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Medusa Collection 3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이라 레빈의 다른 소설들의 소식을.
우연히 (조금 뒤늦게)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부랴부랴 사지르기 시작해서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읽었다. "로즈메리의 아기"와 "죽음의 키스"로 나를 사로잡아 버린 아이라 레빈의 1976년도 작이다.
소재면에서는 살짝 뒤쳐지는 감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저 세월 탓이리라.
만약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읽었다면 굉장히 충격적인 작품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의학소설이나 SF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오히려 이런 소재를 거장답게 조리있고 매력적으로 잘 풀어가는 아이라 레빈의 필력에 다시금 감탄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말은 해도, 사실 냉정히 생각해 이런 일이 세상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은 역시나 조금 무서운 일이 될 것이다.

이야기는 브라질에서 시작된다. 브라질의 어느 고급 일식 레스토랑에 모인 남자들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 한명 한명이 요원이 되어서, 세계로 퍼져있는 어느 특정 남자들을 죽이기로 한다. 그들은 거의 공무원직에 속한 사람들이며, 65세 가량 된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이 94명이나 된다. 65세가량의 공무원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별 다를것이 없는, 게다가 특별히 누군가에게 살해될 만큼 악의적인 사람들도 아닌 그저 성실하게 살아왔던 공무원들이 왜 이제서야 살해당해야 하는 것일까.
배후에는 나치가 관련되어있다. 이 프로젝트를 조종하는 사람은 아우슈비츠의 악마의 의사 멩겔레. 위대한 아리아 제국의 재건설을 위한 프로젝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고작 65세의 아무것도 아닌 공무원을 살해하는 것이 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치친위대 대원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멩겔레만의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이들의 대화를 녹취하는데 성공한 한 대학생이 있다. 그는 이 소름끼치는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듣고, 일명 "나치 사냥꾼"이라고 불뤼우는 유태인 리베르만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에게 걸려온 황당한 제보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리베르만이 긴가민가 하는 사이, 청년이 살해당하고, 이제 노인이 되어 나치를 잡아들이기도 힘겨운 리베르만에게는 일생일대의 모험이 찾아든다.

미리 말했듯이 이 책은 나치와 히틀러의 신봉자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실존했던 인물들을 소설속에 투입해서 사실감을 더하고 있다. 한참 읽으면서 대부분 노인들밖에 등장하지 않는 이 소설에 소년이 언제 등장하나 궁금해했었는데, 책을 반이상 읽고 나야 왜 브라질에서 소년이 왔는지 알게되었다.
만약에 요즘같은 세상에 히틀러가 다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예전같은 참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를 "신봉"까지 하기에는 너무나 영악하고, 정보는 넘쳐나고 있으며, 잠시 판단력이 흐려지더라도 사람들은 금새 그 "신봉"에도 질려버리고 만다. 더이상 순진하고 무지몽매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집단 광기에서는 조금 벗어날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히틀러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그의 지나친 자신만만함자체가 웃음거리에 지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970년도에 이런 색다른 소재의 책이 나왔다는 것은 분명 센세이션했을 것이다. 물론 악마주의를 다룬 "로즈메리의 아기"라던가 나쁜 남자의 끊임없는 나쁜 짓을 다룬 "죽음의 키스"역시 그랬지만.
영화로 본 "슬리버"라던가 "스텝포드 와이프"같은 경우에도 고전에서는 보기힘든 색다른 소재들이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슬리버"나 "스텝포드 아이프"도 소설로 출간되었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있다.) 독특한 소재 선택과 거침없는 흡입력, 매력적인 캐릭터설정같은 것에서 아이라 레빈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맛볼수 있다.
"브라질에서 온 소년"은 전에 읽었던 "로즈메리의 아기"라던가 "죽음의 키스"보다는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지만,그래도 역시 여타 시시한 스릴러 소설들과는 격이 다르다.

