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마을
로맹 사르두 지음, 이승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좀 그만 붙어주었으면 하는 광고 카피중의 하나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의 비교이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한 추리물인 이책 "13번째 마을" 역시, 장미의 이름과의 비교가 되어있는데,
나 역시 장미의 이름을 재밌게 읽은 사람 중 하나이지만,
이런 비교는 이제는 좀 식상해지지 않았을까.
다빈치 코드가 성공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거의 휘몰아치는 기세로 가열차게 나오고 있는 팩션소설들중에
정말로 괜찮은 소설은 얼마나 될까 싶다.
 
추리소설인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설이 바로 이 "13번째 마을"이라는 소설.
그 잔혹도는 거의 공포영화 버금가고, 소설내에 시종일관 흐르는 서늘하고 음침한 분위기가 가미되어
나는, 이 소설을 꽤 무섭게, 그리고 꽤 재밌게 보았다.
 
재앙이라 부를수 있을 정도의 혹한이 몰아닥친 프랑스의 작은 마을 드라강 강가에서
절단된 채 흘러들어온 시체토막이 발견된다.
절단 난 조각을 모두 모아 보니, 한명의 어른과 쌍동이로 보이는 두명의 아이.
마을 사람들의 공포심이 채 누그러들기도 전에, 마을의 주교가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숲과 늪을 지나 존재하고 있으나, 낙오된 채 누구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13번째 교구 외르투루 마을.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후 거의 50년간 소식조차 끊기고, 들어갔던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않았다던
그 저주받은 땅으로 들어가려는 젊은 신부가 나타난다.
신부이나, 신에게만 의지하지는 않는 에노 기 신부와 그의 충실한 친구 둘은
낙후된 채 거의 원시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며, 마을로 들어서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알수 없는 마을 사람들과 대립을 하게된다.
 
한편, 죽은 주교의 제자인 쉬케는 스승의 시체를 고향에 묻어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데,
버려진 13번째 마을 외르투루에 관한 놀라운 사실과 맞딱뜨리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왕의 전설적인 기사 중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노기사 앙게랑이
처치곤란의 망나니 자식 아이마르의 죄를 덮고자 모든 재산과 지위를 환불하려 하다가,
대주교와 아들 아이마르를 놓고 딜을 하게된다.
아이마르는 책임질테니, 교회 대신 땅을 매입해달라는 것.
그리고 반항적이고 방종한 아이마르는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해 억지로 새사람이 되게 된다.
 
이 복잡한 사건들은 잊혀진 13번째 마을 외르투르와 관련된 것.
기억하기도 힘든 중세 프랑스 이름들과 세가지 이야기를 모두 소화해내며 따라가야하는 복잡한 구조인데도
소설은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꽤 난해하다.
중세시대에 기독교가 가졌던 권력과 그 권력의 오만을 보여주는 13번재 마을 사건.
그것을 덮으려던 주인공들은 진실을 겨우 겨우 밝혀내지만 모두 몰살당한다.
이제야 진실을 알았다 싶을 때 한꺼번에 몰아치는 살육전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글 초반에 말했듯이, 이 책은 무척 잔혹한데,
사지가 찢긴 채 발견되는 시체들이라던가,
썩어가는 스승의 시체를 파리까지 운송하기 위해서 구더기가 들끓기 시작한 시체를 잘라 식초로 씻는 장면,
교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인간 이하의 고문들 역시 잔혹하기 이를데 없지만,
정말로 무서웠던 것은 13번째 마을에 사는 원시적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어딘지 원초적인 것들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라틴어도, 불어도 아닌 말을 구사하며, 몰래 지하에서 기어나오는 사람들은 마치 좀비를 보는 듯
생경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것이든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해야하는 기독교는, 어쩌면 인류에게 이렇게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을까.
가끔씩 종교의 삐뚤어진 모습들을 관찰하다보면,
종교란 것은 우리가 상상도 할수 없는 절대 불변의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자체를 믿는게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사이비와 다른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종교 자체가 신이 되어버린 것은 똑같은데.
대대로 내려오는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사이비 종교도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기독교는 피바람을 몰고 다닌다.
믿음이 없는 나로써는, 자신 이외의 신은 믿지 말라는 하나님도 믿을수 없고,
전쟁을 부추기는 하나님도 믿을수 없고, 재물을 바치라는 하나님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믿음으로 충만한 종교인들을 대할 때면 항상 신기하다.
 
