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를 싫어한다.
어쩌면 사실은 믿고 있던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을 져버렸다는 실망과 배신감보다
거짓말에 현혹되어 잠시나마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이 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은 그렇게 철썩같이 100% 누군가를 믿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거짓말을 의연히 바라보고 있지도 않는다.
나 역시 속는 기분, 내가 지고 들어가는 기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거짓말 자체보다 거짓말을 들키는 멍청함이 싫은 것이다.
들키는 순간부터 거짓말은 정말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
영원히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나름대로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거짓말을 증오한다면서, 우리는 수많은 거짓말을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TV속의 달콤한 드라마의 거짓말, 소설속의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말,
그림속에 영화속에 만화속에 존재하는 진실을 은폐해버리는 거짓말들.
인간이 만든 이야기와 상징물, 예술작품은 사실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꼭 진실처럼 보이는 정말 멋들어진 거짓말.
 
현실을 토대로 만들어낸 아주 소름끼치지만 근사한 거짓말-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들은 종종 그렇게 출발한다.
<그로테스크>가 그랬고, 이 소설 <잔학기>가 그렇다.
2000년 가을, 일본에서 일어난 "니가타 소녀 감금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잔학기>는
고작 열살때, 공장노동자에게 유괴당하고, 1년간 감금되어 살아왔던 여류 소설가 고미 나루미가
남편을 통해 출판사에 <잔학기>라는 소설을 넘기면서 시작된다.
어린 소녀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온세상은 발칵 뒤집혔는데도,
유괴되어 감금된 열살짜리 아이의 세상은, 귀청을 뚫을 정도로 시끄럽게  들려오는 공장 소음과
더럽고 불결한 냄새들,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찬 망상만이 덩그라니 놓인 좁은 방처럼 협소하다.
 
1년후 기적적으로 아이는 돌아오지만, 이로써 끝일까.
방안에 갖혀 유괴범에게 살해당하는 상상을 했던 악몽같은 시간을 이제 다시 겪지 않아도 되어도,
사실은 1년간 유괴범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궁금할 뿐인 사람들의 저속한 호기심에 노출된 현실 역시
악몽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오래도록 시달리고, 진실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입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왜 일까.
이제 다 지나왔는데, 주위에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뿐인데,
자꾸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은.
낮에는 착한 아이를 가장하고, 밤에 몰래 침대속에 숨어 점점 더 어두워지는 망상을 끼워맞추고
스스로 악몽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몹시 무서운 일이다.
누구나에게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가끔 어린 시절을 꽤나 따뜻한 정경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진다.
무섭지도 않을까. 내가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게.
시간이 너무 오래지나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라 믿고 있는 것이,
정확한 기억인지 아니면 시간을 지나오면서 내가 키워온 망상인지 알수 없다는 것이 무섭지도 않을까.
소설속의 말처럼, 오래된 과거의 시간은 그림자속에 있는데 말이다.
미래를 알수 없는 것처럼, 지나온 시간 역시 어스름한 암흑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는 참 무섭다.
내 기억의 온전함을 객관적으로 믿을수가 없기 때문에, 가끔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기억을 떠올리는
내 뇌를 믿고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지나온 시간을 두려워하는 나를 건드렸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과없이 들려준다.
내가 주인공과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살아와서가 아니다.
다만, 주인공이 진실을 떠올리려는 과정, 너무나 두려운데도 자꾸만 상상해서 온전한 그림을
맞추어보려는 노력- 그것이 너무 아프고 무서웠다.
한때, 어느 순간 떠오른 몹시 이상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내가 무척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것처럼.
없다가 있던 기억이라 낯설고 생경한 느낌에 공포에 떨었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차라리 거짓으로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사실에 기대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게이코는 상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점 더 암흑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그리고 그것 역시 진실은 아니라는 것 역시 본인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상상 역시 유괴당했다 돌아온 게이코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처럼
게이코 나름대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저속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무엇이 진실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믿는 것은 사실이지 진실은 아니지 않나.
어쩌면 진실은 타인의 거짓말을 알아버리는 것 이상으로 더 불쾌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더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뚜렷한 진실을 바라보는 것만큼 낯설고 두려운 것은 없다.
내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게이코의 망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울고 있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중에 굳이 연계해보자면 "부드러운 볼"과 가장 흡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맹새코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작품이다.
(물론 내가 "부드러운 볼"도 몹시 좋아한다는 것을 밝혀둔다.)
무섭고 슬프다. 아마도 기리노 나쓰오 소설중에 가장 슬픈 것같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중에 <그로테스크>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무섭기로는 이쪽이 더 하고,
토할 것처럼 울렁거리는데다가, 게다가 슬프기까지 하다.
무섭고 슬퍼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대단한 작가이다.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런 상상까지 해낼수 있을까.
상상하는 것 이상의 최악의 결론을 내버리고,
그 결론이 다소 쌩뚱맞고 낯선 다른 소설들(그로테스크나 아웃같은-)과 달리
이 소설은 납득이 되기 때문에 더 슬프고 괴로워진다.
가장 최근 소설이라 그런지, 글쓰는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느낌도 든다.
외면의 독기는 조금 빠졌지만, 고독한 내면의 독기는 더 심해진,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솔직한 글쓰기라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다른 소설에 비해 유독 주인공이 많이 울고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냥 기분탓일까.
기리노 나쓰오가 <잔학기>에서 집어든 칼은 세상이나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숨죽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은 서글프고 바보같은 망상으로
자신을 그어버리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신을 베어버리는 것, 그 아픈 작업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시길...
 
후폭풍도 쎄지만, 읽는 내내 이 불쾌함과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슬픔과 잔학함에 괴로워지는 <잔학기>.
두렵고 괴롭지만 직시해야하는 일들. 혼자 마음속으로 털어놓는 추악하고 슬픈 욕망들.
기리노 나쓰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명작중의 명작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불합리한 경험을 겪었던 아이는 반드시 뭔가로 정신의 결함이나 마음의 상처를 메우려는 일을 시도하지.
아닌가?
그래서 결함은 오히려 멋진 거야.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아 어른이 된다는 건 불가능해.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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