이것이 고전의 힘, 거장의 힘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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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8년 12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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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의 야회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7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2008년 12월 12일에 저장
품절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아이라 레빈 지음, 김효설 옮김 / 시작 / 2008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12월 0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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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리 홀 원작,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박선영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탄광폐쇄와 구조조정으로 여러모로 분위기가 흉흉한 탄광촌 마을에서 꿈이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환상이며 도저히 용납못할 사치이다.
아버지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없는 돈을 쪼개고 쪼개 아들을 권투학원에 보낸다.
지지않는 사내가 되기를 바라면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남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워낙 없는 살림이다보니,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산층들에 대한 반감은 자라나고, 그 안에서 피해의식이 자라나는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폐배의식에 찌들어 승리에 쌍심지를 치켜뜬 아들들을 길러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 재키는 어린 아들 빌리 엘리어트를 걱정한다.
승리에 관심도 없고, 권투에도 관심없어 보이는 어리고 나약한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연민과 한심함을 오가면서 어머니도 없이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단지 꿈을 꾸고 싶을 따름인데, 마주보고 어디를 때릴까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하늘을 날로 싶을 따름인데, 발레리노가 되고싶은 빌리 엘리어트의 꿈은 이 가난하고 여유없는 탄광촌 마을에서는 코웃음 칠만한 사치가 되어버린다.

영화로 미리보았던 <빌리 엘리어트>를 원작소설로 보니 영화를 보았던 때의 나이와 소설을 보았을 때의 나이가 차이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소설에서 더 극대화 되었기 때문인지, 빌리의 시선으로 보았던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빌리의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의 감정을 더 절실하게 느낄수가 있었다.
아들이 재능이 있다는데, 도무지 뒷받침해줄만한 능력이 없었던 가난한 아버지는 끝내 죽은 아내의 피아노를 장작처럼 쪼개서, 마지막 땔감으로 쓰면서 울음을 터트린다. 더이상 자식들에게 해줄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무형의 마음에서 온다면, 아버지의 사랑은 좀더 물질적인데에서 온다.
씁쓸한 얘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래왔던 것 같다.
그래서 좀더 마음을 써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해줄 만한게 없을 때, 암담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울음을 터트린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이 찡했던 부분은 빌리가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도 아니었고, 구박하고 부려먹기만 하던 형이 빌리를 위해 나선 것도 아닌, 그저 그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소설 <빌리 엘리어트>는 다중일인칭이라는 구조를 사용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화자가 되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조금 얄미워보였던 빌리의 형도 충분히 이해받을만하게 되어있다.
그냥 소설일 뿐인데, 요즘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 자신을 소진해가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들이 자꾸만 걱정된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그러할 테지만, 또 자식을 키워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삶의 기쁨이 되는지도 알지만, 부모가 아들의 꿈을 찾아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소설속의 아버지가 빌리를 로열 왕립 발레학교를 보내놓고 나서 얼마나 많은 석탄을 캤을까,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 짠해졌다.

영화만큼이나 재밌는 소설이었지만,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종종 소설이 영화화 되는 경우가 많아서, 두개를 함께 보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먼저보고 소설을 보니, 상상력에 한계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미 알고 있고, 나중에 어떻게 날아오르게 될지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 이상의 상상보다는 그저 영화에 충실한 이미지로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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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공모전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직업을 찾아야하는 사람들은 그 공모전이라는 시스템이 자신을 얼마나 많이 소모시키며 성장시키는지를 절실하게 느낀다. 공모전이라는 게 떨어지다, 떨어지다 못해 나중에는 히스테리까지 생기게 된다는 것도.
하긴 어딘가에 속해야 돈벌이를 하고 살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취업에 대한 고충은 있겠지만, 공모전이라는 시스템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재능을 단칼에 평가받을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냉정한 시스템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공모전을 통해 당선되는 부류는 거의 신경이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더 예민한 예술가인지라,자신의 작품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일에 더더욱 예민할수 밖에 없다.

이 책 "도착의 론도"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지나쳐왔던 공모전들을 떠올리며 은밀히 작가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일본 추리 소설계의 권위있는 공모전, 에도가와 란포상이나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모두에 떨어졌던 작품이란다. 어쩌면 오리하라 이치는 이 작품 이전에도 더 많은 공모전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작품이 태어나게 된 것에는 이 작가 오리하라 이치가 그 공모전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을 재능으로 이끌어낸 작가에게서 놀라운 낙천주의를 발견했다면 착각인 걸까?
게다가 에도가와 란포상을 위한 소설을 써내려 가면서, 뻔뻔하게도 책속의 주인공이 에도가와 란포상에서 고배를 마시는 장면을 집어넣은 작가의 재치와 센스에 웃을수 밖에 없다.
비록 공모전에서도 떨어지고, 옆나라 대한민국에는 20년이나 늦게 소개된 작품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 이 책은 몹시 "익사이팅"한 소설이었고, 책장을 펼치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멈추지 않고 보았던 소설이다.

