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했거늘,
일본의 소설가 아비코 다케마루는 무엇이 살육에 이르는 병이라 말했을까.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살육에 이르는 병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수가 없다.
광기? 정신병? 또는 상처? 집착? 무엇일까?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이 소설 <살육에 이르는 병>은 독자를 엄청난 혼돈의 도가니로 빠뜨려버린다.
그러니까 살육에 이르는 병은 어쩌면 자아의 혼돈인지도 모르겠다.
 
"번개에 맞은것같은 경악"이라는둥,
'주의! 순서대로읽기를 권합니다. 절대로 결말이나 해석을 먼저 보지마세요."라는 둥,
" '나는 속지 않는다.'라고 자부하는 독자를 위한 마지막 한페이지! 모든것은 단 한줄로 허물어진다."라는 둥,
이 19세미만 구독불가 책을 꽁꽁 싸매고 있던 띠지의 말은
"절대로 속지 않겠어!"라고 다짐하는 독자에게 게임을 걸어오는 듯하다.
살포시 비웃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절대로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한줄 한줄 단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가뿐한 소설을 이보다 더 성의있을수 없게 읽어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속고 말았다!
엄청난 정독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줄로 나를 혼돈에 빠뜨려버리고,
"아! 그럼 처음 그 부분이 복선?"이라며 혼자 중얼대면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나가면서
과연 이 반전에 대한 단서가 충분한가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단서를 모두 확인한 후에, 한쪽으로만 머리를 굴렸던 나자신이
결국 속아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박수를 치며 웃을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엄청난 혼돈, 그리고 엄청난 카타르시스이다.
 
가모우 마사코는 자기아들이 범죄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가모우 미노루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마사코가 의심을 품기 시작하기 전부터이다.
히구치 다케오가 연쇄강간 살인마를 쫓기 시작한 것은 평소 알고지내던 간호사가
연쇄 살인마에게 살해당하고서부터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들을 의심하게 된 어머니 마사코,
시시하게 보이던 세상이 살육을 통한 성관계로 인해 더이상 시시해지지 않은 살인마 미노루,
사랑하던 아내가 죽은 후로 삶의 의미도 의욕도 잃어버린 히구치,
소설은 세 사람의 시점을 교차해나가며, 독자를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으로 끌고 들어오지만,
마지막 한페이지까지 독자는 이 이야기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지막 한줄, 그 한줄로 모든 이야기를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끔찍하고 잔학한 연쇄살인보다 훨씬 더 끔찍한, 상상도 하기 싫은 진실에 맞닥뜨리고,
혼돈에 빠져들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말이란 역시 끝까지 들어봐야한다는 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깨달았고,
사람의 편견이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게만드는지도 알았다.
그리고 제대로된 추리를 하려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문장들을 하나씩 뜯어서 봐야하는
수고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그런 수고따위 하지 않아도 뭐 어떠랴.
추리소설의 매력은 속아넘어가기 아닌가.
내 세계관까지 다 흔들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충격적인 카타르시스-
반전의 매력은 그런 것 아닌가.
 
사실 한방에 뒤집어진다는 말에 "벚꽃지는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다"를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그와 비슷한 추리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 점 역시 핀트가 엇나갔다.
그 마지막 한줄, 읽고나서 멍하니 약 2분간 그 문장만 뚫어져라 보며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조합해서 생각해보고, 또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 이야기를 다시 읽어봤지만,
빈틈없다. 단서는 충분했다. 그냥 나는 속아넘어간것이다.
앗하하하하하하하하하!!!!!!!!
최근 몇년간, 막판 반전으로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추리소설 몇권들이 나오긴 했지만,
단 한줄로 독자를 블랙홀로 떨어뜨려버리는 이 소설만큼 충격적이랴.
"벚꽃지는..."도, "점성술 살인사건"도, 스포일러 밭을 저벅저먹 걸으면서도 결코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던 이 반전에 비하면 그냥 흥미로운 정도랄까.
("벚꽃지는..."같은 경우에는 더군다나 반칙성이 짙었다.)
 
