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화차(火車)여..."
"화차?"
어리둥절해 있는 혼마를 보면서 이자카는 말을 이었다.
"화차여, 오늘은 우리 집을 스쳐 지나가더니 또 슬픈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이자카는 둥그런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어젯밤에 히사에하고 개인파산 얘기를 하다 문득 생각난 겁니다. 슈교쿠슈에 실린 옛노래죠."
 
돌고 도는 불수레. 그것은 운명의 수레인지도 모른다.
세키네 쇼코는 거기서 내리려고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내렸었다.
그러나 그녀가 되려고 했던 여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또 그 불수레에 올라타버렸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둠 속 저 끝을 향해 혼마는 물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대체 누구란 말인가?
-p127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삶이란 누구에게나 어렵다.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힘든 일중에는 참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저 종이나 동전일뿐인 돈때문에 힘든 일이야 말로 가장 대중적인 고민중 하나가 아닐까.
굳이 돈이 최고이고 돈이 모든 것이라 얘기할수는 없지만,
돈으로 인해 사람이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돈이 있다면, 떠나고 싶을 때 떠날수 있고, 사고 싶으면 살수 있다.
생활비를 벌지 않아도 된다면, 스트레스 받아가며 일할 필요도 없으니
직장을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갑갑함을 느끼는 부분에서 돈은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돈이 많든, 적든 간에 돈은 이미 우리의 필요악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음껏 누릴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행복의 기본요건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어떤 때는 날지 못하는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들이 간혹 나타난다.
현재 당신은 행복하지 않지만, 앞으로 당신에게 행복을 보여줄수 있다고 손짓하는 달콤한 유혹.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욕심에 눈이 멀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공상속에서 꿈꾸던 것들이 더이상 꿈이 아니게 되었을 때, 사람은 댓가를 치루어야한다는 사실을.
대표적인 예가 "신용카드"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먹은 사람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카드빚에서 허덕여본 친구 한둘쯤은 만나보았을 것이다.
그래. 이 책 <화차>에서 말하듯이, 그들이 빚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조금은 행복해지겠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맛있는 것을 먹으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다.
지금 당장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니, 눈앞에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고민은 그때 가서 하자.
스트레스 받은 나를 위해 내가 그 정도 무리한다고 해서 탈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조금더 행복해지고 싶다.
내게는 돈이 없지만, 저기 저 작은 플라스틱일 뿐인 신용카드는 내게 행복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에 알게되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 행복의 허상이었다는 것을.
그 허공의 행복은 후에 엄청난 빚더미로 불어나, 평범하게 살던 시절의 자신이 상상도 할수 없었던
불행의 늪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이런 늪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혼녀와 백화점에 결혼물품을 사러갔던 한 남자는 약혼녀가 카드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카드를 만들어주려다가 그녀가 한때 엄청난 빚을 졌던 신용불량자였으며,
현재는 개인파산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 사실을 다그쳐 묻는다.
그리고 악혼녀 세키야 쇼코는 사라져버린다.
다리를 총에 맞아 절뚝거리는 한 형사는 이 남자의 의뢰를 받아서 사라진 여자를 조사하던 도중에
그녀가 세키야 쇼코 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누군가 세키야 쇼코의 이름을 훔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사과정에서 밝혀지는 개인파산자 세키야 쇼코의 인생과 남의 인생을 훔쳐살고 있는 여자의 인생-
우리는 어느 것을 탓해야하는 것일까.
그녀들이 원했던 것은 그저 행복해지는 것일뿐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다만, 그녀들은 약지 못해서 허상의 날개를 그대로 믿고 있었기에 실수를 저지르고 만것이다.
책에 나오듯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치에 눈이 돌아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멍청할 정도로 착하고 마음이 약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지고도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늪에 빠진 신용불량자들을 질책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객관적으로 바라보아 인간으로써 공감이 갈수 있을 만큼, 그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불쌍해지는 이야기-
한순간의 실수로 이제는 되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두 여자의 삶.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에 동감을 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으로 읽어내려갔다.
 
사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화차>는 두번이나 출간되었는데도, 모두 품절이어서 무척 궁금해하고 있던 소설인데,
역시 내 선택과 기다림이 헛되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흥분하지 않고 조분조분 연쇄적인 과정을 풀이해나가는 데 있어서는 미야베 미유키만한 일본작가가 없다.
부동산사기를 다룬 <이유>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재밌게 읽지 않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주고 싶다.
 
당신은 행복해지고 싶은가.
당신은 혹시 허상의 행복을 바라보고 실수한 적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세상에는 노력없이 얻어지는 공짜도,  행복도 없다는 것을 씁쓸하게나마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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