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밀리언셀러 클럽 6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으로 발간된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
암보스 문도스는 쿠바에 있는 호텔 이름이라고 한다. 양쪽의 세계. 새롭고 낡은 두개의 세계를 뜻한다고.
무슨 호텔 이름을 이렇게 거창하게 지었나 싶지만, 꽤 멋진 이름 아닌가.
꼭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다른 세상을 만날 것처럼.
"식림"부터 표제인 :암보스 문도스"까지 기리노 나쓰오의 7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은 처음보는데, 장편못지 않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멋진 단편들이다.
 
 
*식림
전형적인 기리노 나쓰오식의 젊은 여자가 등장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자신의 외모를 폄하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따돌림 받은 듯한 분노를
마음속에 가득채웠지만, 실은 질투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스물네살의 아르바이트생.
자기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자주 오가는 곳은 아르바이트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화장품 판매점.
아줌마도 오가지만 예쁜 아가씨들도 오가고
화장을 전혀하지 않아도 나이 자체로 빛나는 10대 소녀들도 오가는 곳.
 
주인공은 늘 불만에 차있다.
기가 약해서 겨우 여고생일뿐인 동료 알바생들에게도 무시당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얕보는 것 같고,
결혼한 오빠 내외가 경제적인 이유로 집으로 들어오면서 자기 집에서도 눈치를 봐야한다.
그리던 어느날 발견한 것이다. 보잘것없이 초라한 자신에게 일어났던 드라마틱한 어린 시절의 사건을.
그 기억을 떠올리고, 주인공은 세상의 엑스트라이기만 하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대책없이 자신만만해 지는데...
 
전형적인 기리노나쓰오 타입의 단편이다.
세상을 향해 마음속으로 혼자 내지르는 소심하고 집요한 분노.
피해자와 가해자가 맞물리고 세상에 더 거대하고 영구적인 복수를 꿈꾸며 악연의 꼬리를 물고 무는 단편.
멋지다. 그리고 무척 어둡다.
 
*루비
한때 직장인이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30대의 노숙자가 공원 벤치에서 아무렇게나 자고 있는 여자를 줍는다.
오랜만에 섹스를 할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는 남자, 그런데 왠일인가.
루비를 다른 아저씨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필리핀 여배우 이름을 따서 여자에게 루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은 루비를 공유하기로 한다.
공원에 떠도는 고양이처럼.
 
노숙자들의 성적인 문제와 여자를 공유한다는 개념이 등장해 낯선 불편함을 주는 단편인데,
묘하게도 전체 단편들중에서 무게감이 가장 가벼운 편이라
불편하면서도 가볍게 읽었던 것같다.(?)
 
*괴물들의 야회
오랫동안 유부남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년의 여자.
사랑하는 것은 자신뿐이며, 아내와 이혼하고 함께 살자던 남자는 도무지 가정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비관한 여자는
남자를 집에 가두고, 남자의 집으로 처들어간다.
 
<사랑과 전쟁>을 보는듯한 단편인데, 속도감과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앞뒤로 꽉 막혀있는 갑갑한 상황 설정과 속도감으로 숨이 막히도록 달려나가는 단편.
비극적인 결말에서는 마구 달리다 한순간 멈춰버린 듯한 기분마저든다.
불륜 얘기처럼 속물적이고 호기심 동하는 얘기도 세상에 없나보다.
불륜 드라마에 열광하는 아줌마들에게 뭐라고 할게 아니다. 이 단편을 보는 나도 피가 끓었다.
 
*사랑의 섬
전혀 친할것같지 않은 직장동료 여자셋이 여행을 떠난다.
여행중에 기이한 에스테틱 체험을 받고나서, 그날밤 세 여자는 자신의 첫경험에 대해서 털어놓는다.
 
여자들의 수다가 전부인 소설인데, 7편의 단편들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노골적인 단편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충격적인 경험 얘기들을 꺼내놓을수가...
언젠가 나도 친구들에게 이런 걸 물어볼까...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
모르는 게 약이다. 아이고.....이 아줌마들이 정말....
 
