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공포만화 전문 만화가라고도 부를수 있는 이토준지가 이렇게 말했단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냐고.
이 똑같은 말을 하는 작가가 또 있는데 바로 요괴 전문 소설가라고도 부를수 있을 교고쿠 나츠히코이다.
전설, 항간에 전해내려오는 요괴를 다루되, 결국 소설속에 요괴는 등장하지 않는 참으로 희한한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수많은 귀신 이야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실존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설이 액면 그대로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풀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항설백물어. 항상에 떠도는 백가지 이야기.
이 책은 이를테면 교고쿠 나츠히코 식의 "전설의 고향"과도 같은 소설이다.
일본에서 전해내려오는 요괴와 전설들이 한챕터씩 꾀차고 앉아있기는 하나, 그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뜬구름잡는 듯한 비현실적인 전설이 현실적인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전해내려오는 소설에서 진실을 찾아보는 여정. 책속의 여섯가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전해내려오는 전설들이 이러한 속사정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단군신화가 단지, 곰과 호랑이가 동굴속에 갖혀 쑥과 마늘만 먹으며 인간이 되기위해 수행한다는 그대로의 전설이라기보다는, 곰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어떤 부족들의 이야기로 해석할수 있듯이, 빨간 휴지 파란휴지 귀신이라던가, 사람의 간을 빼먹으며 인간이 되고자 하는 구미호의 이야기 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어떤 사건들이 상상을 보태고 또 보태어서 탄생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래. 결국 요괴는 인간이고, 전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읽었더니 잡생각으로 자꾸만 빠지게 되어서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지만,
교고쿠 나츠히코식의 요괴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기담집을 유독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무난히 읽을수 있는 책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교고쿠도 시리즈에 비해서는 상당히 단순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다소 시시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긴 하지만, 짧은 단편들에서 풀어낼수 있을 만큼의 재미는 풀어냈다고 본다.
(또, 교고쿠 나츠히코 식의 캐릭터 분명한 등장인물들도 즐겁고...)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을 읽다보면, 요괴에 대한 이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에게도 놀라게 되지만, 구전 자료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놓은 일본인들의 정성에 놀라게된다.
어떤 나라에서는 쓸모없는 전설속의 이야기들이, 어떤 나라에서는 이렇게나 멋지게 계속 재탄생되고 있다.
이 얼마나 영리한 행동인지...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이야기인데, 7가지 이야기밖에 실리지 않아서 아쉽다.
(혹시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 100편들을 다 낼 생각이 있긴 한걸까?)
오랜만에 보는 고풍스럽고 예쁜 책편집과 표지도 보기좋고, 일단 나온다는 소문을 오랫동안 들어왔던 소설이라 뒤늦게 나마 보게되어서 반갑기 그지 없다.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이번에도 또 요괴는 보지 못하고, 인간의 괴이한 탐욕을 엿보았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인간이고, 세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몇백년이 흐른 후에는 어떤 전설로 남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의 게임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거대한 언어의 홍수에서 길을 잃어본 적이 있는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될 것이다. 수려한 문체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수식어와 은유적 표현을 자기 손에 쥐고 흔들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그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다.
거창하디 거창하고, 신세계같은 표현력 안에 빠져있다보면 막상 스토리가 주는 집중은 조금 떨어지게 되는 것 같아서, 이 작가의 책은 무척 시간 걸려서 읽게 되지만, 결코 그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그만큼 충분히 통속적이면서도 충분이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이야기 그 이상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우아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철저하게 속물적이라 귀여운 그의 소설속 주인공들. 어째서 책속의 인물들이 이런 반대의 매력을 다 갖출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마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귀엽고 예쁘고 애달픈지도 모르겠다.

