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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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 마음속의 어둡고 위험한 욕망,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휘둘러지는 폭력으로 일그러진
11가지의 이야기 <애니멀 크래커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이 근질근질해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아내와 헤어진 남자의 이야기-표제작인 <애니멀 크래커스>가
시작될 때부터 그랬다.
남자는 코끼리 발 아래 슬그머니 자기 머리를 들이밀고, 코끼리가 머리를 땅바닥에 슬며시 굴린다.
차가운 시멘트에 뺨을 대고 뱅골보리수를 상상하고, 그제서야 슬픔이 조금 가신다.
 
왜일까. 무슨 뜻으로 이런 엔딩을 해버렸을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도 이성에서 멀어져 마음속의 어두운 마음에 귀기울인 사람들로 가득찬 기이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대다수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기이하거나 특이한 사람들-주위에 있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모두 마음속의 어둠에 쩔어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상실감을 시달리고 있다.
마음속에 구멍이 나버려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구멍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저지르는 것처럼 말이다.
떠나간 남자친구의 뱀을 해부하고 삶아 자신의 뱀을 찾으러 돌아온 남자친구에게
식사로 뱀튀김을 대접하는 여자의 이야기도 그렇고,
선대부터 이어진 폭력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이 너무도 부족해
이 악순환을 또 되풀이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사람을를 무한 반복으로
양산해낼지 모르는 꼬마아이의 이야기도 그렇고,
자신이 잘못해 폭력을 저질러 아내를 떠나보냈고 멈춰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같은 남자도 그렇고,
첫사랑을 실패로 끝내고 청부살인자의 길을 걷던 남자가
다시 만난 첫사랑 여자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느낄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렇다.
 
엽기적이거나 비상식적인 행위의 이유를 알수없어서 머리로는 이해할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감정적인 동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느낌이 계속 들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린, 정체를 알수 없는 어떤 것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어쩌면 아주 비슷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도 없고 눈물도 없는 감정없이 메마르기만 한 문체덕인지,
모든 이야기가 건조하고, 섬뜩하며 한편으로는 서글프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건조한 문체의 가장 큰 장점은 종이짝같은 문장들의 나열속에서
"나는 외롭다"같은 솔직하고 감정적인 표현이 매우 단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버리면
순간 마음이 젖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요즘은 이렇게 글을 쓰는 작가를 그다지 만나보지 못해서인지 참신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어렵다.
두서없이 풀어놓은 이야기처럼 느껴져서이기도 하고,
무언가 구멍나 메꿔지지 않는 듯한 정체를 알수없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되어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낯설고 정체가 모호하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나보다.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어떻게 동물세계와 연결지어 상징해놓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몇몇 이야기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확실히 파악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희한하게도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멀 크래커스>, <홈 스위트 홈>, <그해의 히트맨>, <토크터키>
<당신 삶의 뱀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방법>, <폭력의 집>이 인상적이었는데,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 무의미해보이는 행위를 보면서 마음속에서 뭔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위험하고, 쓸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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