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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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반전이 있다는 소설들을 보게되면 "절대 속아주지 않을테다!"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결국은 거의 대부분 작가에게 폐배하고 만다. 좀 치사하다 싶을 정도로 반전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소설들도 많지만,  반전을 때려맞추는 것보다 반전에 속는 기분이 더 좋은 것은 왜일까?
작가가 자신있게 걸어온 게임에서 독자는 자신이 작가와 같은 꼼꼼한 추리력을 가진 사람이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독자는 작가가 예상할수 없었던 반전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 책을 읽는 목적이 작가와의 게임에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한때 반전 쎈 것들이 주루룩 나오다가 최근에는 그 기세가 조금 줄어들었는데, (나올만한게 다 나왔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독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책이 바로 이 "통곡"이 되겠다. 물론 반전자체가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반전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좀 웃기는 일이지만, 그런 소설로 알고 산 이상 역시 예상한 만큼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반전이 나오지 않는다면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수 없다.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 반쯤 읽고 어느 정도의 정보가 주어지니 반전을 비롯한 이야기를 눈치채고 말았다. 충격적인 반전이라 보기에는 이런 식의 서술형 반전을 가진 소설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려버렸나보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공원에 앉아있는 한 남자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공원에서 한 남자가 앉아서 세상을 비관하기 시작한다.그리고 한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한창 여름, 더운 날씨에도 평화롭고 느긋하기 그지 없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해 드릴게요."
그 기도에 얼떨결에 응해버리고 말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마음이 몹시 평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분명, 그것이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비종교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기도와 여자의 평온한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 남자는 신흥종교의 세계에 빠져들고, 이상하게도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한 여아유괴사건이 터진다. 5,6세정도의 소녀의 시체가 발가벗겨진 채 발견되고, 경찰은 아무 단서도 잡지 못해 전전긍긍. 두 이야기의 접점은 분명히 있다. 두가지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 제목의 "통곡"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을수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소설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우타노 쇼코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였다. 현실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될수 있는 범죄를 다룬 소설들이기 때문이다.  "벚꽃.."에서는 피라미드 사기조직에 대한 이야기, "화차"에서는 카드빚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내가 두 소설 다 재밌게 보았던 것은 단지 이 추리소설들에 놀라운 반전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현대인들이 잘 당할수 있는 사기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그들이 속아넘어가는 경위가 너무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평소 똑똑한 척 살면서도 자칫 멍해지는 순간 파고들수 있는 이 현실의 범죄의 이야기들은 내가 알고 넘어가야할 상식이기도 했을 것이고, 또 이해할수 없었던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해할수 있는 부분에서 무척 흥미로움을 느꼈었다.
분명 이런 소설을 쓰기위해서, 작가는 이 사기, 사이비 범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소설이 좀 시시하게 생각되었던 이유는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한 반전이 있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소설속의 사이비 종교의 형태라던가 수법이 사이비종교를 들어가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알수 있을 법한 정보로 채워져 있어서,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할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마쓰모토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사실 그닥 와닿지도 않고, 그 과정도 생각보다 허술해서 작품 자체의 꼼꼼함을 의심케 만든다. 아니, 오히려 내가 현실 범죄의 치밀함을 다룬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도 납득하면서 봤을지도 모르겠다. 소재에 비해서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조금 가볍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반전같은 건 없어도 좋으니 이야기자체를 더 꼼꼼하게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소설이다. (속아주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제 충격적인 반전같은 건 수두룩하게 많이 나오지 않았나. 오히려 그 막판 반전때문에 잘나가던 이야기가 가벼워지는 소설들도 이미 충분이 많다.)
그래도 책은 두께에 비해 꽤 술술 읽히는 편이라(글자가 크고 빈공간이 많아서 두꺼워진 듯 싶다.) 그럭저럭 무난하게 즐겁게 읽을수는 있었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것인지.
하지만 마지막장을 넘기자 역자후기가 나오는 순간 "이게 끝이야?"하는 김빠지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니, 작가가 독자를 놀래키기 위해 꼼수부리지 않는다고 다인것은 아닌 것 같다.
딱히 재미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재미없는 것도 아닌 조금 밋밋한 소설이었던 것같아서 아쉽다.
 
p.s. 아무리 포장보다는 내용물이 중요하다고 해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의 표지들은 차마 봐줄수가 없을 정도로 짜증났는데, (표지때문에 소설이 더 재미없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통곡>표지는 무난하니 괜찮았다.
전에는 표지 디자이너가 대체 누구이길래 감각이 이런지 심각하게 생각해본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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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9-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표지도 중요하고, 내용물도 중요해요. 세상에 내용물 좋은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내용물도 좋고, 표지도 좋고, 분권도 아닌 책들을 살래요. ㅎㅎ

이 책 보관함에 들어있었는데, 뺄래요. 애플님이 좋아하시는 소설을 제가 100%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90% 정도의 높은 싱크로) 애플님이 싫어하는 포인트는 저랑 99.9% 싱크에요. 분명 저도 싫어하지 싶으네요- ^^ 책 사게 만드는 리뷰보다(요런 리뷰는 책 사고 불만이면 왠지 리뷰어가 원망스러워진다는;;) , 사려던 책 안 사게 만드는 리뷰가 더 고마워요-

Apple 2008-09-23 16:06   좋아요 0 | URL
푸헷..90%싱크로라니..사랑고백만큼이나 두근거리는 말인걸요?^^흐흐..
여러모로 아쉽더라고요. 분명히 재미없는건 아닌데, 어딘가 좀 맥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30%쯤 부족한것같어요.

쥬베이 2008-09-2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쯤 부족하면, 심하게 부족한건데ㅋㅋㅋ
왠지 미안한 맘이 드네요ㅜ.ㅜ

Apple 2008-09-25 00:10   좋아요 0 | URL
아니예요.^^ 누구 추천받고 산게 아니라 그냥 끌려서 산거라서..헤헤
쥬베이님이 쓴 소설도 아닌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