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드랜드
미치 컬린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어릴 때의 기억을 훗날 되돌이켜보면 많은 기억들이 왜곡되어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 아이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고싶은대로 보며,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한다.
또 어른들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초인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일상과 환경의 아주 작은 순간부터 외부적으로, 또 내부적으로 조금씩 생채기를 내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완벽한 초인이고, 상처받지 않은 영웅이던 어린 시절도 사라져간다.
<타이드랜드>의 주인공 젤리자 로즈는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회고하게 될까.
매일이 모험처럼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이며 기괴한 이 일상들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젤리자 로즈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웃게 될까, 부정하게 될까.

아동인권보호자들이 보았더라면 천인공노할 책 <타이드랜드>는 현실을 환상으로 바꾸어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현실속의 젤리자 로즈는 마약중독자 부모를 가진 불우한 어린이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지만, 그녀의 부모는 마약에 취해있을 뿐만이 아니라, 12살이나 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젤리자 로즈를 임신했을 때 마약을 하지 않은 사실을 무척 대단히 여기며, 어린 딸에게 직접 마약을 제조하게 시키기도 한다.
현실속의 젤리자 로즈의 부모는 부모로써의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않는 불량부모이지만,
젤리자 로즈는 불만이 없다. 그녀에게는 비교해볼수 있는 다른 가정이 없으므로,
자신의 이 이상한 일상들이 당연스럽게 생각된다.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들은 죽는다.
마약에 빠진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살이 쪄서 죽어버리고, 엄마의 시체를 내버려두고, 젤리자로즈를 데리고 텍사스로 도망쳐온 아빠도, 마약중독으로 죽어버린다.
어른의 눈으로 본 버려진 아이 젤리자 로즈의 환경은 막막할 정도로 갑갑하기 그지 없지만,
젤리자 로즈 자신에게만은 이 갑갑한 일상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모험이 되어버린다.
죽음에 빠진 아버지가 약에 취해 잠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는 상상력.
크래커만 먹으며 끼니를 연명해도, 젤리자 로즈는 배고픔을 모른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동화속 앨리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밖에 없는 네개의 바비인형을 손가락에 끼고, 그들을 친구삼아 악당 다람쥐를 쫓고, 유령인 델을 만나 식사를 얻어먹고, 어딘가 모자른 남자를 만나 키스를 하고 아이를 가졌다고 상상한다.
동화라는 약에 취한 젤리자 로즈가 이 현실을 살아가는 법은 보고싶은대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느끼는 것이다. 진실이 어떤지는 중요치 않다. 상상할 수록, 꿈 꿀수록 모든 것이 즐거운 놀이가 될테니.
 
<타이드 랜드>는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때에는 상당히 문제될만한 점이 많은 소설이다. 마약중독자 부모에 의해 방치된 아이, 죽은 아버지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아이, 후반부에는 아동성추행에 가까운 부분까지 등장한다. (맙소사!)
그럼에도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이 마냥 암울한 것만은 아닌데, 그래서 이 소설이 환상적이면서 기괴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젤리자 로즈의 모험담처럼 느껴졌던 이 책은 책장을 넘길수록, 묘한 씁쓸함과 섬짓함을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게 어린 시절이란 그 확실치 않은 모호한 기억들이 집합된 기괴한 악몽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르기 때문에, 순진하고, 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많은 일들, 하루하루가 모험같았던 일들의 진실을 훗날 깨달았을때 느껴졌던 그 당혹스러울 정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 무척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내 젤리자 로즈가 훗날, 자신의 어린시절을 어떻게 회상하게 될까 궁금했었다.
혹시나 나처럼 당혹스러운 진실에 공포감마저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쿨하게 그런 시절도 있었지-하면서 웃어 넘길까.
 
