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 해 한달에 평균 3편정도의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나는 영화는 거의 무조건 극장에서 보는 스타일인데, (집에 있으면 오히려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보게되지 않는다.ㅠ ㅠ)
2009년에는 희한하게 극장에서 내리고나서 뒤늦게 보게 된 영화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2009년, 눈과 마음과 이성을 사로잡았던 영화들을 정리해보자. 


  

다우트   

누가뭐래도 내게는 2009년 최고의 영화이다.
호랑이 원장선생님으로 이만한 사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메릴 스트립의 연기,
진실이 뭐든간에, 그냥 무조건적으로 믿어보고싶은 진실된 눈빛 연기를 하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이 두 배우의 연기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영화였다.
용호상박이라고 할수 있는 메릴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를 보고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영화인데,
단순하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영화의 이야기도 좋다.
추문과 헛된 의심으로 점철된 영화. 영화를 보면서 과연 누가 결백한 것일까 궁금해지는데,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누구의 결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심"이라는 당연하고도 추한 본성의 잔혹함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이 원작이라는 작품. 연극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왠지 이 영화의 원작 연극은 보고싶어졌다.

 

똥파리 

나 혼자, 올해 최고의 영화는 <다우트>와 <똥파리>라고 정해버렸다. (히힛~)
그러고보니 한 영화를 연달아서 보지는 않는 내가 이 영화들은 한해에 두번씩 감상하게 되었다.
과연 인생이라는 이 지리멸렬한 시간은 뭐고, 이런 삶을 살은 끝에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삶이란 원래 이렇게 가혹한 것. 삶이란 원래 이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것.
세상이라는 것은 참담하기만 한 것.
이 영화를 떠도는 이런 푸념들 속에서도, 간간히 희망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사람이라는 희망.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라는 희망.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도, 그래도 어딘가에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
위로의 말같은 거 하지 않아도 내 얘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줄 사람이 있다는 희망...
삶이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일말의 희망을 남겨두고,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참 지독하고, 서글프고 짠한 인생을 다룬 이야기인데 마냥 암울하기만 했던 것은 또 아니라서
눈물이 핑 돌면서도, 또 웃게 되는 정말 좋은 영화였다.
 

 

마더 

봉준호의 잔혹한 엄마 이야기 <마더>는 생각 이상으로 참 이상한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 감동을 받았다.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존재들의 독함같은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터이지만, 자식을 위해 이다지도 독해질수 있는 것이
어머니라는 점이- 무시무시하게 이기주의이면서, 한편으로는 설득력 있다.
여자의 모성애라는 것은 다른 어떤 감정들을 초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간의 사랑, 인간의 도리, 상식과 이성.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 어머니이고 아줌마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줌마는 추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것이 아닐까.
엄청나게 불편한 사실이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설득력.
진짜 "엄마"인 여자가 이 영화를 본 다면, 공감할까.
아니면 처녀인 나처럼 불편함만을 느낄까.
영화의 마지막, 엄마의 오열에 어이따위 날라가버리고, 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에 그녀가 울 듯이 나도 울고 싶었다.

  

언노운 우먼  

올해 모성에 관련된 영화가 꽤 있었던 것 같다.
<마더>를 비롯해 체인질링도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주세페 토르나르토레의 <언노운 우먼>까지.
각 영화에서 다루는 엄마의 모습은 조금씩 다를 지언정, "지독하게도 깊은" 모성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마더>에서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려 자신이 탐정이 되어 나서는 어머니가 있고,
<체인질링>에서는 사라진 아들을 끝까지 기다리는 질긴 모성의 어머니가 있고,
<언노운 우먼>의 어머니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숨긴 채 몰래 딸의 곁에서 딸을 지켜보는 엄마가 있다.
내내 아픔뿐이던 인생에서, 단 한번 행복하던 순간, 그 순간으로 잉태된 아이는 타인의 손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이의 곁에 가정부의 존재로 남아 그녀를 지켜주게 된다.
기구하고 처절한데, 그래도 모성이라는 것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 모성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모성을 쉽게 저버릴수가 없다.
인간은 그래서 아직까지는 꽤 괜찮은 존재인가보다.
 

 

리틀애쉬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영화.
올해초에 기다리고 있던 "쌍화점"이 개봉했었으나 기대보다 실망이 더 컸고, 기대하지 않았던 리틀 애쉬는
먹먹한 감상을 남겼던 영화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청년기를 다룬 영화인데, 살바도르 달리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두 청년의 애매모호한 애정전선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전기영화라기보다는 퀴어 영화에 가깝다.
서로 사랑하는데, 우유부단한 쪽은 그 사랑을 놓치 않으려는 반면, 저돌적인 쪽은 은근히 몸을 사린다.
평생 알아왔던 평범한 성정체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감정은 있으나 이성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불발탄이 되어버린 사랑.
너무나 매혹적인 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서 눈이 즐거웠고, 살바도르 달리보다 페데리코 로르케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갔던 영화.
나는 유럽영화제에서 봤었는데, 왠지 언젠가 개봉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트왈라잇 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이니까-)아니나 다를까 이번달에 개봉한단다.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꼭꼭 추천하고 싶다.

