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초판 한정 결말 봉인본!!!!
추리소설에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할만한 낚시질 아닌가?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런 방식-결말부분을 검은 종이로 덧대어 뜯어야 볼수 있는 봉인방식으로 출판되었다고 하고, 우리나라 번역본을 출간한 북스피어에서는 한정본으로 그런 방식을 빌려왔다. 나 역시 혹하지 않을수 없기에, 부랴부랴 주문을 했는데, 일단은 특별한 옵션에서부터 마음에 들었달까.
(하지만, 막상 봉인해제 하고나니 이거 상당히 지저분해진다.
책은 깔끔히 보전하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세세히 신경써써 뜯을 만한 섬세한 정신구조를 가지지 않은 나같은 독자를 위해 절취선을 좀 만들어주는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어쨌거나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는 "이와 손톱"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으로 오면 이 얘기가 그렇게 충격적일 건 없고, 게다가 어떤 (꽤 중요한) 부분들에서는 독자를 공감하게 하거나 이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온지 꽤 오래 된 소설이다보니 어느 정도 촌스러움에 대한 애정으로 극복했다.
"이와 손톱" Tooth and nail-영어에서는 이빨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긁어서라도 필사적으로-하는 느낌으로 쓰여지는 단어를 말그대로 차용해 와 제목으로 넣었고, 이야기는 어느 지하실에서 발견된 이와 손가락으로 시작된다.

마술사인 루 마운틴은 어느 날 핸드백을 도둑맞아 택시비가 없어 쩔쩔매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갓 상경한 듯한 이 여자를 도와주다보니, 어느새 여자를 더 돕고 있고, 어느새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에 빠져 결혼한 두 남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숨기는 비밀스러운 아내는 어느날 협박전화를 받게 되고, 자신의 비밀-유일한 혈육인 삼촌과 순진한 삼촌을 이용해먹은 위조지폐사기꾼에 대해-을 남편에게 털어놓게 된다.
불안에 떠는 아내는 어느날 루가 외출하던 날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옷장안에 숨겨두었던 아내의 비밀의 물건이 사라진 것을 알게된 루는 아내가 살해당했다고 확신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치열한 공방전과 더불어 진행이 되고,
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합쳐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이 된다.
 
지금에서는 그다지 특별하거나 충격적인 반전은 아니지만, 이 소설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옛날 추리소설에서만 느낄수 있는 흑백영화같은 이미지같은 느낌이 간직되어있어서 일것이다.
어딘지 아련하고, 낭만적인, 희뿌연 안개속의 이야기같은 그리운 분위기.
호텔을 전전하는 생활, 택시, 친한 사람은 별로 없는 쓸쓸한 대도시에서의 생활.
어디서 나타난지 모르겠는 비밀스러운 여자와의 조우와 사랑, 그리고 이별.
이런 것들은 언제 읽어도 왜 이리 쓸쓸하고 아련하던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윌리엄 아이리쉬 소설을 생각해버렸는데, <환상의 여인>과 비견된다는 광고문구 때문은 아니었고, 실제로 윌리엄 아이리쉬의 소설에서 풍겨져 나오는 아련하고 우울한 낭만이 이 소설에서도 느껴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만족스럽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다보니 어느새 나 자신의 수준이 꽤 영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은 완벽한 플롯이나, 대단히 충격적인 반전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분위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온 소설이라면 상당히 미숙할 법한 이야기인데도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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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사라진 딸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두, 사랑받던 아이들인데...
딸만 넷인 집, 가장 사랑받던 세살짜리 막내 꼬맹이 올리비아는 어느 더운 여름밤,
언니 아멜리아와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자다가 다음날 아침 실종이 된다.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로라는 변호사인 아버지 테오가 금이야 옥이야 키운 둘째딸인데, 대학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별안간 나타난 괴한에 의해 살해 당한다.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집왔던 미쉘은 생활고와 산후우울증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다가 아기를 깨우며 부산하게 나타난 남편을 도끼로 찍어 살해해버리고, 자신의 동생에게 딸 탄야를 맡긴다.
사라진 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이 이렇게 넓고 혼란스러운데, 가장 사랑받는 딸이었고, 가련한 어린 아이였던 여자들은, 또는 그녀들의 영혼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거나 누군가의 마음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케이트 앳킨슨의 <살인의 역사>는 시대도, 배경도 다른 세가지 사건을 역시 자신도 누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으며 여덟살짜리 철부지 딸을 가진 잭슨 브로디라는 탐정을 매개로 묶어놓고 있다.
오래전 세살짜리 동생을 잃어버린 아멜리아와 줄리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물건을 정리하던 중, 올리비아의 블루 마우스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올리비아 사건을 추적하고자 잭슨 브로디를 찾아오고, 딸 로라를 잃은 테오는 범인을 찾다 찾다 지쳐, 잭슨 브로디에게 의뢰를 하게 되고,
남편을 도끼로 살해한 미쉘의 동생 셜리는 잃어버린 탄야를 찾기 위해 잭슨 브로디를 찾아온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이들, 행방을 알수도 없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수 없다.
그들의 시간은 그들이 아이들을 잃어버린 순간 멈추고, 상실감으로, 또는 상실감으로 인한 집착으로 겨우 겨우 살아왔던 사람들. 그들은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을수 있을까.
잃어버린 자신들의 시간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두툼한 분량,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 덕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 소설이지만,
또 스티븐 킹의 "근 10년간 발표된 미스테리중 최고의 작품이다"라는 격찬만큼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다른 측면에서 나를 매혹시키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갈구하며 찾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범인과 사건의 정황을 찾는다기 보다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조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테오는 딸을 잃어버리고, 직업도, 정상적인 생활도 포기한 채 범인 색출에만 집착하고 있고,
아멜리아는 동생을 잃어버리고, 뚱뚱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몇십년을 살아온 자신을, 그리고 이런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채울수 없는 욕구불만에 시달린다.
한 때, 누군가였던 사람들.
누군가의 아버지 였고, 어머니였고, 언니였던 사람들.
그리고 이제 그 타이틀이 사라지고 나니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아니었을지....
 
