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의 동굴
호세 카를로스 소모사 지음, 김상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철학서라던가, 지나치게 철학에 얽매여있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책속에 크란토르의 말로 설명이 되어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비우더라도 마찬가지요. 언제나처럼 똑같은 사람들이지...
아테네 인들은...말장난이나 궤변, 텍스트나 대화에 대한 당신들의 열정 말이오!
듣고 읽고 단어를 풀이하고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논쟁과 반론을 만들어내며,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로 배우는 당신들의 방식 말이오!
아테네인들은...사유하며 음악을 듣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또한 글을 읽지도 쓰지도조차 못한 채 즐기며 고통받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더욱더 무수하지만 한 우두머리에 의해 지배받는 또 다른 나라요."  -p 015

간단히 말하자면, 철학자들의 현학적인 말이 듣다보면
요점없이 늘어놓는 현실성 떨어지는 궤변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이란 일상에서도 찾을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도 보편적인 진실이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나처럼 재미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 머리 아픈 주제가 잘 맞지 않는다.
이 책 "이데아의 동굴"은 내가 싫어하는 몇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철학자들의 현학적인 대화, 그리스 로마풍, 그리고 촌스러운 표지.
발간되자마자 충동적으로 내질러 버린 책인데, 애초에 내가 이 책을 왜 골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왜 사다놓고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후회가 된다.
 
내가 싫어하는 몇가지 중요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 책은 무척 훌륭하다!
액자식 구성의 책을 꽤 많이 읽어봤음에도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충격적인 구성의 소설을 본적이 없다!
소설도 소설이고, 주석도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추리를 따라가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트라마코스라는 소년이 늑대에게 찢겨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선생님 디아고라스는 해독자(탐정)인 헤라클래스에게 사건을 의뢰하게되고,
의문의 죽음이 몇건이 벌어지고 나서 결국 범인을 잡아들이지만,
헤라클레스는 이 사건의 본질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와 더불어, 이 이야기를 번역하는 번역자는 작품에 빨려들어가게 되면서,
이 작품속에 감추어진 에이데시스(소설속에서 반복되는 의미심장한 심상들.
이것을 찾아 연결지어보면 작가가 작품에 숨겨놓으려 했던 주제가 나타난단다.
실제로는 이런 개념이 없나보다.  사전에도 안 나와있다.)를 찾아
이 작품에 진정으로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이하게도, 번역하고 있는 상황과 똑같은 상황을 겪어가기도하고,
소설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소설은 상상하기 힘든 3중구조로 나뉘어지면서 마무리 짓는다.
 
액자로 박혀들어간 작자미상의 "이데아의 동굴"이라는 소설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그리고 역주는 대충 흘겨들어버리는 나같은 불성실한 독자도 역주를 열심히 탐독할수 밖에 없는,
그래서 두가지의 이야기를 모두 소화해내야만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놓을수 없는 서스펜스까지 주다니....
어쩌면 소설을 이렇게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쓸수가 있는지?
이데아의 동굴" 소설이야기와 번역자의 이야기, 두가지 스토리를 따라가기에도 바빠서
도저히 예상할 수도 없는 그 엄청난 반전은 또 뭐란 말인지?
읽고나서 작가에게 속았다는 카타르시스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서,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피식피식 웃어버렸다.
 
철학에 빠삭하지 않은 독자라면 명확한 의미조차 희미한 "이데아"-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쯤이면 이데아가 무엇인지 우리는 몸소 느낄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나, 내 가족,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일상.
그런 것들은 지금과 똑같은 형태로 내 곁에 언제까지나 남아있을까.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사라질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종종 소설에서 발견할수 있다.
동굴에 갖혀 자신의 그림자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
진실이 아닌 허상을 믿고 있으면서도 무언가에 결박 당해있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한다.
현실이라는 동굴안에 갖쳐서 일상에 결박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플라톤의 동굴 우화는 이 작품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보다 알기 쉽게 녹아들어있다.
 
아아,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멋진 소설이 있는지 모르겠다!
근 몇년간 읽어본 소설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충격적인 구성의 책이다!
촌스러운 표지에 실망하지 말고, 다소 난해한 제목에 겁먹지 말고,
이 책에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가끔은 책안에 주어진 어렵고 복잡한 과업에 시달려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지독히도 멋진 이야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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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지다는 걸 철학땜에 늦게 읽었다니까요.

Apple 2006-09-1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말 재밌었어요.ㅠ ㅠ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