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타닌" 때문이였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줏어 들은 기사 찌라시를 기억하자면 와인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으로 인해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저
기사 찌라시에 나온 특수체질 중에 한사람이라는 사실...
적포도주건 백포도주건 좀 많이 마셨다 하면 다음날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두통으로
고생하게 되는 이유를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또다른 이유는 심리적인 이유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페이퍼에 슬쩍 언급을 했던 과거인사가 하나 있다. 지금 내가 다니는 사무실에서
1년 조금 모자르게 같이 일한 사람이였다. 시작부터 거짓이였던 그는 끝날때까지 거짓이
였던 인물.. 거기다가 자신의 형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영까지...쉽게 말해 여간해선
마주치기 힘든 인물군상 중에 하나였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유형 중에 하나였었다.
S그룹의 처가쪽 딸과 사귄다는 사기부터 시작해서 불치병에 걸린 상상속의 자기애인을
위해 병간호를 해야 한다면서 퇴사하기 마지막 한달동안 오후 3시에 출근해 6시에 칼퇴근
하면서 월급을 한달치를 꼬박꼬박 가져갔던 인간이였다. 카드 결제일이 되면 돈 빌려달라는
부탁이 언제나 튀어 나왔고 그다지 넉넉치 않은 아니 심하게 쪼들리는 집안형편에도 불구하고
자가용을 끌고 다니던 그.나중에 알고 보니 소장에게도 3백만원을 빌려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에겐 여자친구가 심장이식수술을 했다고 뻥을 쳤고 막내 여직원에게는
신장을 이식했다고 뻥을 쳤다고 한다. 더 웃긴 건 심장이식을 위해 미국으로 날라간 여친이
수술 후 보름만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온다면서 공항가야 겠다고 3시에 조퇴하는 그의
모습이였다.)
그런 그가 어느날 와인 한병을 가지고 사무실에 출근한 일이 있었다. 뭐냐고 상투적으로 물어
봤고 그가 말하길 자기 애인과 오늘 특별한 날이라서 와인 한병을 샀다고 한다. 꽤 비싼 것이라
는 설명까지 첨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결정적으로 와인과 거리감을 두게 했던 말을 꺼내
버린 것이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그 인간군상이 추구하는 삶은 옛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나왔던 한석규씨가 연기한 인물이 추구하는 삶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요즘 와인이 왜 이렇게 땡기는지 모르겠어요...와인을 마시다 보니까 맥주도 소주도 별 거
아니더라구요.. 와인 좀 아세요 차장님..??"
성실하게 일하고 이쁜짓 착한짓만 했어도 난 와인매니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대사를 남발한 인물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생각하는 "사회생활오적"에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였으니 그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해져버린 것이다.
난 요즘도 아리따운 자주빛을 띄고 제발 마셔달라고 부르짖는 듯한 와인병을 보고 있으면 그떄
그 인물이 불현듯 생각이 나면서 인상이 약간 구겨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내가 심리적으로 와인을 멀리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뱀꼬리 : 아주 가끔씩 장보러 가는 양재동 카스코에서 종류별로 엄청나게 고루고루 진열되어 있는
와인코너 앞에서 심드렁하게 쓴웃음을 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