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마을
로맹 사르두 지음, 이승재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좀 그만 붙어주었으면 하는 광고 카피중의 하나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의 비교이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한 추리물인 이책 "13번째 마을" 역시, 장미의 이름과의 비교가 되어있는데,
나 역시 장미의 이름을 재밌게 읽은 사람 중 하나이지만,
이런 비교는 이제는 좀 식상해지지 않았을까.
다빈치 코드가 성공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거의 휘몰아치는 기세로 가열차게 나오고 있는 팩션소설들중에
정말로 괜찮은 소설은 얼마나 될까 싶다.
 
추리소설인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설이 바로 이 "13번째 마을"이라는 소설.
그 잔혹도는 거의 공포영화 버금가고, 소설내에 시종일관 흐르는 서늘하고 음침한 분위기가 가미되어
나는, 이 소설을 꽤 무섭게, 그리고 꽤 재밌게 보았다.
 
재앙이라 부를수 있을 정도의 혹한이 몰아닥친 프랑스의 작은 마을 드라강 강가에서
절단된 채 흘러들어온 시체토막이 발견된다.
절단 난 조각을 모두 모아 보니, 한명의 어른과 쌍동이로 보이는 두명의 아이.
마을 사람들의 공포심이 채 누그러들기도 전에, 마을의 주교가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숲과 늪을 지나 존재하고 있으나, 낙오된 채 누구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13번째 교구 외르투루 마을.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후 거의 50년간 소식조차 끊기고, 들어갔던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않았다던
그 저주받은 땅으로 들어가려는 젊은 신부가 나타난다.
신부이나, 신에게만 의지하지는 않는 에노 기 신부와 그의 충실한 친구 둘은
낙후된 채 거의 원시에 가까운 삶을 이어가며, 마을로 들어서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알수 없는 마을 사람들과 대립을 하게된다.
 
한편, 죽은 주교의 제자인 쉬케는 스승의 시체를 고향에 묻어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데,
버려진 13번째 마을 외르투루에 관한 놀라운 사실과 맞딱뜨리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왕의 전설적인 기사 중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노기사 앙게랑이
처치곤란의 망나니 자식 아이마르의 죄를 덮고자 모든 재산과 지위를 환불하려 하다가,
대주교와 아들 아이마르를 놓고 딜을 하게된다.
아이마르는 책임질테니, 교회 대신 땅을 매입해달라는 것.
그리고 반항적이고 방종한 아이마르는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해 억지로 새사람이 되게 된다.
 
이 복잡한 사건들은 잊혀진 13번째 마을 외르투르와 관련된 것.
기억하기도 힘든 중세 프랑스 이름들과 세가지 이야기를 모두 소화해내며 따라가야하는 복잡한 구조인데도
소설은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꽤 난해하다.
중세시대에 기독교가 가졌던 권력과 그 권력의 오만을 보여주는 13번재 마을 사건.
그것을 덮으려던 주인공들은 진실을 겨우 겨우 밝혀내지만 모두 몰살당한다.
이제야 진실을 알았다 싶을 때 한꺼번에 몰아치는 살육전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글 초반에 말했듯이, 이 책은 무척 잔혹한데,
사지가 찢긴 채 발견되는 시체들이라던가,
썩어가는 스승의 시체를 파리까지 운송하기 위해서 구더기가 들끓기 시작한 시체를 잘라 식초로 씻는 장면,
교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인간 이하의 고문들 역시 잔혹하기 이를데 없지만,
정말로 무서웠던 것은 13번째 마을에 사는 원시적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어딘지 원초적인 것들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라틴어도, 불어도 아닌 말을 구사하며, 몰래 지하에서 기어나오는 사람들은 마치 좀비를 보는 듯
생경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것이든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해야하는 기독교는, 어쩌면 인류에게 이렇게 많은 상처를 안겨주었을까.
가끔씩 종교의 삐뚤어진 모습들을 관찰하다보면,
종교란 것은 우리가 상상도 할수 없는 절대 불변의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 자체를 믿는게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사이비와 다른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종교 자체가 신이 되어버린 것은 똑같은데.
대대로 내려오는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사이비 종교도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기독교는 피바람을 몰고 다닌다.
믿음이 없는 나로써는, 자신 이외의 신은 믿지 말라는 하나님도 믿을수 없고,
전쟁을 부추기는 하나님도 믿을수 없고, 재물을 바치라는 하나님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믿음으로 충만한 종교인들을 대할 때면 항상 신기하다.
 
작가의 중세시대에 대한 이해도도 좋았고,
어딘지 모르게 심기를 아주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도 마음에 들었으나,
문제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일단은 읽기는 불편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사건이 복잡한 만큼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고, 중세 프랑스 언어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나머지,
독자로써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꽤 버겹고,(등장인물들 이름은 왠만해서는 기억할 수 없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면모도 보이지만,
풀어가기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서늘한 스릴과 공포를 놓치 않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단점은 어느 정도 상쇄된다.
 
아아...중세미스테리는 어쩌면 이렇게도 음침한지.....
늪에 빠져서 환각같은 악몽이라도 보는 느낌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나는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아니라,
영화 "슬리피 할로우"와 "빌리지"의 이야기를 꺼내겠다.
 
p.s 작가가 프랑스 국민가수 미셀 사르두의 아들이고, 그의 대부가 그 유명한 알랭드롱이라니.......
정말 예술가 집안에서는 예술가가 태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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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글씨때문에 첨부터 잘읽을지 고민되던데 의외로 재미나더군요.. 정신없이 읽어내렸어요.. 장미의 이름과 비견된다고만 안했어도 괜찮은 책인데요.. 조금만 사실에 가깝더라도 기독교가 영향력을 이어내려오는 그 작태에 소름이 끼칩니다.

Apple 2006-10-2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름끼치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