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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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몇번 반복하다보면 이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익숙한 느낌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에드거 앨런 포"를 말장난처럼 꼬아놓은 이 필명부터가 무척 유쾌하다고 생각했고, 기괴한 범죄추리물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에서는 기괴하고 암울한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루든, 변태성욕자의 이야기를 다루든, 내게는 어느 정도는 유쾌한 느낌이 드는 것이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본 추리소설 몇권만 읽으면 바로 기억되는 에도가와 란포의 전단편집이 출간되었는데, 막상 손이 가지 않아 미뤄두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지금에 와서 이 작품을 똑같은 잣대에 놓고 평가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보같은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에도가와 란포는 전설급인것이다.
거의 한세기전에 출간된 작품이고, 추리소설중에서도 장르를 또다시 나눌수 있을 정도로 여러가지 소재를 다루게 된 지금의 추리소설의 기준에서 보기에는 이 단편들이 틀에 얽매인 탐정소설로 보일수도 있다. 또, 외국 추리소설의 애수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이 소설이 더 없이 가볍게만 느껴질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본 추리소설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읽어야하는 이유는, 이것이 일본 추리소설의 바이블이 되었고, 같은 탐정소설이라고는 해도 여러가지를 다뤄보려 노력한 흔적, 그가 후대 추리소설가들에게 미친 영향들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들에서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대한 시대적인 향수 역시 이 소설을 재밌게 읽을수 있는 포인트이다. 물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의 모습을 기억할리 없겠지만, 한때 정형화된 추리소설이라던가 수수께끼, 트릭에 열광해본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향수를 간직하고 이 작품을 즐길수 있을 것이다.
대단히 감명적이거나, 대단히 획기적이거나, 대단히 재밌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읽을수 있을 정도의 재미는 쏠쏠하다. 그 "쏠쏠하다"라는 표현이 이 단편집에게 딱 잘어울릴 것이다.

몇몇 단편들은 이전에 동서미스테리 북스에서 나왔던 "음울한 짐승"에서 보았던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나올 단편들 중에서도 몇몇개는 또 그렇겠지만, 다시 읽어도 꽤 재밌다.
개인적으로는 탐정소설로써의 에도가와 란포보다는 음울한 변태적 욕망을 다룬 에도가와 란포를 더 좋아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1편보다는 <기괴환상>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 3편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에도가와 란포의 "기괴환상"적인 작품들을 더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어딘지 퇴폐적이고도 기괴하고도 어딘지 변태스러우면서도 완전히 어둡지는 않은 기묘한 기분에 들게 만드는데, 아마도 여러 일본 추리소설에서 느껴지는 그 요기라던가 기괴한 퇴폐미같은 것이 이 에도가와 란포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하나 하나 읽어야 하기 때문에 단편집을 읽는 것은 장편소설을 읽는 것보다 조금 더 집중력과 시간할애를 요하는 독서같다. 또 그만큼 매작품이 완벽히 재밌는 작품으로 채워져있는 단편집도 흔치 않다.
그래도 단편집을 읽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두꺼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집도 참을성 있게, 소박하지만 쏠쏠한 재미를 느끼며 읽을수 있을 것 같다.
자, 이제 3편으로 넘어가보자.
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변태적 환상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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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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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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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리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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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강지영 외 지음, 김봉석 엮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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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악으로
에릭 나타프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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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이 소설에 주구장창 등장하는 조금은 생소한 "동종요법"이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치료한다는 것이 이 동종요법의 기본 모토인듯 싶은데, (이를테면, 벌에 쏘였으면 벌을 갈아만든 환약으로 치료하는 등의...) 어떤 면에서는 동양의 사상의학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아서, 자신에게 맞는 체질을 찾아보는 재미는 있을듯 싶다. 그러나, 별자리 점이라던가 혈액형별 성격같은 것처럼 애매모호하게 끼워맞출수 있는 것들을 완전히 믿는 것이 착각이듯이, 이 동종요법 역시 사람의 체질을 완전히 분석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현제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 듯 싶다.
 
추리, 스릴러 소설이니까, 일단은 연쇄살인을 터트리고 소설은 시작된다.
인간으로써 이렇게까지 할수 있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시체를 저 나름대로의 의미를 담고 장식해놓은 것 하며, 증거물을 전혀 남기지 않는 것 하며, 이 살인범 보통인간은 아닌 듯 싶다. 또한 남기고 간 환약들은 동종요법에서 사용되는 물질이며, 동종요법에서 말하는 피해자들의 체질과 딱맞는 것인데, 이 인간 동종요법에 대해서 빠삭한 것 같다.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 사건을 추리하는 형사의 추억의 물건들이 장소에 남겨지게 되는데, 그 증거물들은 점차 형사의 신경을 졸라오고, 결국은 범인으로 지목되기 까지 한다.
 
