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선배님 중에 가방끈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이력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
있다. 그 분은 우리계열로는 아직도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H대를 졸업한 후 동일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시자마자 직장생활 몇년 하다 별반 흥미를 못느껴 그 대학
꼬장꼬장하다는 교수들의 추천으로 유학생활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었다.
가방끈이 남들보다 길고 굵은 이 양반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은 오만이나 우월
감따위 였다. 그는 자신이 상대하며 가깝게 지내는 대상에 대해 학력이나 출신의
선이 아닌 오직 인간적인 교감만을 가지고 친분을 유지했기에 참으로 다양한 직종과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은 박사학위 이수 후 학위를 받은 나라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보니
만나고 싶어도 비행기를 타고 13시간을 날라가야 만날 수 있는 물질적인 거리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한참 친분을 가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술을 퍼먹었
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흐뭇해진다.
이 분을 알게된 계기가 되었던 꽤 대규모의 모임이 있었다. 우리쪽 업계 특히 설계쪽
업계들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였고 매일 퍼마시기 보단 세미나 혹은 전시회 등등
너무 주지육림으로 치우치치 않는 제법 이상적인 모임의 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업계 혹은 학생들에게 소문이 조금씩 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얼굴 내미는 신규
회원 혹은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곤 했었다.
매일 좋은 일만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보니 가끔가다 찌질한 인간
형들이 종종 얼굴을 비출 때가 있었으나 그들이 모임에 머무는 시간은 끽해야 석달이
전부였었다. 알아서 도태되거나 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빠져나가는 형색을 보여
주는 정도의 기간이였으니까. 모대학에 신설된 과에 입학하여 선배 없이 과제와 숙제를
하려하니 고달프고 힘들어 도움을 요청하러 들어오는 여대생들도 있었고, 혹자는 단순히
여자 사귀어 보겠다고 그냥 들이미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까. (전자는 최대한 도와줬고
후자는 매정하게 잘라버렸다.)
그 중에 가방끈 길은 선배와 연관이 있던 아직도 생각만해도 통쾌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한번은 특정대학에서 뭉탱이로 소문을 듣고 모임에 참석한 인원들이 존재했었다. 그 선배
의 인근대학인 Y대의 학생들로써 처음 자리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상스런 행동거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소속된 대학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 우월감의 모습을 공공연히 보이기 시작했으며 알게 모르게 그보다 상대적
으로 낮은 대학 ( 이게 참 웃기는 거지.. 대입시험 성적으로 우열을 가린다는 것, 현실이
긴 하지만서도 이것이 사람의 고저차를 기준하는 잣대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출신들을 무시 혹은 경멸까지 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선배는 유학을 위해 잠시 모임을
떠났다가 방학을 이용해 간만에 모임을 참석했었고 이 찌질스런 Y대 녀석들과 우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되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자신감이 팽배한 Y대 학생 하나가 포문을 열었다.
못보시던 분이신데..어디 출신이세요..??
순간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그냥 어찌되나 옆자리에서 팔짱끼고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다가올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하 어디 출신이긴요 그냥 공부하는 학생이죠..아 그러고 보니 저도 Y대군요..
은근슬쩍 넘어갈려던 이 선배의 답변을 가만놔두지 않는 Y대 녀석이 또 한마디를 한다.
허허허 저는 Y대 지금 학부 3학년입니다. 학교가 XX쪽이신가요?? 그렇다면 제 선배님이
되실지도 모르는데.....????
슬쩍슬쩍 입꼬리 올라가며 건너편에 앉은 선배를 명백하게 눈 아래로 접고 보기 시작하는
시선이 옆에 있는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그 선배는 오죽했을까. 허나 아무런 동요없이
그냥 조용히 대꾸해주는 선배.
아..저도 Y대는 맞지만 XX 쪽은 아닙니다.. 여기서 좀 멀어요..하하..
이말이 나오자 마자 눈에 띄게 노골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히는 Y대 녀석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줄줄히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서울외 지역에 Y로 시작되는 대학을
읇으면서 어디냐를 채근하기 시작했던 것...
그 선배가 심히 동안이였기에 가능한 대화였을 수도 있었고 아울러 술이 어느정도 들어갔
기에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겠지만서도 초면의 상대에게 지나친 실례라는 판단이
서버렸다. 상황정리 할려고 일어날려는 순간 그 선배의 입에서 완벽한 메가톤급 핵폭탄의
한마디가 떨어졌다.
예일대 다닙니다. 지금은 박사코스입니다.
이렇게 상쾌 통쾌 할수가.. 이 한마디로 찌질이 5인방은 그 날 이후 모임은 커녕 어디서
뭘하느지도 모를 은둔적인 생활에 돌입했다는 입소문을 듣게 되었다.
한가지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정도로 바보는 아니지만서도 가끔이나마 출신성분과
혹은 학연, 혈연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을 보고 있자면 과거에 느꼈던
경멸감보다는 측은함이 앞선다.
얼마나 가진게 없고 품은게 없으면 저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자신을 표현하는 간판이 될까
싶어서.. 물론 이 나라 사회구조가 저런 것이 지상최고의 레어아이템이라고 길들여져버린
사고방식의 문제가 가장 크긴 하지만서도 조금은 깨어있을꺼라 생각했던 20대 초반의 젋은
세대에서 오히려 심해지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 만큼은 개탄스러울 뿐이라는...
그 선배와 같이 내강외유의 표본적인 진정한 가방끈이 그리운 현실이다.
뱀꼬리 : 혹시라도 모를 Y대 출신 분들..결코 전부를 도매급으로 매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사회나 어느집단 어느 대학이던 그 수준을 불문하고 항상 찌질이들은 존재하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