혼돈의 블랙홀속에서 허우적대면서 뒤늦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분에게,
심심한 일상을 날려버릴 뒷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받고 싶은 분에게, 무한 강추이다.
그리고 절대로 읽는 도중에 다른 것은 보지 말것. 절대로 뒷부분을 확인하려고 하지 말것.
나는 머릿속이 하예지다 못해 왠지 신나졌다!!!!!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p.s 작품이 무척 잔인하다고 해서 19세 미만 구독불가 딱지를 붙이고 나왔는데,
물론 무척 잔혹한 장면이 중반부쯤 등장하지만, 명성(???)만큼 잔인하지는 않으며
잔인한 부분의 분량도 길지 않으니, 고어하다는 말에 겁을 먹었던 사람들이라면 염두해두는 편이 좋겠다.
텐도 아라타의 <고독의 노랫소리>나 <가족사냥>을 읽을수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도 무난히 읽을수 있을 듯싶다.
딱 그 정도의 고어함인듯 싶다. (오히려 <고독의 노랫소리>쪽이 소름끼치는 면으로는 더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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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의 증언
사이먼 베케트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 주의!!
 
저녁때쯤에 이 책이 집으로 도착했고, 마침 입이 심심하던 차에 집에 있던 빵을 물고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약 2분후 먹고있던 빵을 슬며시 내려놓게 만들었던 책 <사체의 증언>.
내가 좋아하는 눅룩하고 우울한 비의 냄새보다는 주로 병원이나 수술실의 마취약 냄새가 풍기는
법의학 추리소설은 내 취향에 그닥 맞지 않아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는데,
첫장부터 이렇게 나를 경악하게 만들줄이야.....
영국의 시골마을 맨햄에서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부패한 시체를 두 아이들이 발견하면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미 썩어들어 가고 있는 시체의 묘사가 너무도 리얼해서
책을 보는 내내 밥맛을 잃었으니, 앞으로 이 책을 볼 사람들은 염두해두기를 바란다.
책을 보는 내내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과 소설 <폭스 이블>이 겹쳐서 보였다.
이 두 이미지를 섞어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수많은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에서는 작고 폐쇄적인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택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런 마을이 당연스레 지니고 있을 법한 보수적인 폐쇄성과
하나의 소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에서 있을수 있는 군중심리와
인간이 가진 악랄한 비열함을 보다 효과적이고 강하게 드러내줄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체의 증언>에 나오는 영국 시골마을 맨햄이 그렇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익히 알고 있고, 친하지 않아도 이름이나 가족내력까지 알고 있는-
하지만, 정작 조용하게 살던 누군가 집에서 조용히 죽어나가도 전혀 모르는 이상한 집단.
몇십년을 맨햄에서 살았어도 결국 그곳에서 태어나 사람이 아니면,
장기체류 여행자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타지사람들에게 배타적인 사람들이 이 맨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보수적인 곳에 한 남자가 온다.
한때는 법인류학자였던 데이빗은 도시에서 크게 상처받아 아무도 모르는 시골마을로 도피해
평범한 마을 의사로 살아가고 있으나 누구도 그를 맨햄 사람으로 여겨주지 않는다.
평소에 다소 친분이 있었던 여자의 살해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게 되고,
두번째, 세번째 피해자를 거치면서 그는 더이상 이 사건에서 빠져나올수 없게 된다.
시골 숲길에서 두 어린아이가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심심한듯 읽어나가다가
정말 무섭게 빨려들어서 끝을 확인할때까지 잠에 들수 없게 만들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결국 범인이 밝혀졌을때 의아하게 생각하며 의심을 품고 있던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이 잔혹한 사건, 의뭉스러운 속내와 화려하게 몰아닥치는 반전의 겉포장속에 숨겨진
지극히 인간적인 나약함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질투를 한다.
무척 소심하고 비겁한 못난 감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피해의식이나 질투심은 인간이 스스로 콘트롤 할수 없어 어쩔수 없는 감정중의 하나이다.
피해의식이 질투가 되고, 질투가 증오가 되고, 증오가 인간 혐오로까지 번지는 과정-
살면서 그런 극단적인 감정은 흔하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법의학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와닿는 부분이인데,  소설에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어서,
읽어내려가면서 묘하게 마음이 쓰렸다.
어쩌면 나도, 당신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다보면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그리고 어쩌면, 피해의식과 질투심이 정도가 넘어서면 어느 순간 이성을 놓아버리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감옥안에 갖혀 타인을 그어버리고 나도 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중반부까지 지나치게 드러냈던 것이 아닌가 했던 등장인물들의 과거의 상처들은
후에 그들이 겪게될 일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를 또다시 헤집어 내게 되며,
그런 상처가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들의 헤집어진 상처를 재밌어했던 나도
생각해보니 무척 잔인하다.
물론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인간의 관음적인 속성과
타인의 상처를 즐기는 잔인함을 기본으로 깔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속의 인물들이 다치게 되고, 마음이 점점 암울해지고 나서
구원도 무엇도 없이 끝나나 해서 진짜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이 빗나가서
다행이라며 웃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우울한대로 끝냈으면...하는 못된 바람도 조금 있었긴 하다.
새드엔딩의 여운이 오래가는 것은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봤던 무척 재밌는 소설이었다.
파리로 시작해서 파리로 끝나는, 파리의 역활이 무척 중요한 소설이었는데,
인간은 거짓말을 해도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나도 밥맛이 없는건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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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화차(火車)여..."
"화차?"
어리둥절해 있는 혼마를 보면서 이자카는 말을 이었다.
"화차여, 오늘은 우리 집을 스쳐 지나가더니 또 슬픈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이자카는 둥그런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어젯밤에 히사에하고 개인파산 얘기를 하다 문득 생각난 겁니다. 슈교쿠슈에 실린 옛노래죠."
 
