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틱 리버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1
데니스 루헤인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우울하다"는 상태와 "우울증"은 다른 말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우울할 때의 자신의 상태를 "우울증"으로 규정짓는다.
왜일까. 우울증이란 것은 보통 가벼운 정신질환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감정변화가 아닌데 말이다.
우울증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병이고, 흔히 생각하는 멜랑꼴리한 감정과는 엄연히 다른데다가
합병증도 유발하며, 치료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아주 큰 병인데 말이다.
어쩌면 모두들 자신의 상태를 조금 더 오버함으로써,
거기서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읽을 때
늘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 우울한 소설도 많고, 더 심각한 소설도 많은데 왜 일까.
단지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다는 것만으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텐데...
나는 "우울하다"와 "우울증"을 구분하는 기준은 "죄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잘못 태어난 기분. 괜히 살아있는 기분. 내 존재자체가 죄가 되는 기분-
또는 모든 것이 나의 잘못으로 인해 틀어졌다고 느끼는 자책감같은 것-
이런 기분이 들어서야 "우울하다"는 "우울증"으로 불뤼우는 것이라고-나는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로써는, 보통의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와
견딜수없이 극도로 우울해져 살아있는 의미조차 희미할때의 상태를 비교해 볼 때 보통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이 "우울증"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언제나 이 작가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죄의식"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희미한 사과냄새로 기억은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 착하고 배경좋은 숀, 거칠고 정의감 넘치는 지미,
그리고 가진 것이 없어서 나약한 데이브-
함께 논다기 보다 늘 "따라다니게" 되어버리는 나약한 친구 데이브가 두 남자에게 유괴가 되고,
몇일후 데이브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만, 과연 그것이 다일까.
어찌된 일인지, 매일같이 붙어다니던 세녀석들은 데이브가 돌아온 날 이후로 서로 어색해지고 만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게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내면에 아무일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25년 후, 일찍 결혼한 지미의 딸이 시체가 되어 나타나고,
어린 시절 두 남자에게 납치당했던 데이브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딘지 불안해보이는 정신세계를 가진 데이브.
사실은 지미의 딸과는 먼 친척관계로 아주 좋은 사이였음에도 데이브의 행동에는 미심쩍은 데가 있고,
결국 모두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짐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그러나 자살해버리기에는 삶의 집착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데이브의 죄의식과 우울.
그때 데이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가끔씩 마음이 아파져버리는 착한 숀.
그리고 결국은 자신이 죄를 만들어버리는 지미.
<미스틱 리버>속의 세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이 죄책감들은 굴레를 돌듯이 한명 한명에게 옮겨 붙는다.
책속의 말처럼, "그건 한번 몸속으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종류의 데미지를 가진 심각한 정신의 상처인 것이다.
다들 괜찮은 듯이 살고 있어도, 결국은 모두가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일그러지고, 깨어진다.
 
 
데니스 루헤인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마음속에 담아두고 평생을 시달리면서 살지 모르는 마음의 상처들과 
그것이 유발하는 아픈 감정을 비교적 효과적인 방식으로 잘 표현해낸다는 데 있다.
만약에 그의 소설에 충격적인 범인이라던지, 반전이라든지 하는 자극적인 부분이 없었다면,
데니스 루헤인이 그저그런 소설가가 될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말로 꺼내어 보면 아무것도 안될지도 모르는 감정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글쓰기는 아니다.
불쌍해도 동정하고 싶지 않은, 나약하면서도 동시에 이기적인, 착해보여도 결국은 자기밖에 모르는
누구나에게나 존재하는 빛과 어둠의 이중성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점 역시,
데니스 루헤인의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상상할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결론을 내려버리는 소설들이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런 부류에 속하겠다.
사실 몇년전 영화도 보았고, 책도 보아서 새삼스러울 것 없는데도,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마음속에 스미는 어둠을 어쩔수가 없더라.
 