<천사의 게임>은 작가의 전작 <바람의 그림자>와 연작소설이라고 할수도 있을 법한 소설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4부작 연작을 계획했다는데, 그 4부작안의 두 가지 소설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이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것 말고 다른 유기성은 찾을수 없는 것처럼 다른 시리즈도 마찬가지일거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주요한 분위기는 "책과 사람"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잊혀진 책을 고르는 사람, 또는 잊혀져야할 책을 묻어두는 사람- 그들의 이야기가 이 시리즈의 본질이다.

<바람의 그림자>의 주인공이 잊혀진 책을 골라서 그 책속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사람이었다면,
<천사의 게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잊혀져야할 책을 묻어두는 사람 쪽이다.
신문사에 취직한 말단 직원인 다비드 마르틴은 우연한 기회로 작가가 되지만, 그는 그의 이름을 걸고 쓰는 소설도 아닌, 자극성에 기댄 채 저열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선정적인 소설로 삶을 이어가게 된다.
불합리한 출판사와의 계약은 그가 다른 소설을 써서 진정한 소설가가 되는 것을 막고 있고, 노력끝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소설은 평론가들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같은 비달의 소설을 거의 대필해주다 시피 몰래 수정을 봐주었건만, 스승의 소설은 당대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게된다.
설상 가상으로 사랑하던 여인 크리스티나는 비달과 결혼해버린다.
게다가 출판사는 자신들과의 계약을 지키라며 협박해오고, 사랑과 일, 모두에서 실패했는데 더더욱이 운나쁘게도 다비드는 병까지 얻게되어 시한부 인생임을 선고받게 된다.
이보다 재수없는 인생이 또 있을까?
극한에 치달아진 상황에서 다비드가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이 되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 순간 누군가가 찾아온다.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자신을 편집자라 말하는 묘령의 신사 코렐리.
그는 다비드에게 건강과 부를 줄테니, 자신을 위한 소설을 쓰라고 한다.
그 소설은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이어야만 하고, 반드시 종교에 대한 이야기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기묘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다비드의 인생에 등장하게된 이유는 대체 뭘까?

장르가 뭐라 말할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난한데, 전작 <바람의 그림자>에서 받았던 느낌도 그러했던 것 같다.
로맨스, 추리, 스릴러, 공포, 고딕, 순소설- 그 어떤것에도 포함되지않으면서, 그 어떤 것의 이름으로 불뤼어도 손색이 없다.
간간히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여져서, 그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신기하게도 즐거운 소설이나 영화들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작가의 역량이라고 확신한다.
예전에 무협소설에 적혀있덨다던 "다년간 무협소설을 섭렵하여 이제는 쓰실 분" 같은 궁극의 단계가 아닐까나?
다년간 여러가지 장르의 소설을 탐독하여 그 장르마다의 매력을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설에 녹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테고,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작가의 센스, 엄청난 독서량, 눈치, 재능. 모든 것이 어울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 딱 그런 소설가이다.
여러가지 소설을 탐독한 끝에 내놓은 그의 소설은 아름답지만 독하고, 탐욕적이면서도 순수하다.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자니 내 리뷰까지 수식어 작렬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람의 그림자> 보다 애잔한 맛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에필로그에서 또다른 기묘한 반전을 보여주어서 이 작가의 소설이구나-하는 기대감은 충분히 충족된 것 같다.
책과 사람. 이야기와 이야기속의 사람과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더할 나위없이 로맨틱하고도 음침하고 아름답다.