잃어버린 아이,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무언가.
모두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잃어가는 것은 더더욱 많아지지만,
그들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자신과 일상의 행복을 찾아간다.
겨자처럼 노란머리를 가진 노숙자 소녀, 첫번째 오르가즘, 뱃속의 아이.
완전히 치유할수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겠지만, 또다른 행복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법인가보다. 좋은 일은 잊혀지고, 나쁜 일은 오래 기억되는 것은, 아주 작은 기쁨에서 오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작기 때문에, 항상 사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훗날 지나서야 그것이 행복이라고 알게되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담담하게 풀이해 나가는 비극적인 가족사에서는 결국 눈물이 날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어찌나 불공평 하던지. 시간이란 얼마나 무심하게도 담담하던지. 또 사람은 어찌나 나약한 존재던지. 인간에 대한 혐오감 만큼이나, 인간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애매모호한 존재이던가. 그래서 애증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또 증오도 할수 있는 것이 인간이니...
깊은 상실감으로 가득차서, 글자속에서 한참을 헤매이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마음이 먹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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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2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읽고 싶어요~
노블마인 '뫼비우스의 서재'시리즈 좋아해서 전부 모을려고 생각중인데...
시즈님 서평을 읽으니, 기대가 한층 더해졌답니다^^
저도 얼른 사서, 상실감을 안고 글자속을 해메보렵니다ㅋㅋㅋ

Apple 2008-03-23 01:51   좋아요 0 | URL
참 전체적으로 맥빠지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무게감도 있고, 글도 잘썼고, 순간순간 엄청 마음이 아파지기도 하고...
좋은 소설이예요. 쥬베이님에게도 추천!!^^
 
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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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양이를 부탁한다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개를 돌봐달라는 소설도 있다.
프랑스에서 날라온 독특한 이 소설 "개를 돌봐줘"는 아이러니하게도 개를 돌봐주는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시작부터 개 한마리가 무참히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라디오 드라마 작가인 막스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는데, 책을 나르다가 책상자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하필이면 그 아래 있던 개가 책상자에 깔려 쥐포가 되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황한 나머지 어쩌지도 못하고, 납작해진 개의 시체를 혼자 처리하게 되는데,
이 개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던 이웃 아줌마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개를 찾아해메이고,
막스는 죄책감에 아줌마에게 실짝 선의의 거짓말(늘 지붕위로 헤메이고 있던 고양이가 개의 환생체라는...)을 하게되는데, 이 아줌마, 그 말을 진짜 믿어버리고 고양이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한편, 막스의 아파트 맞은편,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 창문을 마주보는 집에는 으젠이라는 계란예술가(?)가 사는데, 막스도,으젠도 서로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게 되면 서로 은근히 의식하게 될테고,
아직도 자신을 염탐하고 있나 처다보다가 또 눈이 마주치게 될테니, 서로 그렇게 의심하는 수밖에.
이 비공식적인 염탐전으로 급기야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음해하려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뒷통수를 까기위한 은밀한 작전에 돌입한다.