돌고 도는 불수레. 그것은 운명의 수레인지도 모른다.
세키네 쇼코는 거기서 내리려고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내렸었다.
그러나 그녀가 되려고 했던 여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또 그 불수레에 올라타버렸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둠 속 저 끝을 향해 혼마는 물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대체 누구란 말인가?
-p127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삶이란 누구에게나 어렵다.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힘든 일중에는 참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저 종이나 동전일뿐인 돈때문에 힘든 일이야 말로 가장 대중적인 고민중 하나가 아닐까.
굳이 돈이 최고이고 돈이 모든 것이라 얘기할수는 없지만,
돈으로 인해 사람이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돈이 있다면, 떠나고 싶을 때 떠날수 있고, 사고 싶으면 살수 있다.
생활비를 벌지 않아도 된다면, 스트레스 받아가며 일할 필요도 없으니
직장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갑갑함을 느끼는 부분에서 돈은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돈이 많든, 적든 간에 돈은 이미 우리의 필요악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음껏 누릴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행복의 기본요건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어떤 때는 날지 못하는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들이 간혹 나타난다.
현재 당신은 행복하지 않지만, 앞으로 당신에게 행복을 보여줄수 있다고 손짓하는 달콤한 유혹.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욕심에 눈이 멀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공상속에서 꿈꾸던 것들이 더이상 꿈이 아니게 되었을 때, 사람은 댓가를 치루어야한다는 사실을.
대표적인 예가 "신용카드"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먹은 사람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카드빚에서 허덕여본 친구 한둘쯤은 만나보았을 것이다.
그래. 이 책 <화차>에서 말하듯이, 그들이 빚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조금은 행복해지겠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지금 당장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니, 눈앞에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고민은 그때 가서 하자.
스트레스 받은 나를 위해 내가 그 정도 무리한다고 해서 탈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조금더 행복해지고 싶다.
내게는 돈이 없지만, 저기 저 작은 플라스틱일 뿐인 신용카드는 내게 행복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에 알게되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 행복의 허상이었다는 것을.
그 허공의 행복은 후에 엄청난 빚더미로 불어나, 평범하게 살던 시절의 자신이 상상도 할수 없었던
불행의 늪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이런 늪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혼녀와 백화점에 결혼물품을 사러갔던 한 남자는 약혼녀가 카드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카드를 만들어주려다가 그녀가 한때 엄청난 빚을 졌던 신용불량자였으며,
현재는 개인파산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 사실을 다그쳐 묻는다.
그리고 악혼녀 세키야 쇼코는 사라져버린다.
다리를 총에 맞아 절뚝거리는 한 형사는 이 남자의 의뢰를 받아서 사라진 여자를 조사하던 도중에
그녀가 세키야 쇼코 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누군가 세키야 쇼코의 이름을 훔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사과정에서 밝혀지는 개인파산자 세키야 쇼코의 인생과 남의 인생을 훔쳐살고 있는 여자의 인생-
우리는 어느 것을 탓해야하는 것일까.
그녀들이 원했던 것은 그저 행복해지는 것일뿐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다만, 그녀들은 약지 못해서 허상의 날개를 그대로 믿고 있었기에 실수를 저지르고 만것이다.
책에 나오듯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치에 눈이 돌아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멍청할 정도로 착하고 마음이 약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지고도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늪에 빠진 신용불량자들을 질책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객관적으로 바라보아 인간으로써 공감이 갈수 있을 만큼, 그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불쌍해지는 이야기-
한순간의 실수로 이제는 되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두 여자의 삶.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에 동감을 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으로 읽어내려갔다.
 