환상과 모험과 불쾌한 현실이 뒤섞인 묘한 소설로, 나는 이 소설을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약에 취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같은 맥락에서 영화 <판의 미로>를 떠올릴 수도 있겠는데, 그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 역시 재밌게 볼수 있을것이다.(<타이드 랜드>가 조금 더 기괴하고 <판의 미로>쪽이 조금더 구슬프다고 할수 있다.)
 
p.s 영화 <타이드랜드>는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얻기 힘든 영화라 그런지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았지만, 감독이 테리 길리엄인 만큼 소설과 영화의 이미지 매치도가 꽤 괜찮을 것 같아서 혼자 기대중이다.
빼놓을수 없는 점은 <사일런트 힐>에서 나를 감동시킨 미소녀 조델 퍼랜드가 젤리자 로즈를 연기한다는 사실! 천사처럼 예쁘고 귀여운데도, 눈은 어른처럼 깊고, 어딘지 아이답지 않은 어둠의 신비로움을 풍기는 조델 퍼랜드에게는 밝고 명랑한 아이들용 영화보다는 확실히 기괴한 영화들이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이의 미래가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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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와정 살인사건 1 - 시마다 소지의 팔묘촌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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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마을 몰살기를 다룬 소설들은 참 많다.
그런 소설들이 대부분 그려내고 있는 것은 폐쇄된 마을에서 일어나는 군중심리인데
폐쇄된 마을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가장 평범하고 야비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들어낼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실제로 일어났다던 "츠야마 30인 살인사건"을 다룬 시마다 소지의 또다른 미타라이 시리즈(면서도 미타라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용와정 살인사건" 역시 결국 귀결은 그렇다.
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멸감이 끔찍한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그려내면서도 사건의 진행상황이나 소외된 인간이 비틀리는 과정을 무척 꼼꼼하게 그려내 책을 읽으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지어낸 얘기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래도 츠야마 30인 살인 사건에 미스테리가 여전히 남겨져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의 배후를 상상으로나마 완결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진실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혀버렸다.

미타라이의 영원한 왓슨(그럼에도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미타라이는 고도의 홈즈 까기를 해댔지만-) 이시오카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용와정 살인사건"은 이시오카에게 한 여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여자는, 어느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전생의 업을 청산해야 앞으로 제대로 살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시오카를 찾아가 오카야마 현까지 동행해 주기를 부탁한다.
마음 약한 이시오카는 반신반의 하면서 이 이상한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는데, 스산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해보니 묶을데가 제대로 없다. 수소문끝에 찾아간 곳이 "용와정"이라는 여관인데, 장사가 되지 않아 여관을 때려쳤다면서 주인은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문전박대해버리는데, 오기로라도 이 여관에 묵으려던 이시오카는 그 순간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용와정을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연쇄살인, 범인은 커녕, 총알이 어디서 왔는지도 전혀 짐작가지 않는 이 사건에 왠지 집착이 생겨 용와정에 머물면서 사건의 진행상황을 노르웨이에 있다던 미타라이에게 보내지만, 미타라이는 자신은 지금 너무 바쁘다며 알아서 하란다.
이런... 자신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늘상 자학하기 바쁜 이시오카에게 커다란 짐이 부여된 것이다. 미타라이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훨씬 빨리 해결되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소설은 조금 덜 긴박했을 것이다.찌질함이 생명인 이시오카(흡사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키구치가 연상되지만, 미타라이는 적어도 쿄고쿠도처럼 냉랭하지는 않다.)의 매력이 한껏 들어나, 우왕좌왕하면서 사건은 해결된다.

시마다 소지의 소설들은 항상 두툼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행히 지루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1100페이지가 넘어버리는 이 대용량 소설을 읽으면서 지겹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소설을 간략하게 쓸수는 없었을지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후속작이라는 "용와정 환상"은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참 많이도 반복하고, 읽다가 읽다가 더이상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단계에 이를때쯤에서야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서, 추리소설을 읽으면 앞부분과 뒷부분만 읽는다던 사람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시마다 소지다운 엄청난 꼼꼼함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작좀 해라-하는 심정이었달까.
분명 사건의 얼개 자체는 재밌는데, 과도한 꼼꼼함이 사람을 질리게 만들어버린다.
참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꽤 긴 분량을 자랑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으면서는 그다지 지겹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왜 이렇게 피곤했을까. 정리되지 않은 책상에서 물건 하나를 찾는 심정이었달까.
 
