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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와정 살인사건 1 - 시마다 소지의 팔묘촌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한마을 몰살기를 다룬 소설들은 참 많다.
그런 소설들이 대부분 그려내고 있는 것은 폐쇄된 마을에서 일어나는 군중심리인데
폐쇄된 마을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가장 평범하고 야비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들어낼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실제로 일어났다던 "츠야마 30인 살인사건"을 다룬 시마다 소지의 또다른 미타라이 시리즈(면서도 미타라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용와정 살인사건" 역시 결국 귀결은 그렇다.
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멸감이 끔찍한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을 그려내면서도 사건의 진행상황이나 소외된 인간이 비틀리는 과정을 무척 꼼꼼하게 그려내 책을 읽으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지어낸 얘기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래도 츠야마 30인 살인 사건에 미스테리가 여전히 남겨져 있기 때문에, 이 사건의 배후를 상상으로나마 완결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진실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혀버렸다.
미타라이의 영원한 왓슨(그럼에도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미타라이는 고도의 홈즈 까기를 해댔지만-) 이시오카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용와정 살인사건"은 이시오카에게 한 여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여자는, 어느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전생의 업을 청산해야 앞으로 제대로 살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시오카를 찾아가 오카야마 현까지 동행해 주기를 부탁한다.
마음 약한 이시오카는 반신반의 하면서 이 이상한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는데, 스산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해보니 묶을데가 제대로 없다. 수소문끝에 찾아간 곳이 "용와정"이라는 여관인데, 장사가 되지 않아 여관을 때려쳤다면서 주인은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문전박대해버리는데, 오기로라도 이 여관에 묵으려던 이시오카는 그 순간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용와정을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연쇄살인, 범인은 커녕, 총알이 어디서 왔는지도 전혀 짐작가지 않는 이 사건에 왠지 집착이 생겨 용와정에 머물면서 사건의 진행상황을 노르웨이에 있다던 미타라이에게 보내지만, 미타라이는 자신은 지금 너무 바쁘다며 알아서 하란다.
이런... 자신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늘상 자학하기 바쁜 이시오카에게 커다란 짐이 부여된 것이다. 미타라이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훨씬 빨리 해결되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소설은 조금 덜 긴박했을 것이다.찌질함이 생명인 이시오카(흡사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키구치가 연상되지만, 미타라이는 적어도 쿄고쿠도처럼 냉랭하지는 않다.)의 매력이 한껏 들어나, 우왕좌왕하면서 사건은 해결된다.
시마다 소지의 소설들은 항상 두툼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행히 지루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1100페이지가 넘어버리는 이 대용량 소설을 읽으면서 지겹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소설을 간략하게 쓸수는 없었을지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후속작이라는 "용와정 환상"은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같은 이야기를 참 많이도 반복하고, 읽다가 읽다가 더이상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단계에 이를때쯤에서야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서, 추리소설을 읽으면 앞부분과 뒷부분만 읽는다던 사람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시마다 소지다운 엄청난 꼼꼼함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작좀 해라-하는 심정이었달까.
분명 사건의 얼개 자체는 재밌는데, 과도한 꼼꼼함이 사람을 질리게 만들어버린다.
참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꽤 긴 분량을 자랑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으면서는 그다지 지겹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이 소설은 왜 이렇게 피곤했을까. 정리되지 않은 책상에서 물건 하나를 찾는 심정이었달까.
거의 열흘에 거쳐 읽었던 소설이라 책을 덮으면서 알수없는 피곤함이 밀려왔다.
언젠가 같은 사건을 다룬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도 읽어볼까 했었는데, 이대로라면 다시는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