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나무 숲 Nobless Club 1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몹시 내 취향일것같은 재료들을 모두 모았는데도, 결국 다 보고 나면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이 있다. 소설에도, 영화에도, 만화에도 그런 것들은 있다.
어떤 작품들은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의 매개체를 통해 전달한다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하지은의 소설 "얼음나무 숲"이 내게는 그랬다.
만화같은 이야기, 멀리 떨어진 이공간의 세계와 화려하게 들려오는 음악, 전체적인 이야기 자체의 환상성,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딱 만화로 본다면 재밌을 것 같은데,
소설로써는 그닥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었던 소설이었다.
차갑고도 신비로운 얼음나무 숲의 이미지, 음악에 미쳐있는 천재들의 이야기-
충분히 내 취향과 맞을법한 이야기이지만 다 보고나서 다소 시시한 감정으로 책을 덮을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단지 내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소설이었기 때문일까.
조금 더 환상적이고, 고요하고 신비롭기를 바랬는데, 소설은 오히려 어수선하다.
 
피아니스트인 고요와 바이올리니스트인 바옐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만난 친구 사이이지만,
고요가 모두가 사랑하는 천재인 바옐을 동경하다못해 존경하는 것과는 달리
바옐은 고요에게 차갑고 냉정하기만 한다.
카논 홀을 가득채운 사람들이 온통 그를 찬미해도,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단 한명의 청중을 바라는 바옐에게 고요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바옐은 냉정히도 선을 그어놓고 만다. 천진난만한 고요와 냉소적인 바옐은 삐그덕 거리면서도 오랜 친구이자 동료 관계를 잘 이어나가고,그들은 알려지지 않은 전설과도 같은 얼음나무숲을 찾아낸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바옐은 살인사건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지만, 그가 사랑했던, 그를 지켜주고 있던 주변인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게 되고,예언자 키세가 에언하듯 이 가상의 나라 에단에는 종말이 찾아오는지  사람들은 바옐에게, 바옐의 연주에 미쳐가기 시작한다.

환상소설과 환타지소설을 구분짓는 차이가 확실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계는 분명 존재한다. 환상소설을 좋아하지만, 환타지 소설은 경을 띄고 싫어하는 내게는 애매모호하지만 그 경계가 뚜렷하다.
환타지 소설을 싫어하는 이유는, 작가가 처음부터 한 세계와 그 세계관을 정해놓는 것 자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거북스러운 느낌을 받기 때문이고, 이미지는 넘쳐나는데 감정적으로는 공감할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나를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음나무 숲"이 환상소설임에도 환타지 소설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할수 없으며 동의할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분야에서 완벽한 천재가 사실상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을 다 쓰러뜨리고 결국에는 이겨버리는 슈퍼맨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결점의 천재, 고민없는 천재, 공백이 없는 완벽미는 매력이 없다.

소설속의 고요와 바옐, 두 천재에게도 고민은 존재하지만, 그 고민이 공감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귀족으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어쩌다 시작하게 된 피아노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면서,
자신이 천재인지는 모르고 또다른 천재인 바옐을 동경하며 피아니스트가 아닌 단하나의 존재이기를 바라는 심지어는 착하기까지한 고요에게 어떤 고민이 있었던가.
아무리 순진함을 간직한 어른이라 해도, 동료 음악가에게 질투 한번 느끼지 않고 그를 이겨보고자 하는 생각 한번 해보지 않는 완전무결한 선함을 과연 공감할수 있을까.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남모르게 피나는 연습을 했던 천재 바옐.
고고한듯 보이지만 물아래로는 엄청나게 발길질을 해 물위에 겨우 떠있는 백조처럼
기진맥진 달려야 천재가 될수 있었던 바옐에게도 분명히 "천재로 보이고자하는" 노력같은 것은 존재했지만, 소설을 보면서는 어째서 그의 과거와 알려지지 않는 사생활이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고 가볍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어찌됐든간에, 그는 결국 천재였고, 이미 10살때부터 전 에단 사람들이 사랑한 천재이지 않았나.
왜 그들의 고민과 과거와 결점들이 조금도 와닿지 않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취향 탓이리라.
 
문체가 속도감은 있는 반면 가벼워서 아련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소설 중반쯤 터지는 살인 사건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후반부 밝혀지는 진실에서는 황당하고 허탈한 웃음마저 나버려서 개인적으로 몹시 기대하던 책이었는데 많이 실망했다.
그래. 소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취향에 맞지 않을 뿐이다.
그냥 내 취향에 너무 맞지 않는 소설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그런대로 볼만한 소설이기는 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할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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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0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블레스클럽 시리즈 처음 알게 됐어요~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나봐요...
(그나저나 방금 책 주문했는데, 시즈님 ThanksTo 3개 했어요ㅋㅋㅋ
E.M 포스터 전집 <모리스> <전망 좋은 방>하고 주제 사라마구 작품 하나
잘 했죠??ㅋㅋㅋ)

Apple 2008-03-0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얼마전에 책사면서 쥬베이님 땡스투 여러개 했다는...^///^우하하하하하하
사실 쥬베이님리뷰보고 보고싶어진 책들도 몇개 있고 해서요..^^
(뭐샀는지 보면 어떤거에 땡스투했는지 알게되실듯....)
음...약간 아쉬웠어요. 그냥 제 취향과 잘 맞지 않는 책을 잘못 고른것같기도 하고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