앞으로 남은 2부작, 열렬히 기다린 끝에 맛있게 냠냠할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4
이종호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와-하는 탄성을 내면서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을 1편부터 매년 여름 꼬박꼬박 읽어온 나로써는, 우리나라 공포문학 작품들의 4년간의 놀라운 성장이 기분 좋을 수 밖에.
한 작가의 단편집이든, 엔솔로지 형식이든, 단편집이라는 것은 모든 작품이 만족스럽기 쉽지 않은데, 참 놀랍게도 이번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의 네번째 책은 모든 단편이 재밌었다.
이 책의 모든 단편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있고, 어느 것 하나 떨어지는 것 없이 
소재, 표현방식, 문장력, 재미와 의미 모든 부분에서 세련된 느낌을 받을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 중에서 최고였고, 또 지금까지 읽어본 한국 단편집 중에서도 최고였다.
(그렇게 많은 한국 단편집을 읽지 않았다는 점을 얘기해두어야겠지만...)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초기만 해도 보이던 다소 떨어지는 구성력이나, 초보적인 문장력은 이제와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이 놀랍고,
귀신이라던가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공포에서 머물던 소재가 훨씬 다양해지고 훨씬 더 현실에 가까워진 느낌 또한 놀랍다.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공포소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식상한 것은 사실이고
아주 무섭거나 아주 스릴있거나 아주 재밌을 것이 아니라면 "괴담"정도의 이야기로 남기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런 소재를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전형적인 공포에 충실한 작품이 많지 않아서 한 여름밤 공포에 오돌오돌 떨게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말초적인 공포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남겨두는 편이 훨씬 더 좋아서 이번 단편집은 흥미진진하고 즐겁게 읽었다.
(어차피 나는 겁도 없어서 왠만해서는 겁도 먹지 않는다....)
그간의 우리 공포문학의 성장을 내 눈으로 계속 확인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몹시 기분이 좋다.
자,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공포문학 단편선들을 한편 한편 들여다볼까? 


첫 출근
시골에서 올라와 첫 첫취직을 하게된 주인공은 으리으리한 건물안에 존재하는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게된다.
평소 상상하던 회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사무실에서, 주인공이 해야할 일은 전화로 업무를 지시받고,
전화로 지시받은 명령을 다른 곳으로 전달하는 일이다. 그런데 영문도 알수 없는 기이한 메시지를 전달받고 전달하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이상한 회사에 취직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첫 작품부터 몰입력이 대단하다. 공포요소를 버무려 다소 과장하기는 했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 이상은 관심을 가지지도, 관심을 가져서도 안될 현실의 직장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명령만이 살아움직이는 사회.
차갑고 정떨어지지만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
과연 첫출근 후에 그는 회사에서 살아남아 승진까지 할수 있을까?
무엇이 진짜 공포일까? 내가 회사에서 짤려 무일푼의 백수가 되는 것?
아니면 내 손이 아닌 누군가의 손에서 이루어질 잔혹한 명령을 그저 전달하기만 하는 것?

도둑놈의 갈고리
등산동호회에서 산행을 나갔다가 도둑놈의 갈고리라는 기이한 이름의 식물을 매개로 한 남자를 알게된 여자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매너좋고 잘생기고, 돈많고, 완벽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어느날 어떤 여자가 다가와 이 남자와 빨리 헤어지는 것이 신상에 좋을거라 충고한다.
이제는 공포문학의 대표작가라고 말할수 있는 김종일작가의 단편으로 호흡좋고 몰입도 좋고, 소재도 좋다.
몰카를 주제로 한 작품인데, 아직 미혼인 여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보다 더 소름끼치는 일은 현실에 없을 듯 싶다.
읽으면서 그 놈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나까지 치가 떨렸다.
인터넷안에 숨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현대인의 고질적인 관음증 행각을 소재로한 작품은 뒤에 <배심원>이라는 작품이 하나 더 있는데, 두 작품 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얘기는 들어봤을 듯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또 두 작품 다 설득력 있었다.