 
p.s 데니스 루헤인은 제목을 정말 잘짓는다.
소설 자체의 제목 뿐만이 아니라, 챕터의 제목마저도 마음에 잔향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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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월드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혜원 옮김 / 마루&마야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바쁜 와중에 무척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리얼 월드의 출간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최근 일본 미스테리 소설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져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에는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몇안되는 좋아하는 일본 작가의 소설들도 함께 쏟아져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희열에 가까운 기분이 아닐까.
작년 이맘때쯤에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열렬히 읽었었는데, 올봄에도 그렇게 될듯 싶다.
곧 나올 "잔학기" "암보스 문도스" "다크" 그리고 이미 다 읽었지만, "아웃"까지-
두근대면서 기다려도 좋을 너무나 좋아하는 기리노 월드~

몇개의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의 공통점은 4명의 여자가 등장해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설명하는 점인데,
워낙 무시무시한 심리표현으로도 유명한 이 작가의 히로인들은 하나같이 서슬이 시퍼렇고,
방종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에 솔직하면서도, 겉으로 꾸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없이 이기적이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되는, 그게 지나쳐 괴물이 되기도 하는 여자들.
인간적으로 공감은 되나, 동정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가끔은 읽는 독자를 자괴감에 빠뜨린다.
<리얼 월드> 역시 4명의 여자가 등장해 하나씩 돌아가며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그로테스크>나 <아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들이 소녀라는 점이다.
훨씬 더 치기어리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며, 무모하다.
그래서 동정할 가치가 더더욱 생기지 않는다.
희한한 일이지만, 내가 학생이던 시절, 주위의 소녀들을 글로 써냈다면,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의 여자, 특히 소녀라 불뤼우는 어린 여자들의 경우에는 온다리쿠 소설에 등장하는 미소녀 군단들처럼
신비롭고 소녀다우며, 환상에 가득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온다리쿠쪽은 남자의 환상에 가깝지 않나 싶다. 또는 소녀들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부분쯤-)
좀더 위험한 방식으로, 위험한 욕망을 품으며, 겁이 나는 동시에 무모해지는 것이 현실의 소녀가 아닐까.

호리닌나라는 재밌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고3 소녀 도시코는 어느 무더운 여름 학원으로 향하는 길에
옆집에 사는 남자아이를 만나고, 소년은 이례적으로 도시코에게 날씨에 대한 말을 걸어온다.
도시코는 길쭉하고 깡마르고 까만 소년에게 마음속으로 미미즈(지렁이)라는 별명을 붙여본다.
그리고 그날, 자전거와 핸드폰을 도난당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집 아주머니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잃어버린 자전거와 자전거에 두었던 핸드폰을 가져간 사람은 "미미즈"라는 별명을 붙여보았던 옆집 소년.
어찌된 일인지, 도시코는 소년과 접전하게 되고, 그녀의 세 친구들 역시 미미즈를 맞딱뜨리게 된다.
그저 치기어린 호기심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죽인 기분은 어떨까"하는....
냉정하고 무서운 생각이지만, 저마다의 다른 감정을 품고 소녀들은 하나씩 미미즈를 만나게 된다.

타인의 욕망을 상상하는 것.
소녀들이 저지른 무모한 사건의 내막은 겨우 그런 것이다.
딱히 정의감이 있어서 살인자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고,
동갑내기 소년이기에 거창하게 "살인자"라고 부르고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겁을 먹지도 않았다.
단지, 살인자의 심리가 궁금해서-
이미 어른이 된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생각이 아닐수 없다.
가장 기리노 나쓰오다운 원초적인 욕망이 주는 섬뜩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네 소녀들은 살인자를 맞딱뜨리고 좀더 직선적인 "리얼월드"를 맛보기를 바랬을런지 몰라도,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리얼월드"가 아니라, 그저 "환타지"일뿐이다.