 

퍼니게임 

옛날에 보고, 리메이크작을 다시 보게 된 경우인데, 어차피 똑같은 영화에 똑같은 감독,
아주 근소하게 달라지는 연출만으로도 굉장히 재밌었고 감상도 처음 볼때와 무척 달라졌던 영화이다.
귀청을 뚫을 듯한 혼란스러운 음악으로 시작해, 똑같은 괴물같은 노래로 끝난다.
원작 <퍼니게임>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수 있는데, 어쩌면 감독이 그렇게 영화를 찍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인생이 나른한 두 청년의 재미를 위한 살육기행.
폭력으로 권력을 확인하려는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에 화가 나면서도, 왠지 두 눈을 뗄 수가 없다.
뭐랄까. 하얀옷을 입고, 귀족적인 말투를 쓰며, 고급 취향을 가지고, 사람을 패고 주무르고 그런 상태에서 웃음을 던지는
무시무시한 뻔뻔함이 참 압도적이다.
이유없는 짜증과 거북한 불쾌함. 그런데서도 재미와 의미를 찾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도 재밌겠다.
 

   


추격자  

이미 꽤 흥행도 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영화인데, 나만 몰랐다. 이 영화 재밌는거...
작년 겨울 언젠가 너무 너무 추운나머지 친구와 DVD방에 가게 되었는데, 하도 볼 영화가 없어서 그냥 선택한 것이
<추격자>였는데, 영화 시작 10분 후에 둘다 완전히 몰입해 버려서는 농담 한마디도 안하고 끝날때까지 영화만 보았던 것 같다.
진짜 무시무시한 사실인데, 너무 사실같아서 더더욱 무시무시했다.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이지만, 어쩌겠는가. 이 가혹한 현실에는 원래 이렇게 이유없이 미쳐버린 놈들도 넘쳐나는 것을.
영화 한창 인기있을 때는 "흥...인기작 따위....대중성 따위...흥!!!"하고 잘난 척 했는데, 뒤늦게 보고 식겁했다.
이 영화, 대체 극장에서 왜 안봤지???????????????????

 

킬러들의 도시

역시 극장에서 내린 후, 조금 뒤늦게 진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인데,
기대보다 훨씬 재밌고 훨씬 귀여웠다!
예전에 "버팔로 66"을 보고 그 요상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에 어쩔줄 모른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딱 그랬다.
킬러들의 도시라기보다는 킬러들의 수다가 더 잘 어울리는 영화.
시종일관 투덜거리고 짜증만 내는 주인공에게서 유머와 귀여움을 찾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놓치지 마시길!!!
그리고 이건 진짜 반전인데, 당황스럽게도 무려 마지막에는 슬프기도 하다...;;;

 

 

레슬러 

이 영화를 보고 어찌 마음이 짠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똥파리>와 함께 이 영화는 무한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끓어올랐던 영화이다.
극중 퇴물 레슬러의 인생과 망가진 미키루키의 인생이 겹쳐보이면서 느껴지던 엄청난 연민의 카타르시스.
미키루크의 눈만 보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만 같더라.
인생 잘 못사는 것 같은 인간에게도 꿈이 있고, 하고싶은 것이 있고, 인간으로써의 권리라는 것이 있는 법.
당연한 얘기지만, 왜 이렇게 비루한 인생들의 이야기는 달콤함없이 쓰기만 해서
자꾸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엔딩크래딧에서 흘러나오는 친구 미키루크를 위해 만들었다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 "레슬러"는 진리였다.
 

 

그랜 토리노 


또 하나의 짠한 영화 "그랜 토리노"
이 영화도 <레슬러>나 <킬러들의 도시>처럼 살짝 뒤늦게 보게 되었는데, 훈훈하면서도 짠했다.
모든 사람에게 깐깐한 노인이 거의 혐오하기까지하는 유색인종 가족에게 동화되면서 벌어지는 일들.
노년의 인생이 이렇게 너그럽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호불호를 떠나서 "인간" 그 자체에 매료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래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마냥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더라.
극장에서 왜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다른 영화들은 다 봤으면서 이 영화를 놓친 것이 끝내 아쉽고 분하다. 덜덜...  

