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더더욱이, 원하든 원치않든 다소 세상에서 동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더 그렇지 않을까.
 
조용하게 삶을 영위해나가던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의 인생은
어느날 동료교사가 추천해준 영화 한편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주 의미심장하게 추천한 그저그런 시시한 영화에 그의 삶이 흔들린 이유는
영화속에서 비중없는 한 무명배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똑같이 닮아버린 그 사람-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그의 존재에 자신의 존재감이 흔들려버리고,
무모하게 그의 존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독일의 도플갱어 전설에 따르면 세상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두명 더 있다고 한다.
얼굴에서부터 누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 내 고유의 지문까지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 역시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처럼 그의 존재를 확인하려 애쓰지 않을까.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증명할수 있는 증거가 얼마나 될까.
자신에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사람이라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수 있을까.
나는 그것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 의해서 증명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고, '나'를 알고 있으며, 나의 성격과 취향,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부모, 사랑하는 사람, 친구에 의해서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증명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닮아서 그들도 헤깔릴 지경이라면- 그리고 나를 똑닮은 누군가가 나를 연기하고 있다면,
그래도 증명될수 있을까.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에서 존재의 증명이 되는 것은 바로 옷이다.
외형으로 존재감이 흔들리고, 또다시 외형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책에서는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은 존재 증명이 될수 없다. 그들 역시 나의 존재감을 헤깔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인간불신주의에다가, 비관적인 생각일수 있겠다.
고작 바꿔입은 옷 하나로,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버린다.
그 속에 존재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는, 타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하면서 고개가 기웃거리면서도, 일면 수긍할수도 있는 이야기.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그의 도플갱어와 자신을 두고 "복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외형이 똑같은 것으로 내가 흔들려버린다는 얘기는 어쩌면 세상에 너무도 비슷한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외형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 복제처럼 동일한 감각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그래서 껍데기 뿐인 외형이 똑같아져버리면, 구분할수 없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그것이 일괄된 사회성의 폐해가 아닐까.

중반 부분의 흐름이 너무나 더디어서 읽기가 버겨웠는데, 속도감있는 후반부에서야 정신을 쏙 빼놓고 볼수 있었다.
띄어쓰기, 따옴표 표식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지루한 흐름을 느끼거나,
순간의 이야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그 책을 그만 읽어야하는 뜻이 되기도 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순간의 이야기를 놓쳐버리면 곧 흐름을 놓쳐버리고 헤메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척 더디고 힘든 독서였지만, 흐름을 잃지 않아서 후반부에서야 내가 주제 사라마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느릿느릿 흘러가다 어느 순간 쥐도새도 모르게 반전을 맞이하고,
소설 내내 정체성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만다.
의문을 던져놓고, 해결하기도 전에 또다른 의문을 던져놓는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눈먼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에서 말하고자하는
우리가 인간이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인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이기 위한 조건으로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수치심,
<동굴>에서는 진실에의 탐구, <도플갱어>에서는 자신의 존재증명욕구를 제시한다.
인간을 인간으로써 바라보고자 하는 주제 사람마구의 소설들은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역설적이지만,
대부분은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인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그의 또다른 도플갱어인 자신의 책들에서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인간을 좋아할수도 있지만, 자신과 다른 인간을 동경할수도 있다.
내가 주제 사라마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절대로 가지지 못할 그 어떤 것이 그에게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눈뜬 자들의 도시>로 건너가볼까.
눈먼 사회에서 눈뜬 사회로- 그러나 언제나 눈멀어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해
주제 사라마구 할아버지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7-06-1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 사라마구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ㅜ.ㅜ

Apple 2007-06-1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뷰 다쓰고 다른 리뷰 훔쳐보는데, 물만두님 리뷰도 보이더라고용...흐흣...
 
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으로 발간된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
암보스 문도스는 쿠바에 있는 호텔 이름이라고 한다. 양쪽의 세계. 새롭고 낡은 두개의 세계를 뜻한다고.
무슨 호텔 이름을 이렇게 거창하게 지었나 싶지만, 꽤 멋진 이름 아닌가.
꼭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다른 세상을 만날 것처럼.
"식림"부터 표제인 :암보스 문도스"까지 기리노 나쓰오의 7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은 처음보는데, 장편못지 않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멋진 단편들이다.
 