마주 보는 쌍둥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살인사건 이야기는 일기, 편지, 공문등을 이용한 메타픽션으로 진행되는데,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또 그외 제 3자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도 다를 것이 분명해서,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이 꽤 흥미진진하니 재밌다.
게다가 거의 광인에 가까울 정도로 개념이 살짝 나간 주인공들의 행동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그 미치광이스러운 유쾌함을 시종일관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설 전체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깍아내리기 안달일지라도 유쾌하고 즐겁고 웃음이 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로소설가인 뚱뚱보노인의 소설이 소개되는 부분이 제일 웃겼는데, 중요한 부분에서 항상 말줄임표로 끝나버려서 책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뭔가 이야기가 부합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후반부에 밝혀지는 비밀들 때문일 것이다.
커다란 한가지 이야기가 작은 에피소드들을 감싸고 있는 형식인데,
우선은 살인자의 살해동기가 설득력을 잃어 납득이 가기 힘들고,
한가지 일을 풀기위해 너무 많은 일을 벌려놓은데다가 하나를 이루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입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덧데어 놓은 설명부분은 벌려놓은 사건을 뒤늦게 수습하는 것처럼 보여서 치밀하게 서로를 음해하고 염탐하는 이 이웃집 사람들의 서스펜스가 다소 성의없이 마무리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자체보다는 캐릭터들의 독특함에 많이 기대고 있는 소설인지라,
추리소설처럼 살인사건 이야기를 끼어들여서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후반부에 대한 불만은 조금 있지만, 읽기에 꽤 유쾌하니 괜찮긴 했다.


읽으면서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자신에 대한 자의식이 무척 강한 사람들, 그래서 프라이드도 강하고, 개인주의도 찬양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이 사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타인이라면 왠만하면 깍아내리고 보는 나쁜 버릇도 함께 가지고 있는 어쩔수 없는 인간들.
유럽인이라면 (왠지 모르게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사는 것이 어느정도 풍족한 만큼 마음도 여유로우리라 생각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나보다.
이들도 남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수 없는 어쩔수 없는 인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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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 숲 Nobless Club 1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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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몹시 내 취향일것같은 재료들을 모두 모았는데도, 결국 다 보고 나면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이 있다. 소설에도, 영화에도, 만화에도 그런 것들은 있다.
어떤 작품들은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의 매개체를 통해 전달한다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하지은의 소설 "얼음나무 숲"이 내게는 그랬다.
만화같은 이야기, 멀리 떨어진 이공간의 세계와 화려하게 들려오는 음악, 전체적인 이야기 자체의 환상성,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딱 만화로 본다면 재밌을 것 같은데,
소설로써는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었던 소설이었다.
차갑고도 신비로운 얼음나무 숲의 이미지, 음악에 미쳐있는 천재들의 이야기-
충분히 내 취향과 맞을법한 이야기이지만 다 보고나서 다소 시시한 감정으로 책을 덮을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내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소설이었기 때문일까.
조금 더 환상적이고, 고요하고 신비롭기를 바랬는데, 소설은 오히려 어수선하다.
 
피아니스트인 고요와 바이올리니스트인 바옐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만난 친구 사이이지만,
고요가 모두가 사랑하는 천재인 바옐을 동경하다못해 존경하는 것과는 달리
바옐은 고요에게 차갑고 냉정하기만 한다.
카논 홀을 가득채운 사람들이 온통 그를 찬미해도,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단 한명의 청중을 바라는 바옐에게 고요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바옐은 냉정히도 선을 그어놓고 만다. 천진난만한 고요와 냉소적인 바옐은 삐그덕 거리면서도 오랜 친구이자 동료 관계를 잘 이어나가고,그들은 알려지지 않은 전설과도 같은 얼음나무숲을 찾아낸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바옐은 살인사건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지만, 그가 사랑했던, 그를 지켜주고 있던 주변인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게 되고,예언자 키세가 에언하듯 이 가상의 나라 에단에는 종말이 찾아오는지  사람들은 바옐에게, 바옐의 연주에 미쳐가기 시작한다.

