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의 증언
사이먼 베케트 지음, 남명성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 주의!!
 
저녁때쯤에 이 책이 집으로 도착했고, 마침 입이 심심하던 차에 집에 있던 빵을 물고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약 2분후 먹고있던 빵을 슬며시 내려놓게 만들었던 책 <사체의 증언>.
내가 좋아하는 눅룩하고 우울한 비의 냄새보다는 주로 병원이나 수술실의 마취약 냄새가 풍기는
법의학 추리소설은 내 취향에 그닥 맞지 않아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는데,
첫장부터 이렇게 나를 경악하게 만들줄이야.....
영국의 시골마을 맨햄에서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고 부패한 시체를 두 아이들이 발견하면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미 썩어들어 가고 있는 시체의 묘사가 너무도 리얼해서
책을 보는 내내 밥맛을 잃었으니, 앞으로 이 책을 볼 사람들은 염두해두기를 바란다.
책을 보는 내내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과 소설 <폭스 이블>이 겹쳐서 보였다.
이 두 이미지를 섞어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수많은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에서는 작고 폐쇄적인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택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런 마을이 당연스레 지니고 있을 법한 보수적인 폐쇄성과
하나의 소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에서 있을수 있는 군중심리와
인간이 가진 악랄한 비열함을 보다 효과적이고 강하게 드러내줄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체의 증언>에 나오는 영국 시골마을 맨햄이 그렇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익히 알고 있고, 친하지 않아도 이름이나 가족내력까지 알고 있는-
하지만, 정작 조용하게 살던 누군가 집에서 조용히 죽어나가도 전혀 모르는 이상한 집단.
몇십년을 맨햄에서 살았어도 결국 그곳에서 태어나 사람이 아니면,
장기체류 여행자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타지사람들에게 배타적인 사람들이 이 맨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보수적인 곳에 한 남자가 온다.
한때는 법인류학자였던 데이빗은 도시에서 크게 상처받아 아무도 모르는 시골마을로 도피해
평범한 마을 의사로 살아가고 있으나 누구도 그를 맨햄 사람으로 여겨주지 않는다.
평소에 다소 친분이 있었던 여자의 살해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게 되고,
두번째, 세번째 피해자를 거치면서 그는 더이상 이 사건에서 빠져나올수 없게 된다.
시골 숲길에서 두 어린아이가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심심한듯 읽어나가다가
정말 무섭게 빨려들어서 끝을 확인할때까지 잠에 들수 없게 만들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결국 범인이 밝혀졌을때 의아하게 생각하며 의심을 품고 있던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이 잔혹한 사건, 의뭉스러운 속내와 화려하게 몰아닥치는 반전의 겉포장속에 숨겨진
지극히 인간적인 나약함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질투를 한다.
무척 소심하고 비겁한 못난 감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피해의식이나 질투심은 인간이 스스로 콘트롤 할수 없어 어쩔수 없는 감정중의 하나이다.
피해의식이 질투가 되고, 질투가 증오가 되고, 증오가 인간 혐오로까지 번지는 과정-
살면서 그런 극단적인 감정은 흔하다는 것 또한 모두가 알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극단적인 감정의 변화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법의학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와닿는 부분이인데,  소설에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어서,
읽어내려가면서 묘하게 마음이 쓰렸다.
어쩌면 나도, 당신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다보면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그리고 어쩌면, 피해의식과 질투심이 정도가 넘어서면 어느 순간 이성을 놓아버리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감옥안에 갖혀 타인을 그어버리고 나도 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중반부까지 지나치게 드러냈던 것이 아닌가 했던 등장인물들의 과거의 상처들은
후에 그들이 겪게될 일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를 또다시 헤집어 내게 되며,
그런 상처가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들의 헤집어진 상처를 재밌어했던 나도
생각해보니 무척 잔인하다.
물론 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인간의 관음적인 속성과
타인의 상처를 즐기는 잔인함을 기본으로 깔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속의 인물들이 다치게 되고, 마음이 점점 암울해지고 나서
구원도 무엇도 없이 끝나나 해서 진짜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이 빗나가서
다행이라며 웃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렇게 우울한대로 끝냈으면...하는 못된 바람도 조금 있었긴 하다.
새드엔딩의 여운이 오래가는 것은 사실이니까.
 
어쨌거나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봤던 무척 재밌는 소설이었다.
파리로 시작해서 파리로 끝나는, 파리의 역활이 무척 중요한 소설이었는데,
인간은 거짓말을 해도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나도 밥맛이 없는건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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