 
*식림
전형적인 기리노 나쓰오식의 젊은 여자가 등장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자신의 외모를 폄하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따돌림 받은 듯한 분노를
마음속에 가득채웠지만, 실은 질투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스물네살의 아르바이트생.
자기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자주 오가는 곳은 아르바이트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화장품 판매점.
아줌마도 오가지만 예쁜 아가씨들도 오가고
화장을 전혀하지 않아도 나이 자체로 빛나는 10대 소녀들도 오가는 곳.
 
주인공은 늘 불만에 차있다.
기가 약해서 겨우 여고생일뿐인 동료 알바생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얕보는 것 같고,
결혼한 오빠 내외가 경제적인 이유로 집으로 들어오면서 자기 집에서도 눈치를 봐야한다.
그리던 어느날 발견한 것이다. 보잘것없이 초라한 자신에게 일어났던 드라마틱한 어린 시절의 사건을.
그 기억을 떠올리고, 주인공은 세상의 엑스트라이기만 하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대책없이 자신만만해 지는데...
 
전형적인 기리노나쓰오 타입의 단편이다.
세상을 향해 마음속으로 혼자 내지르는 소심하고 집요한 분노.
피해자와 가해자가 맞물리고 세상에 더 거대하고 영구적인 복수를 꿈꾸며 악연의 꼬리를 물고 무는 단편.
멋지다. 그리고 무척 어둡다.
 
*루비
한때 직장인이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30대의 노숙자가 공원 벤치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있는 여자를 줍는다.
오랜만에 섹스를 할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는 남자, 그런데 왠일인가.
루비를 다른 아저씨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필리핀 여배우 이름을 따서 여자에게 루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은 루비를 공유하기로 한다.
공원에 떠도는 고양이처럼.
 
노숙자들의 성적인 문제와 여자를 공유한다는 개념이 등장해 낯선 불편함을 주는 단편인데,
묘하게도 전체 단편들중에서 무게감이 가장 가벼운 편이라
불편하면서도 가볍게 읽었던 것같다.(?)
 
*괴물들의 야회
오랫동안 유부남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년의 여자.
사랑하는 것은 자신뿐이며, 아내와 이혼하고 함께 살자던 남자는 도무지 가정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비관한 여자는
남자를 집에 가두고, 남자의 집으로 처들어간다.
 
<사랑과 전쟁>을 보는듯한 단편인데, 속도감과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앞뒤로 꽉 막혀있는 갑갑한 상황 설정과 속도감으로 숨이 막히도록 달려나가는 단편.
비극적인 결말에서는 마구 달리다 한순간 멈춰버린 듯한 기분마저든다.
불륜 얘기처럼 속물적이고 호기심 동하는 얘기도 세상에 없나보다.
불륜 드라마에 열광하는 아줌마들에게 뭐라고 할게 아니다. 이 단편을 보는 나도 피가 끓었다.
 
*사랑의 섬
전혀 친할것같지 않은 직장동료 여자셋이 여행을 떠난다.
여행중에 기이한 에스테틱 체험을 받고나서, 그날밤 세 여자는 자신의 첫경험에 대해서 털어놓는다.
 
여자들의 수다가 전부인 소설인데, 7편의 단편들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노골적인 단편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충격적인 경험 얘기들을 꺼내놓을수가...
언젠가 나도 친구들에게 이런 걸 물어볼까...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
모르는 게 약이다. 아이고.....이 아줌마들이 정말....
 
*부도의 숲
천재적인 소설가인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동료 소설가.
세 어른들사이에서 복잡다난한 가정사를 겪으며 커온 여자가 어느 날 친아버지 회고록을 부탁받는다.
여자는 단칼에 거절을 해버리고, 그녀의 현재 이야기와 두 소설가와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는
이 단편집 중 드라마성이 가장 짙은 단편이다.
다른 소설들과는 느낌을 좀 달리해서 날카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겉에서 보여지는 사람의 모습과 인간의 본성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살다보면 그럴때가 있지 않나.
어느 누가 보아도 더없이 친절하고 다정하고 착한 사람인데,
어느 순간 그 무딘 친절이 독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고 느끼는 순간.
 
