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 해 한달에 평균 3편정도의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나는 영화는 거의 무조건 극장에서 보는 스타일인데, (집에 있으면 오히려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보게되지 않는다.ㅠ ㅠ)
2009년에는 희한하게 극장에서 내리고나서 뒤늦게 보게 된 영화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2009년, 눈과 마음과 이성을 사로잡았던 영화들을 정리해보자.
다우트
누가뭐래도 내게는 2009년 최고의 영화이다.
호랑이 원장선생님으로 이만한 사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메릴 스트립의 연기,
진실이 뭐든간에, 그냥 무조건적으로 믿어보고싶은 진실된 눈빛 연기를 하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이 두 배우의 연기를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영화였다.
용호상박이라고 할수 있는 메릴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를 보고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영화인데,
단순하면서도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영화의 이야기도 좋다.
추문과 헛된 의심으로 점철된 영화. 영화를 보면서 과연 누가 결백한 것일까 궁금해지는데,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누구의 결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심"이라는 당연하고도 추한 본성의 잔혹함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이 원작이라는 작품. 연극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왠지 이 영화의 원작 연극은 보고싶어졌다.
똥파리
나 혼자, 올해 최고의 영화는 <다우트>와 <똥파리>라고 정해버렸다. (히힛~)
그러고보니 한 영화를 연달아서 보지는 않는 내가 이 영화들은 한해에 두번씩 감상하게 되었다.
과연 인생이라는 이 지리멸렬한 시간은 뭐고, 이런 삶을 살은 끝에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삶이란 원래 이렇게 가혹한 것. 삶이란 원래 이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것.
세상이라는 것은 참담하기만 한 것.
이 영화를 떠도는 이런 푸념들 속에서도, 간간히 희망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사람이라는 희망.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라는 희망.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도, 그래도 어딘가에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
위로의 말같은 거 하지 않아도 내 얘기를 들어주고, 어깨를 토닥여줄 사람이 있다는 희망...
삶이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일말의 희망을 남겨두고,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참 지독하고, 서글프고 짠한 인생을 다룬 이야기인데 마냥 암울하기만 했던 것은 또 아니라서
눈물이 핑 돌면서도, 또 웃게 되는 정말 좋은 영화였다.
마더
봉준호의 잔혹한 엄마 이야기 <마더>는 생각 이상으로 참 이상한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 감동을 받았다.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존재들의 독함같은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터이지만, 자식을 위해 이다지도 독해질수 있는 것이
어머니라는 점이- 무시무시하게 이기주의이면서, 한편으로는 설득력 있다.
여자의 모성애라는 것은 다른 어떤 감정들을 초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간의 사랑, 인간의 도리, 상식과 이성.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 어머니이고 아줌마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줌마는 추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것이 아닐까.
엄청나게 불편한 사실이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설득력.
진짜 "엄마"인 여자가 이 영화를 본 다면, 공감할까.
아니면 처녀인 나처럼 불편함만을 느낄까.
영화의 마지막, 엄마의 오열에 어이따위 날라가버리고, 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에 그녀가 울 듯이 나도 울고 싶었다.
언노운 우먼
올해 모성에 관련된 영화가 꽤 있었던 것 같다.
<마더>를 비롯해 체인질링도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주세페 토르나르토레의 <언노운 우먼>까지.
각 영화에서 다루는 엄마의 모습은 조금씩 다를 지언정, "지독하게도 깊은" 모성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마더>에서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려 자신이 탐정이 되어 나서는 어머니가 있고,
<체인질링>에서는 사라진 아들을 끝까지 기다리는 질긴 모성의 어머니가 있고,
<언노운 우먼>의 어머니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숨긴 채 몰래 딸의 곁에서 딸을 지켜보는 엄마가 있다.
내내 아픔뿐이던 인생에서, 단 한번 행복하던 순간, 그 순간으로 잉태된 아이는 타인의 손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이의 곁에 가정부의 존재로 남아 그녀를 지켜주게 된다.
기구하고 처절한데, 그래도 모성이라는 것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 모성의 위대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모성을 쉽게 저버릴수가 없다.
인간은 그래서 아직까지는 꽤 괜찮은 존재인가보다.
리틀애쉬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영화.
올해초에 기다리고 있던 "쌍화점"이 개봉했었으나 기대보다 실망이 더 컸고, 기대하지 않았던 리틀 애쉬는
먹먹한 감상을 남겼던 영화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청년기를 다룬 영화인데, 살바도르 달리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두 청년의 애매모호한 애정전선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전기영화라기보다는 퀴어 영화에 가깝다.
서로 사랑하는데, 우유부단한 쪽은 그 사랑을 놓치 않으려는 반면, 저돌적인 쪽은 은근히 몸을 사린다.
평생 알아왔던 평범한 성정체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감정은 있으나 이성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불발탄이 되어버린 사랑.
너무나 매혹적인 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서 눈이 즐거웠고, 살바도르 달리보다 페데리코 로르케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갔던 영화.