네소녀가 각기 저마다 마음속으로 친구들을 향해 "너는 날 몰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이,
자신들은 이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있지만, 사실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고 너희들이 모르는 나만의 세계가 있다며,
자신을 특별한 상황으로 몰고가, 나름대로의 비극적인 특권의식을 체득하고
아무리 친한 너희라도 절대로 내 정체를 모를거라 상상하는 것 역시, 자신만의 착각이었듯이 말이다.
세상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가면을 만든다는 소녀들의 생각 역시,
어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이다운 치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가면이라는 인식은 있지 않은가.
어느 순간부터 가면이 그대로 자신이 되어버리는 어른이 되어버린 후의 그들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어떻게 떠올릴까.

직접 세상으로 나와본적 없는 소녀들의 리얼월드에의 착각과 비현실적인 욕망들이 부딪히면서 벌어지는 일들-
터프하고 러프하고 비참할정도로 이기적인 여자들의 심리를 조각조각 기워넣어, 하나가 완성되는 이야기.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에서 많이도 등장하는 바이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주제들이 식상하지 않다.
여자로써는 볼 때마다 마음이 찔끔거리는 날카로운 구석이 늘 존재하기 때문일까.
그간의 기리노 나쓰오 소설 부류중에서는 <그로테스크>와 가장 가까운 형식의 책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볍고, 보고난 후의 찝찝한 뒷맛도 없는 소설이지만,
그래서인지 소설이 임팩트는 부족한 편이고,
특히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할지도 몰랐던 데라우치에 대한 묘사가 흐지부지한 편이 있어서 그 점은 아쉽지만,
뭐라도 좋으니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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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3 밀리언셀러 클럽 21
에드 맥베인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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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대로 시리즈중에 가장 재밌는 3편.
기분때문인지, 1,2편과 좀 다른 방향의 단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상할정도로 기분이 좋아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워보이는 남자와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가 만나
예상외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 에드맥베인의 "즐겁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해,
매력적인 강도와 그에게 매료된 채 아내를 잃어버리는줄도 모르는 남자의 대결구도가 돋보이는
존 루츠의 "너무 젊고 부유해서 죽은 사나이"까지-
언제나 그렇듯 재밌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 단편집의 묘미(?)에서 좀 벗어나
전체적으로 훌륭한 단편들이 모여있는 그야말로 서스펜스 걸작선.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단편은  "즐겁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번스타인 죽이기", "이것이 죽음이다"
"울타리 뒤의 여자", "재수 옴 붙은 날" "협곡너머의 이웃" "너무 젊고 부유해서 죽은 사나이"정도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만 평가하자면 "추억의 유물"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다.

*즐겁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모두가 즐거워야할 크리스마스.
어느 바에 한 남자가 기분좋은 얼굴로 앉아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건다.
시시콜콜 고민이 뭔지 물어보며 귀찮게 따라붙는 남자에게 질릴대로 질려 협박을 해도 소용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서 오지랖이 넓어진 남자와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의 대결구도가
팽팽한 긴장을 자아내는 단편이지만, 흐지부지한 결말부분이 아쉽다.

*번스타인 죽이기
임팩트있고 입에 잘 달라붙는 제목부터 단편의 흐름, 몰입도, 내용성-
모든 것이 "바로 이것이 단편이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훌륭한 단편이다.
아무리 하룻밤 사랑이라지만, 날이 밝자 무섭도록 차가워진 직장상사 미스 번스타인.
남자는 지난 밤을 깡그리 잊어버린 듯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 번스타인을 끝내 죽여버리고 마는데,
희한하다. 죽였던 여자가 내일이면 또 돌아온다. 그것도 세번이나.
이 단편은 흐름과 몰입도, 의외의 결말까지 모든 것이 단편으로써는 완벽하다.
개인적으로는 장황하게 문체를 늘어놓거나, 설명하는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문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 들어보는 할런 앨리슨의 문체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른 책도 볼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것이 죽음이다
제목 그대로의 단편이다. 죽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단편.
이 단편은 한 남자가 자괴감에 빠져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가 자살하기까지의 동기와 과정을 보여준 후에, 자신이 죽은 방에서 영원한 고통속에 빠져 살게된다는
다소 우울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독백으로 보여준다.
뭔가 가슴이 아파지는 단편으로 이 단편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울타리 뒤의 여자
마초성 가득한 작품으로 악명이 높은 미키스필레인의 단편이다.
아직 미키 스필레인의 다른 책을 보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이 단편에서만큼은
지독한 마초성은 발견하기 힘들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온순해보이던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늘 가로막고 빼앗기만 하는 친구에게
복수를 해주는 이야기이다.
결말부분에서 극단적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의외성의 결말이 무척 괜찮았다.