환상소설과 환타지소설을 구분짓는 차이가 확실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계는 분명 존재한다. 환상소설을 좋아하지만, 환타지 소설은 경을 띄고 싫어하는 내게는 애매모호하지만 그 경계가 뚜렷하다.
환타지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는, 작가가 처음부터 한 세계와 그 세계관을 정해놓는 것 자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거북스러운 느낌을 받기 때문이고, 이미지는 넘쳐나는데 감정적으로는 공감할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를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음나무 숲"이 환상소설임에도 환타지 소설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할수 없으며 동의할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분야에서 완벽한 천재가 사실상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을 다 쓰러뜨리고 결국에는 이겨버리는 슈퍼맨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결점의 천재, 고민없는 천재, 공백이 없는 완벽미는 매력이 없다.

소설속의 고요와 바옐, 두 천재에게도 고민은 존재하지만, 그 고민이 공감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귀족으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어쩌다 시작하게 된 피아노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면서,
자신이 천재인지는 모르고 또다른 천재인 바옐을 동경하며 피아니스트가 아닌 단하나의 존재이기를 바라는 심지어는 착하기까지한 고요에게 어떤 고민이 있었던가.
아무리 순진함을 간직한 어른이라 해도, 동료 음악가에게 질투 한번 느끼지 않고 그를 이겨보고자 하는 생각 한번 해보지 않는 완전무결한 선함을 과연 공감할수 있을까.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남모르게 피나는 연습을 했던 천재 바옐.
고고한듯 보이지만 물아래로는 엄청나게 발길질을 해 물위에 겨우 떠있는 백조처럼
기진맥진 달려야 천재가 될수 있었던 바옐에게도 분명히 "천재로 보이고자하는" 노력같은 것은 존재했지만, 소설을 보면서는 어째서 그의 과거와 알려지지 않는 사생활이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고 가볍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찌됐든간에, 그는 결국 천재였고, 이미 10살때부터 전 에단 사람들이 사랑한 천재이지 않았나.
왜 그들의 고민과 과거와 결점들이 조금도 와닿지 않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취향 탓이리라.
 
문체가 속도감은 있는 반면 가벼워서 아련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소설 중반쯤 터지는 살인 사건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후반부 밝혀지는 진실에서는 황당하고 허탈한 웃음마저 나버려서 개인적으로 몹시 기대하던 책이었는데 많이 실망했다.
그래. 소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취향에 맞지 않을 뿐이다.
그냥 내 취향에 너무 맞지 않는 소설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그런대로 볼만한 소설이기는 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할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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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0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블레스클럽 시리즈 처음 알게 됐어요~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나봐요...
(그나저나 방금 책 주문했는데, 시즈님 ThanksTo 3개 했어요ㅋㅋㅋ
E.M 포스터 전집 <모리스> <전망 좋은 방>하고 주제 사라마구 작품 하나
잘 했죠??ㅋㅋㅋ)

Apple 2008-03-0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얼마전에 책사면서 쥬베이님 땡스투 여러개 했다는...^///^우하하하하하하
사실 쥬베이님리뷰보고 보고싶어진 책들도 몇개 있고 해서요..^^
(뭐샀는지 보면 어떤거에 땡스투했는지 알게되실듯....)
음...약간 아쉬웠어요. 그냥 제 취향과 잘 맞지 않는 책을 잘못 고른것같기도 하고요...'ㅅ'
 
메모리 키퍼 2
킴 에드워즈 지음, 나선숙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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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속에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이 넘쳐흐르던 때였다.
마음 착한 의사 헨리와 그보다 많이 어린, 그래서 보호본능이 절로 일던 아내 노라,
그리고 노라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아이.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한 가정속에서, 미래에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그들은 세상 어떤 것도 넘쳐나는 사랑으로 이겨낼수 있을 것만 같았던 부부였다.
그들이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랬다.
 
눈이 내리던 어느 밤, 예정보다 일찍 시작된 진통, 눈이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에 담당의사를 급히 호출할수 없어서, 헨리는 직접 자신의 아이를 받기로 한다.
남자아이라면 폴, 여자아이라면 피비, 산통을 느끼면서도 노라는 행복하게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다. 건강하게 남자아이가 태어난 후, 머지않아 또다른 진통이 몰려오고, 노라는 폴이라 불뤼게 될 아이의 쌍동이 여동생 피비도 낳는다.
하지만 건강하고 완벽하게 태어난 폴과 달리, 피비는 다운증후군에 걸려 태어난다.
두 아이를 받아낸 헨리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도 준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 선천적으로 심장이 몹시 약했고, 12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
동생을 잃은 상실감으로 어머니가 무척 힘들어했던 시절을 헨리는 떠올린다.
아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자신의 유전자 때문인 것 같았고, 노라가 받게 될지 모르는 상처가 두려웠다.
그래서 헨리는 피비를 버리기로 한다. 간호사 캐럴라인에게 피비를 장애아 시설에 보내도록 부탁하고, 노라에게 할 말을 여러 번 심사숙고해 생각했지만, 노라가 폴의 쌍둥이를 찾는 순간,
거짓말처럼 충동적으로 그 아이가 죽어버렸다는 말이 튀어나와 버린다.