*독동
유일하게 기리노 나쓰오답지 않은 단편인데, 이 이야기는 꼭 괴담같은 느낌이 든다.
독 독(毒)자에 아이 동(童)자. 독을 가진 아이가 독동.
절에 사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주지인 새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와 새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남동생,
그리고 절에 눌러붙어 새아버지와 남동생을 증오하면서 살아온 여자.
어느날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여자에게 다가와 10만엔을 주면 자신의 아들 독동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우는 순간 사람을 죽여버리는 아이.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리노 나쓰오의 그간의 소설들과 비교해 새롭긴 하지만,
어딘지 좀 어설퍼서 그다지 마음에 드는 단편은 아니었다.
 
 
*암보스 문도스
양쪽의 세계. 암보스 문도스.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신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교감과 사랑에 빠진다.
여름방학을 맞아 둘이 몰래 쿠바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는데,
여행을 다녀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상한 상황이 두사람을 반긴다.
여자가 담임으로 맡고 있던 반 아이가 강변에서 추락해 죽은 것.
함께 있던 네 친구들은 어쩔줄 모른 채 밤새 아이를 위로해주었고, 다음날 아침 발견되었을 때는
아이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었다.
담임과 교감으로써의 책임을 묻는 부모들을 볼 면목이 없어졌음은 물론,
불륜 사실이 세상에 밝혀져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고, 더이상 만날수도 없게 되어버렸고,
사랑하던 교감 선생님은 자살까지 해버리는데....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단편이다.
어른의 악의에 비해 어린아이들의 악의가 훨씬 더 잔혹하고 섬뜩해서 일까.
미스테리한 전개, 악의를 품은 아이들의 리얼한 세계가 더해져 기리노 나쓰오다운 차갑고 음울한 단편이 완성되었다.
읽으면서 <라이프>라는 일본 만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여자아이들의 이지매의 무시무시함이 그 만화에서 너무 공포스럽게 그려졌기 때문일까.
아아, 이런 세상은 좀 없어졌으면.....
 
 
인간의 독기와 악, 음모와 비밀, 욕망들이 잘 파해쳐진 그야말로 기리노 나쓰오다운 단편들로 꽉꽉 차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괴물들의 야회>와 <사랑의 섬>, <암보스 문도스>이지만, 사실은 다 재밌었다.
비릿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섬뜩한 초리얼 하드보일드-.
가끔씩 기리노 나쓰오의 살아온 인생과 인생관, 사람을 관찰하는 모습이 대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하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인간 심리를 파해치면 과연 인간을 좋아할수 있을까...하는 상상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멀쩡한 가정생활을 하는 어머니 아닌가.)
기리노 나쓰오는 주인공들을 호감을 가질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파해치고
인간심리의 악취미성을 메스로 찢어 눈앞에 들이민다.(왠지 찢어발긴다는 격렬한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또 그 모습이 발가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민망하기 그지 없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않겠다.
무섭고도 멋진 사람. 참 독특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기로운 2007-05-2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보관함에 담아요.. 참, 추천마이리뷰에 오르신거 축하해요^^*

Apple 2007-05-2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마이리뷰...그런것도 있나요?-_-;;
즐거운 독서되기를 바랍니다.
 
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를 싫어한다.
어쩌면 사실은 믿고 있던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을 져버렸다는 실망과 배신감보다
거짓말에 현혹되어 잠시나마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이 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은 그렇게 철썩같이 100% 누군가를 믿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거짓말을 의연히 바라보고 있지도 않는다.
나 역시 속는 기분, 내가 지고 들어가는 기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거짓말 자체보다 거짓말을 들키는 멍청함이 싫은 것이다.
들키는 순간부터 거짓말은 정말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
영원히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나름대로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거짓말을 증오한다면서, 우리는 수많은 거짓말을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TV속의 달콤한 드라마의 거짓말, 소설속의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말,
그림속에 영화속에 만화속에 존재하는 진실을 은폐해버리는 거짓말들.
인간이 만든 이야기와 상징물, 예술작품은 사실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꼭 진실처럼 보이는 정말 멋들어진 거짓말.
 