 

*그외 무척 재밌었던, 혹은 꽤 괜찮았던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자세히 쓰지 않는 것은 이미 리뷰도 쓴 바 있고, 쓰다보니 슬슬 귀찮아 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뒷심이 약해...;;;)
 

 

 

내년에는 또 어떤 영화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올 겨울 대작들이라는 영화들은 어쩐지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또 완전히 취향은 아니라도, 괜히 보고싶은 영화들도 있고 그런거잖아...후후...
올해에는 더더욱 나를 매료시키는 영화들이 나타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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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7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pple 2010-01-07 14:36   좋아요 0 | URL
헤헤...저는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까먹고 못봐버리거든요.ㅠ ㅠ헤헤... 다우트 기회 되면 꼭 보세요.^^ 호불호가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상상력과 상상을 구현해내는 능력은 좋은데, 마무리는 급하고, 스토리는 설득력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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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 Nin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올해 뮤지컬 영화들 왜 이러나?
그래도 <시카고>까지는 볼만했는데, 롭 마샬, <나인>에서 너무 큰 실망을 안겨준다.
영화는 영화감독이자 여자들이 너무 잘 꼬이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바람둥이가 되어버리는 귀도의 여자탐방기라고 볼수 있다.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의 아내, 열정적이고 낯뜨거울 정도로 섹시한 내연녀,
평소 흠모하고 있었다며 수작 걸어오는 보그지 기자,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자신의 페르소나 여배우,
처음으로 욕망을 깨닫게 해준 동네 누나, 죽었어도 언제나 곁에서 지켜봐주는 엄마.
이 여자들을 둘러싸고, 슬럼프에 빠진 영화감독 귀도 콘티니는 열정과 스트레스와 혼란속에 남겨지게 되는데,
뭐 여찌저찌해서 갑작스럽게 아내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영화를 마무리 된다.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정리해보자.

첫째,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슬럼프에 빠져서 여자로 스트레스를 잊고, 또 여자로 스트레스를 얻는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대체 어쩌란 말인가.
아내가 그렇게 소중했으면 내연녀는 왜 존재하고, 유혹하는 여자에게 손바닥 뒤집듯 쉽게 넘어가는 것은 무엇일지.
그래서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1. 구관이 명관. 현모양처만큼 좋은게 없더라-인지, 2. 여러여자 거느리고 살기는 참 힘들어-인지,
3. 작품에 대한 욕심과 대감독으로써의 정체성에 혼란을 얻는다-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진다.
엄청나게 정신없이 산만한, 그리고 곁가지가 많은 영화였다.
사실 내용만 따지고 들어간다면, 아내와 내연녀 이외의 여자들은 다 필요없는 배역인데,
대스타급 여배우들이 한장면씩 등장해서 자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과시하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필요없는 곁가지가 지나치게 많이 끼어들어버렸다.
그리고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조차 구태의연하고 지루하다.

둘째, 그래. 귀도 콘티니의 매력이 뭔데?
여자들이 귀도귀도귀도하며 울부짖고 유혹하지 못해 안달인 이 감독의 매력을 도무지 찾을수가 없다.
저마다 포스가 너무 강한 여자들 덕택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찌그러져버린 남자주인공.
자기가 저지른 짓에 변명하기 급급한 우유부단 한 남자주인공.
고뇌에 찬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퀭해진 이 남자 주인공의 매력이 대체 무엇인지 왜 영화에서는 설명하지 않는 것일까.
서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설득력 또한 떨어진다.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에 정극처럼 줄줄히 스토리와 캐릭터를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서도,
다 보고 났는데도, 이 남자의 무엇에 여자들이 빠져드는지 알수가 없다.
어쩌면 이 영화의 존재이유는 단지 "여배우들" 뿐인지도 모르겠다.

셋째, 인상적인 음악이 없다.
뮤지컬 영화인 이상, 어느 정도 귀에 꽂히는 음악이 있을 법도 한데,
전체적으로 노래가 별로다.
노래라기보다는 억지로 음을지어 대사를 읽는듯한 느낌은 나만 받은 것일까.
지나치게 화려하기만 한 효과들 역시 별로.
<시카고>에서는 조명의 매력을 충분히 살렸던 것 같은데, 세트 역시 화려하기만 할뿐, 그저그렇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퍼기의 탬버린 춤만 남더라.
모두 악을 쓰고 노래를 하는 와중에도, 잠만 솔솔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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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얻게되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많지만, 나는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아주 가벼운 사실로 여기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책 하나로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믿지 않으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것에는 그러한 부담감도 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간다는 것은 내가 꼭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있는 반면,
시간떼우기 또는 데이트나 만남의 목적도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러갔는데 얻을게 아무것도 없다고 아까워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냥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즐거웠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책은 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그 얘기가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한 건데, 꼭 거기서 뭔가의 해답이나 깨달음을 얻어야하는 것일까.
영화나 음악이나 만화가 상대적으로 가볍게 받아들여지는 반면에, 왜 책은 그토록 무겁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책도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의 시선으로 보려고 한다. 최대한 가볍게. 최대한 내 취향에 맞게.
책에서 내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수 있고,
책에서 뭘 찾으려고 하지 않으니, 더 가볍게 마음을 비우고 철저히 재미만을 위해 읽을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내가 고른 소설들 또한 철저히 나 개인적인 취향과 재미만을 반영한 소설들이다.