작가의 중세시대에 대한 이해도도 좋았고,
어딘지 모르게 심기를 아주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도 마음에 들었으나,
문제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일단은 읽기는 불편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사건이 복잡한 만큼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고, 중세 프랑스 언어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나머지,
독자로써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꽤 버겹고,(등장인물들 이름은 왠만해서는 기억할 수 없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모도 보이지만,
풀어가기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서늘한 스릴과 공포를 놓치 않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단점은 어느 정도 상쇄된다.
 
아아...중세미스테리는 어쩌면 이렇게도 음침한지.....
늪에 빠져서 환각같은 악몽이라도 보는 느낌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나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아니라,
영화 "슬리피 할로우"와 "빌리지"의 이야기를 꺼내겠다.
 
p.s 작가가 프랑스 국민가수 미셀 사르두의 아들이고, 그의 대부가 그 유명한 알랭드롱이라니.......
정말 예술가 집안에서는 예술가가 태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0-2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글씨때문에 첨부터 잘읽을지 고민되던데 의외로 재미나더군요.. 정신없이 읽어내렸어요.. 장미의 이름과 비견된다고만 안했어도 괜찮은 책인데요.. 조금만 사실에 가깝더라도 기독교가 영향력을 이어내려오는 그 작태에 소름이 끼칩니다.

Apple 2006-10-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름끼치는 이야기죠.
 
나는 살인한다 2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스릴러 영화라던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경찰이나 형사, 탐정들은 왜 하나같이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속세에서 떠나있다가 한가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이 이제부터 풀어가야할 과업에 운명적인 무언가를 덧씌우기 위해서일까.
수백 수천번도 더 나온 식상한 도입부이지만, 시대를 가리지 않고 아직도 꾸준히 잘 팔리고 있는 도입부.
무척이나 통속적인 스릴러 소설인 이 소설 "나는 살인한다"에서 주인공 프랭크 역시
속세를 떠나있다가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주인공이다.
어쩌면 이렇게 고전적일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 추리소설에서는 잘 쓰지 않는 모든 것을
이용하고 있는 이 소설.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 시대에나 나왔을 법한 다잉 메세지도 뻔뻔스럽게 나오고,
촌스럽다 싶을 정도로 음악에 메시지를 부여해 살인을 예고하기도 한다.
아주 뻔한 장면에서 뻔한 속임수를 써서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도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무척 미국스럽다는 점인데,
유럽에는 유럽에 맞는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미국소설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로써는
무척 불만스러운 점이다.
주인공부터 반쪽은 미국인인 FBI요원이고, 시도때도 없이 미국인들이 줄줄 등장하며,
사건의 진행방식 역시 미국 스릴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왜 이 작가는 이야기가 이탈리아에서는 머물지 않는 것이냐?)
이탈리아 작가라면, 좀더 이탈리안의 맛을 내주었으며 좋았을텐데,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서 얼핏 느꼈듯이,
마치 이 작가는 미국에 대한 환상(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식 스릴러에 대한 환상이랄까.)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게다가, 비록 이 책이 먼저 나왔더라도,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서와 비슷한 관계설정이 꽤 많아서
(주인공 설정이라던가, 부자들만 죽어나가는 살인사건 등등-)
나는 투덜거리면서 읽게 되었다고-.
 