소설가 지망생 야마모토 야스오는 월간 추리상에 도전하기 위해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다니던 출판사도 그만두었고, 모아놓았던 돈은 떨어져가는데,
시골에 사는 어머니는 다 때려치우고 내려와서 농사나 지으라고 성화이다.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소설을 완성시킨 야마모토 야스오는 친구 기도에게 소설을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달라고 부탁하게 되는데, 친구 기도는 밤을 새워 타이핑한 복사본과 원고을 가져오던 중 지하철에 놓고 내리는 실수를 해버리고 만다.
이에 낙심한 야스오는 기도의 사과도 뒤로한 채 절망에 빠져있다가 급하게 다시 원고를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또 한편에서 어떤 남자가 기도가 지하철에 놓고 내린 원고를 발견한다.
찾아주려다가 호기심에 원고를 읽게 된 남자는 상금과 인세에 눈이 멀어 이 소설을 자기가 가로채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고, 당선이 되면 방해물이 될 "야마모토 야스오"라는 원작자를 제거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인 사람은 진짜 야마모토 야스오가 아니라, 원고를 운반하고 있었던 친구 기도였다.
이 사실을 알게된 남자는 다시한번 야마모토 야스오를 제거하려 하고, 자신의 작품의 도작이 월간추리상을 받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야마모토 야스오는 "시라토리 쇼"라는 멋진 필명으로 데뷔하게된 이 도작작가에게 살의를 품게 된다.

요즘에는 서술형 트릭으로 독자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리는 작품들이 꽤 많이 등장해서, 1989년에 출간된 이 책의 트릭이 대단할 정도로 기발하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이 재기넘치는 반전의 연속들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나는 반정도는 예상하면서 보고 있었지만, 그외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도 많이 등장해서, 소설이 결말로 치닫을 때까지 속아주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웃음이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거울속에 거울이 또 있고, 그 거울속에 또 거울이 있는 것처럼 예상밖의 사건이 이어져서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긴장을 놓칠수 없었고, 희한하게도 살인이라던가 도작이라던가 하는 끔찍한 행위들이 반복되는데도 무척 유쾌해졌다. 작가가 독자에게 걸어오는 이 게임이 그렇게나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
도작과 도착이 반복해서 등장해 혼란을 일으키는 말장난처럼 이 소설을 단지 "즐거운 소설"라고 말하기에는 표현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 같고, 한바탕 장난을 치고 났을 때의 희열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하고 싶다.
책소개에 누군가 평해놓은 글귀처럼 이 소설은 정말 "쿨하다!". 그리고 화끈하고, 유쾌하고, 멋지다.
세상에는 트릭이 전부인 소설이 있고, 또 트릭을 알고봐도 재밌는 소설이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후자쪽였던 것 같다.
이제 재밌다고 유명한 추리소설들은 왠만큼 읽었구나...싶어서 최근에 나온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일본 추리소설에서만 느낄수 있는 장난스러운 트릭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한 것 같다.

무엇보다  작가 후기 역시 소설의 일부분인 것처럼 이어놓은 작가의 센스에 반해버렸고,
예상밖으로 너무나 재밌게 봐서 다음 시리즈 또한 열렬히 기다리면서 보게될 것 같다.
(나는 가벼운 느낌의 표지를 가진 책들에 약간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표지들의 소설은 별로 기대하게 되지 않는데, 예상과 달리 무척 재밌는 경우에는 그런 표지를 영광으로 여긴다!)
얼핏 책뒤 소개를 보고나니 나머지 시리즈들에도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독특한 생각을 하는 작가같고, 텍스트에서만 느낄수 있는 즐거움을 잘 표현해낼수 있는 작가같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올해 읽은 일본 추리소설 중 최고였다고 말하면,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오츠이치의 소설들을 많이 읽었음에도-)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간단히 표현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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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1-2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어떨까 했는데, 재밌군요~! 공모전 하니 얼마전에 읽은 <미로관>이 생각나요.
재밌는 추리소설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는!