2009년에 내가 읽은 책들은 그 전년도 보다, 그 전전년도보다 더 적었던 것 같지만,
희한하게 올해에는 읽는 소설마다 그럭저럭 재밌었고, 최악이었던 소설들은 여느해 보다 적었던 것 같다.
나름 뿌듯한 독서였달까...
2009년을 뒤늦게 빠이빠이하면서, 2009년 내가 읽었던 책들중, 가장 재밌었던 책을 정리해보았다.

  
 

미즈무라 미나에 : 본격소설 

올해 초에 읽었던 소설인데, 일본식으로 고쳐진 <폭풍의 언덕>의 변주쯤이라고 설명하면 될까.
대대로 부유하게 살아온 귀족집안 아가씨 요코와 근거도 확실치 않은 천한 출신의 다로의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는 사랑이야기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재밌었던 것은 요코와 다로의 사랑이야기보다,
대를 이어나가며 조금씩 바뀌는 가족사들과 옛날 부자들에 대한 작가 나름의 향수같은 것들이었다.
후반부에 맥이 조금 풀려버렸던 것 같기는 하지만, 가족사에 관련된 소설들을 참 좋아하는 관계로 차분하게 끝까지 읽어나갈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아마노 세츠코 : 얼음꽃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나는 소설에서 여자가 나약하게만 등장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더 악랄할수록, 더 계산적이고 교활할수록, 소설속의 여자 캐릭터는 매력적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남자 소설가들이 그리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는 무척 제한적이고, 표면적이긴 하다.)
여기, <얼음꽃>에는 여자가 그리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이 등장한다.
이 여자는 자존심이 얼마나 쎈지, 자기 자존심이 짓밟히지 않기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저지른다.
무조건 선하기만 한 사람이 매력적이지 않은 것처럼, 무조건 악하기만 한 사람도 매력적이지 않은데,
아마도 세츠코의 <얼음꽃>에 등장하는 쿄코는 악하다기보다는 자존심에 목숨을 건 여자이다.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해서, 어떤 짓이든 저지를 용기가 있는 여자.
선망의 대상이 될수는 없겠지만, 끝까지 절대로 지지 않는 모습에서 왠지 멋있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지나친 우연이 중첩되거나, 데뷔작인 관계로 약간 어설픈 면은 있었던 것 같지만,
60대에 데뷔한 아마노 세츠코 여사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지지 않는 얼음꽃은 쿄코였을 뿐만이 아니라 세월에 지지 않았던 아마노 세츠코 여사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면.......

 

 

다카노 가즈아키 :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올해, 가장 우울할 때 읽었고 어떤 에피소드들에서는 너무 공감되고 괜히 기분이 비참해져서 눈물도 찔끔찔끔 났었다.
국내 번역된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은 다 읽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내게 최고는 <13계단>이긴 한데,
이런 살짝 가벼운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들도 참 좋다.
따져보자면 <유령인명구조대>와 가장 비슷한 부류의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에피소드들이 아주 독특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마음을 파고드는 뭔가가 있었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제목은 비관적이지만, 내용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미래를 알수 있더라도, 당장 내일은 바뀔지도 모르니까.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면....

  

 

 

 

니키 프렌치 : 산 자의 땅  

올해 가장 스릴넘쳤던 소설은 <산 자의 땅>이었다.
소설의 무시무시한 흡입력에 비해 주목을 못받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표지다.
표지 좀 잘 만들어주었으면...끔찍한 센스다.으으...
어느날 갑자기 납치당한 여자가 깨어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자신을 납치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여기가 어딘지도, 왜 납치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몇일이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납치되어있는 동안, 너무 절망적인 나머지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도망칠 기회를 얻게되고,
결국 탈출하게되었지만, 납치되기전 몇일간의 기억이 충격으로 사라졌고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결심하게된다. 직접 자신을 납치한 범인을 잡으러 나서게 된다.
책장을 피는 순간 무서울 정도로 빨려들어가게 되어버리는 대단한 흡입력과 함께 예리하다못해 괴롭기까지한 심리묘사는 정말 만점을 주고 싶었다.
충격적이면서도, 파격적이고, 에너지가 절절 넘치던 소설이었고,
요즘 스릴러들이 너나 나나 막판으로 가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전을 꾹꾹 구겨 쳐넣는데
그런 점이 없어서 또한 좋았다.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면....
 