 
이렇게 여러가지 마음에 안드는 점, 이 모든 통속적인 점을 콕콕 찝어가면서 투덜거리면서 보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재밌다는 것이다.ㅠ ㅠ흐흑....
뻔할 뻔자의 통속적인 주제를 놓고도, 손에 땀을 쥐고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투덜거리면서 볼수 있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글을 무척 잘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속도감 붙으면서, 흔한 미국 스릴러 소설처럼 간단한 문장구조가 아니라,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놓은 감상적이고 화려한 문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입도 쉬웠고, 글에 품격같은 것도 느낄수 있었달까.
이렇게 욕하면서 보면서 재밌었던 책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온 세상의 온갖 부자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나코 몬테카를로의 한 라디오방송국.
어느날 인기 디제이 장루 베르디에는 방송중에 괴한의 전화를 받는다.
괴한은 자신을 하나이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 밝히며,
"나는 살인하오."라는 말과 전화기 너머로 아련히 들려오는 음악소리로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끊어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해자의 얼굴가죽을 벗겨내가는 끔찍한 연쇄살인.
전직 FBI인 프랭크와 모나코 경찰들이 수사에 나서면서 밝혀지는 좀더 복잡다난한 이야기들.
잡을만 하면 사라지고, 형체를 알아볼수도 없는 이 연쇄살인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풀어나가는 소설.
 
좀더 유럽식이었다면 좋았을걸...하는 부분은 우아한 문체로 일단 해결이 나고,
개인적으로 아쉬워서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던 부분도 재미있으니 용서가 되고,
800페이지나 되는 긴 분량도 흥미진진하므로 지루한 감이 전혀 없다.
범인에 대한 설정, 혐오감과 함께 처연한 감정이 뭍어나는 감정선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살인자임에도 미워할수 없는 범인-
오히려 그 연쇄살인마보다 더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
중간 중간 끊어질듯 이어지는 살인자의 고독한 감상은 어쩐지 마음이 아파지기도 했다.
조금만 더 보여줘... 조금만 더...라고 외치면서 나는 살인자를 맞대면하고 싶었다.
 
이 작가의 좀 더 후기작인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에 뭍혀서 관심도 못받는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보다 훨씬 뛰어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관심을 받는 작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우리나라에서 볼수 있었을텐데....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작가인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같아서 아쉽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9-2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제목이 덜 선정적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Apple 2006-09-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헤헤...^^
 
헤드크러셔 밀리언셀러 클럽 45
알렉산더 가로스.알렉세이 예브도키모프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악명 자자한 러시아산 스릴러 헤드크러셔.
난독증 유발이 의심되어 읽다가 포기해야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그리고 빨리 읽었던 것같다.
그도 그럴것이, 글속에서 헤메지 않을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기도 했고,
자주 비교되는 척 팔라닉과 견주어봐서도 이 쪽이 훨씬 잘 읽혔기 때문이다.
(척 팔라닉의 난독증 글을 읽다보면 이정도로만 해줘도 감지덕지.ㅠ ㅠ
딱 요정도로만 써줬어도 나는 척팔라닉의 광팬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파이트 클럽"과 "아메리칸 싸이코"와 비견된다는 보도자료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척팔라닉이 아메리칸 사이코를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싶은 마음이 들었다.
 
REX 은행 홍보실 카피라이터로 일하고있는 주인공 바짐은
사회에, 회사에, 세상 모든것에 불만이 많은 젊은이이다.
사회주의체제안에서 정해진 루트를 따라 가면 당연히 성공길이 열린다고 안일하게 믿었지만,
사회는 갑작스럽게 자본주의사회가 되어버리고, 바짐은 경쟁을 해야할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니 당연히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자신이 좀더 대단한 인물이 될수있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건만,
경쟁사회로 나와보니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말단직원에 불과해져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먹고 살아야하기에, 윗선에 불만을 토로할수도 없고,
바짐의 내면은 점점 사회와 가진자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삐딱한 욕지거리로 난무하고,
상사는 갈구고, 자존심에 상처가나는 욕을 들어먹으면서 회사를 때려칠수도 없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바짐이 하는 짓이라고는 상사 욕, 직장 동료 욕을 컴퓨터에 질펀하게 늘어놓고,
가끔씩 들여다보며 낄낄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왔으면 인터넷에 악플다는 놈이 바로 요런 놈이 아니었을까싶다.
 