*재수 옴 붙은 날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제목이 붙은 단편은 거의 재밌었던 것 같다.
하나의 소품으로 훌륭한  "재수 옴붙은 날"은 서스펜스와 코믹한 분위기가 멋진 단편이다.
어느날 아내의 옛사랑에게서 온 편지를 훔쳐보게 된 남자,
아내와 차안에 갖혀 강도를 당하는데, 아내를 인질로 잡히고 강도에게 줄 돈을 뽑으러 은행으로 가던 도중
또 강도를 만나고....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아내와의 오해도 풀고, 나름대로 해피엔딩이 되는데,
과정이 무척 재밌는 단편이었다.

*협곡너머의 이웃
"협곡너머의 이웃"은 추리단편이라기보다는 공포나 미스테리쪽에 가까운데,
몇년전 개봉한 "숨바꼭질"이나 환상특급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폐쇄적인 한 가정, 옆집으로 이사온 사람들에게 매료되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어린 딸,
그리고 의외의 섬뜩한 결말. 재밌다.

*너무 젊고 부유해서 죽은 사나이
옆집에 유명한 강도가 살고 있다면 당신이라면 어쩔것인가.
게다가 그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호남형 인간이라면...
한 신혼부부가 옆집에 사는 남자가 강도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이 강도라고 떳떳히 밝히는 이 남자에게 빠져든다.
경찰에서는 그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 도움을 청하지만,
옆집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게된 부부는 어딘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데,
급기야 아내가 옆집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화자의 의문으로 마무리 짓는 이 단편은 다시 되돌아가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단편이다.

 

*추억의 유물
씁쓸한 뒷맛, 우울한 기분, 어딘지 그립고 황망한 느낌이 드는,
이 책 전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으로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철도 없고 패기만만했던 10대 시절, 그녀는 한 스타의 열광적인 팬이었고, 그의 음악에 울고 웃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여자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가진 미혼모로, 웨이트리스를 해가며 근근히 살아가는데,
그런 그녀의 앞에 왕년에 그렇게나 흠모하던 스타가 나타났다.
다 망가지고 지쳐, 과거의 영광에 대한 허망한 꿈밖에 남지 않은 추한 몰골로 말이다.
유일하게 자신이 예전에 스타였다는 것을 알아본 여자에게 남자는 의지하기 시작하고,
그녀는 추억의 유물로써, 그리고 지금은 다 망가져 쓰레기통에 버려진 어린 시절의 인형을 대하듯이
그를 위로 하기 시작한다.
이 쓸쓸한 관계성과 그런 분위기에 몹시 잘 어울리는 문체, 마무리까지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시리즈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3편.
유독 마음에 드는 단편도 많았고, 전체적인 느낌이 상당히 좋아서 뭐 하나 집을수 없을 정도로
거의 다 재밌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추억의 유물"은 다 읽고 나서 한번 더 읽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날때마다 들쳐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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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4-2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집은 좋은 거 몇편에 만족해야 하나봐요^^

Apple 2007-04-21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건 또 거의다 재밌어요..^^헤헤...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2 밀리언셀러 클럽 20
로버트 블록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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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의 모든 단편집이 그렇겠지만, 단편집에 실리 단편들중에서는 재밌는 것도 있고 재미없는 것도 있다.
그런데도 단편집이 재밌는 이유는 그 재밌는 단편들 몇 개는 왠만한 장편 소설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참을성이 없어져 가는지, 집중력이 떨어져 가는지, 요즘은 장편보다 단편집에 더 끌리고 있어서
이것저것 재밌는 단편집을 찾아보다가 소스가 떨어질 때쯤, 결국 작년에 읽었던 서스펜스 걸작선 2권을 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1권이 별로 재미없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재밌게 읽었던 몇몇 작품들-
"숨겨갖고 들어가다"나 "원칙의 문제", "주말 여행객"같은 작품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
재미없게 읽지도 않은 듯.
2권은 1권보다 편수는 많지만, 전체적인 단편들의 임팩트는 조금 부족했다.
재밌었던 작품으로는 "우리 시대의 삶" "인터폴: 현대판 메두사 사건" "시적인 정의" "붉은 흙"이었는데,
루스랜들 여사의 "불타는 종말"만 하랴.
 