일단 이 책, 상당히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점을 밝혀두어야 겠다.
의학용어가 수도 없이 등장하는데, 이런 종류의 어떤 소설들에서는 그 의학정보조차도 신비롭고 재밌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 책은 동종요법 용어부터 기억하기 어렵고, 또 그 동종요법상의 체질이 어떤 식을 분류되는지 다 읽고나서도 잘 모르겠다.
알아들을수 없는 점은 내가 무식하려니 하고 패스하고라도, 사건의 전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아서 책을 다 덮고나서 솔직히 짜증이 났다. 살인동기가 너무나 터무니 없어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아무 이유 없이 죽이고 싶어졌다"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설득력이 있었을까.
일단은 고작 세살때 일어난 일을 사람이 정확하게 기억할수 있다는 자체가 황당해서 헛웃음만 난다. 또 살인자의 "치료를 위해 살인한다"라는 개념 자체가 대체 어떤 개똥철학에서 나온 개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연쇄살인마들은 저마다의 말도 안되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너무 잰채해서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정신이 돈 미친놈이었다면 나았을 듯.)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본이 원래 그래서 인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적이며 관념적인 소설속의 대화방식도 읽히지 않는데 한 몫하며, 또한 현실성도 떨어진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추리소설속에서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탐정 역활을 하는 주인공들끼리 눈맞아 사랑에 빠지는 것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여러모로 책을 읽으면서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요즘 프랑스 스릴러 소설 재밌다.
지적인 오만을 흩뿌리지도 않고, 적당히 철학적이며,  재미도 있으며, 속도감도 갖추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프랑스 스릴러 소설들을 꽤 즐겁게 읽고 있는데도, 그런 책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사람마다 취향차이가 있어서, 나처럼 이 책을 헛웃음만 흘리며 보게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가장 쓸데없는 독서라고 생각되는 한권의 소설이었다.
재미도 없고, 잘 읽히지도 않고, 동기부터가 황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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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9-2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이건 어찌하나 별 한개를 받았지ㅋㅋㅋ
저는 이런 책이 더 읽고 싶어요. 어쩜 별 하나를 받았을까 궁금해서요

Apple 2008-09-29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잘 읽히지 않아서 좀 짜증나기도 했고,
결과를 확인하니 더 짜증나기도 했고..=_=;;;
 
연기로 그린 초상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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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화 한편 본것같다. 아주 분위기 있고, 매력적인데다가 아스라한 애수도 함께 있는.
빌 벨린저의 <이와 손톱>을 읽을 땐,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떠올렸었는데, 두번째로 접하는 빌 벨린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을 읽을 땐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를 떠올렸다. 윌리엄 아이리쉬, 아이라 레빈, 빌 벨린저 세 작가는 내게 아스라한 안개속의 로맨스같은 흑백의 애수를 느끼게 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소설속의 배경들이 꼭 내가 어린 시절 보아왔던 흑백영화속의 배경들과 일치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사랑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르리라.
아무튼 두번째로 읽는 빌 벨린저의 소설은 <이와 손톱>만큼이나 대만족했던 소설이다.
 
크래시라는 이름의 소녀는 어딘가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가난하고 남루하고 촌스러운 일상, 그리고 그 속에서 아둥바둥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초라한 자기자신에게서.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여자의 신분상승욕구를 현실화 시켜줄수 있는 것은 미인계뿐이었다.
다행히 크래시는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짜같을 정도로. 그리고 다행히도 그녀는 영리했다. 간단히 말해 몸을 팔아 자신의 야망을 채우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세상에 널린 나쁜 여자들처럼 천박한 방법은 쓰지 않으며, 어렵게 모은 재산을 허세로 쉽게 탕진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신문사 편집장을 유혹하고, 광고회사 부사장을 유혹하고, 결국에는 거대은행 오너까지 유혹한다. 처음부터 거대했던 야망, 그녀에게는 사랑보다 놓칠수 없었던 지배욕-
차근 차근 계단을 올라가듯이 그녀는 남자를 밟고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대니 에이프릴이 크래시를 쫓는다.
물려받은 약간의 재산으로 수금대행 회사를 사들인 대니는 장부를 정리하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10년전 딱 한번 보았던 얼굴인데 잊혀지지 않는 얼굴-그저 한번 스쳤는데도 사랑에 빠져버렸던 그 얼굴이 거기 있었다. 대니는 그녀를 쫓는다. 그녀를 만나서 무엇을 해야할지는 자신도 모른다.다만, 그녀의 일생을 쫓으며 대니는 순수한 가면을 쓴 악녀 크래시에게 더더욱 빠져든다.