플루토의 후예
이종호작가의 플루토의 후예는 고양이에 관련된 전형적인 공포물이다.
흉가처럼 보이는 집으로 이사하게된 어느 가족은 집주변에 들끓는 고양이들을 보며 치를 떤다.
그러던 중, 소년은 눈부위에 상처가 있는 검은 고양이를 마주치게 되는데, 성깔이 보통이 아닌 이녀석을 길들이기 위해 생선을 받치던 중, 도무지 길들여지지 않는 놈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고양이에 대한 흉흉한 괴담들이 소재가 된 것 같은 작품인데, 그럭저럭 재밌음에도 좀 흔한 이야기들이라서 아쉽게도 특별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기본은 해주는 작가라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폭주
SF 호러라고 부를수 있는 작품은 이번 단편집에서 두개인데,
그중 하나인 <폭주>는 행성 충돌로 인류 종말이 몇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구가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단 7시간. 이제 곧 모두 죽는다는 생각에 세계 여기저기에서 무자비한 범죄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동네에서 이제 곧 죽을 거 맘대로 하다 죽겠다는 듯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소년들을 목격하게 되고, 그들에게 어머니를 잃는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이미 숫자로 밀리는 상황에서 그는 비겁하게 뒤에 숨어 훔쳐볼수 밖에 없는데, 그 순간 그들이 그를 발견한다.
그냥 그럭저럭 읽을만 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반전에서 피식 웃음이 났던 왠지 유쾌한 작품이다.
그래. 지구가 멸망해도 애들은 애들이지.

불귀
악랄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무턱대고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이 낳은 아이마저 위협하던 시어머니에게 여자가 돌아갈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얼마전 죽었던 남편의 유언때문이었다.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던 시어머니의 꼬장꼬장한 성격은 그대로.
이제 일곱살이된 딸은 시어머니눈에 안 띄도록 하면서 보살피는데, 자꾸 이상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밤에 누군가가 마루를 걸어다니질 않나, 딸이 시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을 목격하질 않나.
죽었다고 생각했던 시어머니가 시체처럼 누운채 삶을 연명하고 있질 않나.
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우명희 작가의 단편은 이번에 세번째 읽어보는데, 세 작품을 읽고나니 이 작가의 작품의 이미지를 알수 있겠다.
담쟁이 덩굴 너머 어두침침한 그늘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손에 확실히 잡히지 않는 굉장히 기분나쁜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고있는 느낌.
작가가 여자라 그런지, 어딘가 여성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작품이 결코 연약하거나 나약하지 않다.
실체가 정확하지 않지만, 충분히 공포스러운 이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들이 이 작가 작품의 특징이고 개성이며 매력이다.
한국적인 공포란 무엇일까? 나는 아마도 이 작가가 가장 한국적이고 불쾌한 공포를 잘 담아낼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대가 되는 작가이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
폭력적인 성향이 다분한 한 남자가 어느날 깨어나 보니 도축장에 와있다.
기계부품처럼 정해진 일을 할수 밖에 없는 상태이데, 여기가 어디인지, 왜 이곳으로 왔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탈출해보려고도 했으나 함께 탈출하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그는 그저 여기에 머무르면서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작가는 악몽을 기록해놓는다고 한다. 이 단편이 꼭 그것과 같은 느낌이라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굉장히 모호하고, 차라리 눈감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공포스럽지도, 그렇다고 공감이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묘하게 이상한 채로 계속 흘러가는 느낌. 특별히 재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재미없지도 않다.
어느 날 내가 꾸었던 기분 이상한 꿈 하나를 소설로 읽는 느낌이다.
이런 여러가지의 모호함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얘기 자체의 모호함을 조금만 줄이고 분위기는 그대로 살린다면,
이런 특징들이 굉장히 매력이 되어 몽환적이고 더 즐거운 얘기가 될수 있을 것 같다.