자, 악명이 자자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여기까지,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이 무려 130페이지에 가깝다는 점이다.
앞부분을 얼추 "그래그래. 그래쪄?"하고 넘어가다보면 진짜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기부터는 훨씬 스피디하게 진행되어서 훨씬 읽기 수월하다.
 
어느날 한가한 밤 할일없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충동적으로 아무도 없는 회사 사무실로 돌아간 바짐은
그간 자신이 컴퓨터에 저장해놓았던 욕지꺼리를 꺼내보며 낄낄댄다.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 돌아와보니, 맙소사-
자신의 상사가 사무실안에 홀연히 켜진 자신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열받은 상사에게 인간이하의 욕을 얻어먹으면서, 참고 참았던 스트레스가 한번에 폭팔-
우발적으로 상사를 살해하고 만다.
 
그래. 한번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훨씬 쉬워진다.
한번의 살인으로 이성이 우주로 날라가버린 바짐은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또다시 살인을 자행하고,
그후부터는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정말로 막가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어쩌다 얻은 총 한자루로 자신감이 채워지고, 몇번의 살인으로 세상 무서워질게 없는 이 젊은이는
이제는 길을 가다가 마음에 안드는 사람도 그냥 죽여버린다.
한번의 살인 이후, 그의 인생은 점점 그가 즐기는 "헤드크러셔"라는 게임과도 같아진다.
장애물 발견. 빵빵!!
스트레스의 폭팔. 누군가를 죽이고 나서 내가 위로 올라갔다는 쾌감.
게임에서 괴물을 헤치우듯이 앞길을 가로막는 것들을 다 없애버리면 된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귀찮으면 없애버리면 된다.


거울속의 자기자신을 바짐은 도플갱어라 부른다.
자기 내면안에 꼭꼭 감춰둔 오만방자하고 폭력적인 자기자신을.
몇번의 살인으로 도플갱어는 점점 바짐의 목을 졸라오고, 결국은 지배당하게 된다.
이성을 놓아버리고 터무니없는 자신감에 들떠 가속화되는 인간의 몰락.
바짐은 자유를 얻었지만, 그 댓가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속의 바짐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이런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은 종종 있다.
불만, 스트레스, 또다시 불만, 욕-
그것은 또다른 이름의 열등감이다.
돈도 되고 빽도 되는 집안에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이 하고싶은 걸 다 하고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바짐이 욕하는 진짜 이유는 그게 너무나 부럽기 때문이 아닐까.
조금 더 초연했더라면, 조금더 만족했더라면, 그리고 조금 더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사실 따져보면 바짐도 그리 못난 놈은 아니다.
배운거 많고, 직업 반반하고, 먹고살기 빡빡할 정도로 박봉도 아니고, 몸매좋은 디자이너 애인까지 있는데-
경비원의 말처럼, 타인의 눈에는 그가 은행에서 일한다고 거드름 피우며 다니는 인간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
 
바짐의 투덜거리는 말을 듣고 있다보니, 소설 전반에서 스트레스가 줄줄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런 점 또한 소설의 긴장감을 배가 시키는지도 모르겠다.
무척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한 기분도 들었던 이유는
이것 역시 그냥 살아가기에 급급한 내게는 하나의 소설로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9시뉴스에 요런 놈이 나왔더라면, 정말 무서웠겠지.)
비행기를 타고 타히티로 떠나는 부분에서 좀 헷갈리는 문제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찝찝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아주 아주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9-1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게 괜찮다는 말씀이죠^^

Apple 2006-09-1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평가를 믿지는 마세요.^^; 저만 재밌게 읽은것같은 기분도 들어요.크극...-_ㅠ
 
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 주의!!
 
그 모든 범죄를 통틀어 가장 가슴이 아픈 범죄는 범죄가 아이와 관련되어 있을 때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가라, 아이야,가라"는 그런 맥락에서 무언가가 옥죄여오듯이
마음이 아파지는 아이관련 범죄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정의는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점을 던져준다.
 