소설에 등장하는 팜므파탈 크래시가 야망과 지배욕을 충족시키는 행동은 그야말로 흔해빠졌다.
흔해빠진 거미줄인데도, 남자들은 어김없이 거기에 말려든다. 크래시는 미녀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미와 순수한 순종 앞에서는 어떤 똑똑한 남자도 바보가 되는가보다.
이런 수법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는데도 남자들은 또 빠져드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팜므파탈 크래시는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시궁창같은 어린 시절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평생 써도 남아돌 재산을 가진 부유하고 아름다운 미망인이 되어서, 그녀는 모든 것에 만족했을까. 딱 한번,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애매모호한 연인을 떠올리며 조금은 후회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녀에게 가정적인 안정감을 주었던 첫번째 남편을 떠올리며 조금은 후회하지 않았을까.
 
소설을 보며 크래시에게 필요했던 것은 여타 다른 여자들이 원하듯 평생을 함께 늙어갈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대체물로써의 안정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환상같은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품지 않는 냉정한 그녀에게 그 안정감은 현실적인 부의 축척이었을 것이다.
정작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절대적인 안정감, 평생 불안하지 않을수 있는 안정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만족스러워보이지 않는다.
그 혐오스러운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그녀는 반평생을 가짜로 살아왔다.
크래시에서 캐서린, 캔디스-이름을 바꿀 때마다 그 이름으로 살았던 시절을 완벽히 덮어버리고 새로운 먹이를 찾는다.
주인공 대니 역시 크래시에게 다가설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숨기고 새로운 가짜가 되어 다가선다. 가짜와 가짜가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그 가짜 사랑은 그들의 삶을 바꿔놓았지만 그들은 후회하지 않는다. 서로 가면을 쓴 채 잠깐 만나 춤을 추다가 헤어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이 작품에서 사랑이라고 말할 것은 그것밖에 없지만, 어딘지 로맨틱한 애수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고, 책장을 거듭할 때마다 나 역시 이 우아한 악녀 크래시의 매력에 허우적댔었다.

 
<이와 손톱>이 그랬듯이, 역시 후회없는 선택이라고 말할수 있는 소설이었고, 앞으로도 출간될 빌 벨린저의 소설들은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요즘 소설에서는 느끼기 힘든, 쓸쓸하고 우아한 뭔가가 분명 있다.
또다른 윌리엄 아이리쉬-코넬 울리치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며 희뿌연 안개같은 흑백영화를 보듯이.
어떤 내용이든 이런 분위기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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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9-24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시대의 미국 추리소설들이 좀 더 소개되었으면 좋겠어요. 빌 벨린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은 이 전에 읽었던 빌 벨린저보다는 별로였지만(덜 코넬울리치스러웠지만), 재미있었죠? ^^

Apple 2008-09-24 17:31   좋아요 0 | URL
흐흐..그럼요...아 분위기 너무 좋아요~히히^^

쥬베이 2008-09-24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이라니 기대되는데요^^
줄거리를 보니까 재미있을거 같아요