  

세라 워터스 : 벨벳 애무하기 

열렬히 기다리던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안 레즈비언 3부작중 첫번째 작품인 <벨벳 애무하기>가 꽤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등장했다.
추리 스릴러였던 <핑거 스미스>와는 달리 평범하게 태어나 레즈비언으로써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망가진 세계를 지나치며, 사랑과 존재감을 깨닫게 되는 성장소설로 읽을수 있는데, 장르는 다를지라도 작가의 필력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눈을 뗄수가 없더라.
세라 워터스 참 대단한 것 같다. 뻔한 얘기를 해도, 이 여자가 하면 뻔하지 않게 된다.
놀라울 정도의 대담함, 그럼에도 잃지 않는 서사의 안정감.
세라 워터스의 책은 빅토리안 레즈비언 3부작이 아니라도, 어떤 소설이라도 기다리고 싶다.
(그리고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끌림"은 보라색으로 내주면 안될까...하며 아직도 나혼자 중얼중얼.....
보라색 책실을 원해!!!)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면....

 

   

질리언 플린 : 그 여자의 살인법 

올해 읽었던 가장 지독한 소설중 하나인 <그 여자의 살인법>은 제목부터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읽기전에는 다소 걱정되기는 했지만,
막상 읽다보면 제목따위 스포일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 소설에는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향마을로 소녀 살인사건을 조사하러가게된 여자가 밝혀내는 진실을 다룬 소설인데, 다소 지루한듯 이어지다가 막판에는 후폭풍이 몰아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는데,
아...이러한 종류의 인간도 있구나, 이러한 종류의 기이한 심성도 있구나 하면서 뒤늦게 엄청난 서늘함에 떨게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살인이라는 것보다도 뒤틀려버린 끔찍한 가족사와 관심이라는 것의 끔찍하게 서글픈 속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자라면, 꼭 추천해보고싶다.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면....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 렛미인 

올해 뱀파이어 소설들이 쏟아져나왔다. 소녀감성으로 읽을수 있는 <트왈라잇> 시리즈부터, 재 발간된 (내가 칭송해 마지않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기예르모 델토로의 좀비물같은 <스트레인>, 그리고 작년에 영화로 재밌게 보았던 렛미인까지.
<렛미인>은 조금 독특한 뱀파이어 소설이다. 영화와 똑같을 거라 생각하고 보지 않는다면 손해!!!
소설은 또다른 재미로 읽을수 있다.
왕따소년과 몇년을 살았는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뱀파이어와의 사랑이야기와 그들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공허한 절망감같은 것도 흥미진진하게 읽을수 있고,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세한 사연들 또한 알수 있어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보았던 영화이긴 했지만 영화보다 훨씬 좋았던 소설이고, 여타 다른 뱀파이어물에서는 찾을수 없는 기묘한 현실감같은 것이 더더욱 절망적이었고, 독특했었던 소설이다.
사실 <트왈라잇> 시리즈의 뱀파이어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앤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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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요르츠버그 : 폴링 엔젤 

예전에 미키루크 주연의 <엔젤하트>의 원작이었던 소설이다. 영화는 보지 않아서 어땠을런지 모르겠지만, 꽤 옛날 소설인데도 지금봐도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처럼 시작해, 갑자기 오컬트 호러로 빠지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읽다보면 어물쩡 넘어가는 솜씨에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뿔뿔히 흩어져있던 조각을 모아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해 낼수가 있는데, 참 기묘하면서도 허탈하고, 동시에 신선했다.
이 책을 읽을 때 꽤 정신없는 상태였어서, 많은 사실들을 놓쳤던 것 같은데,
시간이 나는대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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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 :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 제나로 시리즈가 올해 다 출간되었다. <신성한 관계>만 읽으면 다 읽게되는 셈인데,
올해에 읽었던 켄지 제나로 시리즈 중에서는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가 제일 재밌었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스릴러 소설은 이제 차고 넘칠 정도이지만, 그래도 데니스 루헤인이 쓰면 달라진다.
가벼운 기분으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책에 빠져들어가게 되었고, 다 읽을 때까지는 빠져 나오기도 힘들었다.
다른 연쇄살인물과 또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데니스 루헤인 소설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사회적인 절망감과 무력감을 들수 있는데,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런지 모르겠다.
아...소설속에서, 켄지에게 보내온 엄청난 양의 전단지의 비밀이 밝혀질때 그 소름돋던 순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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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이스턴 엘리스 : 아메리칸 사이코 