사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화차>는 두번이나 출간되었는데도, 모두 품절이어서 무척 궁금해하고 있던 소설인데,
역시 내 선택과 기다림이 헛되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흥분하지 않고 조분조분 연쇄적인 과정을 풀이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미야베 미유키만한 일본작가가 없다.
부동산사기를 다룬 <이유>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재밌게 읽지 않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주고 싶다.
 
당신은 행복해지고 싶은가.
당신은 혹시 허상의 행복을 바라보고 실수한 적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세상에는 노력없이 얻어지는 공짜도,  행복도 없다는 것을 씁쓸하게나마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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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아기 밀리언셀러 클럽 57
아이라 레빈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새로 나온 책으로 다시 읽는 로즈메리의 아기.
인터넷으로 보면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보라색에서 검은 파란색 사이의 오묘한색깔의 바탕에,
핑크색으로 실루엣만 표시된 그림이 무척 예쁘다.
소설은 몇년전에 보았고,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악마의 씨"는 훨씬 그 전에 보아서
다 알만한 내용인데도, 다시 보는 로즈메리의 아기는 여전히 흥미진진 스릴 만점인데다가,
모르고 볼 때보다 훨씬 자세하게 감상하게 된다.
예전에 읽을때는 구조를 따라가느라 놓치고 지나갔던 세심한 부분들이 다시 보여서
오랜만에 익숙하면서도 즐거운 독서를 하게 되었다.
 
알려진대로, 이 소설은 오컬트 소설이다.
저 유명한 "오멘"의 데미안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같은.
그러나 "악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 보다는 인간사이에 친절이나 신뢰에 대한 배신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사람은 어느 순간 나이를 먹으면서 무조건적인 친절을 기피하게 된다.
세상에 부모가 아닌 이상, 남에게 무조건적으로 친절을 배푸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남에게 헌신이나 무조건적인 믿음을 기대하지 말 것- 이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경고이다.
 
고풍스러운 브램포드 아파트에 새로 이사오게된 신혼부부 로즈메리와 가이가
지나치게 친절한 노부부를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공포로 접어들어간다.
브램포드 아파트를 떠도는 항간의 소문들, 인육을 즐겨먹던 자매가 살았다거나,
지하실에서 영아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등의 소문들-이웃집 로만과 미니가 키우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태니스라는 약초,
강간당하는 악몽과 로즈메리의 불안한 임신, 세상이 나만 빼고는 모두 같이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
이 소설은 오컬트가 보여줄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도,
현실의 인간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공포심을 자극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 지나치게 친절한 이웃에 대한 불안감과 귀찮음, 남자의 출세욕,
믿었던 것에 대한 처절한 배신감.
만약 악마주의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소재 아닐까.
 
아이라 레빈의 소설은 재밌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말하고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한다.
이렇게 군말없이 긴장감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작가는 이 세상에 흔치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라 레빈의 소설이라고 해봤자 "로즈메리의 아기"와 "죽음의 키스"뿐이지만,
두 소설 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부를수 있을만한 멋진 소설들이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어째서 우리나라에 이렇게도 소개되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스텝포드 와이프"나 "슬리버"같은 유명한 영화들의 원작도 아이라 레빈인데 말이다.
좀더 많은 작품을 볼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스텝포드와이프 같은 경우에는 나올만도 한데....
 
임신에 대한 공포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로는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라는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을 찾는 사람들은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다섯째 아이"는 오컬트 소설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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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7-03-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멘말고 동명의 제목 영화도 있었지요? 아마.
보관함에 담습니다.
임신에 관련된 소설로는 <임신 캘린더>도 기억에 남습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도 메모.^^

