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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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렛미인>은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공포물로 보기는 어려웠던 영화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볼 때, 그 영화는 다른 뱀파이어물들과 비슷한 점이라고는 뱀파이어가 나온다는 정도였고, 오히려 공포물과는 넘을수 없는 벽이 있던 영화 <아임낫 스케어드>같은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몹시, 몹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와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느낌도.
<렛미인>의 원작소설이 나온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줏어듣고 정말 나왔으면 좋겠다-싶었는데, 이렇게 올 여름 나와버렸다.
이미 영화로 보았지만, 영화와 소설은 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어서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고, 원작이 있는 영화 어느 것이나 다 그렇듯, <렛미인> 역시 소설 쪽이 훨씬, 훨씬 재밌다. (물론 영화도 재밌게 봤다.)
단 하나뿐인 친구, 갈곳없이 세상에서 몰려버리는 아이들의 쓸쓸한 우정, 차가운 눈과 겨울의 적막함이 지배하고 있던 서정적인 영화 <렛미인>과는 달리, 소설 <렛미인>은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잔인하고, 조금 더 "극적이다." 
그리고 이 극적인 등장인물들의 절박함이 영화보다 훨씬 긴장감있게 표현되어서, 심지어는 박진감 넘치게, 더 끈적하게, 더 그로테스크하게 볼수 있는 소설이다.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작가 이름 한번 외우기 어렵겠다.
작가는 데뷔작 <렛미인>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 수많은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소설이 너무나 "괴상하기 때문에"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상하다-. 정말 괴상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뱀파이어도 등장하고, 왕따당하는 소년도 등장하고, 하루의 대부분 술에 취해있는 술주정뱅이들도 등장하며, 이런 저런 모습으로 타락한 소년들도 등장하고, 불쌍한 어른들도 등장한다.
이런 모습들은 기존의 뱀파이어 물의 등장인물들과는 확실히 많이 다르다. 고딕조의 낭만적인 비극을 품은 여타 뱀파이어물들에서 볼수 없는 그를 만나기전에는 "그저 살아있을 뿐"이었던 뱀파이어 엘리가 등장하니까.
엘리는 다른 소설의 뱀파이어들처럼 귀족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엘리는 씻지 않아서 악취가 나는 소녀이고, 패션센스나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 재활용함에서 줏은 옷을 입고, 루빅스 큐브가 뭔지도 모르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주 벗고다니기도 하며, 피를 마시지 않았을 때에는 흰머리가 나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괴상한 뱀파이어인가. 고상함이나 퇴폐적인 탐미와는 거리가 먼 12살짜리 꼬마아이.
그럼에도 독자는 이 소설을 보며 엘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그녀는 뱀파이어면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되었는데도, 알지 못하는 아이. 그래서 누군가 지적해주면 그때부터 부끄러워지면서 고치려고 노력하는 아이.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순수하게 마음을 내비치는 아이.
200년을 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로 머물러 있는 육체와 마음.
더 없이 사랑스럽고, 또 더없이 가련하다.

왕따 소년 오스카르와 뱀파이어 소녀 엘리의 풋사랑 이야기가 귀엽고 애달프게 펼쳐지는 와중에도, 끔찍하게 비극적인 사건들도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아주 큰 비중은 아니었던 엘리의 보호자 호칸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관계가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호칸의 존재는 소설에서 더더욱 뚜렷한 존재감을 얻는데, 매우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으나 비밀스럽게는 아동성애가 취향이었던 호칸은 엘리의 연인으로써,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결국 괴물이 되어버리는 슬픈 존재로 등장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호칸의 존재는 더더욱 괴기스러워지고, 더더욱 슬퍼진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과도 같이.
어쩌면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빗대어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배경이 된 작가의 고향 블라케베리라는 동네가 그렇단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이니 먹을 게 없어서 죽을 정도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풍족한 사람도 없는 동네. 소설속에 등장하는 블라케베리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차갑고 무관심하다. 이웃끼리의 교류가 별로 없는 동네. 옆집에 연쇄살인범이 살든, 뱀파이어가 살든 신문에 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동네.
한 집에 사는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개개인의 상실감과 삶의 아픔들.
이혼한 아버지를 몰래 그리워하는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자신의 쓸쓸한 학교 생활 따위 어머니에게는 전혀 말하지 않고, 오히려 들킬까봐 걱정한다. 모두가 벽을 쌓고 있는 세상.
이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나타난듯,  어디선가 뚝 떨어진 하얀 얼굴의 소녀가 반가운 것을 당연할 터이다.
이 책이 이토록 긴 것은, 바로 그런 삶과 상실감의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이어지기 때문인데, 영화에서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등장인물들의 삶을 자세히 훔쳐보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이다.

근 몇년간 읽은 뱀파이어 물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이었고, 먼저 말했듯이 영화의 차갑고 서정적인 분위기와는 또 다른 작품이라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이라도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수 있는 책이다.
미리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영화와는 달리 불편한 씬들도 많고, 훨씬 더 잔혹하다는 점인데,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이 작가, 원래부터가 순소설이라기보다는 장르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두어야겠다. (고어, 호러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 <장화,홍련>의 대단한 팬이기도 하다는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그의 다른 작품들도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될 예정이라니, 나는 또 열렬히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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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 2009-07-25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를 뭐라 하죠. 공포물,스릴러물,판타지 영화
분류하기가 좀 그렇네요.

Apple 2009-07-25 23:04   좋아요 0 | URL
네. 영화로써는 정말 분류하기가 모호하죠? 공포물이라고하기엔 너무 드라마 같고, 환타지라고 하기엔 너무 서민(?)적이라...
그래도 책은 영화보다 장르가 조금 더 확실한 느낌이예요. 일단은 뱀파이어 스릴러지요...^^

다락방 2009-07-2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에 책 읽는 감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안읽으려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이 책이 좋다는 말이 들려요. 저도 보관함에 넣어두어야 겠습니다.

Apple 2009-07-25 23:05   좋아요 0 | URL
저도 내용을 다 알고봐서 보는 감이 좀 떨어지겠다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영화의 디테일한 내용도 확인할수 있고, 영화보는 사람으로써는 미처 몰랐던 주인공들의 비밀도 있어요. 책만으로도 아주 재밌으니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