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드랜드
미치 컬린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어릴 때의 기억을 훗날 되돌이켜보면 많은 기억들이 왜곡되어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 아이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고싶은대로 보며,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한다.
또 어른들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초인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일상과 환경의 아주 작은 순간부터 외부적으로, 또 내부적으로 조금씩 생채기를 내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완벽한 초인이고, 상처받지 않은 영웅이던 어린 시절도 사라져간다.
<타이드랜드>의 주인공 젤리자 로즈는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회고하게 될까.
매일이 모험처럼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이며 기괴한 이 일상들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젤리자 로즈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웃게 될까, 부정하게 될까.

아동인권보호자들이 보았더라면 천인공노할 책 <타이드랜드>는 현실을 환상으로 바꾸어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현실속의 젤리자 로즈는 마약중독자 부모를 가진 불우한 어린이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지만, 그녀의 부모는 마약에 취해있을 뿐만이 아니라, 12살이나 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젤리자 로즈를 임신했을 때 마약을 하지 않은 사실을 무척 대단히 여기며, 어린 딸에게 직접 마약을 제조하게 시키기도 한다.
현실속의 젤리자 로즈의 부모는 부모로써의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않는 불량부모이지만,
젤리자 로즈는 불만이 없다. 그녀에게는 비교해볼수 있는 다른 가정이 없으므로,
자신의 이 이상한 일상들이 당연스럽게 생각된다.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들은 죽는다.
마약에 빠진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살이 쪄서 죽어버리고, 엄마의 시체를 내버려두고, 젤리자로즈를 데리고 텍사스로 도망쳐온 아빠도, 마약중독으로 죽어버린다.
어른의 눈으로 본 버려진 아이 젤리자 로즈의 환경은 막막할 정도로 갑갑하기 그지 없지만,
젤리자 로즈 자신에게만은 이 갑갑한 일상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모험이 되어버린다.
죽음에 빠진 아버지가 약에 취해 잠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는 상상력.
크래커만 먹으며 끼니를 연명해도, 젤리자 로즈는 배고픔을 모른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동화속 앨리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밖에 없는 네개의 바비인형을 손가락에 끼고, 그들을 친구삼아 악당 다람쥐를 쫓고, 유령인 델을 만나 식사를 얻어먹고, 어딘가 모자른 남자를 만나 키스를 하고 아이를 가졌다고 상상한다.
동화라는 약에 취한 젤리자 로즈가 이 현실을 살아가는 법은 보고싶은대로 보고, 느껴지는대로 느끼는 것이다. 진실이 어떤지는 중요치 않다. 상상할 수록, 꿈 꿀수록 모든 것이 즐거운 놀이가 될테니.
 
<타이드 랜드>는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때에는 상당히 문제될만한 점이 많은 소설이다. 마약중독자 부모에 의해 방치된 아이, 죽은 아버지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아이, 후반부에는 아동성추행에 가까운 부분까지 등장한다. (맙소사!)
그럼에도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소설이 마냥 암울한 것만은 아닌데, 그래서 이 소설이 환상적이면서 기괴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젤리자 로즈의 모험담처럼 느껴졌던 이 책은 책장을 넘길수록, 묘한 씁쓸함과 섬짓함을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게 어린 시절이란 그 확실치 않은 모호한 기억들이 집합된 기괴한 악몽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르기 때문에, 순진하고, 어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많은 일들, 하루하루가 모험같았던 일들의 진실을 훗날 깨달았을때 느껴졌던 그 당혹스러울 정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 무척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내 젤리자 로즈가 훗날, 자신의 어린시절을 어떻게 회상하게 될까 궁금했었다.
혹시나 나처럼 당혹스러운 진실에 공포감마저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쿨하게 그런 시절도 있었지-하면서 웃어 넘길까.
 
환상과 모험과 불쾌한 현실이 뒤섞인 묘한 소설로, 나는 이 소설을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약에 취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같은 맥락에서 영화 <판의 미로>를 떠올릴 수도 있겠는데, 그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 역시 재밌게 볼수 있을것이다.(<타이드 랜드>가 조금 더 기괴하고 <판의 미로>쪽이 조금더 구슬프다고 할수 있다.)
 
p.s 영화 <타이드랜드>는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얻기 힘든 영화라 그런지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았지만, 감독이 테리 길리엄인 만큼 소설과 영화의 이미지 매치도가 꽤 괜찮을 것 같아서 혼자 기대중이다.
빼놓을수 없는 점은 <사일런트 힐>에서 나를 감동시킨 미소녀 조델 퍼랜드가 젤리자 로즈를 연기한다는 사실! 천사처럼 예쁘고 귀여운데도, 눈은 어른처럼 깊고, 어딘지 아이답지 않은 어둠의 신비로움을 풍기는 조델 퍼랜드에게는 밝고 명랑한 아이들용 영화보다는 확실히 기괴한 영화들이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이의 미래가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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