Apple 2008-09-25 00:09   좋아요 0 | URL
네네~재밌어요..^^쥬베이님도 기회 닿으면 보시어요~호호
 
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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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반전이 있다는 소설들을 보게되면 "절대 속아주지 않을테다!"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결국은 거의 대부분 작가에게 폐배하고 만다. 좀 치사하다 싶을 정도로 반전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소설들도 많지만,  반전을 때려맞추는 것보다 반전에 속는 기분이 더 좋은 것은 왜일까?
작가가 자신있게 걸어온 게임에서 독자는 자신이 작가와 같은 꼼꼼한 추리력을 가진 사람이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독자는 작가가 예상할수 없었던 반전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 책을 읽는 목적이 작가와의 게임에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한때 반전 쎈 것들이 주루룩 나오다가 최근에는 그 기세가 조금 줄어들었는데, (나올만한게 다 나왔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독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책이 바로 이 "통곡"이 되겠다. 물론 반전자체가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반전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좀 웃기는 일이지만, 그런 소설로 알고 산 이상 역시 예상한 만큼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반전이 나오지 않는다면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수 없다.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 반쯤 읽고 어느 정도의 정보가 주어지니 반전을 비롯한 이야기를 눈치채고 말았다. 충격적인 반전이라 보기에는 이런 식의 서술형 반전을 가진 소설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려버렸나보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공원에 앉아있는 한 남자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공원에서 한 남자가 앉아서 세상을 비관하기 시작한다.그리고 한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한창 여름, 더운 날씨에도 평화롭고 느긋하기 그지 없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해 드릴게요."
그 기도에 얼떨결에 응해버리고 말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마음이 몹시 평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분명, 그것이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비종교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기도와 여자의 평온한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 남자는 신흥종교의 세계에 빠져들고, 이상하게도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한 여아유괴사건이 터진다. 5,6세정도의 소녀의 시체가 발가벗겨진 채 발견되고, 경찰은 아무 단서도 잡지 못해 전전긍긍. 두 이야기의 접점은 분명히 있다. 두가지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 제목의 "통곡"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수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소설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우타노 쇼코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다. 현실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될수 있는 범죄를 다룬 소설들이기 때문이다.  "벚꽃.."에서는 피라미드 사기조직에 대한 이야기, "화차"에서는 카드빚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내가 두 소설 다 재밌게 보았던 것은 단지 이 추리소설들에 놀라운 반전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대인들이 잘 당할수 있는 사기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그들이 속아넘어가는 경위가 너무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평소 똑똑한 척 살면서도 자칫 멍해지는 순간 파고들수 있는 이 현실의 범죄의 이야기들은 내가 알고 넘어가야할 상식이기도 했을 것이고, 또 이해할수 없었던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해할수 있는 부분에서 무척 흥미로움을 느꼈었다.
분명 이런 소설을 쓰기위해서, 작가는 이 사기, 사이비 범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소설이 좀 시시하게 생각되었던 이유는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한 반전이 있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소설속의 사이비 종교의 형태라던가 수법이 사이비종교를 들어가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알수 있을 법한 정보로 채워져 있어서,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할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마쓰모토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사실 그닥 와닿지도 않고, 그 과정도 생각보다 허술해서 작품 자체의 꼼꼼함을 의심케 만든다. 아니, 오히려 내가 현실 범죄의 치밀함을 다룬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도 납득하면서 봤을지도 모르겠다. 소재에 비해서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조금 가볍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반전같은 건 없어도 좋으니 이야기자체를 더 꼼꼼하게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소설이다. (속아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제 충격적인 반전같은 건 수두룩하게 많이 나오지 않았나. 오히려 그 막판 반전때문에 잘나가던 이야기가 가벼워지는 소설들도 이미 충분이 많다.)
그래도 책은 두께에 비해 꽤 술술 읽히는 편이라(글자가 크고 빈공간이 많아서 두꺼워진 듯 싶다.) 그럭저럭 무난하게 즐겁게 읽을수는 있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것인지.
하지만 마지막장을 넘기자 역자후기가 나오는 순간 "이게 끝이야?"하는 김빠지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니, 작가가 독자를 놀래키기 위해 꼼수부리지 않는다고 다인것은 아닌 것 같다.
딱히 재미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재미없는 것도 아닌 조금 밋밋한 소설이었던 것같아서 아쉽다.
 
p.s. 아무리 포장보다는 내용물이 중요하다고 해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의 표지들은 차마 봐줄수가 없을 정도로 짜증났는데, (표지때문에 소설이 더 재미없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통곡>표지는 무난하니 괜찮았다.
전에는 표지 디자이너가 대체 누구이길래 감각이 이런지 심각하게 생각해본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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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9-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표지도 중요하고, 내용물도 중요해요. 세상에 내용물 좋은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내용물도 좋고, 표지도 좋고, 분권도 아닌 책들을 살래요. ㅎㅎ

이 책 보관함에 들어있었는데, 뺄래요. 애플님이 좋아하시는 소설을 제가 100%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90% 정도의 높은 싱크로) 애플님이 싫어하는 포인트는 저랑 99.9% 싱크에요. 분명 저도 싫어하지 싶으네요- ^^ 책 사게 만드는 리뷰보다(요런 리뷰는 책 사고 불만이면 왠지 리뷰어가 원망스러워진다는;;) , 사려던 책 안 사게 만드는 리뷰가 더 고마워요-

Apple 2008-09-23 16:06   좋아요 0 | URL
푸헷..90%싱크로라니..사랑고백만큼이나 두근거리는 말인걸요?^^흐흐..
여러모로 아쉽더라고요. 분명히 재미없는건 아닌데, 어딘가 좀 맥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30%쯤 부족한것같어요.

쥬베이 2008-09-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쯤 부족하면, 심하게 부족한건데ㅋㅋㅋ
왠지 미안한 맘이 드네요ㅜ.ㅜ

Apple 2008-09-25 00:10   좋아요 0 | URL
아니예요.^^ 누구 추천받고 산게 아니라 그냥 끌려서 산거라서..헤헤
쥬베이님이 쓴 소설도 아닌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