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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1 - 한밤의 식육열차 - 뉴 라인 호러 001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은지 도희정 옮김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이 공포 영화를 만들고 공포 소설을 만들고 무서운 얘기들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자신을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즐기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텐데 말이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이 만든 "종교"라는 것은 "믿고 싶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공포영화나 소설은 그 반대의 이유로 생겨난 것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다.
보지 못하는 지옥에 대한 호기심이 그런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가장 무섭고 끔찍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는 공포스러운 소재에서
사람은 공포에 떨기도 하며 또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의 충족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클라이브 바커의 공포단편 시리즈 "피의 책"은 한 젊은이의 몸에 죽은 자들이 원한을 세겨넣으면서
독특하게, 그리고 폼나게 시작한다.
피의 책 시리즈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젊은이의 몸에 세겨진 죽은자의 이야기들이다.
모든 사람은 피의 책이고, 어디를 펼치든 붉다.
한 젊은이의 몸에 기록된 기이한 지옥의 이야기들이 몽환적으로 펼쳐진다.
첫번재 이야기, 소설의 표제가 되기도 한 "한밤의 식육열차"는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의 특징을 단번에 알수 있는 잔인무도하며 경이로운 세계관이 응축된 단편이고,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단편이다.
끔찍한 연쇄살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피곤에 쩌들은 인간이
도시의 근원, 뼈대를 만나 경이로운 환희를 얻는다.
부처님 반토막같은 중년남자를 악의 세계로 인도해야하는 책임을 가진 악마의 이야기 "야터링과 잭"은
비교적 유머감각이 넘치는 단편으로, 읽으면서 누가 더 악한가를 떠오르게 만든다.
아내가 자기집 침실에서 다른 남자와 뒹굴고 있어도 은근슬쩍 문을 닫아주고,
귀여운 막내딸이 레즈비언이 되겠다는데도 조금도 말리지 않는 너그럽다 못해 무감각한 중년의 남자.
그리고 그를 분노하게 만들고 나락으로 떨어뜨려야하는 하급 악마 야터링의 대결구도는
어쩐지 코믹하기까지 하다.
매혹적인 암퇘지가 등장하는 "돼지피 블루스"는 어쩐지 Korn의 Untouchable 앨범 자켓이 떠오르는 단편이다.
소년들은 암퇘지를 경배한다.
인간을 먹는 암퇘지. 그 거대하고 우아한 모습.
소년들 사이에 생겨난 이 이상종교의 모습은 스산하고 몽환적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떠오르는 "섹스, 죽은, 그리고 별빛"에서는
쇄락해가는 연극 연출자 앞에 모자로 얼굴을 가린 죽은 남자가 등장한다.
모든 관객이 시체가 되고, 시체가 다시 극단을 꾸려나가게 된다.
"언덕에, 도시가"는 클라이브 바커의 이 단편들 중에서 공통된 특징만을 엄선해놓은 듯한 단편이다.
도시와 사람. 수천명이 죽어가지만, 도시는 움직인다.
이 이야기에서 싸움은, 인간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들이 한다.
너무나 거대하고 생소한 것에 대한 공포는 경이로 바뀌고, 경이는 찬양으로 바뀐다.
클라이브 바커의 공포가 성스러움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이렇다.
책 뒷편에는 여러가지 찬사의 글이 적혀 있다.
클라이브 바커는 공포의 미래다, 이처럼 독창적인 작품은 본적이 없다. 등등...
다 보고나서는 나도 동감할수 밖에 없다.
이처럼 독특하고 독창적인 공포소설은 처음이다.
단순히 잔혹하고 자극적인 장면만 찔러넣은 요즘의 공포이야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작가 자신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공포와 경배가 오고가는 모습은
마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는 듯 끈끈하고 음습하게 다가온다.
그와 더불어 냉소적이고, 철학적인 지적인 늬앙스 역시 잊지 않는다.
악과 성스러움은 거의 반대말처럼 들리지만, 클라이브바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것은 동음이의어처럼 생각된다.
클라이브바커는 참 독특한 소설가다.
책을 펼치는 순간, 그의 악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게 될것이다.
잔혹하고 경이로운 공포를 찬양하라.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 그들이 믿고 살아가는 것은 우주의 티끌보다도 작다.
그 뒷편에는 작고 초라한 인간따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한 거대한 진실이있다.
그러니까 잘난척 하지 말아라.
................라고 클라이브 바커가 꾸짖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