한번의 거짓말과 그가 평생 간직하게 될 비밀.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상실감은 노라를 나약하고 신경질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었고,
헨리는 그 나름대로 노라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을 안고,
튼튼하고 건강할 것만 같았던 가정에는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헨리는 노라가 선물해준 "메모리 키퍼"라는 카메라를 시작으로 점점 사진에만 빠져가게 되고,
그런 헨리를 바라보는 노라는 그가 쌓아가는 비밀의 벽에 부딪히며 겉돌기 시작한다.
말할수 없는 비밀을 가직한 자, 혼자만의 기억을 싸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헨리는
눈이 많이 내리던 그 날 이후로, 모든 감정을 닫아버린 듯이 살아간다.
그는 어린시절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가난이 두려워 음악을 하려는 아들에게 현실의 압력을 넣었고, 자신은 더 큰 비밀을 안고 있기 때문에, 노라의 외도를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아들에게는 사진으로 현실도피를 해버리는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노라에게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비춰지고, 더이상 그들은 가정이 아닌 생활을 이어나간다.
 
한편,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피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간호사 캐럴라인은 피비를 시설에 데려다주려다가 열악한 환경에 아이를 내버려 둘수가없어
아이를 들쳐안고 도망친다.
다른 아이들에게 자연히 시기가 되면 찾아오는 행동, 몸을 뒤집고 물건을 잡는 행동마저 열성을 다해 가르쳐야 하며, 남들 다 가는 학교 한번 보내려고 세상과 전투를 해야하는 캐럴라인.
남의 아이를 데려다가 이 무슨 고생인가 싶겠지만, 피비를 키우는 동안 캐럴라인 역시 변해가기 시작한다. 고아처럼 자라나 늘 외로웠고, 늘 혼자뿐이던 생활에 자신도 모르게 지쳐있었다는 것을 캐럴라인은 피비를 키우면서 알게된다. 그리고 피비 덕에 그녀에게 사랑도 찾아온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보이는 생활, 언제나 부지런 해야하고, 잠시도 눈을 뗄수 없는 생활. 그러나 캐럴라인이 헨리에게 말했던 말처럼, 그녀는 피비를 데리고 살아가면서 피할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많이도 겪었지만, 그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성장시켜나가는 행복감도 얻었다.
 

킴 에드워즈의 <메모리 키퍼>는 하나의 선택이 인생을 얼마나 바꿀수 있는가 보여주는 책이다.
어쩔수 없다고 느껴지는 선택, 자신의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가족의 행복을 바랬건만,
결국 그 가족은 행복해지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과 혼자만의 비밀은 그들의 결혼생활을 지배해버려서, 집은 서서히 균열되어가다가 결국에는 무너져버린다.
어쩔수 없는 선택과 그로인한 인과응보라고 생각해볼수도 있겠지만, 누가 헨리를 탓할수 있을까. 아이를 버린 죄로 그 세월동안 언제나 침묵했고, 사진속에서 늘 떠나간 딸을 그리워한 헨리를, 누가 단죄할수 있을까.
 
카메라는 비밀을 담는다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이라고 한다.
메모리 키퍼. 기억을 간직하는 사람. 헨리에게 주어진 카메라는 이처럼 비밀로 가득찼다.
깊은 상실감으로 가득찬 맥빠지는 책,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악인도 악인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책,읽다보면 애잔한 슬픔이 비밀스럽게도 흘러넘쳐서 나도 모르게 눈앞이 먹먹해지기도 했지만, 데이비드가 딸을 그리워하며 찍어쟀던 사진처럼 무척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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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2-28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이 책 소개를 보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작품이에요^^
시즈님 서평으로 먼저 접하네요
헨리의 선택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시즈님 말씀처럼 그만 탓하기도 어렵겠죠??
그의 심리갈등 양상이나 스토리전개가 무척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서평 잘 보고 갑니다^^ (집중해서 3번 읽었음ㅋㅋㅋ)

Apple 2008-02-28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재밌어요..^^책도 술술 읽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부드럽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