거의 열흘에 거쳐 읽었던 소설이라 책을 덮으면서 알수없는 피곤함이 밀려왔다.
언젠가 같은 사건을 다룬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도 읽어볼까 했었는데, 이대로라면 다시는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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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we1220 2008-05-15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뷰 잘 봤습니다.^^ 저도 몇시간을 걸쳐가면서 읽었어요. 도대체 미타라이는 언제 나오냐면서 마음 속으로 소리치며 읽었는데 결국 편지로만 나오더군요. 이시오카가 결국 사건을 해결하지만 그래도 어설픈(?) 이시오카의 편지로 사건의 트릭에 힌트를 주다니 미타라이는 과연 명탐정이죠^^ 편지 밖에 안 나오지만 적어도 마신유희보다 더 미타라이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Apple 2008-05-1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의 열흘동안 읽었던것같아요.^^;; 재밌긴 재밌었는데 좀 지치는 책이었달까요.
하긴, 마신유희에서도 미타라이는 무슨 카메오처럼 등장하지요.히히히히

하이드 2008-07-11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마다 소지책은 읽다보면 기가막히고, 읽고나면 '이게뭐야' 싶은데, 읽을때는 정말 재밌더라구요. 무튼 첨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접했을때의 미타라이를 보고파요-

하이드 2008-07-11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묘촌> 역시 재밌고 유익(?) 합니다. 요코미조 세이지인데요. 믿어보삼- 리뷰보며 기억 되살려보니 요코미조 작품 중에서도 특히 재밌게 읽었던 작품인게 기억났어요.
 
섀도우 J 미스터리 클럽 3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오스케의 어머니가 암으로 죽으면서 시작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스케의 일상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본 엄마의 친구를 만나자마자 알수 없는 기묘한 광경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소꿉친구였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 나니 소원해진 아키에게서도 기묘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빠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오스케는 이 모든 일상의 미스테리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미치오 슈스케에게 본격미스테리 대상을 안겨준 소설 <섀도우>는 일상의 소소한 수수께끼에서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소설로, 소설 내내 등장하는 꽤 흥미로운 심리학적인 정보와 함께 안개속에 휩쌓인 듯한 어슴푸레하고 불길한 느낌이 볼만한 소설이다.
작은 사건,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 진실을 틀어지거나 왜곡될수 있느냐 하는 생각을 던져주어서
실체를 알수 없는 듯한 기묘하고도 비밀스러운 느낌에 푹 빠져들어서 볼수 있었다.
혹시 그런 생각 해본 적 있는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만 빼고 한통속이라는 생각, 모두다 나를 속이고 있고, 모두다 거짓말만 하고 있다는 생각. 심하면 정신병이 되지만, 가끔씩 상상은 해본적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대망상이 부풀어져 병이 되면, 이런 '못난'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자신을 지금의 자신이 아닌 좀더 멋지고 잘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리고 뻔히 존재하는 자신의 현실적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서 그 '못난' 자신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게 된다. 자기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 또다른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섀도우'란 바로 그런 것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많은 심리학적 정보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여가며 의미를 이해하고 머릿속에 담아두기 위해 열심히 기억하려 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다소 아쉬운 책이었다.
중반부까지는 희끄무레한 비밀들을 간직하고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좀더 현실적인 대답이 나오길 바랬던 것은 지나친 기대였을까. 아주 설득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전형적인 소설이나 전형적인 영화처럼 마무리지어지는 것이 아쉬운 것은 개인적인 취향차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갈수록 추리소설 장르에서 반전이 구성에서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왠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자체를 완전히 갈아엎을 대단한 반전같은 것은 그다지 바라지 않는 나로써는, 이 소설속의 반전이 설득력이 있건 없건 소설 자체의 분위기를 흐려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쉽게 말하자면, 무의식을 탐색하는 내용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저 깜짝 놀래키기 위한 떡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소설 중반부까지의 비밀스러움에서 풍겨져나오는 긴장감이나 초조함이 통속적인 이야기로 마무리 지어진 것 같아서,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지만 막판에서야 갑자기 흥미위주의 스릴러소설로 변해버린 것 같아서 그점이 무척 아쉽다.
그래도 꽤 잘 읽히고 어느 정도의 재미는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이쯤에서 만족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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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안토리오 솔레르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모든 것이 극단적인 여름은 어딘지 젊음을 떠올리게 한다. 덥고 뜨겁고 불쾌지수가 높아 모두들 짜증을 부린다해도, 여름에만 주어지는 격한 감정의 굴곡이 젊음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 여름이 있었었다. 매년 여름이 그렇듯, 덥고 짜증났을 것이 분명했을 똑같은 여름이지만,
이제와서 떠올려보면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처럼 느껴지는 그런 여름이 있었더랬다.
실제로는 나지 않았을 법한 비에 젖은 풀냄새가 떠오르는 그 해 여름, 뭔가 별다른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별다른 일을 찾아 헤매였기 때문에 더더욱 특별했었더랬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아주 좋은 구절을 찾아 줄을 그어놓듯, 기억속의 그 해 여름은줄을 그어 별을 달아놓는 내 인생의 아주 특별한 페이지가 되어버렸다.
이 책의 주인공들 이 여름도 그들의 기억속에 결국 그렇게 남아버리겠지.
아주 격한 감정을 앓았던 시절, 사랑도 슬픔도 아픔도 하나같이 소란스럽고 정열적이던 시절-
그런 시절이 청춘이라고, 그들은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네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서로 몰려다니며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조금씩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의 좌절을 겪으면서 그들은 성장한다. 그 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건, 어떤 상처를 받았건, 평생 살아가면서 수많은 페이지를 덧데어도 결국 이 페이지만큼 재밌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 한가운데 그 해 여름이 있었다."

