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소장님이 점심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일이 좀 많아질 듯 하니, 직원 보충을 해라. 두명 정도만 더 뽑으면 될 것 같다.'
말이야 쉽지, 요즘 직원 구하기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렵다. IMF로 된서리 맞고 일하던 직장에서 말도 안되는 구실로 토사구팽을 당한 그래도 쓸만한 인력은 이미 이 직종을 떠나버렸고 그나마 쓸만한 사람들도 설계가 아닌 건설회사나 단종으로 많이 업종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아트고 예술이고 나발이고 간에 입에 풀칠 정도는 해주게 월급을 줘야 하는데 워낙에 설계 직종의 월급이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짜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근 2년 가까히 사무실에서 뽑은 신규인력은 참으로 난감 그 자체였었다. 경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일처리 능력을 선보이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삼성회장단의 조카와 사귀는데 그녀가 시한부 인생이라 자기가 병실을 지켜줘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새빨간 거짓말로 오후 2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미친X도 있었고, 과장급으로 뽑아 놨더니, 부동산 쪽이 더 전망이 있을 듯 하여 투잡을 위해 들어 왔다고 까불다가 기본적인 일도 처리 못해 3달만에 잘라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쓸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고달퍼졌다고나 할까.
좀 쓸만한 사람은 돈을 더 줘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사무실 직원들 급여수준도 그에 맞춰야 하나 예산이 안맞아 떨어지고 그렇다고 비싼 연봉 주고 불러 와도 그 값어치를 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을 잡아서 일을 가르키면서 키워 볼려고 해도 그들은 옛날의 우리와 다르게 설계쪽으로 취업방향을 잡는 인원은 극소수이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설계 사무실에 들어갈려고 하지 거의 도면공장 수준인 우리 사무실은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을 주면 들어올까 절대 눈길하나 주지 않는다.(실제로 이력서에 대기업 초봉 연봉을 적은 사람이 있었다. 경력은 2년차...보는 즉시 이력서 박박 찢어 버렸다.)
이렇게 사람 뽑는 걸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나름대로 이력서를 보며 가려낼 수 있는 판단기준이생기게 되어 버렸다. 첫째는 1년 단위로 끊어서 사무실 옮기는 사람은 절대 뽑지 않는다. 면접도 안보고 그냥 그런 이력서는 4번 찢어 쓰레기통으로 집어 넣어 버린다. 흔히 `메뚜기 족'이라고 불리우는 이런 인물들은 대부분 의도적으로 1년 단위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자신의 몸값을 부풀린다. 아무래도 전에 다니던 사무실 보다는 새로 들어갈 사무실에 많은 급여를 부르는 생리를 십분 활용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1년 단위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사람은 80~90%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것이 아닌 건물이 제대로 세워지는 도면을 그리는 일이기에 알게 모르게 노하우가 중요한 법인데 이런 사람들은 그 숙련도의 정도가 참으로 얕다. 더군다나 1년 단위로 작심하고 옮기기 때문에 직장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가질 생각을 안하게 된다. 어짜피 1년 있다가 튈 껀데 정 붙일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몰려 다니는 사람들. 규모가 큰 건물의 설계는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량이기에 팀을 짜서 일을 하게 된다. 그만큼 손발이 맞는 사람들이 팀을 짜게 된다면 일도 편하고 속도도 붙는다. 그러나 그 팀이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로 한다. 이런 단점을 이용해 몰려 다니면서 사무실을 옮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저번주 금요일날 올라온 이력서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움직이지 않고 둘이 움직인다면서 일이 많고 힘든 건 참을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 안맞는 건 참을 수 없다면서 지금 다니는 직장도 인간관계 때문에 그만 둘 예정이라고 한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두사람은 뭉쳐 다니기 시작하면서 결코 소속된 사무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 사무실마다 그에 맞는 기준과 일하는 방식이 있는데 이렇게 몰려 다니는 사람들은 여간해선 기존의 질서에 따르지 않는다. 자신들의 기준과 방식을 정하고 절저하게 그 방식을 밀고 나가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결국 기존의 질서와 충돌하고 사무실 분위기 개판으로 만들고 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역시 두번째의 경우로 작년에 몸 상해가면서 1년을 버틴 적이 있었다. 4명이 뭉탱이로 들어와 사무실의 일하는 방식과 기준을 싸그리 바꿔놓고 하나씩 그만두기 시작했다. 결국 남아 있는 직원들은 피똥 싸면서 연일 야근 철야로 일을 했고 나중에 들은 소식으로는 따로따로 나간 4명은 결국 다른 한사무실에서 뭉쳐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무실은 공중분해되고 그때 그 무리의 우두머리격이였던 사람이 지금 내가 다니는 사무실 실장으로 들어와 있다. 그 공중분해된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똘똘 뭉쳐다니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방식으로 일을 해오던 그 맴버들은 사이가 상당히 틀어져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짓는 행위 자체는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하고 어렵다.
그나마 앞서 말한 실장의 존재로 인해 올해는 작년같은 피곤함은 경험하지 않게 된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뱀꼬리 : 내가 겪은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피해는 그 정도가 심했었다.
사무실에서 트는 라디오의 주파수도 그들이 원하는 주파수로 고정이 되어 있었고, 배달시켜 먹는 식사 역시
그들이 원한는 방식대로.. 더군다나 자신들과 손발이 안맞는 직원들은 왕따시키기.. 회식 따로하기 등등....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사냥터를 찾아 떠나서 박살이 났고 난 견디고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