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아리다. 남자가 보기에는....

그리고 아버지가 되어가는 남자에게는 더더욱....


중국의 근현대사도 우리나라와 이념은 다르지만 흡사한 격동기를 거쳐왔나 보다.
영화의 인물들은 모택동시대부터 등소평의 개방화 정책까지 관통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해바라기 (Sunflower, 2005)-감독 : 장양


모택동 집권 시 피바람이 부는 숙청의 와중에 영화 속의 아버지는 화가라는 이유만으로 집단농장에서 6년간의 노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아들은 못 알아 볼 정도로 성장했고, 서먹하기만 할 뿐이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시간인 6년 동안 많은 것을 빼앗긴다. 화가의 생명인 손의 기능 뿐 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까지 느슨해져 버렸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에 서툰 아버지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지금까지의 자유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아들과는 여전히 삐걱거린다.




고지식하며, 권위적이며, 강압적인 원리원칙주의자....우리나라나 그 나라나 “나쁜 아빠”라는 명제 앞에 언제나 붙는 저런 단어들 중 하나도 빼먹지 않고 모조리 갖추고 있는 영화 속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날 답답하게 만든다. 아들의 저항이 점점 더 무모하고 위험해져도 눈 하나 꿈뻑 안하는 냉혈 함까지 보여주는 순간에는 숨이 턱턱 막혀온다.

그런 모습에 질려 영화를 중도에 포기하려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의 제목 “해바라기”가 길바닥의 가속방지턱마냥 뻑뻑하게 걸려온다. 영화의 초입부 때 해바라기는 잠깐 등장한 후 6년간의 노동현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마당에 이 꽃을 심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녹음 테잎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진 아버지는 1년 후 아들의 집 앞에 해바라기 화분을 놓는다. 3번 출연하는 해바라기는 자식의 탄생, 재회,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를 묘사해준다. 마치 그 커다란 꽃덩어리에 씨를 잔뜩 머금고 하루종일 강렬한 태양을 바라보며 씨앗의 성장을 기원하는 그 꽃의 생물학적 특성 마냥....




24시간 전에 봤던 이 영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리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들 아버지들의 그 얼굴과 모습들이 떠오른다.


뱀꼬리 : 영화의 포스터로 쓰인 저 그림은 중국의 유명화가 “장샤오강”의 대가족 시리즈 중 하나. 영화 속 아들의 개인전에 나열되어있는 그림들 역시 이 화가의 작품들.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과 장샤오강의 그림들은 마치 영화를 위해 그려졌다고 생각될 만큼 잘 어울린다. 애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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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7-06-0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 저 남자의 등은 참 쓸쓸하네요.
아, 나도 볼 걸! 메피스토님의 리뷰도 애절해요.

하늘바람 2007-06-05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못본 영화네요

프레이야 2007-06-0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바라기를 좋아하는데 얼마전 작은딸이 뜬금없이 자기는 해바라기가 참 좋다고 말하더군요. 한곳만 바라보고 기다린다고 하면서요.. 이 영화 다 못 보고 잤지만 지금 메피님의 마음처럼 그렇게 아려올 것 같아요.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찌 그리 묵직하면서도 서글픈지요...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의 견고한 어깨와 휜 등처럼요.. 장샤오강이란 화가의 그림이군요.
아, 새단장한 님의 서재 멋집니다.^^

Heⓔ 2007-06-0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다...라고 하시니 더욱 보고 싶어요...

씩씩하니 2007-06-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애절해보여요..그림이..해바라기두...
얼마 전에 조카랑 얘기하면서 가슴이 아렸었는대...
조카가 그러드라구요...'엄마가 너무 불쌍해요...'제가 아빠는? 그랬더니..
아빠는 안불쌍하대요...아빠의 인생까지 돌아보게 되는데는 시간이 참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빠라는 무거운 짐과,,,숨겨진 마음을 알아채는데..말에요...
참 독특한 화가의 그림..잘 보구,,가요~~

비로그인 2007-06-0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어떤 마음으로 '아리다'라고 했는지 알 것 같은 내용입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의 문화속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자식들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를 못하죠.
그림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마치, 그림 속에 실제 사람 눈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

moonnight 2007-06-0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말까 하다가 안 보고 잤더니 아쉽네요. 봤어야 했는데. -_ㅠ;

네꼬 2007-06-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해바라기 바라보는 뒷모습 사진, 정말 아리네요.

메피님은 심술부리실 때랑 이럴 때랑 너무 다르셔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2007-06-05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7-06-0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 다 보니 나니..새벽 3시였어요..! 해바라기..색이 참 이쁘잖아요...물론 씨가 빠진 후는 좀 징그럽긴 하지만요..^^
하늘바람님 // 저도 못 볼뻔했어요...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보게 되었긴 하지만요.
늘 속삭이시는 분 // 좀 포스트 모더니즘한 저 그림이...무섭게 보일진 몰라도 엄청난 고가에 매매가 되는 그림들이랍니다. 그리고 저런 스타일로 그린 인물 시리즈가 몇개 더 있는데..무섭다기 보단..그림이 서글픕니다..알게 모르게..^^
혜경님 // 예 저도 영화보고 나서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현재 활동중인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장샤오강이라는 화가는 중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인지도가 꽤 높다고 하더라구요..^^
히님 // KBS에 마구 조르면 또 해줄지도 몰라요..^^
씩씩하니님 // 아무래도..부정보다는 모정이 더 살갑게 부대끼잖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 또한 모정 못지 않게 끈끈한데 말입니다..^^
엘신님 // 장샤오강의 작품들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되고 검색을 하면서 몇 작품 관람했는데요...처음엔 좀 기괴하고 이런 그림이 왜 인정을 받는가 생각했는데..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그림 속에 많은게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달밤님 // 달밤님도 히님과 함께 KBS에 졸라보시도록 하세요..^^
네꼬님 // 키득키득...둘 중 어느게 더 나아 보이십니까..?? ^^
절묘하다고 속삭이신 분 // 저도 영화 보면서 툭 넘어지곤 한참을 생각했더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