현실을 토대로 만들어낸 아주 소름끼치지만 근사한 거짓말-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들은 종종 그렇게 출발한다.
<그로테스크>가 그랬고, 이 소설 <잔학기>가 그렇다.
2000년 가을, 일본에서 일어난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잔학기>는
고작 열살때, 공장노동자에게 유괴당하고, 1년간 감금되어 살아왔던 여류 소설가 고미 나루미가
남편을 통해 출판사에 <잔학기>라는 소설을 넘기면서 시작된다.
어린 소녀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온세상은 발칵 뒤집혔는데도,
유괴되어 감금된 열살짜리 아이의 세상은, 귀청을 뚫을 정도로 시끄럽게  들려오는 공장 소음과
더럽고 불결한 냄새들,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찬 망상만이 덩그라니 놓인 좁은 방처럼 협소하다.
 
1년후 기적적으로 아이는 돌아오지만, 이로써 끝일까.
방안에 갖혀 유괴범에게 살해당하는 상상을 했던 악몽같은 시간을 이제 다시 겪지 않아도 되어도,
사실은 1년간 유괴범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궁금할 뿐인 사람들의 저속한 호기심에 노출된 현실 역시
악몽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오래도록 시달리고, 진실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입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왜 일까.
이제 다 지나왔는데, 주위에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뿐인데,
자꾸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은.
낮에는 착한 아이를 가장하고, 밤에 몰래 침대속에 숨어 점점 더 어두워지는 망상을 끼워맞추고
스스로 악몽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몹시 무서운 일이다.
누구나에게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가끔 어린 시절을 꽤나 따뜻한 정경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진다.
무섭지도 않을까. 내가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게.
시간이 너무 오래지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라 믿고 있는 것이,
정확한 기억인지 아니면 시간을 지나오면서 내가 키워온 망상인지 알수 없다는 것이 무섭지도 않을까.
소설속의 말처럼, 오래된 과거의 시간은 그림자속에 있는데 말이다.
미래를 알수 없는 것처럼, 지나온 시간 역시 어스름한 암흑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는 참 무섭다.
내 기억의 온전함을 객관적으로 믿을수가 없기 때문에, 가끔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기억을 떠올리는
내 뇌를 믿고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지나온 시간을 두려워하는 나를 건드렸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과없이 들려준다.
내가 주인공과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살아와서가 아니다.
다만, 주인공이 진실을 떠올리려는 과정, 너무나 두려운데도 자꾸만 상상해서 온전한 그림을
맞추어보려는 노력- 그것이 너무 아프고 무서웠다.
한때, 어느 순간 떠오른 몹시 이상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내가 무척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것처럼.
없다가 있던 기억이라 낯설고 생경한 느낌에 공포에 떨었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차라리 거짓으로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사실에 기대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게이코는 상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점 더 암흑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그리고 그것 역시 진실은 아니라는 것 역시 본인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상상 역시 유괴당했다 돌아온 게이코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처럼
게이코 나름대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저속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무엇이 진실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믿는 것은 사실이지 진실은 아니지 않나.
어쩌면 진실은 타인의 거짓말을 알아버리는 것 이상으로 더 불쾌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뚜렷한 진실을 바라보는 것만큼 낯설고 두려운 것은 없다.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게이코의 망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울고 있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중에 굳이 연계해보자면 "부드러운 볼"과 가장 흡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맹새코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작품이다.
(물론 내가 "부드러운 볼"도 몹시 좋아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무섭고 슬프다. 아마도 기리노 나쓰오 소설중에 가장 슬픈 것같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중에 <그로테스크>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무섭기로는 이쪽이 더 하고,
토할 것처럼 울렁거리는데다가, 게다가 슬프기까지 하다.
무섭고 슬퍼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대단한 작가이다.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런 상상까지 해낼수 있을까.
상상하는 것 이상의 최악의 결론을 내버리고,
그 결론이 다소 쌩뚱맞고 낯선 다른 소설들(그로테스크나 아웃같은-)과 달리
이 소설은 납득이 되기 때문에 더 슬프고 괴로워진다.
가장 최근 소설이라 그런지, 글쓰는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느낌도 든다.
외면의 독기는 조금 빠졌지만, 고독한 내면의 독기는 더 심해진,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솔직한 글쓰기라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다른 소설에 비해 유독 주인공이 많이 울고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냥 기분탓일까.
기리노 나쓰오가 <잔학기>에서 집어든 칼은 세상이나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숨죽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은 서글프고 바보같은 망상으로
자신을 그어버리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신을 베어버리는 것, 그 아픈 작업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시길...
 