더블
역시 SF 호러라고 부를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 순간 지구가 3초간 정지해버렸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똑닮은 존재들이 하나씩 생겨나게 된다.
자신과 똑닮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도플갱어의 전설과는 다르게, 이 "더블"이라는 존재들은 그저 한번 더 복사된 그 사람 자체이다.
주인공은 어느날 자신의 더블을 발견하고,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만 딱히 누구도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더블의 존재는 그녀를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 분량이 약간 적은 편이고, 읽으면서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마지막 한 문장에 이르러서는 뭔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묵묵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 그리고 내가 꿈꿔왔던 이상향의 나. 그 어떤 것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배심원
<도둑놈의 갈고리>와 함께 요즘 크게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인터넷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의 불화와 존재감없는 자신의 상황에 절망한 한 여고생이 자살하기로 한다.
삶에 그다지 애착이 없는 아이.
자신이 자주 들락날락 거리던 체팅 사이트에 자신의 프로필을 바꾸면서 자살할거라는 예고를 몰래 집어넣는데, 누군가에게 선포한 것도, 관심가져달라고 소리친 것도 아닌데, 어느새 세상의 중심에 서버리게 된다. 불쾌한 오명으로...
다소 과장된 면이 있어서 납득이 가지않는 부분도 있지만, 심리묘사와 물 흐르는듯한 전개가 탁월했던 작품이다.
그러게. 너무 적은 관심도, 너무 많은 관심도 안좋다니까.

행복한 우리집으로 어서 오세요
제목만 보면 가족잔혹사를 다룬 작품일 것같은데 의외로 좀비물이다.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채 뛰어들어온 아버지. 집밖은 웅성대고, TV속의 세상은 아비규환이다.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게 되어버린 세상.
이윽고 곧 괴물로 변한 아버지를 화장실에 가두고, 열일곱살짜리 아들 하나, 아버지를 가두면서 다리가 부러진 재수생 딸하나,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같은 엄마 하나가 집안에 갖혀 생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좀비물이라고 보기도 모호한 것이, 좀비 비슷한 괴물들이 나오긴 하지만 막상 얘기의 초점은 다른데 맞춰져있어서 재난물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이 품게되는 과거의 향수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살아왔던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낸 작품으로, 좀비+재난물이면서도 묘하게 굉장히 감성적이다.(?)
여러가지 장르가 복합된 듯한 느낌이 드는 단편으로,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감상적이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보는 방향이 어떤가에 따라서 호불호가 가려질 작품같다.
공포면으로 보자면 현저히 스릴이 떨어질테고, 가족 재난물로 보자면 감동적일테니.

배수관은 알고있다.
마지막 작품 <배수관은 알고있다> 또한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다.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린 한 남자가 새로 이사를 가면서 배수관을 통해 다른 집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다.
자신이 없는데도 잘 살아가고 있는 아내와 딸. 엘리베이터에서 문득 마주친 매맞는 아내. 기억이 사라진 어느 하루.
개연성 없을 것 같은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무섭고 슬픈 결말.
이 단편집중에서 가장 쓸쓸한 느낌이 많이 들었던 작품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기묘한 공허함이 덮쳐왔다.
잘 짜여진 퍼즐을 보는 것 같은 완성도도 마음에 들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감정표현에 인색하지 않아서 소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남자주인공의 쓸쓸한 마음에 동화가 되더라.
멋진 단편이었고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작가이다.