잔인한 정도가 무지막지하기 때문에, 감히 누구에게 추천하기도 뭣한 작품이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올해 읽었던 가장 충격적인 소설중에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게다가 나는 이 작품이 기묘하게 슬프기마저 했으니, 꽤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을 거머쥔듯한 남자의 이유도 알수 없는 연쇄살인 행각을 그리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냉정하고 잔인한 것은, 이유없는 쾌락살인도 아니요, 주인공 베이트먼의 냉랭한 독백도 아니다.
철저한 무관심과 자기 위주의 생각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습이 제일 끔찍했다.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가 메시지에 있듯이, 이 무지막지하게 고어한 미친 소설이 그저 싸구려 폭력소설이 아닌 이유는
책을 읽다가 나도 돌아버릴 정도로 반복되는 강박적인 행동들과 모든 행위의 무의미함과 모든 가치의 상품화와 그로인한 거대한 공허를 너무나 끔찍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비교적 강심장이라 느낀다면,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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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콕스  : 밤의 의미 

가장 최근에 읽은 정말 재밌었던 <밤의 의미>는 세라 워터스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빅토리안 시대물이라는 이유) 관심을 가졌었던 소설이다.
막상 초반부를 읽으면서, 이 책이 그렇게 재밌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다소 지루했으며, 초반부부터 주어지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고, 책소개로 이미 출생의 비밀이니 어쩌니 하는 사실은 알고 시작한 셈이기 때문에 책이 왜 이렇게까지 두꺼워야했는가에 대해 불만을 품긴 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냥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사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끈끈한 유기성과 뻔하지만 속아 넘어갈수 밖에 없는 것들에 혹해서 읽다보면 마지막에는 굉장한 후폭풍에 시달리게 된다.
추리소설이지만, 순소설이기도 한 작품이고, 마치 진짜 옛날 소설처럼 고전적으로만 풀이해놓았어도, 결코 고리타분하거나 뻔하지 않고, 작가가 이 작품을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반영하듯, 꼼꼼하고 중후한 깊이감이 있고, 드라마틱하다.
다 읽고나면, 그 처절한 복수에 내 마음까지 황량해진다.
빅토리안. 고딕. 출생의 비밀.물고 물리는 복수.
이런 것에 혹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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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0-01-0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훈늉한 페이퍼라니 ㅎㅎㅎ
별찜!
저 읽은 거 렛미인이랑 밤의 의미 밖에 없네요;;;

Apple 2010-01-04 02:52   좋아요 0 | URL
훈늉하다니요...^^;;으하하하하....저도 올해에는 책을 별로 못읽었네요. 헤헤..
 

천성이 이상한 건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때부터 음악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울적한 것을 좋아했다.
물론 아주 극도로 반대로 철저하게 유머로만 점철된 것들도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바빠서 정신없이 맞이해버린 1월 1일.
매년 연말이면 나 나름대로 좋았던 것들을 정리해보곤 하는데, 올해는 좀 늦었던 것 같다.
(사실 이제와서 정리해보려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안난다...ㅠ ㅠ어흥어흐흥...)
올해, 내가 즐겨들었던 노래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앨범도 사고 암흑의 손도 거치는 청중이다.
어쩔수 없는 것이,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고자 하면 우리나라에 발매되거나 수입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일본이나 외국에 나가는 친구들이 선물을 사다준다고 하면 부탁해서 사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굉장히 매니악한 취향은 아니라고 나는 늘 믿어왔다.
다만, 우리나라 음반시장이 좁을 뿐이라고,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 

올해, 내 작은 골방작업실에서 울려퍼지던 노래들은 이런거다.

Lenka-Lenka(2008)
올해, 어쩌면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팝앨범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CF에 많이 삽입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뒤늦게 들어보게 되었는데, 샤방샤방 너무 예쁜 목소리에, 귀에 착착 붙는 쉬운 멜로디,
그냥 배경음악으로 걸어놓고 편안히 뭔가 집중하고 싶을 때 들으면 딱 좋은 앨범이었다.
(나는 예쁜 목소리에 약하다. 그리고 바람세는 것 같은 목소리에도 역시 약하다.)
올해 어떤 마감을 하던중에 한참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정신놓고 마냥 행복한 기분으로 편안히 듣기에 정말 정말 좋았다. 

