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2 - 개정판
찰스 디킨스 지음, 윤혜준 옮김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에 내동생에게 "넌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라고 놀리면 어김없이 동생은 울었는데,
악랄한 누나였던 나는 그게 재밌어서 수도없이 그렇게 놀리곤 했다.
똑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내게 "넌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라는 말을 해도,
나는 꿈쩍도 않고, 설사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뭐 어떠냐고 답문하곤 했다.
부모없는 고아로 자란다는 것. 나를 낳아준 사람을 본적도 없다는 것.
그런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고 삶을 힘들게 하는지 지금은 알고 있다. 아니, 그때도 알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소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제인에어, 소공녀의 세라, 비밀의 화원의 메리.
어린 시절의 나를 사로잡았던 소설들속의 주인공은 모두 고아였다. (심지어는 캔디도 고아였다.)
어쩌면 어린 마음에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자신뿐 아무도 없는, 근본을 알지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거나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거나- 어린 마음에 그런 것이 무척 환상적이고 멋진 일로 보여졌을지도.

어린 시절 무척 좋아했던 소설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어린 시절 내가 어떤 부분을 굉장히 환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알수 있고,
어린 아이의 감성과 어른의 감성은 역시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제인에어를 읽었을 때는, 로체스터씨를 아주아주 멋지고 잘생긴,
그러나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진 남자로 기억하고 있었고,
제인에어를 외모는 평범하나 의지가 강하고 자기자신을 잘 지켜내며,
운명의 굴레를 극복해낸 강인하고 멋진 여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 기억속의 이미지는 대부분 맞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제인에어는 참 나 좋을대로 멋대로 기억하고 있었구나...하는 부분이 많았다.
미남이라고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던 로체스터씨의 큰 얼굴(!!!)에대한 묘사라던가,
각져있고 까칠하기 그지 없는 제인에어의 성격은 강인한 동시에
실제 인물로 만나면 살짝 짜증날것같은 인상을 풍겼다.
얼마 살아보지 않은 아이가 상상하는 것이라고는,
거의 외면적인 것에 그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십수년만에 올리버트위스트를 다시 읽었는데, 또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에 고아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겪는 올리버 트위스트-
어쩌면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모험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시 읽어본 올리버 트위스트는, 주인공 올리버 트위스트 보다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돌아가고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쩌면 당연히도 수동적인 어린아이일수 밖에 없었는데도,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괴롭히는 악당들 페이긴과 싸익스 말고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도 못했다.
그 나이에 맞는 사고방식에 따라 수많은 오류를 범한 기억을 기억하고 있던 것을 확인하고
은근히 웃음이 났달까.

단지 어린아이의 역경 극복 모험기라기보다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부패해있던 당시 런던의 사회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놓고,
문제를 제시했던 앞서가는 작가 찰스 디킨스.
어른이 되어서 본 올리버 트위스트는, 오히려 환상적인 어린아이의 모험담이라기보다는
누구나 꺼리고 싶어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
음울한 배경묘사는 말할 것도 없이 멋있었고, (이런 것 좋아함!!)
고상하고 또 몰인정한 상류층 귀족들을 겨냥해 대놓고 질타해 버리는 디킨스의 용기 또한 멋있다.
당시에는 "당대 최고의 작가"의 호칭을 받기도 했지만,
책을 읽을 정도의 지적 교육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던 귀족들에게는 무척 미움을 사기도 했을것같다.

언제 읽어도 명작은 명작이고 고전은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책.
최근 들어 사이코패스니 뭐니 해서, 비양심에 겁도 없는 원초적 살인자들이 출몰하는 소설, 영화등이 참 많아서인지,
소설속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끝까지 괴롭히는 페이긴과 싸익스는 그나마 인간적이었다.
적어도 그사람들은 양심은 있었고, 누군가를 죽여놓고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역사상, 어린이의 인권이 가장 보호받았던 시절은 지금뿐이라지만,
전체적인 인류의 심성은 훨씬 더 메말라 가는 것이 아닐까.

p.s p.s 우수번역본이라 자랑하는 책이어서인지, 꼼꼼한 번역은 정말 훌륭하다.
다만, 책을 좀 예쁘게 만들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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