후폭풍도 쎄지만, 읽는 내내 이 불쾌함과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슬픔과 잔학함에 괴로워지는 <잔학기>.
두렵고 괴롭지만 직시해야하는 일들. 혼자 마음속으로 털어놓는 추악하고 슬픈 욕망들.
기리노 나쓰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명작중의 명작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불합리한 경험을 겪었던 아이는 반드시 뭔가로 정신의 결함이나 마음의 상처를 메우려는 일을 시도하지.
아닌가?
그래서 결함은 오히려 멋진 거야.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아 어른이 된다는 건 불가능해.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기, 마음속의 어둡고 위험한 욕망,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휘둘러지는 폭력으로 일그러진
11가지의 이야기 <애니멀 크래커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이 근질근질해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아내와 헤어진 남자의 이야기-표제작인 <애니멀 크래커스>가
시작될 때부터 그랬다.
남자는 코끼리 발 아래 슬그머니 자기 머리를 들이밀고, 코끼리가 머리를 땅바닥에 슬며시 굴린다.
차가운 시멘트에 뺨을 대고 뱅골보리수를 상상하고, 그제서야 슬픔이 조금 가신다.
 
왜일까. 무슨 뜻으로 이런 엔딩을 해버렸을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도 이성에서 멀어져 마음속의 어두운 마음에 귀기울인 사람들로 가득찬 기이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대다수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기이하거나 특이한 사람들-주위에 있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모두 마음속의 어둠에 쩔어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상실감을 시달리고 있다.
마음속에 구멍이 나버려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구멍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저지르는 것처럼 말이다.
떠나간 남자친구의 뱀을 해부하고 삶아 자신의 뱀을 찾으러 돌아온 남자친구에게
식사로 뱀튀김을 대접하는 여자의 이야기도 그렇고,
선대부터 이어진 폭력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이 너무도 부족해
이 악순환을 또 되풀이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사람을를 무한 반복으로
양산해낼지 모르는 꼬마아이의 이야기도 그렇고,
자신이 잘못해 폭력을 저질러 아내를 떠나보냈고 멈춰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같은 남자도 그렇고,
첫사랑을 실패로 끝내고 청부살인자의 길을 걷던 남자가
다시 만난 첫사랑 여자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느낄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렇다.
 