나는 유럽영화제에서 봤었는데, 왠지 언젠가 개봉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트왈라잇 시리즈의 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이니까-)아니나 다를까 이번달에 개봉한단다.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꼭꼭 추천하고 싶다.
퍼니게임
옛날에 보고, 리메이크작을 다시 보게 된 경우인데, 어차피 똑같은 영화에 똑같은 감독,
아주 근소하게 달라지는 연출만으로도 굉장히 재밌었고 감상도 처음 볼때와 무척 달라졌던 영화이다.
귀청을 뚫을 듯한 혼란스러운 음악으로 시작해, 똑같은 괴물같은 노래로 끝난다.
원작 <퍼니게임>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수 있는데, 어쩌면 감독이 그렇게 영화를 찍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인생이 나른한 두 청년의 재미를 위한 살육기행.
폭력으로 권력을 확인하려는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에 화가 나면서도, 왠지 두 눈을 뗄 수가 없다.
뭐랄까. 하얀옷을 입고, 귀족적인 말투를 쓰며, 고급 취향을 가지고, 사람을 패고 주무르고 그런 상태에서 웃음을 던지는
무시무시한 뻔뻔함이 참 압도적이다.
이유없는 짜증과 거북한 불쾌함. 그런데서도 재미와 의미를 찾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도 재밌겠다.
추격자
이미 꽤 흥행도 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영화인데, 나만 몰랐다. 이 영화 재밌는거...
작년 겨울 언젠가 너무 너무 추운나머지 친구와 DVD방에 가게 되었는데, 하도 볼 영화가 없어서 그냥 선택한 것이
<추격자>였는데, 영화 시작 10분 후에 둘다 완전히 몰입해 버려서는 농담 한마디도 안하고 끝날때까지 영화만 보았던 것 같다.
진짜 무시무시한 사실인데, 너무 사실같아서 더더욱 무시무시했다.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이지만, 어쩌겠는가. 이 가혹한 현실에는 원래 이렇게 이유없이 미쳐버린 놈들도 넘쳐나는 것을.
영화 한창 인기있을 때는 "흥...인기작 따위....대중성 따위...흥!!!"하고 잘난 척 했는데, 뒤늦게 보고 식겁했다.
이 영화, 대체 극장에서 왜 안봤지???????????????????
킬러들의 도시
역시 극장에서 내린 후, 조금 뒤늦게 진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인데,
기대보다 훨씬 재밌고 훨씬 귀여웠다!
예전에 "버팔로 66"을 보고 그 요상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에 어쩔줄 모른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딱 그랬다.
킬러들의 도시라기보다는 킬러들의 수다가 더 잘 어울리는 영화.
시종일관 투덜거리고 짜증만 내는 주인공에게서 유머와 귀여움을 찾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놓치지 마시길!!!
그리고 이건 진짜 반전인데, 당황스럽게도 무려 마지막에는 슬프기도 하다...;;;
레슬러
이 영화를 보고 어찌 마음이 짠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똥파리>와 함께 이 영화는 무한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끓어올랐던 영화이다.
극중 퇴물 레슬러의 인생과 망가진 미키루키의 인생이 겹쳐보이면서 느껴지던 엄청난 연민의 카타르시스.
미키루크의 눈만 보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만 같더라.
인생 잘 못사는 것 같은 인간에게도 꿈이 있고, 하고싶은 것이 있고, 인간으로써의 권리라는 것이 있는 법.
당연한 얘기지만, 왜 이렇게 비루한 인생들의 이야기는 달콤함없이 쓰기만 해서
자꾸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엔딩크래딧에서 흘러나오는 친구 미키루크를 위해 만들었다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 "레슬러"는 진리였다.
그랜 토리노
또 하나의 짠한 영화 "그랜 토리노"
이 영화도 <레슬러>나 <킬러들의 도시>처럼 살짝 뒤늦게 보게 되었는데, 훈훈하면서도 짠했다.
모든 사람에게 깐깐한 노인이 거의 혐오하기까지하는 유색인종 가족에게 동화되면서 벌어지는 일들.
노년의 인생이 이렇게 너그럽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호불호를 떠나서 "인간" 그 자체에 매료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래도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마냥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더라.
극장에서 왜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다른 영화들은 다 봤으면서 이 영화를 놓친 것이 끝내 아쉽고 분하다. 덜덜...
*그외 무척 재밌었던, 혹은 꽤 괜찮았던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자세히 쓰지 않는 것은 이미 리뷰도 쓴 바 있고, 쓰다보니 슬슬 귀찮아 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뒷심이 약해...;;;)




내년에는 또 어떤 영화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올 겨울 대작들이라는 영화들은 어쩐지 심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또 완전히 취향은 아니라도, 괜히 보고싶은 영화들도 있고 그런거잖아...후후...
올해에는 더더욱 나를 매료시키는 영화들이 나타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