어느새 여름이면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 언제 나오나 기웃대게 되었다. 여름이 되면 꼭 하고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인듯이...
해가 갈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고, 갈수록 양질의 단편을 읽게해준 작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몰래 전하고 싶다.
이번 단편선도 좋았지만, 내년에 나올 단편선은 더 좋을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또 내년을 기다려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렛미인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렛미인>은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공포물로 보기는 어려웠던 영화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볼 때, 그 영화는 다른 뱀파이어물들과 비슷한 점이라고는 뱀파이어가 나온다는 정도였고, 오히려 공포물과는 넘을수 없는 벽이 있던 영화 <아임낫 스케어드>같은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몹시, 몹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와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느낌도.
<렛미인>의 원작소설이 나온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줏어듣고 정말 나왔으면 좋겠다-싶었는데, 이렇게 올 여름 나와버렸다.
이미 영화로 보았지만, 영화와 소설은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어서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고, 원작이 있는 영화 어느 것이나 다 그렇듯, <렛미인> 역시 소설 쪽이 훨씬, 훨씬 재밌다. (물론 영화도 재밌게 봤다.)
단 하나뿐인 친구, 갈곳없이 세상에서 몰려버리는 아이들의 쓸쓸한 우정, 차가운 눈과 겨울의 적막함이 지배하고 있던 서정적인 영화 <렛미인>과는 달리, 소설 <렛미인>은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잔인하고, 조금 더 "극적이다." 
그리고 이 극적인 등장인물들의 절박함이 영화보다 훨씬 긴장감있게 표현되어서, 심지어는 박진감 넘치게, 더 끈적하게, 더 그로테스크하게 볼수 있는 소설이다.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작가 이름 한번 외우기 어렵겠다.
작가는 데뷔작 <렛미인>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 수많은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소설이 너무나 "괴상하기 때문에"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상하다-. 정말 괴상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뱀파이어도 등장하고, 왕따당하는 소년도 등장하고, 하루의 대부분 술에 취해있는 술주정뱅이들도 등장하며, 이런 저런 모습으로 타락한 소년들도 등장하고, 불쌍한 어른들도 등장한다.
이런 모습들은 기존의 뱀파이어 물의 등장인물들과는 확실히 많이 다르다. 고딕조의 낭만적인 비극을 품은 여타 뱀파이어물들에서 볼수 없는 그를 만나기전에는 "그저 살아있을 뿐"이었던 뱀파이어 엘리가 등장하니까.
엘리는 다른 소설의 뱀파이어들처럼 귀족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엘리는 씻지 않아서 악취가 나는 소녀이고, 패션센스나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 재활용함에서 줏은 옷을 입고, 루빅스 큐브가 뭔지도 모르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주 벗고다니기도 하며, 피를 마시지 않았을 때에는 흰머리가 나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괴상한 뱀파이어인가. 고상함이나 퇴폐적인 탐미와는 거리가 먼 12살짜리 꼬마아이.
그럼에도 독자는 이 소설을 보며 엘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그녀는 뱀파이어면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되었는데도, 알지 못하는 아이. 그래서 누군가 지적해주면 그때부터 부끄러워지면서 고치려고 노력하는 아이.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순수하게 마음을 내비치는 아이.
200년을 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로 머물러 있는 육체와 마음.
더 없이 사랑스럽고, 또 더없이 가련하다.

왕따 소년 오스카르와 뱀파이어 소녀 엘리의 풋사랑 이야기가 귀엽고 애달프게 펼쳐지는 와중에도, 끔찍하게 비극적인 사건들도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아주 큰 비중은 아니었던 엘리의 보호자 호칸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관계가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호칸의 존재는 소설에서 더더욱 뚜렷한 존재감을 얻는데, 매우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으나 비밀스럽게는 아동성애가 취향이었던 호칸은 엘리의 연인으로써,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결국 괴물이 되어버리는 슬픈 존재로 등장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호칸의 존재는 더더욱 괴기스러워지고, 더더욱 슬퍼진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과도 같이.
어쩌면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빗대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배경이 된 작가의 고향 블라케베리라는 동네가 그렇단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이니 먹을 게 없어서 죽을 정도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풍족한 사람도 없는 동네. 소설속에 등장하는 블라케베리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차갑고 무관심하다. 이웃끼리의 교류가 별로 없는 동네. 옆집에 연쇄살인범이 살든, 뱀파이어가 살든 신문에 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동네.
한 집에 사는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개개인의 상실감과 삶의 아픔들.
이혼한 아버지를 몰래 그리워하는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자신의 쓸쓸한 학교 생활 따위 어머니에게는 전혀 말하지 않고, 오히려 들킬까봐 걱정한다. 모두가 벽을 쌓고 있는 세상.
이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나타난듯,  어디선가 뚝 떨어진 하얀 얼굴의 소녀가 반가운 것을 당연할 터이다.
이 책이 이토록 긴 것은, 바로 그런 삶과 상실감의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이어지기 때문인데, 영화에서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등장인물들의 삶을 자세히 훔쳐보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이다.