M83 - Before The Dawn Heals Us(2005)
이 앨범은 올해의 베스트라기보다는 내게 Alltime favorite이 되어버린 앨범이다.
처음 발매되었던 2005년부터 현재까지 심심하면 CD를 꺼내어 넋놓고 듣고 있는 궁극의 아름다운 우주사운드.
장소가 어디든, M83노래를 듣고 있다보면 정신이 현실을 빠져나가 거대한 우주속을 부유하고 있는 것 같은-꿈처럼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이름도 M83이 아닌가.
Safe같은 노래들은 아무리 들어도 끔찍할만치 황량하고 아름답고,
Farewell/ Goodbye같은 노래들은 몇번을 들어도 "별헤는 밤"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반짝 하고 켜지는 느낌이다. 너무 광활해서 슬픈 느낌이다. 이 앨범은...
아마 이 앨범은 내년에도 심심할 때마다 듣게 될 것 같다. 

루네-압셍트(2009)
가요를 많이 듣는 편이 아니어서 그렇지, 인디음악은 꾸준히 듣는 편인데도, 왠지 요즘은 인디음악 듣는 것이 버겹다.
인디음악씬마저 비슷비슷한 음악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비슷한 목소리에, 비슷한 멜로디, 적당한 달콤함이나 적당한 루저정신.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살짝 지겨워질랑말랑 하려는 찰나 듣게된 앨범.
루네의 너무너무 매력적인 목소리는 이모진 힙(imogen heap)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영애 아줌마가 떠오르기도 한다.
고혹적이고 몽환적인, 그리고 압셍트보다 약간 덜 독한 그런 목소리와 노래들.
올해 들었던 인디음반중에서는 내게는 최고였다.  

MIG-Yamatna(2006)
역시 2006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들었던 앨범.
몇년전 인터넷을 휘젓던 중에, MIG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지금은 닫혔더라;;음반 그만내려나?;;)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Yamatna라는 노래에 흠뻑 빠져버렸다.
아마도 인도계인듯한 보컬, 너무나 매력적이고 기이한 목소리에 한번 빠지고,
보통 영어권 노래에서는 나올수 없는 멜로디가 나와버리는 기이한 변주에 또 한번 빠졌다.
Yamatna도 좋지만, 음산한 시크의 절정을 이루는 Smoke Of Lies같은 노래들도 좋고,
이 앨범이 아니라 다른 앨범들도 참 좋았던 것 같은데.....
음반 그만내려나...소식이 없네... 

Olafur Arnalds - Variations of Static(2009)
어제도 말했듯이 정말 좋아했던 올해의 앨범.
현재 너무 너무 행복한 사람도 갑자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며, 세상에서 제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앨범.
오늘에서야 CD를 사서 두근거리며 오디오로 들어보았는데, 아...여전히 너무너무너무 감동적이다.
구슬픈 피아노소리위로 차가운 보이스웨어의 목소리가 읊어대는 가사들이 뭔지 아직도 몰랐는데, 가사지에 이렇게 써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는 공원에서 놀고 있었지.
그리고 너는 내가 죽을 때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물었지.
나는 대답했어. 모든 것을 잊을 거라고...모든 것을.
너는 다시 한번 물었지. "너 자신도?"
난 대답했어. "그래, 나 자신도."
넌 죽고싶지 않았잖아. 결코 잊지않아.
부드러운 포옹과 함께 사라져버린 우리가 함께했던 흔적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어떻게...' 

아...가사까지 괜히 속상해진다.ㅠ ㅠ 정말 이럴거야?ㅠ ㅠ

mum - sing along to songs you dont know(2009)
지금까지 들어온 바로는, Mum의 앨범은 두가지로 나뉜다.
몽환의 절정을 달리거나, 초 귀엽거나.
올해 나온 sing along to songs you dont know는 후자쪽의 앨범으로 초초초초초 귀엽고 따뜻한 앨범인데, 말랑말랑한 "작은 생물"이 떠오르는 목소리라던가, 소박한 멜로디와 진짜 너무 귀여운 가사까지
너무 귀엽고 깜찍하고, 괜히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앨범.
겨울에 들으면 지대로 따뜻하다. 

 

The Bird And The Bee - Ray Guns Are Not Just The Future (2009)
아주 예전에 첫 EP를 들었을 때는 이렇게 오래 듣게될 밴드인지 알지 못했다.
그럭저럭 괜찮기는 했었는데, 그 정도의 음악은 아주 많았으니까...
그런데 1집부터 아..이거다! 싶더니, 새로 나온 앨범까지도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고 있는 새와 벌.
산뜻하고, 예쁘고, 많이 들어도 쉽사리 질리지 않는 달콤함. 