*부도의 숲
천재적인 소설가인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동료 소설가.
세 어른들사이에서 복잡다난한 가정사를 겪으며 커온 여자가 어느 날 친아버지 회고록을 부탁받는다.
여자는 단칼에 거절을 해버리고, 그녀의 현재 이야기와 두 소설가와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는
이 단편집 중 드라마성이 가장 짙은 단편이다.
다른 소설들과는 느낌을 좀 달리해서 날카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겉에서 보여지는 사람의 모습과 인간의 본성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살다보면 그럴때가 있지 않나.
어느 누가 보아도 더없이 친절하고 다정하고 착한 사람인데,
어느 순간 그 무딘 친절이 독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고 느끼는 순간.
 
*독동
유일하게 기리노 나쓰오답지 않은 단편인데, 이 이야기는 꼭 괴담같은 느낌이 든다.
독 독(毒)자에 아이 동(童)자. 독을 가진 아이가 독동.
절에 사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주지인 새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와 새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남동생,
그리고 절에 눌러붙어 새아버지와 남동생을 증오하면서 살아온 여자.
어느날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여자에게 다가와 10만엔을 주면 자신의 아들 독동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우는 순간 사람을 죽여버리는 아이.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리노 나쓰오의 그간의 소설들과 비교해 새롭긴 하지만,
어딘지 좀 어설퍼서 그다지 마음에 드는 단편은 아니었다.
 
 
*암보스 문도스
양쪽의 세계. 암보스 문도스.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신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교감과 사랑에 빠진다.
여름방학을 맞아 둘이 몰래 쿠바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는데,
여행을 다녀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보니 이상한 상황이 두사람을 반긴다.
여자가 담임으로 맡고 있던 반 아이가 강변에서 추락해 죽은 것.
함께 있던 네 친구들은 어쩔줄 모른 채 밤새 아이를 위로해주었고, 다음날 아침 발견되었을 때는
아이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었다.
담임과 교감으로써의 책임을 묻는 부모들을 볼 면목이 없어졌음은 물론,
불륜 사실이 세상에 밝혀져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고, 더이상 만날수도 없게 되어버렸고,
사랑하던 교감 선생님은 자살까지 해버리는데....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단편이다.
어른의 악의에 비해 어린아이들의 악의가 훨씬 더 잔혹하고 섬뜩해서 일까.
미스테리한 전개, 악의를 품은 아이들의 리얼한 세계가 더해져 기리노 나쓰오다운 차갑고 음울한 단편이 완성되었다.
읽으면서 <라이프>라는 일본 만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여자아이들의 이지매의 무시무시함이 그 만화에서 너무 공포스럽게 그려졌기 때문일까.
아아, 이런 세상은 좀 없어졌으면.....
 
 
인간의 독기와 악, 음모와 비밀, 욕망들이 잘 파해쳐진 그야말로 기리노 나쓰오다운 단편들로 꽉꽉 차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괴물들의 야회>와 <사랑의 섬>, <암보스 문도스>이지만, 사실은 다 재밌었다.
비릿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섬뜩한 초리얼 하드보일드-.
가끔씩 기리노 나쓰오의 살아온 인생과 인생관, 사람을 관찰하는 모습이 대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하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인간 심리를 파해치면 과연 인간을 좋아할수 있을까...하는 상상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멀쩡한 가정생활을 하는 어머니 아닌가.)
기리노 나쓰오는 주인공들을 호감을 가질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파해치고
인간심리의 악취미성을 메스로 찢어 눈앞에 들이민다.(왠지 찢어발긴다는 격렬한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또 그 모습이 발가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민망하기 그지 없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않겠다.
무섭고도 멋진 사람. 참 독특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기로운 2007-05-2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보관함에 담아요.. 참, 추천마이리뷰에 오르신거 축하해요^^*

Apple 2007-05-2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마이리뷰...그런것도 있나요?-_-;;
즐거운 독서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