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고양이를 부탁한다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개를 돌봐달라는 소설도 있다.
프랑스에서 날라온 독특한 이 소설 "개를 돌봐줘"는 아이러니하게도 개를 돌봐주는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시작부터 개 한마리가 무참히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라디오 드라마 작가인 막스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는데, 책을 나르다가 책상자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하필이면 그 아래 있던 개가 책상자에 깔려 쥐포가 되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황한 나머지 어쩌지도 못하고, 납작해진 개의 시체를 혼자 처리하게 되는데,
이 개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던 이웃 아줌마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개를 찾아해메이고,
막스는 죄책감에 아줌마에게 실짝 선의의 거짓말(늘 지붕위로 헤메이고 있던 고양이가 개의 환생체라는...)을 하게되는데, 이 아줌마, 그 말을 진짜 믿어버리고 고양이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한편, 막스의 아파트 맞은편,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 창문을 마주보는 집에는 으젠이라는 계란예술가(?)가 사는데, 막스도,으젠도 서로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게 되면 서로 은근히 의식하게 될테고,
아직도 자신을 염탐하고 있나 처다보다가 또 눈이 마주치게 될테니, 서로 그렇게 의심하는 수밖에.
이 비공식적인 염탐전으로 급기야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음해하려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뒷통수를 까기위한 은밀한 작전에 돌입한다.


마주 보는 쌍둥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살인사건 이야기는 일기, 편지, 공문등을 이용한 메타픽션으로 진행되는데,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또 그외 제 3자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도 다를 것이 분명해서,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이 꽤 흥미진진하니 재밌다.
게다가 거의 광인에 가까울 정도로 개념이 살짝 나간 주인공들의 행동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그 미치광이스러운 유쾌함을 시종일관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설 전체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깍아내리기 안달일지라도 유쾌하고 즐겁고 웃음이 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로소설가인 뚱뚱보노인의 소설이 소개되는 부분이 제일 웃겼는데, 중요한 부분에서 항상 말줄임표로 끝나버려서 책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뭔가 이야기가 부합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후반부에 밝혀지는 비밀들 때문일 것이다.
커다란 한가지 이야기가 작은 에피소드들을 감싸고 있는 형식인데,
우선은 살인자의 살해동기가 설득력을 잃어 납득이 가기 힘들고,
한가지 일을 풀기위해 너무 많은 일을 벌려놓은데다가 하나를 이루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입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덧데어 놓은 설명부분은 벌려놓은 사건을 뒤늦게 수습하는 것처럼 보여서 치밀하게 서로를 음해하고 염탐하는 이 이웃집 사람들의 서스펜스가 다소 성의없이 마무리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자체보다는 캐릭터들의 독특함에 많이 기대고 있는 소설인지라,
추리소설처럼 살인사건 이야기를 끼어들여서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후반부에 대한 불만은 조금 있지만, 읽기에 꽤 유쾌하니 괜찮긴 했다.


읽으면서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자신에 대한 자의식이 무척 강한 사람들, 그래서 프라이드도 강하고, 개인주의도 찬양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남들이 사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타인이라면 왠만하면 깍아내리고 보는 나쁜 버릇도 함께 가지고 있는 어쩔수 없는 인간들.
유럽인이라면 (왠지 모르게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사는 것이 어느정도 풍족한 만큼 마음도 여유로우리라 생각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나보다.
이들도 남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수 없는 어쩔수 없는 인간인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