엽기적이거나 비상식적인 행위의 이유를 알수없어서 머리로는 이해할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감정적인 동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느낌이 계속 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린, 정체를 알수 없는 어떤 것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어쩌면 아주 비슷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도 없고 눈물도 없는 감정없이 메마르기만 한 문체덕인지,
모든 이야기가 건조하고, 섬뜩하며 한편으로는 서글프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건조한 문체의 가장 큰 장점은 종이짝같은 문장들의 나열속에서
"나는 외롭다"같은 솔직하고 감정적인 표현이 매우 단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버리면
순간 마음이 젖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요즘은 이렇게 글을 쓰는 작가를 그다지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참신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어렵다.
두서없이 풀어놓은 이야기처럼 느껴져서이기도 하고,
무언가 구멍나 메꿔지지 않는 듯한 정체를 알수없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되어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낯설고 정체가 모호하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나보다.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어떻게 동물세계와 연결지어 상징해놓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몇몇 이야기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확실히 파악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희한하게도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멀 크래커스>, <홈 스위트 홈>, <그해의 히트맨>, <토크터키>
<당신 삶의 뱀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방법>, <폭력의 집>이 인상적이었는데,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 무의미해보이는 행위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뭔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위험하고, 쓸쓸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잊을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잊혀지지가 않아서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 잊지 말아야한다고 은연중에 각인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잊을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겨우 잊혀졌다고 생각하게 되어서야 알게된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고, 이름이 가물가물하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억 자체라는 것을 알게되고,
잊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잊을수가 없었던 거라고.
어떤 사람들은 기억을 하나씩 새로 써 내려가며 하루하루, 한 사람 한사람에 충실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잊혀지지 않음을 괴로워하면서도 사실은 늘 과거에 충실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닮은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인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닮은 사람들을 좋아했다.
서로 거울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상처가 너무나 닮아서 그 사람의 외로움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내가 안아주고 나를 안아줄수 있는 사람.
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을 좋아했고, 언제나 함께 있고 싶었고,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가 바라본 것은 바라보고자 했던 것임을.
나는 바보였고, 집착했고, 다를 바 없이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정도의
구차하고 유치한 사람밖에 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근본적으로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래서 내가 갈기 갈기 찢겨나가는 것같은 아픔을 느끼고,
그제서야 그것은 사랑과 아주 닮은 다른 어떤 것이었음을 시인할수 없게 되어버릴 때,
나는 집착했고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될 때,
사실 이 세상에 나와 온전히 닮은 사람은 없고, 내가 느끼는 것을 상대방도 똑같이 느낄리도 없으며,
사람의 다름에 지치고 마음이 아파질 때,
세상이 변하듯 사람도 변하고, 결국은 나도 변해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피를 나누고 영원한 우정을 약속해도 그 굳은 약속도 슬프게도 아주 사소한 계기로 깨어지고 말고,
"마법의 콩"을 나눌 관계 따위란 세상에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될때,
이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의 욕심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는 법을 알게 되었을때,
그 깨달음의 아픔을 우리는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에이단 체임버스의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열정적이고, 또 순수해서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청춘의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 어딘지 엉뚱하고 건강한 다른 소년을 만나 첫눈에 그를 알아보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약속하고, 짧은 7주간 수많은 시,분,초, 낮과 밤을 함께 보내고,
키스를 하다가, 얘기하다가 웃다가 싸우다가,
그리고 어느날 한 소년이 죽어버리는 이야기.

누군가를 잃어버린다는 것.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아주 아주 중요한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것.
책속에서 핼이 배리를 잃었듯이 반드시 죽음의 형태로 사라지지는 않아도,
언제나 곁에 있는 또다른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고 그리운 감정이던지
나는 그 성장통으로 한참을 많이 아팠었다.
소설속의 핼처럼 큰소리로 울거나, 죽어갈듯이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그건 내 속에서 나를 병들게 해가고 있는 것 같았고, 기억해내면 낼수록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바보같은 짓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감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꼈고,
기억해내려고 해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내가 잊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기억 그 자체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고, 모두 인정하고 나자 내 안에서 무언가 쑥 빠져나간 것 같았고,
그리고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구나-하고 알게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랑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렇다.
만약 그때 좋아했던 사람과 아주 흡사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 내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그때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미친듯이 아파질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하기에 나는 이미 생각이 너무 많아졌고, 이기적이게 되어버렸으니.
그리고 그때 나는 한창 청춘이었으니까-
아마 이후의 사랑은 다른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아픔을 알고 정도껏 몸사리는 조금은 영리한 사랑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은 그 옛날의 목숨도 내놓을 것 같았던 철없던 사랑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겠지.
그때 그 사람 보다도, 바보같이 순진해서 어쩔줄 몰랐던 나 자신을 말이다.

예민한 사람의 바보같은 청춘이야기.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늘 그리워하는 바보같고, 철없고, 쓸쓸한 사랑과 성장의 이야기.
핼의 이야기이며, 또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며, 내 이야기이기도 했던 이야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에이단 체임버스의 책이라고 하는데, 시리즈로 출판할 생각인가보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