인생의 가장 즐겁고 열정적이던 그 순간, 청춘이 지나가버렸으니까.
조금 더 영리한 자세로, 조금 더 차분하게 무언가를 시작하겠지.
조금 더 늦게 만났더라면, 미겔리토는 룰리를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았을테고,
사랑의 열병에 빠져 허우적대지도 않았을테지.
조금 더 늦게 만났더라면, 룰리는 능력없는 미겔리토를 만나보려 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지.
나이를 하나씩 먹어갈수록 모든 면에서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만일까.
나뭇잎 사이로 비쳐들어오는 강렬한 햇빛같은, 폭풍우속의 파도같은 격렬하고 강렬한 청춘의 여름의 이야기가 지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리라.
 
작년인가 개봉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 감독작인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의 원작소설이라는 것은 책띠지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 볼까 말까 하던 영화였는데 제목이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이미지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서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꿈, 배신에 대한 책. 무척 직설적인 표현으로 멈칫 멈칫했고,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몰입하기도 힘들었지만, 결국 다 읽고 말았다.
책을 덮으면서 왜 피곤함이 몰려왔는지는 모르겠다. 몰입하기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다 지나버린 청춘을 떠올려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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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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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랑블루>를 기억한다. 그 새파란 바다와 무호흡의 세계에서 점점 고요해지는 자아속으로, 또는 자유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
나밖에 없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멈추어 느리고, 자유롭고, 그리고 파랗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검은선>에서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르베르디가 꿈꾸던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호흡도 없고, 사람도 없고, 그저 깨끗하고 청명하기만 한 자아정체의 안정감에서 오는 자유. 그것은 무한한 순수이면서, 절대악이기도 했다.
 
