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틱 리버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1
데니스 루헤인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우울하다"는 상태와 "우울증"은 다른 말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우울할 때의 자신의 상태를 "우울증"으로 규정짓는다.
왜일까. 우울증이란 것은 보통 가벼운 정신질환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감정변화가 아닌데 말이다.
우울증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병이고, 흔히 생각하는 멜랑꼴리한 감정과는 엄연히 다른데다가
합병증도 유발하며, 치료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아주 큰 병인데 말이다.
어쩌면 모두들 자신의 상태를 조금 더 오버함으로써,
거기서 나타나는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읽을 때
늘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 우울한 소설도 많고, 더 심각한 소설도 많은데 왜 일까.
단지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다는 것만으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텐데...
나는 "우울하다"와 "우울증"을 구분하는 기준은 "죄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잘못 태어난 기분. 괜히 살아있는 기분. 내 존재자체가 죄가 되는 기분-
또는 모든 것이 나의 잘못으로 인해 틀어졌다고 느끼는 자책감같은 것-
이런 기분이 들어서야 "우울하다"는 "우울증"으로 불뤼우는 것이라고-나는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로써는, 보통의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와
견딜수없이 극도로 우울해져 살아있는 의미조차 희미할때의 상태를 비교해 볼 때 보통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이 "우울증"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언제나 이 작가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죄의식"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희미한 사과냄새로 기억은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 착하고 배경좋은 숀, 거칠고 정의감 넘치는 지미,
그리고 가진 것이 없어서 나약한 데이브-
함께 논다기 보다 늘 "따라다니게" 되어버리는 나약한 친구 데이브가 두 남자에게 유괴가 되고,
몇일후 데이브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만, 과연 그것이 다일까.
어찌된 일인지, 매일같이 붙어다니던 세녀석들은 데이브가 돌아온 날 이후로 서로 어색해지고 만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게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내면에 아무일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25년 후, 일찍 결혼한 지미의 딸이 시체가 되어 나타나고,
어린 시절 두 남자에게 납치당했던 데이브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딘지 불안해보이는 정신세계를 가진 데이브.
사실은 지미의 딸과는 먼 친척관계로 아주 좋은 사이였음에도 데이브의 행동에는 미심쩍은 데가 있고,
결국 모두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짐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그러나 자살해버리기에는 삶의 집착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데이브의 죄의식과 우울.
그때 데이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가끔씩 마음이 아파져버리는 착한 숀.
그리고 결국은 자신이 죄를 만들어버리는 지미.
<미스틱 리버>속의 세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이 죄책감들은 굴레를 돌듯이 한명 한명에게 옮겨 붙는다.
책속의 말처럼, "그건 한번 몸속으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종류의 데미지를 가진 심각한 정신의 상처인 것이다.
다들 괜찮은 듯이 살고 있어도, 결국은 모두가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일그러지고, 깨어진다.
 
 
데니스 루헤인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마음속에 담아두고 평생을 시달리면서 살지 모르는 마음의 상처들과 
그것이 유발하는 아픈 감정을 비교적 효과적인 방식으로 잘 표현해낸다는 데 있다.
만약에 그의 소설에 충격적인 범인이라던지, 반전이라든지 하는 자극적인 부분이 없었다면,
데니스 루헤인이 그저그런 소설가가 될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말로 꺼내어 보면 아무것도 안될지도 모르는 감정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글쓰기는 아니다.
불쌍해도 동정하고 싶지 않은, 나약하면서도 동시에 이기적인, 착해보여도 결국은 자기밖에 모르는
누구나에게나 존재하는 빛과 어둠의 이중성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점 역시,
데니스 루헤인의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상상할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결론을 내려버리는 소설들이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런 부류에 속하겠다.
사실 몇년전 영화도 보았고, 책도 보아서 새삼스러울 것 없는데도,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마음속에 스미는 어둠을 어쩔수가 없더라.
 
 
p.s 데니스 루헤인은 제목을 정말 잘짓는다.
소설 자체의 제목 뿐만이 아니라, 챕터의 제목마저도 마음에 잔향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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