근 몇년간 읽은 뱀파이어 물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이었고, 먼저 말했듯이 영화의 차갑고 서정적인 분위기와는 또 다른 작품이라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이라도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수 있는 책이다.
미리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영화와는 달리 불편한 씬들도 많고, 훨씬 더 잔혹하다는 점인데,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작가, 원래부터가 순소설이라기보다는 장르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두어야겠다. (고어, 호러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 <장화,홍련>의 대단한 팬이기도 하다는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그의 다른 작품들도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될 예정이라니, 나는 또 열렬히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인 2009-07-25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를 뭐라 하죠. 공포물,스릴러물,판타지 영화
분류하기가 좀 그렇네요.

Apple 2009-07-25 23:04   좋아요 0 | URL
네. 영화로써는 정말 분류하기가 모호하죠? 공포물이라고하기엔 너무 드라마 같고, 환타지라고 하기엔 너무 서민(?)적이라...
그래도 책은 영화보다 장르가 조금 더 확실한 느낌이예요. 일단은 뱀파이어 스릴러지요...^^

다락방 2009-07-2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책 읽는 감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안읽으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이 책이 좋다는 말이 들려요. 저도 보관함에 넣어두어야 겠습니다.

Apple 2009-07-25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내용을 다 알고봐서 보는 감이 좀 떨어지겠다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영화의 디테일한 내용도 확인할수 있고, 영화보는 사람으로써는 미처 몰랐던 주인공들의 비밀도 있어요. 책만으로도 아주 재밌으니 꼭 보세요...^^
 
스트레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9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세기말은 지났는데, 세기말적인 작품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옛날 어린이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이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면, 2000년이 벌써 10년가까이 지나버린 지금 사람들에게 무서운건 호환, 마마, 전쟁이 아니라, 테러와 실체없는 바이러스, 확인된 바 없는 질병들일것이다. 중요한 것은 "확인되지 않은"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것에 공포와 긴장을 느끼기 마련이다.
다분히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좀비문학, 종말문학이 늘어나게 된 것에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암묵적인 공포가 한몫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최근 몇년간 나온 종말, 좀비 관련 소설들을 많이 보아왔던 것같고, 이 작품 <스트레인>도 그런 의미에서 볼수있을 듯 싶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새롭게 등장한 바이러스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그러나 인간은 알지 못했던 종족들에게서 파생되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뱀파이어 물이라고는 하지만, 로맨틱한 고딕소설인 <뱀파이어 연대기>와도 다르고, 최근에 인기있었던 <트왈라잇>시리즈와도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이것은 스티븐킹의 <셀>이라던가 (종말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코맥 맥카시의 <로드>같은 작품과 비견될수도 있겠다.
밀랍처럼 흰 피부를 가지고 다크서클에는 낭만적인 우울증을 달고다니는, 그런 류의 뱀파이어는 아니라는 말씀.
그래서 뱀파이어물이라기보다는 좀비물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책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보자.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고, 추락된 비행기는 너무나 안전하게 안착되어있으나 승객들은 모두 죽었다.
죽음의 원인을 알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가 지나자 죽었던 비행기안의 승객들이 하나둘씩 살아나기 시작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가며, 죽었다 살아난 산송장들은 본능적인 욕망으로 피를 원한다.
의사인 주인공 에프는 이 비상사태 책임자로 추락된 비행기 승객들의 사망원인을 조사하던 중,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승객들이 공격을 받게되고, 오랜 세월 뱀파이어들을 쫓아다닌 세트라키안이라는 노인이 나타나 에프와 그의 직장동료 노라와 함께 뱀파이어들의 존재를 찾으러 다니게 된다.

다른 뱀파이어물들과 다른 점이라면 "블레이드와 CSI의 결합"이라는 광고문구처럼, 이 책에서는 뱀파이어를 해부해보았다는 점으로, 책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의 외적, 내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가 고심한 듯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그러나 무작정 이 책이 재밌었다는 말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책의 가장 좋은 홍보는 작가 자신이 될텐데, <판의 미로><악마의 등뼈>를 만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지은 소설이라는 그 타이틀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가장 좋은 광고가 되기도 하지만, 소설다운 소설이 되지 못한다는 단점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참 희한하게도 기예르모 델토로의 영화들에서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 소설만은 전형적으로 헐리우드스럽다. 그 점 역시 이 소설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일수도 있겠다.

