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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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더더욱이, 원하든 원치않든 다소 세상에서 동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더 그렇지 않을까.
 
조용하게 삶을 영위해나가던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의 인생은
어느날 동료교사가 추천해준 영화 한편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주 의미심장하게 추천한 그저그런 시시한 영화에 그의 삶이 흔들린 이유는
영화속에서 비중없는 한 무명배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똑같이 닮아버린 그 사람-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그의 존재에 자신의 존재감이 흔들려버리고,
무모하게 그의 존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독일의 도플갱어 전설에 따르면 세상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두명 더 있다고 한다.
얼굴에서부터 누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 내 고유의 지문까지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 역시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처럼 그의 존재를 확인하려 애쓰지 않을까.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증명할수 있는 증거가 얼마나 될까.
자신에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사람이라면,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수 있을까.
나는 그것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 의해서 증명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고, '나'를 알고 있으며, 나의 성격과 취향,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부모, 사랑하는 사람, 친구에 의해서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증명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닮아서 그들도 헤깔릴 지경이라면- 그리고 나를 똑닮은 누군가가 나를 연기하고 있다면,
그래도 증명될수 있을까.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에서 존재의 증명이 되는 것은 바로 옷이다.
외형으로 존재감이 흔들리고, 또다시 외형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책에서는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은 존재 증명이 될수 없다. 그들 역시 나의 존재감을 헤깔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인간불신주의에다가, 비관적인 생각일수 있겠다.
고작 바꿔입은 옷 하나로,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버린다.
그 속에 존재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는, 타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하면서 고개가 기웃거리면서도, 일면 수긍할수도 있는 이야기.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그의 도플갱어와 자신을 두고 "복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외형이 똑같은 것으로 내가 흔들려버린다는 얘기는 어쩌면 세상에 너무도 비슷한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외형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 복제처럼 동일한 감각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그래서 껍데기 뿐인 외형이 똑같아져버리면, 구분할수 없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그것이 일괄된 사회성의 폐해가 아닐까.

중반 부분의 흐름이 너무나 더디어서 읽기가 버겨웠는데, 속도감있는 후반부에서야 정신을 쏙 빼놓고 볼수 있었다.
띄어쓰기, 따옴표 표식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지루한 흐름을 느끼거나,
순간의 이야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그 책을 그만 읽어야하는 뜻이 되기도 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순간의 이야기를 놓쳐버리면 곧 흐름을 놓쳐버리고 헤메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척 더디고 힘든 독서였지만, 흐름을 잃지 않아서 후반부에서야 내가 주제 사라마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느릿느릿 흘러가다 어느 순간 쥐도새도 모르게 반전을 맞이하고,
소설 내내 정체성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만다.
의문을 던져놓고, 해결하기도 전에 또다른 의문을 던져놓는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눈먼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에서 말하고자하는
우리가 인간이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인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이기 위한 조건으로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수치심,
<동굴>에서는 진실에의 탐구, <도플갱어>에서는 자신의 존재증명욕구를 제시한다.
인간을 인간으로써 바라보고자 하는 주제 사람마구의 소설들은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역설적이지만,
대부분은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인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그의 또다른 도플갱어인 자신의 책들에서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인간을 좋아할수도 있지만, 자신과 다른 인간을 동경할수도 있다.
내가 주제 사라마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절대로 가지지 못할 그 어떤 것이 그에게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눈뜬 자들의 도시>로 건너가볼까.
눈먼 사회에서 눈뜬 사회로- 그러나 언제나 눈멀어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해
주제 사라마구 할아버지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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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6-1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 사라마구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ㅜ.ㅜ

Apple 2007-06-1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리뷰 다쓰고 다른 리뷰 훔쳐보는데, 물만두님 리뷰도 보이더라고용...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