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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걸 -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ㅣ 블랙 캣(Black Cat) 9
T. 제퍼슨 파커 지음, 나선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어딘지 자극적인 제목, 책 표지의 빨간 여자 실루엣이 도발적이면서도 지쳐보여서 선택한 책.
이 책을 보기전에 나는 무엇을 상상했을까.
불결하면서도 매혹적인 캘리포니아의 자유분방한 여자아이-같은 느낌을 상상했을까.
그러나 내 기대를 완전히 어긋난 이 소설은, 그런 자극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오히려 시대적인 분위기에 많이 지충하고 있다.
1950년대.
베커가 아이들과 폰가 아이들의 싸움.
검은색 머리. 더럽혀진 발레치마. 웨스턴 부츠.
베커가 아이들의 마음을 어둠게 했던
양손에 오렌지를 들고 던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다섯살짜리 자넬 폰의 얼굴에 어린 멍자국.
몇년 후, 오빠들에게 약물을 강요당하고 강간당해 또다시 멍투성이로 교회로 찾아온 10대의 자넬 폰.
또다시 몇년 후, 플레이보이지 표지모델을 하고,
또다시 몇년 후, 플레이보이지 표지 모델을 했다는 이유로 미스 터스틴 자격을 박탈당하고,
또다시 몇년 후, 죽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사그라 들기에 너무 아름다운 열아홉의 자넬은
오렌지 통조림 공장에서 얼굴과 몸이 분리된 채 발견된다.
베커가의 세 형제, 목사인 데이비드, 형사인 닉, 기자인 막내 앤디가
그들에게는 멍자욱으로 기억되는 자넬 폰의 살인사건을 수사해 나가면서,
아름답기에 방종했던 자넬폰의 주위에서 아른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리게, 아주 느리게 펼쳐나간다.
어딘지 읽기에 불편한 책이어서 꽤 오랫동안 읽고 있었는데,
내가 책을 코로 읽었는지, 귀로 읽었는지,
책을 덮는 순간에도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젊음에 대한 반추인지, 시대에 대한 회상인지, 자넬폰의 화려하면서도 기구한 인생인지-
그 어느것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가 단지,
내가 청소년부터 중년까지 마약과 환각제를 담배처럼 들이마시고,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모토인 젊은이들이 지배하는 1960대를
내가 살아보지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일까.
열심히 수사하고 돌아다녔는데, 결국은 FBI의 등장으로 너무나 간단히 범인을 밝혀내고나서,
또다시 몇십년이 지나 어이없는 경로로 밝혀지는 진범과 살인 동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30년동안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형을 살았던 사람의 뒷이야기는
급조된 마냥 엉성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완벽하게 똑똑한 형사라던가 탐정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하더라도 수사방법이 너무나 허술하다.
처음부터 주위사람들의 이야기를 좀더 상세히 들었더라면 금새 밝혀낼수 있잖아.....
자넬과 관련되어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형사인 닉도, 기자인 앤디도 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회상에 빠져버린다.
자넬 폰의 살인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소설속의 자넬폰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것도 불만이다.
불우한 과거를 가진 미녀에,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고, 두동강 나 살해당한 여자-
이 자극적이고 매혹적인 이미지를 왜 조금더 살려보려 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자넬 폰을 이해할수도-
아니, 그보다 먼저 어떤 여자였는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은 거의 알수가 없다.
그 시대를 살았던 미국인들은 이 소설을 즐겁게 읽을수 있을까.
그런 것은 나도 모르겠지만, 2000년을 살아가는 20대의 나로써는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이야기가
살인사건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정신없이 펼쳐져서 잡을수가 없다.
여러모로 불만 많고 아쉬웠던 책이다.
p.s DNA감식도, 컴퓨터를 이용한 수사도 없었던 시절의 수사방법은
지금으로써는 좀 답답한 감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엽기적이다.
죽은 자넬폰의 손톱에 묻어있는 살점을 보관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잘라서 보관........우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