어느날 아이가 사라진다.
엄마가 집을 비운 새에 방에 누워있던 아이가 감쪽같이.
마치 좀더 거친 멀더와 좀더 정많은 스컬리가 떠오르는 켄지와 제나로 커플 탐정들은
아이의 실종을 수사해나가는 과정에서  
마약과 술과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불성실한 엄마와 아이에게 좀더 애정을 갖고 있던 그녀의 오빠 내외를
만나게 되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던 마약 조직과 유괴 사건이 맞물리게 되면서,
이 사건이 단순히 아이의 실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탐정이면서 수사하기 꺼려하는 켄지와 제나로의 마음속에 내제되어있는 불안감은
여느 탐정들처럼 용감하지도, 터프하지도 않다.
그들은 비겁하고 소심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의 실종을 해결할수 있다고 완전히 믿지도 않고,
설사 운이 풀려서 아이를 찾게 된다고 해도,
살해된채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아이를 만나거나
어른들에게 폭행, 강간을 당해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아이를 마주칠까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정이 간다. 그것이 진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두운 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을 맡기 꺼려하는 탐정들은
그래서 어느 노인의 잃어버린 애완동물이나 찾아주면서
세상을 바로보기 두려워한다.
 
겉잡을수도 없이 마음이 아파지기 때문이다.
비겁하고 나약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여전히 불안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것.
그럼에도 아이를 찾으러 나설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수많은 불행한 경우들 중에서도 멀쩡히, 온전한 모습으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아이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그들의 소원대로 멀쩡한 모습으로 아이는 돌아왔지만,
이것을 누가 해피엔딩으로 볼것인가.
 
전작 "살인자들의 섬"과 다른 점이라면, 무척 세련되고 유머러스하다는 것-
그래서 인물들간의 대사조차 외화시리즈를 보는 듯한 쿨한 재미를 준다는 것이지만,
책을 덮고 나서 한참후에 몰려오는 상실감이라던가 슬픔은 비슷하다.
아니, 오히려 "가라, 아이야, 가라"쪽이 더 심하다.
이것은, 지금도 부모에게 학대당하거나 무관심에 쩌든채 살아갈수 밖에 없는
아이들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간 쓰레기같은 어른들. 비정하기 짝이 없는 부모들.
그 사이에서 또다른 상처를 받는 것은 아이들이다.
인간은 왜 자기 상처를 자기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항상 그 상처를 남에게 곪아 옮겨가도록 해야하는 걸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아래 자란 아들은 어째서 또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는 걸까.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이어 가야하는 건지,
이렇게 괴롭고 아픈 것이 인생이라면 뭐하러 사랑받고 인정받으려 노력하면서 살아야하는 건지,
기본적으로, 신은 왜 이런 인생과 인간을 만든것인지-
대답조차 알수 없는 질문들이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머릿속에 산란하게 퍼져간다.
 
 
생기없는 눈빛, 아이다운 울음조차 내지 못하는 우울한 네 살짜리 아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불행한 일상. 행복한 납치. 그리고 또 다시 불행한 일상으로-
그것이 사회가 말하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놓은 다같이 살아가기위한 법칙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완벽히 정당하다고, 누가 감히 말할수 있을까.
책속의 그런 의문은 내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가치들을 뒤흔들어 버리고
죄의식에 마음을 산산히 부숴버린다.
 
아, 정말이지 울고싶어지는 소설이었다.
함께 나온 "비를 바라는 기도"가 읽기 두려워질 정도로 마음이 많이 아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9-17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비통합니다.
보관함에......

