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를 하던 내가 건설사에 취직 한적이 있었다. 비록 3일 일해주고 나왔지만 말이다.
으리번쩍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설회사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규모를 유지
하고 있는 건설사였었다. 건설사에서 요구한 자격은 설계유경험자..더 자세히 말하면
공동주택(아파트) 설계 유경험자였었다.

모집인원은 두명.. 여차저차 면접과정을 거쳐 최종 두명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부서배치를 받기위해 첫출근을 했고 회장이라는 양반이 서식하는 회장실에 불러들여
간것까지는 좋았는데...

나와 같은 영광을 누린 양반은...대학원을 재학중인...나보다는 한살이 많은 양반이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실무경력만큼은 내 기록의 반정도밖에 안되는 양반....
더군다나 공동주택관련 경력은 내가 10여개단지를 설계했던 경력이였다면 그 양반은 1개
단지의 초기 마스터 플랜에만 참여한 정도...

회장은 두사람을 불러놓고 이력서를 차근차근 살펴보더니만...다짜고짜 그 양반을 아파트
부서로 밀어넣어 버렸고..내 눈치 100단의 검정치로 보자면... 한직이라고 보여지는 설계
2파트 쪽에 나를 배정하기에 이르렀다.

인정하기 싫지만..실무경력이 가방끈의 길이와 대학이름에 눌려버리는 최초의 경험이였다.

다른 부서에 비해 달랑 3명의 인원으로 돌아가는 부서...거기다가 주사업은 "러브호텔"
이였다는...설상가상 내가 그 부서에 배속되면서 나의 전임자는 비교적 좋은 보직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버린 듯 했다.

그리고 전임자의 의미심장한 업무인수과정...

'실장님이 지금 회사에서 기반이 좀 약하다 보니...잘 보좌해주셔야 합니다....'

이건 또 뭔말이란 말이냐..그러니까..내가 모셔야 할 상사는 소위 조직에서 끝발이 없는
바람앞의 촛불이라는 뜻인가..?

일은 어려울 것이 없었으나...이미 나의 머리속 주판알은 음속의 속도로 튕겨지기 시작했다.
일단 입사한 첫날 분위기 파악과 대강의 업무윤곽을 확보한 후...이틀째에는 점심때 사무실
직원과의 점심식사를 하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부서가 회사에서 어느정도의 위치인지 심층
분석...그리고 진행중인 계획을 전시용이라는 의미가 가득 담긴 표현으로 후다닥 처리....
삼일째 여러가지 시스템의 문제점과 업무처리를 "내가 이만큼 일한다.!" 라는 모습으로 보여준 후..

4일째 출근을 안해버렸다....

출근시간 30분이 지나자 핸드폰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 약간 뜸들이며 받았다.
전임자 전화...조심스럽게 왜 출근 안하셨느냐...무슨 일 있냐는 소리가 들린다.
조모조목 털어 놓는다. 입사부터 부당한 부서배치가 도통 이해가 안간다...부터 시작해서 내가
그곳에 입사한 이유는 공동주택 유경험자이기 때문으로 알고 있는데..내가 배정된 부서는 전혀
엉뚱한 곳이였다. 아울러 내가 알기론 같이 입사한 분은 공동주택설계 경험이 전무한 걸로 알고
있다..등등..주절주절....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더니만...

1시간 후 다시 전화가 온다. 원하는 부서에 재배치 시켜주겠다고 한다.
(이건 다각도로 분석이 가능하다..나와 같이 입사한 그 양반이 가격대 성능비가 영 시원치 않다
던가...잠깐 거울아 거울아~의 시점에서 본다면 3일동안 일하는 나의 모습이 그쪽에서는 가격대
성능비가 보기보다 뛰어나며 연비도 좋다고 보여졌던가...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면....내가 3일 일한
그 부서는 존폐위기를 맞았다..라던지...)

그러나..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하고 끊어버렸다는...

입사때부터 부서배치에 불만을 품고 4일째 회사에 안나타난 내가 오너에게 좋게 보일리가 없으니까...
더군다나 입사때부터 받은 차별을 경험한 내가... 좋아라 그곳에서 일할리가 없잖은가..

뱀꼬리 : 안들어가길 천마다행...1년 후...그 회사 망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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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2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6-12-1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잘 써야 하는데...쯧쯧쯧~
님을 처음부터 적재적소에 배치했더라면 저얼대 망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쯧쯧쯧~

바람돌이 2006-12-1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그렇게 주관적인 기준으로 뽑는데 그 회사가 잘될리가 없죠... 글구 메피님같은 인재를 몰라보다니말입니다. ㅎㅎㅎ (메피님이 원하셨던 정답이 이거 맞죠? ㅎㅎㅎ 3=3=3===)

건우와 연우 2006-12-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끊어버리는 메피님에게서 단호함을 봅니다.
결단이라는게 적시에 내려줘야하는건데 도통 잘 되지가 않더라구요. 진정, 쿨함을 보여주셨어요. 하기야 업무능력이 안되면 아무리 결단의 때를 알아도 실행은 못할 일이긴 하지만요. 멋지세요.!!