Apple 2007-03-0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명의 제목이요? 악마의씨 말이신가...ㅇ.,ㅇ; 로즈메리의 아기라는 영화가 또 있었나요?
추천 감사합니다..^^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가 무심코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쿵!! 하는 엄청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최근 몇달간 읽은 소설중에서는 <핑거스미스>가 가장 두꺼운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핑거스미스>보다 더 크고 더 두꺼워 겁을 먹게 했던 <13번째 이야기>는
생각보다 두껍지도 않고,(종이가 더 두꺼웠을뿐....) 훨씬 재빨리 읽을수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 책방에서 시작된다.
책방 딸이자, 아마추어 전기작가이고, 도서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마가렛은
어느날 계단에 놓인 편지를 받게 된다.
어설픈 글씨로 써내려간 편지에는, 비다 윈터 여사의 인터뷰를 제안하는 내용이 써있다.
비다 윈터. 수십권의 책을 써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오랫동안 매스컴에 자신의 과거를 거짓말해왔던 여자.
그녀는 하필이면, 비다 윈터의 소설을 한권도 읽지 않았던 마가렛에게 전기소설을 써줄것을 부탁해온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비다 윈터의 소설에 탐닉하게 된 마가렛.
커다란 대저택과 까탈스럽게 그지 없는 노인 비다 윈터 여사.
어린 시절 쌍둥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마가렛은 비다윈터 여사의 쌍둥이 소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고,
그녀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작가 다이안 세터필드는 불어를 전공하고 프랑스 문학에 심취되어있다가,
소위 <고딕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에 빠지게 되었다는데,
그녀의 나이 마흔 한살에 쓴 <13번째 이야기>는 어린 시절, 음울하고 낭만적인 고딕소설에 빠졌던 시절을
떠오르게 할만한 소설이다.
고딕소설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황무지, 음울한 저택, 쌍둥이, 정신질환, 근친상간,
삐뚤어진 가족들, 집착과 광기, 그림자, 비밀, 안개, 비-이 소설에는 이 모든 것이 등장하는데,
의외로 읽으면서 고딕소설다운 음울함이나 우울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고딕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되었고,
작품에 드리워진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산하고 울적하다기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
 
작가가 살짝 뒤늦게 고딕소설에 빠져서인지, 고딕소설의 전형적인 그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고, 너무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제인 에어>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제인 에어의 영향력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 점에서는 살짝 실망스럽다.
(개인적으로 제인에어를 내 생애 최고의 소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제인에어를 표방하고 나와버리면 살짝 꼬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책임에도 인상적이지 못한 이유는 카리스카의 부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척 괜찮은 책이었다.
이야기의 몰입도나 완성도도 무척 훌륭하고, 이야기의 얼개 또한 흥미롭다.
 
어른이 되어서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누구의 어린 시절이나 하나의 글로 묶어놓으면 모두 드라마가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하는 방법으로 태몽을 이야기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가족들이 내 꿈을 꾼다-
그런 것 자체가 이미 무척 재밌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하나의 이야기인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또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 수많은 이야기를 놓치며 살아가다가 죽게되어있다.
 
이 소설속에서는 쌍둥이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쌍둥이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나가 되어야할 아기가 둘로 나뉘어 태어진다-그 사실 자체의 신비한 점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쌍둥이의 영혼은 통해있다느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텔레파시로 알수 있을 것만 같고,
하나가 아프면 또 하나가 같이 아프다는- 그런 이야기말이다.
쌍둥이가 아니어서 사실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쌍둥이의 신화가 신비로운 것은 나뿐만이 아닌가보다.
 
영화 <헤드윅>에 나오는 노래 Origin of Love(사랑의 기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 옛적에는 두 사람이 하나로 붙어있었다는 이야기.
두쌍의 팔과 두쌍의 다리를 가지고,  때로는 남자와 여자로, 때로는 여자와 여자로, 남자와 남자로 붙어있었고,
불벼락이 쳐 두명이었던 사람을 갈라놓아, 둘로 갈라진 사람들이
서로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발견하고 알아보게 되는 것,
그 심장을 관통해버린 몸의 상처를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쌍둥이의 삶의 신화는 어쩌면 자신의 어딘가 텅비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허무함과 외로움에 둘이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게 아닐까.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상처 자욱을 맞추어 보면
완전한 하나가 될수 있다는 이야기.
신비롭지만 꽤 쓸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우연히 알게된 쌍둥이의 죽음을 알게되고, 자매의 그리움에 언제나 텅빈것같았던
마가렛의 이야기이며, 둘이어야 완전했던 쌍둥이 에멀린과 에덜린의 이야기이고,
놀랍게도, 역시 쌍둥이인 번역자 이진의 애정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속의 두쌍의 쌍둥이와 현실의 쌍둥이들의 놀라운 필연.
애초에 관심있었던 고딕소설의 로망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소설속의 이야기와 현실, 그리고 진짜 현실의 고리를 이어나가는 재밌고도,
어딘지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제작중이라는데, 관심있게 지켜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미 이미지가 마음속에 그려지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열세번째 이야기 中, 비다윈터의 <변형과 절망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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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23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Apple 2007-02-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재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