Apple 2008-11-28 00:28   좋아요 0 | URL
네. 생각보다 엄청 재밌었습니다! 사실 저는 기대안하고 있었던 책이거든요.^^
빨리 다음 시리즈들도 읽고 싶어서 마음이 벌렁벌렁!!

보석 2008-11-28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 전 소설이란 말에 움찔했는데, 애플님 리뷰 보니 읽고 싶어졌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Apple 2008-11-28 16:3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재밌더라고요.^^ 근데 보석님 취향에도 맞으실지는 잘 모르겠어요.헤헤..
 
빨강머리 앤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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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라면 한번쯤은 가져보고 싶었던 지붕밑 방의 로망이 시작된 곳은 아마도 빨강머리 앤에서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한쪽 천장이 기울어지고, 양옆으로 여닫는 보통의 창문이 아니라 위로 올리는 창문을 열면,
눈의 여왕이 아침을 맞이한 아이를 환영하는 방-이보다 더 낭만적일수 있을까.
(물론 이 이미지는 소설에서보다 어린시절 보았던 TV애니메이션에서부터 기인하겠지만...)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이 사는 전원적인 풍경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어두고 살아가는 낭만과 몽상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책을 다시 보지 않더라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야기들이지만,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속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풍경보다도 더 진하고 아련하게 떠오르던 가로수길.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사실은 다정한 매튜 아저씨, 낭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이 엄격하고 무뚝뚝하기 그지 없지만 앤을 향한 모성애가 넘쳐나는 마릴라 아줌마, 통통하고 예쁜 소녀 다이아나와 참견쟁이 린드 아줌마, 갈색눈에 키큰 길버트 브라이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상상하는 빨간머리 소녀 앤이 살아가는 에이번리의 풍경이 아득하게나마 머릿속에 기억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옆집에 살던 남매와 그들과 함께 사는 어린 꼬마아이를 보다가 "빨강 머리 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토록 이 모든 풍경이 낭만적인 동화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곳에서 살아갔고 그곳에서 묻혔던 루시모드 몽고메리가 그곳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사랑했던 풍경을 독자 역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빨강머리 앤"을 처음 읽었을 때로부터 거의 20년이 흘렀지만, 이 책은 어린 아이일때 보았을 때처럼 매혹적이었다.
다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느낌은 달라졌다. 그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앤 셜리의 낭만적인 모험담이었던 책이 지금 읽으니 달콤 쌉싸름한 성장드라마로 느껴지더라.
앤의 수다와 앤이 일으키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슬픔이 몰려왔다.
아이는 자라고, 어른은 노인이 되어가는 시간의 무심함을 어른이 된 나는 느껴버렸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일줄 알았는데, 네가 이렇게 자라버렸구나-라며 마릴라 아줌마가 처음으로 앤의 앞에서 엉엉 울었을 때처럼, 나 역시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밀려왔다. 어린 시절의 모든 사랑스러움과 모험같았던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찡하면서도 아득하게 슬퍼져버린 것을 어쩌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부족한 게 많아서 상상할 것도 많다는 거야."라던 앤의 말이
어른에게는 비현실적인 몽상이 될수밖에 없어서 부러우면서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잃어버리고, 현실의 불안에 안주하며 살아갔던 것일까.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상상하면서 현실의 부족함을 잊었던 앤의 방식이 더이상은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고 슬퍼졌다. 그리고 "이제는 할수 없다"라고 단정해버리는 사실이, 책속의 모든 사건들이 즐거운 앤의 모험담이 아니라 아련한 기억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올해는 모두가 사랑하는 앤셜리의 100번째 생일이 되었단다.
100년동안 꿈꾸었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꿈꾸는 몽상가로 존재할 앤셜리.
그 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잠시나마 즐거운 몽상과 아름다운 에이번리에 푹 빠져 나는 현실을 잊었다.
꿈을 꾸고 살아갈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소녀일수 있을까. 지금보다 30년쯤 나이를 더 먹고도, 그렇게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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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8-11-2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어릴 때 봤던 기록이 새록새록나면서 재밌네요 :)
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보고 있는데, 요 책도 땡기네요 ㅎㅎ

Apple 2008-11-25 23:04   좋아요 0 | URL
네..저도 오랜만에 읽어보니 무척 재밌더라고요.^^
근데 100주년 기념판인데 오타가 좀 보여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