한때는 무호흡 잠수 챔피언 르베르디가 어느날 말레이지아 연쇄살인마로 변모한 채 세상에 드러난다. 그리고 파리에 살고 있는 전직 파파라치 출신의 범죄전문기자 마르크는 이 사건을 주시한다. 어째서일까. 단지 특종을 잡고 싶었을까.
사랑하는 친구 다미코와 사랑하는 여인 소피를 아주 처참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떠나보낸 후,
마르크는 쏟아져나오는 세상에 대한 무기력함과 악의 본질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아왔다.
대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가 있지? 어떻게 인간으로써 이렇게 잔혹한 짓을 저지를수가 있지?
그의 악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은 점점 집착으로 변해가고, 르베르디의 소식은 그의 집착에 불을 당긴다. 마르크는 그 악의 심연, 대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마음이 존재할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는 말레이지아에 구금되어있는 연쇄살인마 르베르디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철저하게 계산하여, 작전을 짜고, 관심을 가지도록 자신을 여자라고 밝히면서.
마르크의 편지는 르베르디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르베르디와 마르크는 서로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교신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악의 심연을 향해. 죽음과 공포만이 늘어선 검은선을 향해.
마르크는 르베르디의 지시에 따라 그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이면서,그 악의 핵심에 다다를수록 두려움과 경외감, 알수없는 흥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타 스릴러 장르와 <검은선>이 다른 점이라면 일단 범죄를 추척하는 목적성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들수 있겠다. 마르크는 특종을 잡기 위해, 또는 이 살인마를 응징하기 위해 르베르디를 쫓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집착하며 품고 있던 악의 본질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커지고 커져, 정확한 실체를 필요로 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는 자기안의 악을 찾아간다. 자기내부에 숨겨진 폭력성을 되찾아가는 일종의 악의 성장드라마랄까.
적어도 프랑스내에서는 스티븐 킹을 따를 자는 이 사람밖에 없다던데, 개인적으로는 스티븐킹보다 한수위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이한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와 적절히 속도감을 잡아 긴장감을 서서히 팽배시키는 점 또한 이 소설의 아주 근사한 장점중의 하나이다.
아주 흔하고, 그저그런 통속소설이 아닌 한격 격조높은 웰메이드 스릴러, 극찬받아 마땅한 멋진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참 재밌는 장르이다.
이 장르에 대한 나름의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구조상에 숨어있는 트릭이나 수수께끼를 찾는 것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추리소설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내면의 심연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장르가 아닐까.
자신도 알수 없는 내면의 비이성적인 부추김이나 숨기고 싶은 욕망들은 이렇게 꺼내보면 참 신기하다. 이런 면도 가지고 있고, 이것 역시 어쩔수 없는 본능중에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이랄지, 죄책감이랄지, 안도감이랄지, 복잡한 심정을 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장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악을 가지고 있고,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산을 뛰어다니고, 바다를 건너고, 짐승을 잡아먹던 우리 역시, 근본은 동물이라는 점은 피할수 없는 사실이고, 다른 마음과 더불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악, 본래부터 존재하는 육식동물같은 폭력성 역시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얼마나 이상한 욕망, 또 얼마나 가학적인 폭력성을 지니고 있을까.
우리 중 아무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극단적으로 비틀어진 경우를 예시로 들어 그 본능적인 폭력성을 여행하는 묘미가 바로 추리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스릴러는 무척 고상한 장르라 말하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한 편에서는 단순한 시간떼우기 용으로 가볍게 여기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사랑하고 탐구하고 쓰려는 이유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유럽쪽에서도 헐리우드 스타일의 스릴러에 대한 남모를 동경이 있었던지, 최근의 유럽 스릴러 소설을 읽다보면 유럽 스타일의 철학적 사색과 미국 스타일의 속도감을 갖춘 똑똑한 스릴러들이 꽤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어쨌거나 얼마번에 본 <악의 심연>도 그렇고 이번에 본 <검은 선>도 그렇고, 무척 정교하고 심도높은 고밀도 프랑스 스릴러이었다. 사실 작가들이 몽상가인 나머지, 뜬구름잡는 얘기를 늘어놓거나, 지나치게 냉소주의에 빠진 나머지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는 프랑스 소설은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새로운 발견이다.
요즘 프랑스 스릴러 무척 삼삼하구나. 신난다.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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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4-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즈님!!!!! 이거 정말 재밌죠??^^
저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에 빠져버렸어요.
스티븐 킹보다 한수위라는 평가, 완전 동의합니다. 정말 대단한 작가에요.
이번에 새로 나온 <황새>읽었는데, 이 작품도 환상입니다ㅋㅋㅋ
데뷔작임에도, 감탄만.....

Apple 2008-04-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벌써 새책이 또 나왔나요?ㅇ.,ㅇ 빨리 읽어봐야겠네요! 이책 정말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