친구도 기억하고 있으며, 첫사랑도 기억하고 있더라.
그리고 나는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지 떠올려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어쩌면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머릿속에서는 더 많은 기억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로 이어지고, 인류 멸망이니 죽음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도 어둡다는 생각보다는 따뜻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만, 술술 잘 읽히는데 비해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가 않는다. 너무나 안정되어 이야기의 굴곡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참신한데, 글을 이끌어나가는 재미는 갖추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예감할만한 결말이 무리없이 이어지고, 중반부까지 밝혀지는 이야기가 그대로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굴곡이 없어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요즘은 이렇게 인류 종말에 혼자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도시인들은 누구나 다 벗어버리고 혼자 시골같은데 처박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되는데, 어쩌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꾸는 백일몽인 것일까. 정작 혼자 내버려 지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최악의 공포처럼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게 아닐지.
사람이 손뻗으면 닿을데에 있는 곳에서 혼자이기를 바란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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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쥬베이 2008-09-0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산책에서 스밀라하고 비교해서 광고하길래, 지켜보고(?ㅋㅋ)있던 책이에요^^
인류멸망에서 홀로 살아남은 여자의 이야기.....
괜찮을거 같은데요^^ 시즈님말대로 요즘 이런 소재의 책이 정말 많이 나오네요...

Apple 2008-09-09 01:53   좋아요 0 | URL
관심가면 읽어보세요..^^ 저도 읽으면서 어쩐지 스밀라 생각도 났는데, 같은 출판사더라고요..^^;;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악은 악으로
에릭 나타프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8년 09월 26일에 저장
품절

연기로 그린 초상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7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08년 09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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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09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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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우물 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8년 09월 05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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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9-0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일전에 몰래와서 <고독의 우물> 혼자 검색해 보고 그랬어요ㅋㅋㅋ
팽권클래식 맘에 드는데, 다른 문학전집에 비하면 가격이 쌔요ㅜ.ㅜ

Apple 2008-09-09 01:54   좋아요 0 | URL
읽고 있는중인데 꽤 잘읽히고 재밌는것같아요..^^
가격이 쎈가요?;;;

쥬베이 2008-09-2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통곡>이 9월의 책에 들어갔어요^^
혹시 시즈님 실망하시면 어쩌나 살짝 걱정되는 걸요ㅋㅋㅋ

Apple 2008-09-22 01:52   좋아요 0 | URL
헤헤..다 읽었답니다.^^ 음...뭐랄까 2%부족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