"불타는 종말"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병수발하는 농부의 아내가 등장한다.
무심한 남편은 어머니 병수발은 커녕 집안일에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제 결혼하려는 시동생 내외에게 병수발을 함께 들어주지 않겠느냐 부탁했다가 거절당하고,
치매걸린 시어머니는 내내 욕하고 부시고, 문제만 일으키고, 한주부의 갑갑한 생활상이 공개된다.
내내 주인공 여자가 미치거나, 시어머니를 살해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단편이 진행되고,
사고로 집이 불이 타버리고, 시어머니가 죽은 후에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아, 이처럼 재밌는 단편이라니....
루스 랜들의 소설은 <내 눈에는 악마가>밖에 읽어보지 않았고,
다른 작품들이 마구 궁금해질 정도로 임팩트가 큰 소설은 아니었는데,
이 단편을 읽어보니, 루스 랜들의 다른 작품들이 무척 궁금해졌다.
 
<사이코>의 원작자 로버트 블록의 단편 "우리 시대의 삶"에서는 타임캡슐이 등장한다.
연극의 한커트를 보는 듯한 이 단편에는 두 남녀가 등장해 타임캡슐에 담아둘
우리 시대의 삶을 대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마지막으로 타임캡슐에 담기는 건 과연 무엇이 될까.
단편다운 마무리로 깔끔한 단편이었고, 개인적으로 <사이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로버트 블록의 다른 이야기를 볼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인터폴: 현대판 메두사 사건"은 거의 유일하게 트릭이 등장하는 단편인데,
메두사의 탈을 쓰고, 메두사의 연기를 하는 배우가 연극이 끝나고 난후에 정말로 목이 잘려서 발견되고,
세바스찬 블루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진 형사가 등장해 범인과 트릭을 밝혀내는 소설인데,
다소 단순하고 평범한 감이 없지 않지만, 묘하게 글이 마음에 들어서 괜찮은 단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적인 정의"는 시와 소설이 번갈아가며 등장해 평생을 남의 등을 처먹고, 남의 능력을 이용하며
살아와 결국은 최고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한 남자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용당하는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무리쯤에서는 동정심을 뒤집어 엎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지막 한줄로 단편의 방향을 아주 달리하는 멋진 단편이었다.
만약, 이 단편이 장편이었더라면, 조금 억지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단편의 마무리는 확실히 마지막 한페이지의 한방이 역시 중요한 듯 싶다.
 
"붉은 흙"은 "불타는 종말"다음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인데,
추리보다는 기억속의 첫사랑, 오래전에 사랑했던 여인을 추억하는 모습이 꽤 아름답게 그려져서
오히려 묘사력과 분위기 연출에 끌렸던 작품이다.
마을의 누구나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고,
마을에서 그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이 자살해버린다.
사람들은 끝없이 그녀를 뒤에서 살인자라 욕하고, 한때 그녀를 사랑했던 아버지를 둔 한 소년은
여자를 지켜보고, 자신 역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 단편은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레나>라는 영화를 많이 떠오르게 하는데,
그 영화를 좋아했듯이, 이 단편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
애매모호하게 다시 한번 이야기를 되짚어볼 여지를 남기는 마무리도 좋았다.
 