비슷한 문학들에서 뻔할 뻔자로 수도 없이 등장하는 클리쉐들. 게임을 클리어하기전에 꼭 마왕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하는 것처럼 더 우월하며 더 악랄한 존재가 존재하고, 그 '마왕'을 헤치우기 위해 원정대를 만들게 되고 다음편을 기약하며 꼭 그 마왕은 도망가야하고, 주인공이 이 전쟁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꼭 그 가족이라던지 소중한 사람을 담보잡혀야하고.... 이 얼마나 뻔할 뻔자의 이야기들인지, 읽으면서 작가가 조금 뻔뻔스러운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익숙함을 선호하는 독자를 현혹하는 작가의 영악함일수도 있지만.)
공포, 스릴러 소설들의 작가들이 대단히 글을 잘쓴다는 느낌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여타 다른 장르문학 소설가들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문장력이라던가, 지나치게 영화적이라서 거부감마저 드는 소설의 서사(이 작품이 10년 이내에 영화화 되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이고 아예 영화를 노리고 등장한 듯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어쩌면 작가 본인이 만들게 될지도.), 몰입을 방해할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들이라던가(그중의 대부분은 뱀파이어가 되고 곧 죽는다.) 그에따라 내용성에 비해서 소설이 지나치게 길어진 점등,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나마 볼만한 점이라면, 다른 뱀파이어 소설들과는 무척 다른 뱀파이어의 모습, 3중으로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될만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같은 것이 독특하긴 했으나, 그 점을 빼놓고는 모든 부분에서 특별함이나 비슷한 종류의 소설들과의 차별점이 거의 없는 책이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뱀파이어 3부작은 <스트레인>으로 첫번째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음편들에서는 실망했던 부분들을 충족시켜줄수 있을까.
이왕 읽은 거 끝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 다음편에서 실망하게 되면 마지막까지 보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저 시간떼우기 괜찮은 소설. 여름에 걸맞는 호러환타지. 별 기대없이 딱 그정도로 본다면 그럭저럭 볼 수 있을 법한 책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9-07-17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품인지 리뷰만으로 알겠네요^^
어쩌면 저는 좋아할지도 모르겠어요ㅋㅋㅋ 그럭저럭 호러환타지

Apple 2009-07-17 16:40   좋아요 0 | URL
네. 딱 그말이 맞아요. 그럭저럭 호러환타지...^^;
아주 재미없지는 않은데, 좀 식상하긴 해요.ㅠ ㅠ

다락방 2009-07-1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뱀파이어라면 눈이 뒤집히는 저라서 얼마전에 이 감독의 뱀파이어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 망설이고 있었어요. 살까말까살까말까살까말까살까말까. 그저 시간 떼우기 괜찮은 소설, 이라니...음.....살까요 말까요? 고민고민.

Apple 2009-07-17 16:47   좋아요 0 | URL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재밌게 볼수 있는 사람들도 많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좀 보셨다면 정말 너무 정석대로만 가는 느낌이 들어서 나중에는 어떤 얘기가 이어질지 맞출수 있겠더라고요.ㅠ ㅠ
그래도 여름이니 열대야를 위해서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같아요.^^ 제 리뷰 말고도 호평하신 분들도 많으니, 보고 결정하셔도 될것같아요.^^

이매지 2009-07-1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화 결정됐어요.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제작, 델 토로가 연출한다고 하네요.
(이 사람들은 <호비트>도 그렇고 쌍으로 논다능 -_-;)

Apple 2009-07-17 16:41   좋아요 0 | URL
허걱...그렇군요.=_=;하핫...정말 쌍으로 붙어다니네용~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