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지인 중에 "호색한"이라는 별명이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녀석이
하나 있다.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집안에 얼굴까지 잘생긴 그 녀석은 자신의 외적인
장점을 십분 발휘해 물 좋다고 소문난 클럽을 전전하면서 작업의 대가로 소문이
자자했던 녀석이였다.
그 녀석의 이성만남은 가볍기 그지 없었고 언제나 엔조이 혹은 원나잇 스텐드가
전부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쌩양아치 혹은 잘나가는 놈
등등 찬사와 더불어 욕도 무진장 먹었었다.
간만에 술자리에서 만난 녀석의 표정은 초췌했으며 그전의 그 호기로운 모습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 왜그래? 라는 나의 물음에 조용히 그 녀석은
사랑에 빠졌다..라는 전혀 그놈답지 않은 유치찬란한 답변을 돌려줬었다.
언제나처럼 엔조이 상대를 찾기 위해 클럽을 방문한 그놈은 역시 언제나처럼 표적으로
삼은 이성을 작업의 성공대열에 올려놨고 시간이 흐르면 흐지부지 되는 관계가 될꺼라
예상했었단다. 하지만..만나면 만날수록 끌리게 되었고 이것이 사랑인지 자기자신을
의심하기까지 했다고... 결론은 진지한 관계를 원하는 그녀석에게 그녀는 우리는 엔조이
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한마디를 남기고 연락두절을 선언해 버렸단다.
대충 스토리를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에 내 답변은 그 녀석에게 엄청난
상처를 줘버렸다.
"너 답지 않아.. 잊고 다른 여자를 찾아..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공중파로 편성된 "빨간구두"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보면서 내 답변을 들은 그 녀석의
절망 반, 분노 반의 표정이 떠올랐다.

차량고장으로 빈민가에 잠시 시간을 보낸 외과의사는 친절한 그 동네 여자를 순간적으로
겁탈하게 된다. 욕정으로 시작된 두사람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를 씌워주는
순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화려한 포장지는 어느 누구든지 손쉽게 발기발기 찢어버릴
수 있는 견고함과는 거리가 먼 위태로움과 불안정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남자 이 여자를 버린다. 이유는 참 그럴 듯 하다.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란다. 양쪽으로 자신의 씨를 확실하게 심어주는 이 고아태생인 외과의사에게 약간의 동정심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도 스리슬쩍 삽입해 준다.
백사장에 " 난 한 여자를 겁탈했다."를 휘갈겨 썼지만 거들떠도 안보고 그 앞을 지나가는
자신의 부인...기거하는 집 건너편의 가정부에게 아내가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 내 아내가 여행을 간데요 친구를 만나러~ 그 친구는 양성애자래요~ 웃기죠.. 더 웃긴 건
내 아이를 임신한 다른 여자도 있는데 말이죠~!" 라고 시끄럽게 떠든다. 하지만 전화통화
중인 아내는 이 남자의 말을 전혀 신경 안쓴다. 화려한 파티와 가족 모임에서도 언제나 한켠에
떨어져 있는 듯한 소외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사랑에 비하면 이 남자의 사랑은 초라하고 볼품없다.
그녀의 사랑은 본능적이며 원색적일진 몰라도 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속의 이 남자 용서가 안된다. 이 남자가 외도의 대상이였던 "이탈리아"
(페넬로페 크루즈)의 사랑에 비하면 이 남자의 사랑은 아마도 50%는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뱀꼬리: 어바웃 어 보이, 베이싱, 웨일라이더, 그리고 빨간구두(Don't move).......
저번주 공중파 영화편성은 추석때나 구정때보다 월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