 
자, 이제 3권을 읽으면 된다.
2권을 읽고 3권의 작가진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기대되는 작가도 많고,
단편의 경우에는 페이지가 많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들의 길이도 적당하니 좋아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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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2 - 개정판
찰스 디킨스 지음, 윤혜준 옮김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에 내동생에게 "넌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라고 놀리면 어김없이 동생은 울었는데,
악랄한 누나였던 나는 그게 재밌어서 수도없이 그렇게 놀리곤 했다.
똑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내게 "넌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라는 말을 해도,
나는 꿈쩍도 않고, 설사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뭐 어떠냐고 답문하곤 했다.
부모없는 고아로 자란다는 것. 나를 낳아준 사람을 본적도 없다는 것.
그런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고 삶을 힘들게 하는지 지금은 알고 있다. 아니, 그때도 알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소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제인에어, 소공녀의 세라, 비밀의 화원의 메리.
어린 시절의 나를 사로잡았던 소설들속의 주인공은 모두 고아였다. (심지어는 캔디도 고아였다.)
어쩌면 어린 마음에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자신뿐 아무도 없는, 근본을 알지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거나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거나- 어린 마음에 그런 것이 무척 환상적이고 멋진 일로 보여졌을지도.

어린 시절 무척 좋아했던 소설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어린 시절 내가 어떤 부분을 굉장히 환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알수 있고,
어린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감성은 역시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제인에어를 읽었을 때는, 로체스터씨를 아주아주 멋지고 잘생긴,
그러나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진 남자로 기억하고 있었고,
제인에어를 외모는 평범하나 의지가 강하고 자기자신을 잘 지켜내며,
운명의 굴레를 극복해낸 강인하고 멋진 여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 기억속의 이미지는 대부분 맞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제인에어는 참 나 좋을대로 멋대로 기억하고 있었구나...하는 부분이 많았다.
미남이라고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던 로체스터씨의 큰 얼굴(!!!)에대한 묘사라던가,
각져있고 까칠하기 그지 없는 제인에어의 성격은 강인한 동시에
실제 인물로 만나면 살짝 짜증날것같은 인상을 풍겼다.
얼마 살아보지 않은 아이가 상상하는 것이라고는,
거의 외면적인 것에 그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십수년만에 올리버트위스트를 다시 읽었는데, 또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에 고아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겪는 올리버 트위스트-
어쩌면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모험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시 읽어본 올리버 트위스트는,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 보다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돌아가고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쩌면 당연히도 수동적인 어린아이일수 밖에 없었는데도,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괴롭히는 악당들 페이긴과 싸익스 말고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도 못했다.
그 나이에 맞는 사고방식에 따라 수많은 오류를 범한 기억을 기억하고 있던 것을 확인하고
은근히 웃음이 났달까.

단지 어린아이의 역경 극복 모험기라기보다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부패해있던 당시 런던의 사회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놓고,
문제를 제시했던 앞서가는 작가 찰스 디킨스.
어른이 되어서 본 올리버 트위스트는, 오히려 환상적인 어린아이의 모험담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꺼리고 싶어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
음울한 배경묘사는 말할 것도 없이 멋있었고, (이런 것 좋아함!!)
고상하고 또 몰인정한 상류층 귀족들을 겨냥해 대놓고 질타해 버리는 디킨스의 용기 또한 멋있다.
당시에는 "당대 최고의 작가"의 호칭을 받기도 했지만,
책을 읽을 정도의 지적 교육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던 귀족들에게는 무척 미움을 사기도 했을것같다.

언제 읽어도 명작은 명작이고 고전은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책.
최근 들어 사이코패스니 뭐니 해서, 비양심에 겁도 없는 원초적 살인자들이 출몰하는 소설, 영화등이 참 많아서인지,
소설속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끝까지 괴롭히는 페이긴과 싸익스는 그나마 인간적이었다.
적어도 그사람들은 양심은 있었고, 누군가를 죽여놓고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역사상, 어린이의 인권이 가장 보호받았던 시절은 지금뿐이라지만,
전체적인 인류의 심성은 훨씬 더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닐까.

p.s p.s 우수번역본이라 자랑하는 책이어서인지, 꼼꼼한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다만, 책을 좀 예쁘게 만들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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