   

 

sophie hunger-Monday's Ghost(2008)
옛날 앨범들을 좋아한다. 그 특유의 눅룩함이랄지, 아련한 애수랄지...
포크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수 있어서 좋은데, 그것도 너무 비슷비슷하다보면 질리긴 마찬가지인 것같다.
올해 초에 들은 앨범이었는데, 언젠가 TV보다가 올림푸스 펜 광고에 소피 헝거의 노래가 걸려서 깜짝 놀랐다.
공허한 목소리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영어, 독일어, 스위스어까지 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독특한 억양이 주는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small color - in light (2009)
일본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 많이 듣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듣다보면 훅 꽂히는 앨범들이 있다.
간간히, 일본 음악중에 햇빛을 담은 것 같은 음악을 들을때가 있는데,
small color의 앨범이 그랬다.
반짝반짝하는 햇빛,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봄날의 나른한 낮잠.
꼭 그런 느낌이었던 앨범. 

 

nitin sawhney - london undersound(2008)
그야말로 완소앨범!!!
니틴 소니 앨범은 종종 수입도 되고 그래서 이 앨범도 당연히 수입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니틴 소니의 이전 앨범들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앨범에서 니틴소니의 음악적 역량은 만개했다고 본다.
이국적이고 어딘가 아련해지는 사운드.
이 앨범에서는 시크한 면모까지 보여주고, 여전히 종종 등장하는 인도스러운(?) 음악들도 매력만점. 

 

sebastien schuller - evenfall(2009)
1집을 너무 너무 좋아해서, 2집을 너무너무 기다렸는데, 생각보다는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워낙 좋아하는 아티스트이다보니, 올해초에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Open Organ같은 노래는 어딘가 내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였는데, 딱히 뭐가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어린시절, 해질녘 무렵 동생과 풀밭에서 잠자리를 잡던 기억이 들을때마다 매번 떠오른다.
 

 

그외에 엘리지안 필즈의 신보라던가, 아카이브의 신보라던가, 에어 신보라던가, 그외 한두곡씩 꽂혔던 노래들도 많으나,
쓰다보니 갑자기 귀찮아진 관계로 이만 쓸까 한다...-_-;(용두사미;;)
왜 이렇게 귀찮은 일을 벌렸을까...싶은데, 이러면서 나는 내일 또 할거다.
내일은 책 버전으로!

올해는 대충 이런 음악들을 듣고 흘러간 것 같은데, 내년에는 또 어떤 음악들이 나를 뒤흔들어놓을지 궁금해진다.
매시브 어택이라 골드프랩 새앨범이 나온다니까 완전 기대하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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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1-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처럼 퍼가기 기능 있으면 좋은데, 별찜하면 어디서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니깐요.
새해부터 보관함 빵빵하게 채우고 가요~ 이 중에서 mum 앨범이 가장 궁금해요- ^^

다락방 2010-01-01 19:28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서재 맨 위에 [나의서재] 옆에 [서재브리핑]을 누르시면 왼편에 글쓰기 바로밑에 '별찜한글' 있어요. 그걸 누르시면 그동안 내가 별찜한 글이 쫙 뜬답니다.

Apple 2010-01-02 01:06   좋아요 0 | URL
음...혹시 영화 <수면의 과학>에서 나왔던 If you rescue me라는 노래 아세요?
그 노래 느낌을 떠올리면 딱 맞을 앨범이예요.^^ 소박하고 귀엽고 예뻐용...흐흐..

하이드 2010-01-04 16:06   좋아요 0 | URL
그걸 이제 알았다니; 털썩 ; orz
근데, 제꺼 보니깐, 제 글밖에 별찜 안 해놓은거 있죠.^^;;

소박하고 귀엽고 예쁜 노래 좋아요~~ 찾아봐야겠어요.

다락방 2010-01-01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pple님. 전 이중에 제가 아는 앨범이 하나도 없네요. 죄다 자켓도 처음봐요. 이럴수가. 흑 orz

다락방 2010-01-01 20:37   좋아요 0 | URL
저 들어보지도 않고 이중에 앨범 하나 그냥 오늘 질러 버렸어요. 저는 충동적인 동물.

Apple 2010-01-02 01:0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충동의 제왕이시군요...^^;;ㅎㅎㅎ 아무쪼록 만족하시길 바라며...ㅠ ㅠ우흐흑...
근데 뭐 사셨나요?^^

다락방 2010-01-02 01:40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도 페이퍼에 충동질 하셔서 그만... ㅋㅋ 뭘까요? 맞춰보세요 ㅎㅎ

Apple 2010-01-02 03:23   좋아요 0 | URL
올라퍼 아르날즈 사셨군요..히히히히히히
연초부터 기분 망치고 싶으세요?ㅎㅎㅎㅎㅎㅎ
아무쪼록 마음에 드시길...^^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