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사라진 딸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두, 사랑받던 아이들인데...
딸만 넷인 집, 가장 사랑받던 세살짜리 막내 꼬맹이 올리비아는 어느 더운 여름밤,
언니 아멜리아와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자다가 다음날 아침 실종이 된다.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로라는 변호사인 아버지 테오가 금이야 옥이야 키운 둘째딸인데, 대학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별안간 나타난 괴한에 의해 살해 당한다.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집왔던 미쉘은 생활고와 산후우울증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다가 아기를 깨우며 부산하게 나타난 남편을 도끼로 찍어 살해해버리고, 자신의 동생에게 딸 탄야를 맡긴다.
사라진 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이 이렇게 넓고 혼란스러운데, 가장 사랑받는 딸이었고, 가련한 어린 아이였던 여자들은, 또는 그녀들의 영혼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거나 누군가의 마음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케이트 앳킨슨의 <살인의 역사>는 시대도, 배경도 다른 세가지 사건을 역시 자신도 누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으며 여덟살짜리 철부지 딸을 가진 잭슨 브로디라는 탐정을 매개로 묶어놓고 있다.
오래전 세살짜리 동생을 잃어버린 아멜리아와 줄리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물건을 정리하던 중, 올리비아의 블루 마우스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올리비아 사건을 추적하고자 잭슨 브로디를 찾아오고, 딸 로라를 잃은 테오는 범인을 찾다 찾다 지쳐, 잭슨 브로디에게 의뢰를 하게 되고,
남편을 도끼로 살해한 미쉘의 동생 셜리는 잃어버린 탄야를 찾기 위해 잭슨 브로디를 찾아온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이들, 행방을 알수도 없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수 없다.
그들의 시간은 그들이 아이들을 잃어버린 순간 멈추고, 상실감으로, 또는 상실감으로 인한 집착으로 겨우 겨우 살아왔던 사람들. 그들은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을수 있을까.
잃어버린 자신들의 시간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두툼한 분량,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 덕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 소설이지만,
또 스티븐 킹의 "근 10년간 발표된 미스테리중 최고의 작품이다"라는 격찬만큼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다른 측면에서 나를 매혹시키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갈구하며 찾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범인과 사건의 정황을 찾는다기 보다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조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테오는 딸을 잃어버리고, 직업도, 정상적인 생활도 포기한 채 범인 색출에만 집착하고 있고,
아멜리아는 동생을 잃어버리고, 뚱뚱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몇십년을 살아온 자신을, 그리고 이런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채울수 없는 욕구불만에 시달린다.
한 때, 누군가였던 사람들.
누군가의 아버지 였고, 어머니였고, 언니였던 사람들.
그리고 이제 그 타이틀이 사라지고 나니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잃어버린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아니었을지....
 
잃어버린 아이,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무언가.
모두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잃어가는 것은 더더욱 많아지지만,
그들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자신과 일상의 행복을 찾아간다.
겨자처럼 노란머리를 가진 노숙자 소녀, 첫번째 오르가즘, 뱃속의 아이.
완전히 치유할수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하겠지만, 또다른 행복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법인가보다. 좋은 일은 잊혀지고, 나쁜 일은 오래 기억되는 것은, 아주 작은 기쁨에서 오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작기 때문에, 항상 사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훗날 지나서야 그것이 행복이라고 알게되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담담하게 풀이해 나가는 비극적인 가족사에서는 결국 눈물이 날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어찌나 불공평 하던지. 시간이란 얼마나 무심하게도 담담하던지. 또 사람은 어찌나 나약한 존재던지. 인간에 대한 혐오감 만큼이나, 인간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애매모호한 존재이던가. 그래서 애증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또 증오도 할수 있는 것이 인간이니...
깊은 상실감으로 가득차서, 글자속에서 한참을 헤매이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마음이 먹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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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2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읽고 싶어요~
노블마인 '뫼비우스의 서재'시리즈 좋아해서 전부 모을려고 생각중인데...
시즈님 서평을 읽으니, 기대가 한층 더해졌답니다^^
저도 얼른 사서, 상실감을 안고 글자속을 해메보렵니다ㅋㅋㅋ

Apple 2008-03-23 01:51   좋아요 0 | URL
참 전체적으로 맥빠지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무게감도 있고, 글도 잘썼고, 순간순간 엄청 마음이 아파지기도 하고...
좋은 소설이예요. 쥬베이님에게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