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니게 집에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평소 쓰던 큼지막한 성인용 숟가락이 아닌 원래 쓰던 것의 반 정도의 용량을 보유하는 자그마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있다. 이 숟가락의 원래 주인은 다름 아니라 지금 미국에 유치원 입학을 빙자한 외유중인 주니어의 것이다.
모유수유를 잠깐하고 이유식용 티스푼 용량의 수저와 분유병을 끼고 살던 녀석이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나 이젠 아빠 수저의 반 정도 되는 용량의 수저를 들고 넙죽넙죽 밥도 잘 먹었고 지나치다 싶으면 아빠 밥까지 뺏어먹는 욕심까지 부렸더랬다.
갑자기 수저의 용량이 줄어든 이유는 내 아버지의 방침 때문이었고 그 방침이 다분히 미신스럽고 신용스럽지 않다 치더라도 내 자식 편하라고...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애비의 심정 때문이라도 지금의 그 수저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누나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결국 현지 교포인 아버지 친구 아들과 눈 맞아 결혼해버렸지만.) 뒷바라지를 위해 자주 미국으로 출타를 하시던 어머니의 숟가락으로 식사를 하시곤 하셨다. 이유는 지금 내가 주니어의 수저로 밥을 먹는 이유와 같았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장기간 출타 중인 그 가족의 수저로 밥을 먹고 국을 떠야 외지에 나간 가족이 밥 굶지 않고 편안하게 지낸다는 아버지의 이론 혹은 구전 되어오는 이유 때문이었다.
6.25 전쟁 중에 징병나간 외삼촌을 기다리던 내 외할머니가 그러하셨고 그의 사위인 아버지가 그러하시고 그 아들인 내가 그러하고 있다.
당분간 집에서 먹는 밥이 조금은 불편할지 모르더라도 10번 떠서 먹을 밥 한 공기, 국 한 사발을 15번, 20번 떠먹는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리라. 건강하고 밝게 잘 먹고 잘 성장해 준다면 손가락으로 먹으라 그래도 그리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