Apple 2006-09-1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더 비통합니다.아윽...ㅠ ㅠ
 
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철학서라던가, 지나치게 철학에 얽매여있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책속에 크란토르의 말로 설명이 되어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비우더라도 마찬가지요. 언제나처럼 똑같은 사람들이지...
아테네 인들은...말장난이나 궤변, 텍스트나 대화에 대한 당신들의 열정 말이오!
듣고 읽고 단어를 풀이하고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논쟁과 반론을 만들어내며,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로 배우는 당신들의 방식 말이오!
아테네인들은...사유하며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또한 글을 읽지도 쓰지도조차 못한 채 즐기며 고통받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더욱더 무수하지만 한 우두머리에 의해 지배받는 또 다른 나라요."  -p 015

간단히 말하자면, 철학자들의 현학적인 말이 듣다보면
요점없이 늘어놓는 현실성 떨어지는 궤변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이란 일상에서도 찾을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도 보편적인 진실이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나처럼 재미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 머리 아픈 주제가 잘 맞지 않는다.
이 책 "이데아의 동굴"은 내가 싫어하는 몇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철학자들의 현학적인 대화, 그리스 로마풍, 그리고 촌스러운 표지.
발간되자마자 충동적으로 내질러 버린 책인데,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왜 골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왜 사다놓고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후회가 된다.
 
내가 싫어하는 몇가지 중요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책은 무척 훌륭하다!
액자식 구성의 책을 꽤 많이 읽어봤음에도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충격적인 구성의 소설을 본적이 없다!
소설도 소설이고, 주석도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추리를 따라가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트라마코스라는 소년이 늑대에게 찢겨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선생님 디아고라스는 해독자(탐정)인 헤라클래스에게 사건을 의뢰하게되고,
의문의 죽음이 몇건이 벌어지고 나서 결국 범인을 잡아들이지만,
헤라클레스는 이 사건의 본질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와 더불어, 이 이야기를 번역하는 번역자는 작품에 빨려들어가게 되면서,
이 작품속에 감추어진 에이데시스(소설속에서 반복되는 의미심장한 심상들.
이것을 찾아 연결지어보면 작가가 작품에 숨겨놓으려 했던 주제가 나타난단다.
실제로는 이런 개념이 없나보다.  사전에도 안 나와있다.)를 찾아
이 작품에 진정으로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이하게도, 번역하고 있는 상황과 똑같은 상황을 겪어가기도하고,
소설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소설은 상상하기 힘든 3중구조로 나뉘어지면서 마무리 짓는다.
 
액자로 박혀들어간 작자미상의 "이데아의 동굴"이라는 소설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그리고 역주는 대충 흘겨들어버리는 나같은 불성실한 독자도 역주를 열심히 탐독할수 밖에 없는,
그래서 두가지의 이야기를 모두 소화해내야만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놓을수 없는 서스펜스까지 주다니....
어쩌면 소설을 이렇게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쓸수가 있는지?
이데아의 동굴" 소설이야기와 번역자의 이야기, 두가지 스토리를 따라가기에도 바빠서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는 그 엄청난 반전은 또 뭐란 말인지?
읽고나서 작가에게 속았다는 카타르시스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서,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피식피식 웃어버렸다.
 
철학에 빠삭하지 않은 독자라면 명확한 의미조차 희미한 "이데아"-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쯤이면 이데아가 무엇인지 우리는 몸소 느낄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나, 내 가족,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일상.
그런 것들은 지금과 똑같은 형태로 내 곁에 언제까지나 남아있을까.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사라질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종종 소설에서 발견할수 있다.
동굴에 갖혀 자신의 그림자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
진실이 아닌 허상을 믿고 있으면서도 무언가에 결박 당해있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한다.
현실이라는 동굴안에 갖쳐서 일상에 결박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플라톤의 동굴 우화는 이 작품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보다 알기 쉽게 녹아들어있다.
 
아아,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멋진 소설이 있는지 모르겠다!
근 몇년간 읽어본 소설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구성의 책이다!
촌스러운 표지에 실망하지 말고, 다소 난해한 제목에 겁먹지 말고,
이 책에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가끔은 책안에 주어진 어렵고 복잡한 과업에 시달려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지독히도 멋진 이야기라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9-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지다는 걸 철학땜에 늦게 읽었다니까요.

Apple 2006-09-1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말 재밌었어요.ㅠ ㅠ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