마냐 2006-12-1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조직은 희망이 없죠. 때론 질긴 목숨 부지하면서 조직원들 발목을 잡지만 말임다. 암튼, 결단력이 부럽심다. ^^

마태우스 2006-12-1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엔딩이군요^^

2006-12-12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12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2-1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사삽질이라고 속삭이신 분 // 삽질이 될 뻔 했어요...그냥 붙어 있었으면요..^^
먹고 사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속삭이신 분 // 멋지긴요...제가 다른 건 몰라도..
곰가죽 뒤집어 쓴 여우과라서..눈치 빨리 튄 것 뿐입니다..^^
세실님 // 그래도 망했을 꺼에요...그때 생각하면 아찔해요...만약에 붙어 있다가 졸지에 다니던 회사 망해봐요...아예 발을 안들여놓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해요..^^
바람돌이님 // 아아..인재라니요 가당치도 않는 말씀을.....(귀신같은 바람돌이님..)
건우와연우님 // 회장과의 첫 만남에서 순식간에 뒤바뀐 부서배치까지..뭐하나 맘에 드는게 없더라구요..그래서 아마 단호했었나 봅니다..^^
마냐님 // 그게 어쩌면 간사한 저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답니다.. 아무리봐도 저 포도는 시어 빠졌을 꺼야..하면서 획 돌아서는 여우같이요..^^ 운이 좋았는지...시어빠진
포도라서 다행이지만요...^^
마태님 // 해피엔딩이라기 보단..큰일날뻔한 일이였어요..밍기적거리면서 거길 그냥 다녔었다면....
이벤트관련 속삭이신 분 // 예 잘 알겠습니다..이미 처리했습니다..^^
질투의 돌화살 조심하시라고 속삭이신 분 // 각오하고 올렸습니다..하하하 고마워요~ 님~

sooninara 2006-12-1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호텔을 쥐고 흔드실뻔했군요.ㅎㅎㅎ
역시 사람을 잘 알아보고 쓸줄 알아야...마태님이 여우과란걸 다시 확인했네요.

무스탕 2006-12-1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판단이었어요. 인정에 끌려서(3일 일하고?) 의리에 끌려서(3일만에 의리?) 계속 근무하셨더라면 나중에 더 곤란한 일로 사람 쥐락펴락 했을거에요.
그건 그렇고... 3일이라도 일한건 일한것! 일당 안 받으셨나요? ^^;

마노아 2006-12-1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견지명이 있으셨습니다..;;;

깐따삐야 2006-12-1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귀여움 이면에 저런 배짱이 숨어 있으셨군요!

춤추는인생. 2006-12-1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쾌해요 님..^^ 님이 지으신 러브호텔이라면 흠..
들어가보려고 했는데....ㅎㅎ

페일레스 2006-12-1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메피님의 결단력과 배짱은 언제 봐도 또 봐도 다시 봐도 감동입니다.
참, 며칠 전에 [Shaun of The Dead]를 봤는데 웃기긴 웃기더군요. 특히 주크박스에서 "Don't Stop Me Now" 나오는 부분하고 좀비들한테 레코드판 골라가면서 던질 때요. ^^ 하지만 제 취향에는 [Deadalive]가 더! 좋았습니다. 히힛.

비로그인 2006-12-13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결론이 마음에 드네요... 후후.. 저는 취업하기 전에 제가 먼저 망할 거 같은 기분이 드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답니다-_- 웬수같은 놈의 공무원셤!!

Mephistopheles 2006-12-1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 쥐고 흔들면...그 러브호텔이용하는 사람들은 다 튀어나올지도..오호호...그나저나 마태님도 여우과셨군요..어쩐지..동족의 내음이 나는 것 같았는데..
무스탕님 // 비싼 점심 3번 공짜로 먹었기에..그냥 안받았습니다..^^
마노아님 // 운이 좋았죠..그냥 첫날 입사부터 존심상해서 객기 부렸는데..다행이다 싶습니다..^^
깐따삐야님 // 인생은...한방..!! 이라더군요...^^
춤추는인생님 // 키득키득~ 에잇 이럴줄 알았으면 몇개 설개하고 그만두는 건데..!!
페일님 // 아무래도 데드 얼라이브가 컬트적이거나 마이너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죠..저역시 데드 얼라이브는 지독하게 굴러다니면서 낄낄 거리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콸츠님 // 공무원셤 준비중이시군요..요즘 경쟁율 엄청 높아서 거의 사시 수준이잖아요..^^ 그래도 잘 되실껍니다..^^